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괴벨스가 연단에 올라갔어요. 연설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대중을 휘어잡는 기술이 뛰어났죠. 실제로 그날도 괴벨스는 서서히 자기 말에 스스로 도취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화산 폭발과 같은 순간이 찾아왔어요. 무슨 정신 병원에서 일어난 광란의 폭발 같았어요. "이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괴벨스가 이렇게 외치는 순간이었어요. 그러자 마치 다들 말벌에 쏘인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발을 구르고 두 팔을 미친 듯이 휘둘러댔어요. 귀청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나랑 같이 온 동료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뻣뻣하게 서 있기만 했어요. 우린 둘 다 숨조차 쉴 수 없었어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경악한 거죠. 괴벨스 때문만도 아니고 이 군중때문만도 아니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날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던 거죠. 우리 둘은 군중의 일부가 아니었어요. 우린 아마 유일한 관객이었을 거예요.
나는 괴벨스 자신도 그 순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수백 수천 명을 동시에 일어나게 해서 함성과 환호를 지르게 할 수 있는지 정말 표 현할 말이 없어요. 어쨌든 괴벨스는 그렇게 했어요.
본인도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 우린 가만히 서 있었어요. 서로 손을 꼭 잡은 채로요. 나와 자그마한 체구의 동료 둘이 말이에요. 우린 자리에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 있었어요. 그때 뒤에 서있던 친위대원 하나가 우리의 어깨를 톡톡 치더니 말했어요. 박수라도 따라 쳐요.」 순간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함께 박수를쳤어요. 그래야만 했죠. 당연히 그 친위대원은 이런 말도 했어요. 이런 순간에는 혼자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요.
우리는 박수를 쳤어요. 그것도 미친 듯이요. 우리 둘은 이 섬뜩한 광경에 정말 깊은 충격을 받았어요. - P136

나는 괴벨스에 대해 이렇게만 말할 수 있어요. 아주 뛰어난 연기자였다고요. 아주 훌륭한 배우였다고요. 예의 바르고 진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나운 선동가로 변신하는 역할을 아마 그 사람만큼 잘하는 배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쪽 면만 보고는 절대 다른 면을 상상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체육관 사건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겼던 그 모습이 그랬죠. 평소 사무실에 있을 때는 그렇게 기품 있고 단정하게 행동하던 멋쟁이가 완전히 돌변해서 미쳐 날뛰는난쟁이가 되는 걸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어요? 한 사람 속에 그렇게 상반된 모습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 순간 나는 그 사람한테 소름이 끼쳤어요 무섭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생각도 곧 지워 버렸죠 나는 괴벨스한테 열광하지 않았어요. 어떤 것에도요. 나중에 그 사람이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서 우리한테 다정하게 뭔가를 물어볼때도 그랬어요.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 사람이 체육관에서 소리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 사람은 지금 세련되게 옷을 입은 부드러운 민간인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 거죠. - P140

히틀러의 자살을 다들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어요. 어쨌든 그러고 꼬박 하루가 지나갔어요.
당시 나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어요. 불과 하루밤낮에 불과했는데 말이에요. 그때 다시 슈배거만이 와서말했어요. 괴벨스도 목숨을 끊었다고요. 괴벨스 부인도요아이들은요?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도 죽었다고 했어요. 누구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어요.
아, 정말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우리는 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어요. 정말 술이 필요한 시간이었으니까요. 물론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계속 술만 마셨어요. 취하기라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거 말고 다른 무슨 일을 하겠어요? 분위기가 어땠는지 아세요? 공포였어요.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절망감이 팽배했어요. 게다가 이제는 될 대로되라는 심정도 있었어요. 갈 때까지 간 거죠. 여기서 어디까지 더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다끝난건 분명했어요.
러시아 군인들이 나를 총으로 쏴 죽일까? 강간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런 건 이제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심적으로 감각이 죽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공포를 느낀 적은 자주있었지만 이번엔 아니었어요. 그냥 얼음처럼 차가웠어요. 아무 감정이 없었어요. 그냥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어요. 공포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어요. 대신 이런 감정만 가득했죠. 모든 게 끝났어. 더 이상은 없어. 끝났어. 모든 게 끝이야. - P164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저 난 항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어요. 그만큼 성실하게 잘했고, 항상 정확했어요. 어떤 자리에 있건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완수했어요. 평생 그랬죠. 당시도 물론이었고요. 그 일이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상관없었어요. 방송국에 근무하건 선전부에서 일하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디에 있건 마찬가지였어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당시 난 항상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휴,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구나. 집이 완전히 망가져도, 아, 아직 살아 있구나,
창문이 부서지고 문이 닫히지 않아도, 아직 살아 있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런 생각으로 살아갔을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그게 위안이었죠. - P170

그러나 나는 풀려나지 못했어요. 처음에 나와 함께 구금된 사람은 백러시아 여자였어요. 부모님이 1918년 러시아혁명 때 러시아에서 도주했다고 하더군요. 베를린에는 백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요. 이 백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에겐 나치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었어요. 자신들을 배신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 여자의 남편은 기자였는데, 남편도 어딘가에서 러시아 군인들에게 검거되었다고해요. 아무튼 이 여자는 계속 불려 가 심문을 받았어요. 불쌍한 여자였어요. 정말 많이 시달렸죠.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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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양극화된 정보 세계에 가둬놓을수록(실제로 그렇다) 그들은 더 양극화한 방식으로 행동하며, 이는 결국 시스템을 양극화한다. 폭스 뉴스는 공화당을 자극해서 여러 번의 정부 셧다운을 초래했고, 트럼프의 가장 공격적인 수사 대부분은 음모론자들이 그에게 떠먹이는 보수 미디어에서 나왔다. 실제로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트럼프 탄핵을 시작한 것은 인터넷 매체 《브레이바트》의 선임 편집인인 피터 스와이저Peter Schweizer가 밀어붙이고 폭스 뉴스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일련의 반反바이든 음모론을 트럼프가 믿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인 대부분은 헌터 바이든Hunter Biden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고, 우크라이나 검찰에 대한 막연한 이야기를 믿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헌터 바이든이 그의 행정부를 수사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몰아넣었다고 설득당했고, 이것은 미국 정치사를 바꾼 일련의 사건들을 촉발했다 (2019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조 바이든의 차남인 헌터 바이든의 활동과 세금 문제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수사를 요청하면서, 거부할 경우 미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철회할 것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8월경 내부 고발로 밝혀졌다. 결국 이 사안은 12월 하원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 의결로 이어졌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헌터 바이든에 대한 특검을 법무부에 종용했고, 트럼프 축 인사들은 우크라이나 검찰이 바이든 측의 압력으로 기소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옮긴이.) - P207

정치는 무엇보다도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가장 많은 권력을ㅍ행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며, 이런 사람들은 정치화한 미디어를 선택한다. 그들은 그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정치 시스템을 만든다. 나머지 국민은 더 많이 양극화한 선택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고, 그러고나면 선택지들은 양극화한다. 기억할 것은, 정당 간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무관심한 사람들마저도 한쪽을 선택하기가 쉬워진다는 점이다.
저널리스트들은 이러한 힘에 면역이 없다. 우리가 양극화한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양극화한다. 나 또한 이런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도 목격했다. 우리가 리트윗하기를 좋아할 때, 또는 주된 피드백이 소셜미디어상의 당파성중독자들에게서 나올 때, 그것은 미묘하지만 확실하게 뉴스 판단을 왜곡한다. 이것은 저널리스트들이 취재하는 사람과 내놓는 이야기를 변화시킨다. 언론이 정치를 좀 더 양극화한 방식으로 다루면서 양극화한 청중들의 취향을 기대하거나 흡수할 때, 정치 현실은 더욱 양극화한다. - P208

나는 내가 속한 업계가 내린 구체적인 결정에 비판적이지만, 문제는 피할 수 없다. 뉴스 미디어는 정치계의 수많은 배우 가운데 하나가아니라, 가장 강력한 배우다. 언론은 정치인들이 하는 일과 대중이 아는 것 사이의 1차 중개자다. 이런 상황을 회피하는 방법은 우리가 취재하는 것에 대한 결정을 뉴스 가치라는 개념에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을 취재한다면, 뉴스거리를 결정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다. 책임은 뉴스 가치성에 대한 중립적인 외부의 판단에 있다. 문제는 그 누구도 뉴스 가치성에 대한 엄격한 정의를갖고 있지 않고, 하물며 그들이 따르는 정의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 P209

 현실에서 뉴스 가치성은 중요한 것. 새로운 것, 터무니없는 것, 갈등을 빚어내는 것, 비밀스러운 것혹은 흥미로운 것 들의 조합이다.
뉴욕대학교 방송언론학 교수 제이 로즌Jay Rosen 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언론이 정의하는 것처럼. 뉴스 가치성은 어떤 일관성을 갖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걸 방송언론학계는 줄곧 알고 있었습니다. 뉴스 가치성은 단지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 가끔 합쳐지는 요소들의 목록일 뿐입니다. 뉴스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한 것 말고는 거기엔 논리가 전혀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장점이 있다면 편집자들이 ‘이것은 뉴스다‘
‘저것은 뉴스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즉 저널리스트가 어떤 것이 뉴스라고 판단하면 뉴스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저널리스트들은 무엇이 뉴스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이기를 원하지 않기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육 정책은 안보 정책의 절반만큼만 뉴스 가치가있다고 말하면, 엄청난 비난을 살 것이다. 요점은 그 결정이 무엇이건간에 결정이 내려진 것이란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뉴스 가치성이 계측기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며 저널리스트의 판단과는 무관한 기준인 듯느껴진다면 가장 좋다.
그래서 뉴스 가치성에 관한 판단은 종종 전염성이 있다. 그 무엇도 하나의 결정이 다른 모든 사람이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뉴스 가치성으로 가는 지름길은 다른 뉴스 매체들이 기사를 다루는가 또는 다루지 않는다. 만약 기사로 다루어진다면, 그것은 정의상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뉴스 가치성으로 가는 지름길은 소셜미디어상의 바이럴성이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의상 뉴스 가치성이 있는 것이 된다. 두 경우 모두 다른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근거로 삼은 동어반복이다. 즉, 우리가 취재하는 것은 모두가 취재하고 있으므로 뉴스 가치가있고, 모두가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뉴스 가치가 있다는 증거다. - P212

대통령 선거운동의 초점이 부동층 설득에서 지지 기반 동원으로이동했다는 사실은 노스이스턴대학교 정치학자 코스타스 파나고풀로Costas Pungopoulos가 「지지 기반에 관한 모든 것 All About That Base」이라는 연구에서 입증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1956년부터 선거에 관해 조사할 때마다 선거 캠프에서 유권자들과 얼마나 접촉했는지 질문했다. 과나고풀로스는 무당파, 온건 당원, 강성 당원 중 누가 가장 연락을 많이받았는지 조사했다.
1956년에는 무당파의 20%와 강성 당원의 17%가 한 선거 캠프에서 온 연락을 받았다. 2012년에는 무당파의 32% 와 강성 당원의 45%가 선거 캠프에서 온 연락을 받았다. 파나고풀로스는 2004년이 아닌2000년이 지지 기반 동원이 설득을 앞지르기 시작한 시점이었음을 알아냈다. 그해에 부시 선거 캠프는 무당파의 17%, 공화당 열성 당원의39%와 접촉했다. 추세는 명확해졌다. "대통령 선거 전략은 무당파, 결심이 서지 않는 유권자, 부동층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지지 기반 동원을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선거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정당들이 인구 통계나 철학적으로 분류됨에 따라, 결심이 서지 않은 사람으로 남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혼란의 한가운데 있기는 쉽지만, 틈새에 있기는 어렵다. 더 양극화한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선거 전략을 변화시킨다. 더 양극화한 전략들은 유권자들을 더욱 양극화한다. 그 순환은 계속된다. - P220

마켓대학교의 정치학자 줄리아 아자리 Julia Azari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당파성은 강하지만 정당은 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자리의 생각이 옳다. 그리고 이것은 트럼프의 부상,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후보들의 성공, 카리스마 있는 선동가가 정치판을 휘두를 가능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트럼프처럼 비정상적인 후보가 공화당예비선거에서 승리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그렇게 큰 몫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약한 정당과 강성 당원이 답이다.
••••••
50년 전이라면 트럼프 또는 클린턴이라는 양단간의 결정 훨씬 전에 공화당 엘리트들이 트럼프를 막았을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당직자들이 정당 후보자 지명을 통제했다.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유일한 방법은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당 간부들의 설득하는 일이었다. 후보 지명을 받기 위한 교섭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고, 특히 대의원 과반을 확보한 후보가 없는 경우 더더욱 그랬다. 1924년, 민주당 대의원들은 존 데이비스John W.
Davis를 지명하기 전에 100번 이상의 투표를 거쳤다. 이러한 중재 전당대회( 과반수의 표를 얻은 후보가 없을 때 당 지도부가 특정 후보의 지지를 호소한 후 재투표하며 대통령 후보를 선정하는 미국의 경선 방식을 말한다- 옮긴이)를 두고 나온 현대적 비유가 ‘연기로 가득 찬 막후 밀실‘이다 이후 두 정당 모두 대통령 후보 지명 절차를 당 예비선거로 넘겼다. 이는 후보자 선정 기준이 당 간부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경선 투표에 참여하는 정당 지지자 극소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렸음을 의미한다(예를 들어, 2016년에는 30% 가량의 유권자들이예비선거에 참여했는데, 이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였다). 이로 인해 정당은 약해지고, 열성 당원들은 강해졌으며, 미국 정치 시스템은 선동가들에 더욱 취약해졌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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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지 마. 네가 열려 있는 사람이라 변화에도 적극적인거겠지. 나, 너 처음 봤을 때부터 확 느꼈는데. 열려 있는 사람이란거. 튼튼하게 활짝 열리는 창문이나 공기가 잘 통하는 집처럼." - P204

많이 준비해가봐야 클라이언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그 점이 우윤의 직업을 존재하게 해주지만 난항은 항상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뭘 원하는지 모르는 상대에게 이건가요? 아니면 이거는요? 수십 번, 수백 번을 제시해야 하니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 버려진 괴물들의 폴더만 자꾸 커질 것이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아는 클라이언트야말로 A급인 것인데, 기예르모 델 토로가 아닌 이상 잘 없다. 2019년의 <헬보이>를 보고 어찌나 실망했던지. 델 토로가 다 만들어둔 것들을 그렇게까지 망칠수 있다니····델 토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그 많은 돈을 들여 굳이 증명할 것은 없었다. 우윤의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에이브가 나오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었다. 문화산업의 모든 것은 한끗차이로 결정되는데, 그 한끗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도무지 짐작이가지 않았다. 한끗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 사람들도 어느새 지루하고 뻔한 걸 만들기도 하니, 한끗이란 것은 의외로 분실하기 쉽거나 유효기간이 있는 무엇에 가까운지도 몰랐다. 그 한곳이 자신의 안쪽에 있었으면 했다. 힘을 잃지 않았으면 했다. 서브컬처계는 기분 나쁘게 뒤틀린 부분이 분명히 있어 괴물들의 마스터는 지금까지 늘 남자들이었는데, 괴물을 잘 만드는 여자가 여기 있다고외치고 싶었다. 명예욕인가? 허영심인가? 하지만 문화산업은 어차피 명예욕과 허영심으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 - P247

특히 1983년 야학연합회가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 한다며 조작해가지고는 수백 명을 잡아들이던 때, 그 집에 자주 왔어요. 야학 좀 하고 노조 좀 한다고 사람을 잡아다 고문까지 시키다니, 말도 안 되는 날들이었어요. 나는 속으로 노동 야학이라는게 구한말에도 있었고 일제 때도 있었는데 정부가 눈이 뒤집힐 게뭐 있나 싶었거든요. 1987년을 맞고서야 아. 그게 정말 힘있는 운동이어서 탄압을 받은 거였구나 깨달았지요. 어떤 시대는 지나고난 다음에야 똑바로 보이는 듯합니다. - P256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 P288

"괜찮은 녀석이 오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앤디가 보드를 힘껏 밀어주었다. 앤디의 말을곧이곧대로 믿고 힘을 낸 것은 아니었다. 전보다 빠르고 큰 파도, 흩어지지 않는 파도였고 우윤은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탈 수 있어. 이 파도는 탈 수 있어. 보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맨땅 같았다. 우윤은 쉽게 무릎을 세우고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분절 없는 동작이었다. 보드는 계속 나아갔고 우윤은 그 위에서 한 번도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 달리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것도아니었다. 단순히 미끄러지는 것과도 달랐다. 보드 밑에 느껴지는 힘은 우윤이 만나보지 못한 거대한 동물의 일부 같았다. 바다의힘, 지구의 힘, 모험과 죽음의 힘. 우윤은 계속 계속 나아갔다. 환호하며, 웃으며, 자부심을 느끼며, 백 미터를 나아갔는지 백오십미터를 나아갔는지 잴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 길게 느껴졌다. - P290

"상헌씨랑은 할머니가 인용한 글을 나도 인용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사랑은 돌멩이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빵처럼 매일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거래.. 여전히 그러고 싶어?" - P304

난정은 시선이 죽기 전 해에 무슨 예감이 있었는지 원하는 책을 전부 가져가라고 해서 손수레를 끌고 매주 부암동 집에 들렀던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차를 끌고 갔으면 한두 번이면 되었을 것을, 매번 혼자 손수레를 끌고 갔었다. 열 번 남짓의 방문을시선이 얼마나 반겼었는지, 진심을 알아봐줬었는지 이야기하고싶은 마음과 그것을 죽고 없는 사람과 둘만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싸우다가 후자가 이겼다. 너무 어렸기에 별 기억이 없는 해림이 소외감을 느끼며 앉아 있지는 않은지 신경쓰였고, 한사람쯤은 말없이 있는 것도 좋을 듯했다. 하여간 시선의 식구들은 말이 너무 많았다. - P320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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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걸 꿰뚫어보던 사람이 왜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소화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렸지?"
"그야 그렇잖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들을 할머니는 몰랐을거니까."
"이름들?"
"가스라이팅, 그루밍 뭐 그런 것들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지않게 딱 정의된 개념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시작선이 다르잖아." - P182

나도 어른이지.
언제까지고 딸, 손녀, 보호의 대상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어른으로 살 수 있지? 이미 어른이지만 제대로 된 어른으로 하루종일 잠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어려울 것이다. 퇴행의 증상이었다.
몸이 마음을 지키려고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겠지만 깨고 나가야 한다. 이해할 만한 상황이라고들 말하는데, 화수는 이해받는것에도 질려 있었다.
좆같은 일이 회수에게 일어났다. 좆같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될줄 몰랐지만 유해한 남성성을 그보다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같았다.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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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병합은 아주 크게 보도됐어요. 이제 전 독일민족이 힘껏 일어서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방송국 사람들은 아주 멋지게 보도했죠. 그런 건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덮어놓고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말이에요. 당시사람들은 나처럼 모두 어리석었어요.
강제 수용소가 만들어졌을 때, 그러니까 처음으로 <강제수용소>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그랬어요. 정부에 반대하거나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만 그리로 간다고 했어요. 그래서우린 그런 인간들을 바로 감옥에 가두지 않고 강제 수용소에 보내 재교육하는 걸로 믿었어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당시 방송국에 <율레 야에니슈>라고아주 괜찮은 사람이 하나 있었어요. 최초의 아나운서로서아침 점심 저녁으로 뉴스를 진행했는데, 그 사람을 빼고는방송국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죠. 어쨌든 그런 사람이 갑자기 강제 수용소에 갔다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렸어요. 「응? 그 사람이 왜?」 「호모래.」 「맙소사, 호모라니. 당시에 호모는...... 정말 다들 몸서리를 쳤어요. 사람 취급을 안 했죠. 그런데 율레 야에니슈가 호모라니.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호모라니. 정말 충격이었죠. 친절하면 뭐해? 호모인데.」 그때 이미 우리는 생각이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어요. - P80

정권에 저항한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백장미단 사건도 그랬어요. 최소한의 내용으로 제한되었죠. 당시 그 사건이 일어났던 뮌헨에서는 그게 어떤 식으로 보도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무척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이었거든요. 그것도 아직 대학생이었죠. 그런 젊은이들을 즉시 처형해 버린 건 너무 가혹했어요. 누구도 그걸 원치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 사람들도 어리석었죠. 어떻게 그런 일을 계획할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냥 입을 다물고 살았다면 지금도 살아 있지 않겠어요? 그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그랬어요.
무시무시한 시대였어요. 당시엔 그런 문제로 이야기할수 있는 믿을 만한 친구가 몇 되지 않았어요. 더구나 그런이야기를 하더라도 무척 조심해야 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에는 늘 이렇게 끝났죠. 우리가 뭘해야하지? 할 수 있는일이 뭐가 있지? 게다가 이런 생각을 깊이 할 만한 시간도없었어요. 그 사건으로 인해 이제 어떤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기도 전에 당사자들이 벌써 처형당했으니까요. 한낱 종이 쪼가리 때문에요. 삐라 말이에요. 당시 그 판결은 너무잔혹했어요. 지금은 난 그 사람들이 대단했다고 생각해요. 좀 더 나은 쪽이 결국 승리를 거둘 거라고 단순히 믿은 사람들이죠. 그러기 위해선 뭔가를 했어야 했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예요.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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