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그런 괴이한 사건이 수도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까닭인즉, 수도사들이라는 사람들은 바로 학문에 몸을 바친 사람들이고, 수도원 장서관이란곧 천상의 예루살렘이자, <미지의 세계terra incognita)와 하데스의 변경에 가로놓인 지하 세계일 터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모두 장서관에, 장서관의 규칙과 금기에 완전히 매료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장서관과 더불어, 장서관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그들 모두가 때가 이르기만 하면 장서관의 철통같은 방어막에 반기를 들 음흉한 꿈을 품은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어째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되며, 이런 사람들이 어째서 자기네 장서관 비밀에 접근하는 자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그들에게는 지적인 해갈에의 유혹이 있었고, 지적인 긍지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교단을 세운 분들이 상상했던 필사사(筆寫士) 수도사들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 필사사 수도사들은 하느님의 뜻에 갇혀 의미도 모르는 채 그저 베끼고, 기도하듯이 쓰고, 쓰는 듯이 기도했을 뿐이다. 이 수도사들이 왜 필사사의 본분을 벗어났던가? 이것이 어찌 우리 베네딕트 교단만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보냐.
대체 와니 수도원장은 언감생우리 - P3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내가 듣는 모든 것은 불완전한 번역이다. 나의 귓속에서는 내면의 세계와 외면의 세계가 대화하고 서로 얽힌다.
내 마음은 반발한다. 소리는 소리일 뿐 아닌가? 나는 뚫린 귀로 세상과 연결되어 주변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고 있지 않나?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세상의 번역이며 모든 번역가에게는 나름의 재능, 오류, 견해가 있다. 진료실에 앉아 그래프의 스파이크를 응시하면서 달팽이관 털세포의 재잘거림을 본다. 해석의 숨겨진 사슬을 일부나마 대면한다. 외부의 소리에서 내부의 지각에 이르는 경로의 단계 하나하나에서 우리 몸은 편집하고 왜곡한다.  - P49

고리 중에는 우리 달팽이관의 범위릂벗어난 것도 많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기껏해야 약 20~2만 헤르츠(음파가 1초 동안 진동하는 횟수)에 불과하다. 일부 고래와 코끼리는 최저 14헤르츠까지 들을 수 있으며 비둘기는 최저 0.5 헤르츠까지도 듣는다. 쇠돌고래는 최고 14만 헤르츠까지 들으며 일부 박쥐는 최고 20만 헤르츠까지도 듣는다.개는 최고 4만 헤르츠, 고양이는 최고 8만 헤르츠까지 듣는다. 생쥐와 쥐는 최고 9만 헤르츠로 재잘대고 노래한다. 동물이 듣는 가장 낮은소리가 내 발이고 가장 높은 소리가 내 정수리라면 우리 인간이 듣는 소리는 내 발바닥 피부 바로 위에서 등산화 맨 위까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포유류와 비교하자면 인간과 우리의 영장류 사촌들은 좁디좁은 청각 세계에 갇힌 채 살아가는 셈이다.
뇌운(雲), 바다 폭풍, 지향(地)‘, 화산이 노래하고 신음할 때는 한결같이 최저 10분의 1헤르츠의 음파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너무 낮아서 우리 귀로는 감지할 수 없다. 이렇게 낮은 소리는 수백 킬로미터를이동하며 바다, 하늘, 땅의 움직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 소리들을 들을 수 없기에 지평선 너머에서 무엇이 요동치는지 알지 못하는 소리 세계에서 살아간다.
주파수 범위의 반대쪽 끝에서도 비슷한 제약이 작용한다. 고주파는 공기 중에서 금세 약해지며 짧은 거리밖에 이동하지 못한다. 곤충의 새된 노랫소리, 박쥐의 울음소리,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 식물의 잎맥을 따라 물이 졸졸거리는 소리는 우리의 귀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한계에는 뼈아픈 구석이 있다. 세상이 말을 건네고 있는데도 우리의 몸은 주변의 소리를 대부분 듣지 못하니 말이다.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하지만 원장님께서 장서관 조사를 바라시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듣고도 모르느냐? 처음부터 원장은 장서관을 신성 불가침이라고 하지 않더냐? 이유가 있을 테지. 아델모의 죽음은모르겠다만 적어도 베난티오의 죽음에는 원장 자신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이야기가 확대되면 자기가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라. 원장은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일까..... 적어도 내 손에 의해 밝혀지는것은 바라지 않는 것일까……」「그러면 장서관이, 하느님께서 버리신 곳, 하느님께서도편하시지 못할 곳이라는 말씀이신지요?」맥이 빠지는 기분에서 내가 여쭈었다.
「하느님 거하시기에 편할 곳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윌리엄 수도사가 그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반문했다. - P293

사부님이 숙사로 드신 뒤 나도 자리에 누웠지만 마음이 무거워 견딜 수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로 내보내신 선친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배우기에 벅찬 것들이 너무 많은 세계가 싫었다.
<가련한 이 몸을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Salva me ab oreLeonis.> 잠들기 직전에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 P2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디 그뿐이냐?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설픈 목회자들덕분에 고대의 미신으로 뒷걸음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ㅠ이제 그들은 육(肉)의 부활은 믿지 않고 육신의 상해와 불행만을 두려워한다. 그러니 그리스도보다는 성 안토니오가 더 두렵지 않겠느냐?」「그렇지만 베렝가리오 수도사는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지않습니까?」「다를 게 없다. 나는 지금 이 반도(半島)를 풍미하고 있는교회와 설교의 분위기를 이르고 있음이야. 이러한 분위기가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신심과 학식 있는 수도사들이 많은 이 수도원까지 퍼져 오지 않았느냐?」
하지만 죄를 짓지 않으면요?」나는 사부님에게 매달리고 싶었던 나머지 억지를 부렸다.
「수도원이 <세상의 거울Speculum mundi>이라면 해답은 자명해졌을 테지.」「사실이 그렇습니까?」「세상에 거울이 있으려면 먼저 세상이 모습을 얻어야 할것이다.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철학적인 윌리엄 수도사의 결론이었다. - P227

베노는, 수도원의 많은 수도사들이 익히 알고 있듯이 베렝가리오는 아델모에 대해 참으로 입에 담기 민망한 정욕을 품고 있었다고 말했다. 베렝가리오가 아델모에게 품었던 정욕이 어떤 정욕이던가?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이 만판으로 놀아나다가 하느님을 진노케 하여 결국은 불바다 속에서 절멸한것이 바로 이 정욕 때문이 아니던가? 베노는, 내 나이가 어리다는 것도 잊었는지 자기에게도 그런 정욕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사춘기 시절을 수도원에서 보내는 수련사들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지키고, 이런 종류의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하여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녁의 뜻과는 달리 이러한 정욕에 얽힌 이야기가 풍편(風便)으로 들리는 것이야 어쩌랴. 나 역시 멜크 수도원에 수련사로 입문하고 오래지 않아 어느 나이 든 수도사로부터, 속인이 여성에게 보내는 듯한 이상한 사연이 든 두루마리를 받은 바 있다. 수도사로 서원을 세운 사람이, 여체라고 하는 악덕의 덩어리를 경계하게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수도사라고 하는 직분은, 바로 이러한 계율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따금씩 엉뚱한 죄악에 물들고는 한다. 벌건 대낮에 성가대석에 앉아 있던, 살결 회기가 처녀 같고 얼굴에 수염 한 올 나있지 않은 앳된 수련사를 보면서 가슴을 두근거리던 일을,
내 이 나이가 되었으니 감출 것이 무엇이겠는가. - P2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육상 척추동물은 납작한 귓속뼈와 부레가 없다. 듣기 주머니가 길게 늘어나 도관이 된 덕에 더 넓은 주파수의 소리를 귀로 감지할 수있다. 포유류는 도관이 너무 길어서 고리 모양으로 감겨 있는데, 이것이 달팽이관이다. ‘달팽이관‘을 뜻하는 영어 ‘코클리어(cochlea)‘는 ‘달팽이 껍데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 우리의 언어는 ‘소리‘, ‘신체 움직임‘, ‘균형‘의 세 가지 감각을 구분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속귀 안에서 서로 연결된 체액 도관의 털세포에서 비롯한다. 인류 문화에서 음악과 춤의 연결과 말과 몸짓의 연결은 우리 몸과 동물의 진화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척추동물의 오래전 친족 관계는 발성 방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척추동물은 발성 방법이 매우 다양하지만 그 발생학적 기원은 모두동일하다. 뒷뇌(후뇌)와 척주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신경조직 부위가 신경 회로로 발달하는데, 이곳이 성체의 발성을 관장한다. 이 회로는 어류의 부레, 육상 동물의 후두, 조류 가슴에 있는 독특한 울음통, 그리고 울음주머니를 부풀리고 가슴지느러미를 떨고 앞다리를두드리는 수천 가지 소리 진동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법으로 소리를내는 동물들에서 발성을 위한 패턴 발생기 역할을 한다. - P33

나는 물고기다. 공기 중에서 말하고 육지에서 걷고 숨쉬면서도 물이 담긴 귓속 고리관에서 떨리는 털세포를 통해 바다를 경험한다. 나의 수중청음기와 헤드폰은 신기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냈다. 나는 반수생(半水生) 세계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닷물의 흔적을 머금은 채 나의 속귀에 묻힌 도관을 이용했다. 하지만 인간의 귀는 이곳에 존재하는 소리 감각기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지구의 소리 다양성은 동물의 다양한 음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풍요로움은 청각적 경험의 다양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P35

새우, 물고기, 세균, 새, 곤충과 내가 같은 소리를 듣는다‘고 말하는 것은 안이한 뭉뚱그리기다. 듣다라는 동사는 우리의 소리 지각과상상력이 얼마나 편협한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동물의 움직임을 묘사할 때는 이런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동물은 뒤뚱뒤뚱 성큼성큼 저벅저벅 걷고, 겅중겅중 껑충껑충 팔딱팔딱 뛰고, 팔락팔락 펄럭펄럭 휠훨 난다. 우리는 동물의 다양한 움직임을 어휘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듣기를 묘사하는 어휘는 빈약하다. 듣다. 귀 기울이다. 경청하다. 이 낱말들만 가지고는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여 소리 경험의 다양성을 아우를 수 없다.
딱총새우가 앞다리 관절이나 집게발의 방향 감지 털에서 느끼는감각을 어떤 동사로 표현할 수 있을까? 대서양조기의 귀에 있는 뼈판(골판)이 털세포로 덮인 막 위를 미끄러질 때 발생하는 경험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까? 물고기의 옆줄에 있는 섬모는 주변의 물에 잠겨있기에 우리의 가운데귀에 있는 귓속뼈 세 개의 움직임과는 분명히다른 경험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박각시가 어떻게 구기 촉수로 박쥐의 접근을 감지하는지 표현할 낱말이 없다.
듣기를 일컫는 다양한 어휘가 없는 탓에 우리는 주의력이 결핍되고 상상력이 제한된다. 변변한 동사가 없으면 형용사, 부사, 비유를 끌어다 쓰는 수밖에 없다. 딱총새우의 집게발은 좁은 주파수에 맞게 조정된 털로 뾰족하게 듣는다. 물고기가 저주파 옆줄로 듣는 소리는 보드랍고 깊고 말랑말랑하다. 새는 체온이 높아서 청각 주의력이 예리하지만, 달팽이관이 뭉툭하고 밋밋해서 고음이 깎이는 탓에 음높이 지각 범위가 우리보다 좁다. 세균의 듣기는 떨리는 엄지손가락을 끈적끈적하고 물컹물컹한 젤리에 꽂아 넣는 것과 비슷하려나?
하지만 언어와 감각 기관에 제약이 있더라도 우리는 세계 경험을통해 상상력을 자극받을 수 있다. 듣기는 다른 존재 방식을 이해할 수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준다. 지구의 어느 장소에서든 진화의 창조적 손길이 낳은 다양한 산물인 수천 가지의 감각 세계가 나란히 공존한다. 우리는 다른 동물의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귀를 기울이고 경탄할수는탄할 수는 있다. - P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