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괴벨스가 연단에 올라갔어요. 연설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대중을 휘어잡는 기술이 뛰어났죠. 실제로 그날도 괴벨스는 서서히 자기 말에 스스로 도취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화산 폭발과 같은 순간이 찾아왔어요. 무슨 정신 병원에서 일어난 광란의 폭발 같았어요. "이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괴벨스가 이렇게 외치는 순간이었어요. 그러자 마치 다들 말벌에 쏘인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발을 구르고 두 팔을 미친 듯이 휘둘러댔어요. 귀청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나랑 같이 온 동료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뻣뻣하게 서 있기만 했어요. 우린 둘 다 숨조차 쉴 수 없었어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경악한 거죠. 괴벨스 때문만도 아니고 이 군중때문만도 아니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날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던 거죠. 우리 둘은 군중의 일부가 아니었어요. 우린 아마 유일한 관객이었을 거예요.
나는 괴벨스 자신도 그 순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수백 수천 명을 동시에 일어나게 해서 함성과 환호를 지르게 할 수 있는지 정말 표 현할 말이 없어요. 어쨌든 괴벨스는 그렇게 했어요.
본인도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 우린 가만히 서 있었어요. 서로 손을 꼭 잡은 채로요. 나와 자그마한 체구의 동료 둘이 말이에요. 우린 자리에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 있었어요. 그때 뒤에 서있던 친위대원 하나가 우리의 어깨를 톡톡 치더니 말했어요. 박수라도 따라 쳐요.」 순간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함께 박수를쳤어요. 그래야만 했죠. 당연히 그 친위대원은 이런 말도 했어요. 이런 순간에는 혼자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요.
우리는 박수를 쳤어요. 그것도 미친 듯이요. 우리 둘은 이 섬뜩한 광경에 정말 깊은 충격을 받았어요. - P136

나는 괴벨스에 대해 이렇게만 말할 수 있어요. 아주 뛰어난 연기자였다고요. 아주 훌륭한 배우였다고요. 예의 바르고 진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나운 선동가로 변신하는 역할을 아마 그 사람만큼 잘하는 배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쪽 면만 보고는 절대 다른 면을 상상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체육관 사건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겼던 그 모습이 그랬죠. 평소 사무실에 있을 때는 그렇게 기품 있고 단정하게 행동하던 멋쟁이가 완전히 돌변해서 미쳐 날뛰는난쟁이가 되는 걸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어요? 한 사람 속에 그렇게 상반된 모습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 순간 나는 그 사람한테 소름이 끼쳤어요 무섭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생각도 곧 지워 버렸죠 나는 괴벨스한테 열광하지 않았어요. 어떤 것에도요. 나중에 그 사람이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서 우리한테 다정하게 뭔가를 물어볼때도 그랬어요.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 사람이 체육관에서 소리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 사람은 지금 세련되게 옷을 입은 부드러운 민간인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 거죠. - P140

히틀러의 자살을 다들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어요. 어쨌든 그러고 꼬박 하루가 지나갔어요.
당시 나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어요. 불과 하루밤낮에 불과했는데 말이에요. 그때 다시 슈배거만이 와서말했어요. 괴벨스도 목숨을 끊었다고요. 괴벨스 부인도요아이들은요?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도 죽었다고 했어요. 누구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어요.
아, 정말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우리는 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어요. 정말 술이 필요한 시간이었으니까요. 물론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계속 술만 마셨어요. 취하기라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거 말고 다른 무슨 일을 하겠어요? 분위기가 어땠는지 아세요? 공포였어요.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절망감이 팽배했어요. 게다가 이제는 될 대로되라는 심정도 있었어요. 갈 때까지 간 거죠. 여기서 어디까지 더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다끝난건 분명했어요.
러시아 군인들이 나를 총으로 쏴 죽일까? 강간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런 건 이제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심적으로 감각이 죽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공포를 느낀 적은 자주있었지만 이번엔 아니었어요. 그냥 얼음처럼 차가웠어요. 아무 감정이 없었어요. 그냥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어요. 공포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어요. 대신 이런 감정만 가득했죠. 모든 게 끝났어. 더 이상은 없어. 끝났어. 모든 게 끝이야. - P164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저 난 항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어요. 그만큼 성실하게 잘했고, 항상 정확했어요. 어떤 자리에 있건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완수했어요. 평생 그랬죠. 당시도 물론이었고요. 그 일이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상관없었어요. 방송국에 근무하건 선전부에서 일하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디에 있건 마찬가지였어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당시 난 항상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휴,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구나. 집이 완전히 망가져도, 아, 아직 살아 있구나,
창문이 부서지고 문이 닫히지 않아도, 아직 살아 있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런 생각으로 살아갔을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그게 위안이었죠. - P170

그러나 나는 풀려나지 못했어요. 처음에 나와 함께 구금된 사람은 백러시아 여자였어요. 부모님이 1918년 러시아혁명 때 러시아에서 도주했다고 하더군요. 베를린에는 백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요. 이 백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에겐 나치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었어요. 자신들을 배신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 여자의 남편은 기자였는데, 남편도 어딘가에서 러시아 군인들에게 검거되었다고해요. 아무튼 이 여자는 계속 불려 가 심문을 받았어요. 불쌍한 여자였어요. 정말 많이 시달렸죠.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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