생태 환경이 경제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
중국의 자연 환경은 대체로 평탄한 농지, 낮은 산들, 항해가 가능한 강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농경에 적합하였고,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 유리하였다. 농경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화목한생활이었다. 특히 쌀농사의 경우에는 공동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사람들 간의 화목은 관개 공사의 경우에 특별히 더 중요하다. 관개 공사가 절실히 필요했던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중국 북부의 황하 골짜기 지역이었다. 관개 공사는 이웃과의 화목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유도하게는데,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작농들은 자신들의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야 했고, 자기 부락의 연장자들이나 권력자들의 지배를받아야 했다. 그리고 지역의 권력자들은 다시 왕(통일 중국 이후는 황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그들의 생태 환경으로인해 매우 복잡한 사회적 제약 속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자연 환경은 그와 대조적이었다. 그리스는 해안까지 연결되는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농업보다는 사냥, 수렵, 목축, 그리고 무역(정확히는 해적)에 적합했다. 이런 일들은 농업에 비해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덜 필요로 한다. 실제로 무역을 제외하고는 굳이 안정적인 공동체가 필요없다고 할 수 있다. 농경정착 생활이 그리스에 도입된 것은 중국보다 거의 2,000년이나 뒤였으며, 도입된 이후에도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기보다는 상업적인 대규모 농경으로 빠르게 변화되었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경에 이르렀을 때 많은 농부들은 사업가적 성격을지닌 개인 단위의 농장주였으며, 중국에서처럼 소작농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토양과 기후는 농경보다는 포도주와 올리브유 생산에 더 유리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대 중국인들과는 달리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들과의 화목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영역에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시장이나 공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논쟁하는 습관도 기를 수 있었다. - P190

앞에서는 사회적 행위(관계 중심적 사회 행위와 자율 중심적 사회 행위)가 형이상학적 신념에 영향을 주고 이 형이상학적 신념이 인식론적 사고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러나 사회적 행위들이 곧바로 인식론적 사고 습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고대 중국의 변증법적 사고와 고대 그리스의 논리학은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개발된 인지적 도구들이다. 조화와 화목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논쟁이나 대결의 전통이 생겨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관점의 차이가 발견되면, 모순을 뛰어넘는 중용의 도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논쟁이 장려되는 사회에서는 ‘비모순율‘이나 ‘형식 논리‘ 같은 절차들이 자연스럽게 개발된다. 논리학이 발달되면그것은 자연스럽게 과학의 발달로 이어진다. 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앨런 크로머 (Alan Cromer)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과학은 어떻게 보면 수사학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유일하게 그리스에서만 발달되었는데, 그 까닭은 그리스의 공회가 논쟁의 기술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증명은 궁극적으로 수사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 P194

20세기의 심리학자들은 경제·사회적 요인들이 사람들의 지각습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보여주었다. 심리학자인 허먼 윗킨스(Herman Witkins)와 그 연구팀은 ‘장의존성 (field-dependenc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이는 어떤 사물을 지각할때 주변 맥락의 영향을 받는 정도를 지칭한다. 장의존성은 다양한방법으로 측정되는데 그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 ‘숨은그림찾기 검사(Embedded Figures Test)‘이다. 이 검사는 복잡한 배경에숨겨진 사물들을 찾아내는 것으로서, 장의존적인 사람은 주변 배경에 주의를 너무 기울여 숨겨진 사물을 쉽게 찾지 못하지만, 장독립적(field-independent)인 사람은 주변 배경에 영향을 덜 받고 쉽게 사물을 찾아낸다.
만일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내용이 타당하다면, 즉 경제적인 요인들이 사람들의 인지 습관에 영향을 미친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농경 사회의 사람들은 수렵이나 사냥 사회 같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장의존적이고, 전통적인 농경 사회 사람들이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장의존적일 것이다. 연구 결과, 이러한 예측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흥미롭게도 수렵과 사냥을 하는 사람들과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정도로 장독립적이다. - P198

과학에서의 동서양 차이
미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만 4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일본은 겨우 1명만을 배출했다. 일본의 과학 예산이 미국 과학예산의 절반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차이는 가히 충격적이다. 서독은 일본 과학 예산의 절반밖에 책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서독보다도 과학 예산을 훨씬 적게 지출하는 프랑스조차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의 이러한 초라한 성과에 대하여 혹자는 연장자를 존경하는 유교 전통을 그 원인으로 본다. 젊고 유능한 학자보다는 실력은 없으나 나이 든 학자를 지원하는 사회 풍토를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일본내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논쟁과 지적 토론의 부재를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동료들끼리 서로 비판하고 심사하는 것을 무례하게 생각하며, 논쟁과 지적 토론이 과학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한 일본 과학자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기술했다.

워싱턴의 카네기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거기서아주 유명한 두 명의 과학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서로 매우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극심한 논쟁을 벌였고 심지어 저널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미국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이지 일본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일이다. - P206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차이
서양인들은 개인과 국가 간에는 오직 하나의 바람직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즉, 각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그리고 국가와 사회적 계약을 맺으며, 그 계약에는 개인의 권리, 자유, 그리고 의무가 포함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국가를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고유한 권리라는 개념은 그들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며 그보다는 부분-전체, 개인-사회라는 관계적 측면에서의 권리가 훨씬 더 의미가 있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그들의 사회에서 마치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처럼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근거로 동양인들의 도덕관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도덕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양인들이 서양인의 행동을 보고 그들의 도덕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 유학 온 동양 학생들은 영어에 익숙해지고나면, 미국의 미디어에 폭력, 섹스, 범죄들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자유라는 명목으로 그런 것들을 용인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곤 한다. 그들은 그런 것들이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면 사회 전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양인들은 권리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 P211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마치 요리의 재료들이 각각의 속성은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두 문화는 새로운 통합을 맞이할 것이다. 그 통합이 두 문화의 가장 좋은 특성들만을모아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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