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이 동생의 묶인 팔을 안타까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희가 듣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까?"
"상대등께서, 기찬에게 좋은 자리를 하나 주려 하셨지만 아버지가 거절하셨지요. 집을 돌보고 저를 돌보고 죽은 자들을공양하며 사는게 맞는다면서•••••• 그때 네 편을 들지 못해 미안하다. 그때 네 편을 들었더라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아버지를 설득했더라면."
기찬은 지율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집을 지키라 하셔놓고, 집을 버려버리시면•••••• 나는 무엇이었습니까? 집과 함께 버려지는 나는 아버지께, 저 북쪽에서죽어 돌아오지 못한 이들보다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그들에게 보내드리는 게 맞지요. 가서 저 너머에서 계속 그들의 장수로 지내시는 게 맞지요. 살아 있는 사람들을지긋지긋한 어둠으로 그만 물들이시도록, 아버지 쪽이 사라지시는 게 맞았습니다. 그 독은 한 번에 들었어야 했는데, 글씨따위 남기지 않았어야 했는데!" - P167

"한 명쯤은 기억하고 있어도 좋을 뻔했어."
인곤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엇을?"
" 이 융성한 날들을 위해 누가 죽어야 했는지. 어떤 싸움을했는지. 한 명쯤은 계속 곱씹고 있어도, 사로잡혀 있어도 좋지않았겠는가?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그것이 무엇 위에 세워지는지 이 흥청망청한 거리는 다 잊은 것 같군.‘
"천년이라•••••• 이다음 천년이라."
자은은 사람들이 잊고 잊고 또 잊는다 해도 이 활기와 온기로 가득한 거리 위로 어둠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누구에게 기원하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 P174

"그래, 도은을 위해서라면 나도 상황에 따라 베틀 정도는부수었을지도. 나라면 그보단 다른 방법으로 그 사태를 벗어나려 애쓰겠지만, 각자 처한 형편이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니... 자네에겐 그런 사람이 있나? 그렇게 어긋난 일도 하게 만들 만한 이가?"
자은이 기대하며 묻는 것 같아, 인곤은 바로 떠오른 답을 전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그런 이가 있는 자가 부러움을 살 자인지, 없는 자가 두려움을 살 자인지 모르겠네."
옷을 입은 채 물을 짜는 것은 한계가 있어, 두 사람이 집으로 걸어온 길에는 진한 발자국이 남았지만 밤이 지워낼 것이었다. - P212

그렇게 자은도 매가, 매잡이가 되었다. 왕의 것이 되었다.
달이 차오르고 다시 허물어지는 동안 아무것도 베지 않은 때도 있었고, 하나를 벤 적도 있었고, 수없이 벤 적도 있었다.
그것은 그다음의 이야기. - P2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씨름이요...?"
"전투 전날 마지막 연회가 베풀어졌습니다. 먹고 마신 것들이 몸 밖으로 나오기 전에 죽는 것이 아니냐. 그런 농담을 하며 웃던 얼굴들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불가에서 눈의 흰자위들이 번쩍거렸지요. 그 바짝 곤두선 병사들을 위해 씨름 대회를 열었습니다. 독군님께서 우승한 자에게 상을 하나 주겠다했는데 그 녀석이••••• 혜요가 이를 악물고 이기더니, 상으로 지율님의 옷과 갑옷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
죽을 게 뻔한 미끼 전투에서, 주인의 옷과 갑옷을 달라고 했다. 미끼 중의 미끼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려서 듣던 옛이야기의 신하나 다름없었다.
"사방이 어찌나 조용해지던지요. 기이하게 들떠 떠들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지율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를 냈습니다. 왜 그딴 걸 달라 하느냐, 진짜 상이 될 만한 것을 고르라, 나는 싫다•••••• 따르는 사람이 그렇게 화를 내면 물러날 법도 한데 혜요는 한 치도 물러나지 않더이다. 어린것이 약조를 어기지 말라고 똑바로 외치는 바람에, 독군님께서 결국지율님의 뜻을 굽히셨지요. 지율님이 제일 좋은 비단옷과 늘입던 갑옷을 혜요에게 주시면서 울었습니다." - P101

그 순간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중봉은 고개를 내둘렀다. 자은은 지율의 우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지금의 회한에찬 그 남자는 쉽게 울 것 같지 않았다.
"그땐 지율님도 한참 어리셨으니까요."
"매초성에서, 혜요가 그 옷과 갑옷을 입었습니까?"
"예에, 그 고집스러운 아이가 지율님의 옷과 갑옷을 입고•••••• 아수라장 속에서 퇴로를 뚫었습니다. 독군 어른이 정신을 잃고 계신 걸 저와 두섭이 구해 오다가, 크게 다친 지율님도 발견해 제 말에 태웠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행한 일이라•••••• 아군 진영에 다다랐을 때 두섭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젖어 있어 귀신이나 도깨비도 저런 꼴은 아니겠다고 뜨악해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곧 후방으로 보내졌지만두섭은 눈 하나를 뽑아내야 했고 지율님은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셔야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 전쟁이 끝났지요."
끝나리라 알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소강에 접어들자, 그것 또한 겪은 적 없는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얼마간은 얼떨떨하고 얼마간은 허망했을지도 모른다.
"금성에 돌아와, 지율님이 죽음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고 안도하고 나서야 독군 어른이•••••• 괴로워하고 계시단 걸 깨달았습니다. 독군 어른과 지율님은 아마 저희를 원망하고 계시겠죠. 굳이 구하지 않았다면 정해진 대로 명예로웠을 거라고요. 뒤늦게 저도 그 점을 보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추호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춘천사범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5학년까지 국어 과목을 가르쳤지요. 물론 일제시대 국어는 일본말이었는데, 가서 부임을 해보니까 제가 최초의 국어과 교유였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어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각급 학교 차이가 없고 거의 다 한글을 몰랐어요. 그러니까 학년 차이 학교 차이도 없이 우선 한글을 가르쳐야 했고맞춤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춘천사범학교에서는 5학년 학생들이 "선생님, <용비어천가>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희망을 해요. 그래서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나이가 어리니까 용감했지요, 제가 〈용비어천가〉를 어디서 배웠겠어요? 중세어를 알기나 해요? 그런데 ‘그래 그거 공부하자‘ 탁 아주 그냥 즉석에서 쾌하게 답을 하고서 <용비어천가>를 가르쳤던겁니다.
저는 그냥 아는 대로 가르쳤는데 사실 그 <용비어천가> 가사의 내용이 역사적인 배경이 많거든요. 그걸 모르면 가사의 의미가 이해가 안 돼요. 이해가 안 되니까 자꾸 질문을 해요. 그런데 제가 알아야지그걸. 그래서 인제 대답을 못 하고 모르겠다고 그러고 가만히 생각을해봤죠. ‘이래가지고는 내가 안 되겠다. 아무래도 국어학 전공을 해야되겠다‘ 그래서 국어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P63

◆◆◆ 조선어학회는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라는 명칭으로 창립됐습니다. 그 후 1931년 1월에 이 학회가 개편되면서 고루 이극로 선생이 직접 조선어학회를 주도해서 여러 가지 사업이 시작됩니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으로 이루어진 결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말 표기의 통일입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글 맞춤법통일안》이 1933년 10월에 학회 안으로 제정된 것이지요. 1941년 1월에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제정한 것도 우리말 표기 통일의 한 요소였습니다. 둘째는 언어의 통일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정査定한 조선어,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죠. 1936년 10월에 발표됐죠. 셋째는 언어규범의 종합입니다. 이것은 <조선어 대사전>을 1942년 10월에 편찬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세 가지로 민족어 확립은 일단 역사적으로 완결되었다고 평가해야 되겠습니다.

●●● 조선어학회 활동과 그 의미를 큰 틀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1942년 10월에 《조선어 대사전>을 편찬한 것은 민족어 규범화 사업이 일단락되었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1942년 10월에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어 대사전>의 원고가 일본경찰에 압수되며 출판되지 못했지만, 해방 후인 1947년 《조선말 큰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첫째 권이 나오고, 1957년 <큰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여섯째 권이 나오면서 사전 출판이 완결되었죠. - P67

◇◇◇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사전, 우리 국어사전 상황을 보면 1880년대까지 올라가요. 1880년대에는 주로 선교사들이 사전을 편찬했는데,1920년에 오면 조선총독부, 즉 식민지 당국에서 <조선어사전)을 냈어요. 이런 편찬사업들이 계속되고 그 후에는 문세영이 (조선어사전)을편찬했어요. 그런데 이 사진들은 어휘의 의미를 설명하는 정도지 우리말 규범에 대한 전제가 없었어요. 규범이라고 하면 맞춤법과 표준어이고, 그다음에 발음에서는 장단 문제, 된소리 발음 문제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규범이 없으니까 사전에서의 기술이 들쭉날쭉이고 또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처럼 규범적으로 확실치가 않으니까 그때까지 국어사전은 어휘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으로 끝났지요.
그래서 조선어학회의 조선어 대사전, 즉 <조선말 큰사전>은 국어규범을 전제로 편찬했다는 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인데, 실제로 이것이 출판된 게 1957년이었어요. 6권으로 완간된 때가. 그러니까 1957년 전까지는 국어 규범을 제시하는 사전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 목적에 소용되는 사전이 없으니까 너도나도 사전을 편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6.25사변 전에 박문출판사에서 시작한 일석(이희승)의 국어사전도 그러한 목적에서 편찬했던 겁니다.
일석의 국어사전처럼 해방 후에 편찬한 국어사전은 <한글 맞춤법통일안>의 수정 부분을 반영할 목적이 컸죠. 해방 직후에 맞춤법 일부를 수정했었으니까, 맞춤법을 포함해서 국어 규범을 사전에 반영하는문제가 있었어요. 표제어뿐만 아니라 그 주석의 풀이말도 개정 맞춤법에 따라 써야 했던 거지요.
맞춤법 다음에 중요한 게 표준말을 보여주는 거였어요. 조선어학회에서 정한 표준말은 사실 7,000개가 안 됐기 때문에, 그 외의 단어들이 표준어인지는 판단할 수가 없었어요. 더군다나 일반인들은 더 몰라요. 그러면 사전을 편찬할 적에 그걸 다 해결해놔야 해요. 그래서 사전 편찬에서 표제어의 표준어 여부를 판단하는 업무가 부가된 거예요. 표준말에 없는 것은 어떤 것이 표준말이냐를 정해야 했지요. 그러면 편찬자는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의 표준말 기준을 보고 "이기준으로 봐서 이 단어는 표준어로 삼았을 거다", "그래야 앞뒤가 맞다"등과 같은 판단을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전의 국어사전 편찬원처럼 어휘 풀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규범의 종합적인 판단까지도 하는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 P77

해방 직후 조선어학회가 중심이 된 국어 정책은 크게 ‘ 한자 폐지, 한글 전용화‘와 ‘일제 잔재를 일소하는 국어 정화‘의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해방 후 모든 교육에서 한글만 쓰는 것이 원칙이 되었고 미군정 문교부에서는 <한자 안 쓰기의 이론>(1948)을 출간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률 제6호로 <한글 전용법>(1948.10)을선포하며 한글 전용을 시행했다. 일본식 용어의 철폐와 우리말 도로찾기를 목표로 이루어진 국어 정화 운동은 국어 정화의 지침으로서<우리말 도로 찾기>(1948.6)를 펴내며 본격화했다. 그러나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여전히 한자 병용의 글쓰기가 계속되고 있었고, 국어 정화지침 역시 성글게 이루어지면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해방 직후 조선어학회 중심의 국어 정책은 일제 치하부터 이어진 군국주의 혹은 국수주의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측면도 있었다. 정부수립과 함께 좀 더 깊이 있는 국어 정책이 가능했음에도, 민족 혹은민족의 순수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한글 전용이나 순우리말 쓰기등과 같은 정책이 맹목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한편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해방 후에도 일제강점기에 제정된 내용에서 큰 수정 없이 자리를 잡았지만, 어법에 맞춰 적도록 하는 형태주의 표기법이 일반 대중에게는 매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했고, 이는 한국전쟁 이후 한글 간소화 정책이라는 강력한 반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이 국가의 권위가 아닌 조선어학회의 권위에 기대어 어문 규범의 역할을 해온 데 따른 것이었다. 한편 조선어학회는 규범화를 주도하면서 한글 풀어쓰기와 같은 조선어학회 일부 연구자 특유의 주장을 규범화하려고 했다. 이처럼 일방적인 행태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국어 규범을 정립하고자했던 연구자들이나 일반 대중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해방 직후 국어 정책을 펼쳐나가는 데 커다란 갈등 요인이 되었다. - P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RBG는 스웨덴의 법률체계에 몰두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거나 자막 없이 잉마르 베리만 영화를 볼 때면, 현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논쟁의 면면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여성을 위한 또 다른 세상, 즉 얼마든지 일할 수 있고 투쟁을 통해 불공평한 조건을 없앨 수 있으며 필요하면 임신상태를 중단할 수 있는 세상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떤 미국인이알았겠는가? 사회운동가들의 압력으로 정부가 남성과 여성을 기존의 성역할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이라니! RBG개인에게도 가히 혁명적인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스웨덴에 도착해서 혼자 지내기 시작한 지 6주 만에 이곳에 정말 잘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61

대법관들은 여전히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RBG는 말을 이었다. "성별은인종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지만 바꿀 수는 없는, 개인의 능력과 필연적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특징입니다." 이 직유는 헌법적 맥락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이 촉발시킨 일련의 소송에서 대법원은인종에 근거해 차별을 규정한 거의 모든 법률에 대해 그것이 헌법에 위배되거나 "엄격심사"를 면할 수 없다는 관점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리드사건에서 엄격심사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후로는 어떤 식으로는 엄격심사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성별을 사유로 차별을 규정한 법률이 인종을 사유로 차별을 규정한 법률과 다를 바가 있을까? RBG는같은 맥락에서 성차별을 규정하는 법률 또한 위헌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주어진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RBG는 대법관들을 바라보면서 임신중절 옹호와 여성참정권을 부르짖었던 세라 그림케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아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오해의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성별을 근거로 나를 우대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결코 아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당신들의 발로 우리 여성들의 목을 더 이상 짓누르지 말라. 이것이 전부다."
#12 - P66

RBG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여성 법학도들은 불평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구 사항을 내걸었다. 상당수가 미시시피 출신이자 학생비폭력실천위원회 Student Nonviolent Cordinating Counciltee 소속으로 여성의시민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는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변호사가 사회운동에앞장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로스쿨에 진학했고, 여성들 자신도 사회 변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1968년 이후로는 대학들도 여성에게 문호를 더 활짝 열어야 했다. 존슨 행정부가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 철회 대상 목록에 성차별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RBG는 이렇게 활동적인 여학생들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자기 세대와 그들은 자못달랐다. 1970년에는 몇몇 학생이 RBG를 찾아와 럿거스대 최초로 ‘여성과법‘ 과목을 개설해달라고 요청했다. RBG는 흔쾌히 수락했다. 여성의 지위와 관련해 내린 연방정부의 결정 및 관련 논문을 모조리 읽는 데는 고작한 달 정도가 소요됐다. 사실 분량이 많지 않았다. 널리 쓰이는 한 교재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눈에 띄었다. "토지란, 여성과 마찬가지로 소유의 대상이다."(이 책은 토지 소유에 관한 책이었고, 여성은 비유 대상에 불과했다.) RBG는 도서관을 나서면서 굳게 다짐했다. 말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던세월은 이제 막을 내렸다고 한때 럿거스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봉급을 깎아도 어쩌지 못했던 RBG는 그길로 다른 여성 교수들과 힘을 모아 대학을상대로 성차별적 급여체계에 관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끌고간 끝에 마침내 승소했다. - P71

이 시기에 RBG는 평생 간직할 교훈을 배웠다. 그는 대법관들을 일깨우려했다. 어렵기는 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훗날 그가 밝혔듯이, "사람은하루아침에 깨우침을 얻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대개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진정한 변화란 한 번에 한 계단씩 일궈나감으로써 이룰 수 있다." 그는 참고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전략을 세워야 했다. 귀가 안 들리는 것처럼 굴라는 말이 적절하게 다가온 건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동료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RBG는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이들을 설득했다. ACLU동료 변호사 캐슬린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법의 진보를 이루려면 한 번에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에 ‘논리적 후속 단계‘를선사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그는 한 단계 올라서면그다음 단계를 이어서 또 다음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들에게 너무 빨리, 너무멀리 가라고 재촉하지 마라. 그러면 이미 얻은 것도잃게 된다‘면서 수시로 당부했습니다. ‘그 문제는 아직 다뤄질 때가 아니다. 우리는 대개 RBG의 충고를따랐습니다. 그러지 않았을 땐 예외 없이 패배했습니다. " - P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 섬 이름들은 자은에게도 익숙했다. 항로에 놓인 기착지들이었다. 물이 떨어지거나 태풍을 만나거나 배를 갑자기 고쳐야 할 때 들렀다. 제물을 바치기도 하고 죽은 자를 묻기도하는 바다 위의 물수제비 흔적 같은 점들. 육지가 그리워 그 섬들이라도 보면 속이 트일 것 같았다. - P23

셋째는 죽은 다섯째의 시신 너머로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글을 배울 때 스승님은 너는 그만 배워도 된다고방에서 내보냈지. 그런데 너는 떠나지 않고 창밖에서 귀로 배웠다. 나중에 스승님이 너를 혼내려 불러 모질게 시험해보았을 때 네가 써낸 것이 내가 써낸 것보다 나았다. 나는 그 일을잊지 않았다. 우리가 진짜 칼을 받았을 때 너는 나무칼을 쥔채,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셋째의 특징은 도발이었다. 여섯째는 태어나서 셋째를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자신과 꼭 닮은, 그러나 죽음의 색이 짙어져가는 다섯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창밖에서 귀로 공부를 쫓아갈 때 몰래 책을 베껴줬던 것은 다섯째였다. 너와 나는 거의 같지, 하고 속삭이면서.. 다섯째에게 빚이 있었다. 다섯째로 살면 다섯째를 살린 것 같을까? - P29

꿈속에서 부르던 노래가 깨어나는 순간에도 입술에 남아 이어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 노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잠이 물러난 걸지도 모르지만, 그날 새벽 자은이 깨어날 때가 그랬다.
단번에 눈을 떴고, 입술은 가사를 기억하며 달싹이고 있었다.
"달 같은 진주를 네 머리에 꽂았다 내 머리에 꽂았다•••••"
그러자 먼저 일어난 인곤이 바로 뒷부분을 받아 불렀다.
"삼백 궁녀의 머리에 보름달이 떴다 졌다 하였네."
"자네는 노래 전체를 아는가? 나는 한두 구절밖에 알지 못하네."
백제인에게 그 쓸쓸한 노래에 대해 묻는 것은 편한 일이 아니었다. 자은은 인곤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치는지 보고 싶었지만 새벽빛이 어두웠다. - P41

병사 하나하나로는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독군 어른 아래에서우리는 뛰어났습니다. 가장 복잡한 작전, 장수부터 어린 병사까지 모두 이해해야 해낼 수 있는 작전이 우리에게 떨어졌습니다. 독군 어른이 만약 장군이 되어 우리를 두고 가셨더라면, 우리도 그 뛰어남을 곧바로 잃고 말았을 겁니다. 우리는 일흔명 남짓이었지만 신라군에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우리가있어 군 전체가 강의 신이 돕고 바람의 신이 돕는 것처럼 싸울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찌 가능했습니까?"
자은의 물음에 중봉은 답을 찾으려 기억에 잠겼다.
"지킬 것을 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킬 것요?"
"집이 없는 자에게는 집을. 밭이 없는 자에게는 밭을, 이름이 없는 자에게는 이름을 주셨고, 가족이 노비가 되어버린 자는 그 주인에게서 되찾아주셨고••••• 그 나눔이 아무 불만도일으키지 않도록 세세한 균형을 살피며 주고 또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식읍 출신으로 정발된 자들이 모여 있으니 싸우긴 싸우면서도 왜 싸우는지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으나 점점 변해갔습니다. 독군님은 매번 우리 싸움터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얻기 위해 싸우는지, 전체에 비추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이기고 진다면 결과는 어떠할지 일러주시곤 했어요. 글자하나 모르는 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들로요."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