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G는 스웨덴의 법률체계에 몰두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거나 자막 없이 잉마르 베리만 영화를 볼 때면, 현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논쟁의 면면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여성을 위한 또 다른 세상, 즉 얼마든지 일할 수 있고 투쟁을 통해 불공평한 조건을 없앨 수 있으며 필요하면 임신상태를 중단할 수 있는 세상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떤 미국인이알았겠는가? 사회운동가들의 압력으로 정부가 남성과 여성을 기존의 성역할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이라니! RBG개인에게도 가히 혁명적인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스웨덴에 도착해서 혼자 지내기 시작한 지 6주 만에 이곳에 정말 잘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61
대법관들은 여전히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RBG는 말을 이었다. "성별은인종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지만 바꿀 수는 없는, 개인의 능력과 필연적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특징입니다." 이 직유는 헌법적 맥락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이 촉발시킨 일련의 소송에서 대법원은인종에 근거해 차별을 규정한 거의 모든 법률에 대해 그것이 헌법에 위배되거나 "엄격심사"를 면할 수 없다는 관점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리드사건에서 엄격심사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후로는 어떤 식으로는 엄격심사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성별을 사유로 차별을 규정한 법률이 인종을 사유로 차별을 규정한 법률과 다를 바가 있을까? RBG는같은 맥락에서 성차별을 규정하는 법률 또한 위헌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주어진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RBG는 대법관들을 바라보면서 임신중절 옹호와 여성참정권을 부르짖었던 세라 그림케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아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오해의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성별을 근거로 나를 우대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결코 아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당신들의 발로 우리 여성들의 목을 더 이상 짓누르지 말라. 이것이 전부다." #12 - P66
RBG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여성 법학도들은 불평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구 사항을 내걸었다. 상당수가 미시시피 출신이자 학생비폭력실천위원회 Student Nonviolent Cordinating Counciltee 소속으로 여성의시민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는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변호사가 사회운동에앞장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로스쿨에 진학했고, 여성들 자신도 사회 변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1968년 이후로는 대학들도 여성에게 문호를 더 활짝 열어야 했다. 존슨 행정부가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 철회 대상 목록에 성차별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RBG는 이렇게 활동적인 여학생들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자기 세대와 그들은 자못달랐다. 1970년에는 몇몇 학생이 RBG를 찾아와 럿거스대 최초로 ‘여성과법‘ 과목을 개설해달라고 요청했다. RBG는 흔쾌히 수락했다. 여성의 지위와 관련해 내린 연방정부의 결정 및 관련 논문을 모조리 읽는 데는 고작한 달 정도가 소요됐다. 사실 분량이 많지 않았다. 널리 쓰이는 한 교재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눈에 띄었다. "토지란, 여성과 마찬가지로 소유의 대상이다."(이 책은 토지 소유에 관한 책이었고, 여성은 비유 대상에 불과했다.) RBG는 도서관을 나서면서 굳게 다짐했다. 말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던세월은 이제 막을 내렸다고 한때 럿거스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봉급을 깎아도 어쩌지 못했던 RBG는 그길로 다른 여성 교수들과 힘을 모아 대학을상대로 성차별적 급여체계에 관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끌고간 끝에 마침내 승소했다. - P71
이 시기에 RBG는 평생 간직할 교훈을 배웠다. 그는 대법관들을 일깨우려했다. 어렵기는 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훗날 그가 밝혔듯이, "사람은하루아침에 깨우침을 얻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대개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진정한 변화란 한 번에 한 계단씩 일궈나감으로써 이룰 수 있다." 그는 참고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전략을 세워야 했다. 귀가 안 들리는 것처럼 굴라는 말이 적절하게 다가온 건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동료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RBG는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이들을 설득했다. ACLU동료 변호사 캐슬린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법의 진보를 이루려면 한 번에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에 ‘논리적 후속 단계‘를선사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그는 한 단계 올라서면그다음 단계를 이어서 또 다음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들에게 너무 빨리, 너무멀리 가라고 재촉하지 마라. 그러면 이미 얻은 것도잃게 된다‘면서 수시로 당부했습니다. ‘그 문제는 아직 다뤄질 때가 아니다. 우리는 대개 RBG의 충고를따랐습니다. 그러지 않았을 땐 예외 없이 패배했습니다. "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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