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이 동생의 묶인 팔을 안타까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희가 듣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까?" "상대등께서, 기찬에게 좋은 자리를 하나 주려 하셨지만 아버지가 거절하셨지요. 집을 돌보고 저를 돌보고 죽은 자들을공양하며 사는게 맞는다면서•••••• 그때 네 편을 들지 못해 미안하다. 그때 네 편을 들었더라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아버지를 설득했더라면." 기찬은 지율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집을 지키라 하셔놓고, 집을 버려버리시면•••••• 나는 무엇이었습니까? 집과 함께 버려지는 나는 아버지께, 저 북쪽에서죽어 돌아오지 못한 이들보다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그들에게 보내드리는 게 맞지요. 가서 저 너머에서 계속 그들의 장수로 지내시는 게 맞지요. 살아 있는 사람들을지긋지긋한 어둠으로 그만 물들이시도록, 아버지 쪽이 사라지시는 게 맞았습니다. 그 독은 한 번에 들었어야 했는데, 글씨따위 남기지 않았어야 했는데!" - P167
"한 명쯤은 기억하고 있어도 좋을 뻔했어." 인곤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엇을?" " 이 융성한 날들을 위해 누가 죽어야 했는지. 어떤 싸움을했는지. 한 명쯤은 계속 곱씹고 있어도, 사로잡혀 있어도 좋지않았겠는가?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그것이 무엇 위에 세워지는지 이 흥청망청한 거리는 다 잊은 것 같군.‘ "천년이라•••••• 이다음 천년이라." 자은은 사람들이 잊고 잊고 또 잊는다 해도 이 활기와 온기로 가득한 거리 위로 어둠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누구에게 기원하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 P174
"그래, 도은을 위해서라면 나도 상황에 따라 베틀 정도는부수었을지도. 나라면 그보단 다른 방법으로 그 사태를 벗어나려 애쓰겠지만, 각자 처한 형편이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니... 자네에겐 그런 사람이 있나? 그렇게 어긋난 일도 하게 만들 만한 이가?" 자은이 기대하며 묻는 것 같아, 인곤은 바로 떠오른 답을 전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그런 이가 있는 자가 부러움을 살 자인지, 없는 자가 두려움을 살 자인지 모르겠네." 옷을 입은 채 물을 짜는 것은 한계가 있어, 두 사람이 집으로 걸어온 길에는 진한 발자국이 남았지만 밤이 지워낼 것이었다. - P212
그렇게 자은도 매가, 매잡이가 되었다. 왕의 것이 되었다. 달이 차오르고 다시 허물어지는 동안 아무것도 베지 않은 때도 있었고, 하나를 벤 적도 있었고, 수없이 벤 적도 있었다. 그것은 그다음의 이야기. - P2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