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앙스파크Mark Anspach는「다음엔 내가 갚을 차례A Charge de Revanche』‘라는 저서에서 "상대도 같은 것을 한다는 조건"으로 성립하는 상호성(호수성)에 대해 논한다. 서로 돕기는 ‘그를 돕는다면 내가 어려울 때 상대방도 똑같이 나를 도울 것이다‘라고 서로 기대하는 선순환의 호수성이다. 하지만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복수의 연쇄, 악순환의 상호성도 존재한다. 앙스파크는 선순환하는 상호성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자발적으로 증여 (빌려주기)를 하고 상대방과의 미래 관계를 믿고 여기에 ‘베팅할‘처음에는 리스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더불어 선순환을 유지하려면 서로가상대방에게 "빚을 졌다"라는 감정을 계속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앙스파크의 논의는 이러한 선순환의 호수성이 얼마나 쉽게 악순환의 호수성으로 전락하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문자메시지도 친절도 곧바로 답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빚을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과 상대방이 준 것이등가인지,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轉化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 예를 들면 혐오 발언-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생활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P258

이러한 호수성의 어려움을 전제로 홍콩 탄자니아인들의 조합 활동을 살펴보면 그 독특함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구리타 가즈아키가 말했듯이, 중국으로 오는 아프리카인 대다수는 ‘정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늘 이동하는 사람, ‘상업적인 여행자‘다. 유동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커뮤니티에 계속 관여하고 균질적으로 공헌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투기성이 높은 시장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장사꾼들 사이에는 단지 부자와 가난뱅이만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은 큰 부자가 무일푼이 될 수 있고 빈털터리도 큰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으로도 높은 유동성이 있다. 이들은 길든 얕든 그레이존에 걸친 모호한 장사를 하기에교도소와의 거리도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적잖이 켕기는데가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타고난 성격이나 배경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이 타자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의 처세술로 간주된다. 그러한 이들 사이에서 "왜 그 사람이 도움받아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자기 책임의 범위인가", "나만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사람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재난이나 어려움에 함께 대처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사귀고, 깊이 알아가고, 크게 신뢰하고, 확실한 인연을 만든다는 발상과는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조합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공헌도나 궁지에 몰린 원인을 묻지 않고, 조합원 자격이나 타자를 도울 때에 관한 세세한 규칙을 명확히 만들지않고, 그저 타자가 필요로 하는 지원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을 판단한다. 이 책에서 나는 ‘왜 나만 애쓰고 있는가‘, ‘왜 그 사람은 언제나 도움받는가‘라는 멤버 사이의공헌 불균형, 호수나 신뢰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배경으로 ‘겸사겸사‘의 논리와 ICT를 이용한 교역 시스템의연속성을 제시했다. - P260

타자는 자신에게 어려운 상담은 듣고 깨끗이 흘려버리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 약속을 파기한다. 조합 참여 활동이나 기부금도 사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으며, 일을 하느라 참여할 수 없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공헌하지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유동적으로 돌아다니며 각자의 인생을 찾을 수밖에 없는, 독립독행으로 살아가는 타자에게 자신의 요망을 들어 달라, 정체를 알지도못하는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득 던진 아이디어나 SOS 신호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포착되고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떤 돈벌이나 호구지책이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타자에게공감이나 공공성을 띤 행동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타자의
‘알 수 없는 참모습‘을 ‘미지未知/불가지不可知의 가능성‘
으로 환영하고, 상장 기업의 사장이나 대통령의 비서만이아니라 비합법 underground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겸사겸사‘ 친절을 주고받음으로써 선뜻 연결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 P263

이 책에서 강조한 ‘겸사겸사‘는 그 사람이 가진 정신적/재정적/능력적/시간적 여력이다. 그런데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유휴자원이나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 지향적인 경제 논리로 ‘겸사겸사‘를 조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겸사겸사‘, ‘무리하지않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사람이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낭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단치않음‘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을 찾아 홍콩에 와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개별 인간의 자율성, 서로 간의 대등함을 저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돕는 이유는 시민 사회, 환경 지속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연일지라도 ‘함께 있게 된 정체를 알 수없는 타자에게 ‘나는 당신의 동료다‘, ‘당신은 나의 동료다‘라고 표명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즉, 새로운 경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의 논리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동료 간의 증여와 분배를 위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 P266

소셜 네트워크에서 상호 부조는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간접 호혜주의). 이곳에서는 더 이상 ‘내가 널 도우면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단순한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상호 부조의 구조는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로 바뀌었다."

이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원칙은 내가 홍콩 탄자니아인의 사회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원칙이다. 이는 증여 교환을 가리키는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수렵채집민이 사냥하고 채집한 것들을 같이 나누던 행위, 일방적인 이양, 분배sharing라고 불리며 연구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공유경제시스템은 인류학자들이 수렵채집민 사례를 연구하며 밝혀온 ‘분배‘보다 다소 ‘냉담‘한 것처럼 보인다.
‘분배‘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말하는 ‘증여‘나
‘증여 교환‘과 달리 ‘줄 의무‘, ‘받을 의무‘, ‘답례의 의무‘
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운 좋게 사냥에성공한 사람이 동료에게 당연한 듯 (마치 의무처럼) 고기를 분배하고, 다음에 다른 누군가가 운 좋게 사냥에 성공하면 그 사람도 동료에게 당연한 듯 고기를 분배한다.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이타주의적인 ‘일반적 호수성‘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구성원 모두가 고기를 계속 얻는다.
그런데 인류학자들이 밝혀온 수렵채집민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회에도 ‘소유 의식‘이 있었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다. 집단 구성원들의 능력에도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분배를 받는 자가 오히려 노획물의 빈약함을 질책하고 주는 자는 한없이 미안해하는 식의 배려나 포획자와 노획물의 소유자를 분리하는 등의 행위가 이루어졌다. 받는 자에게 ‘부담‘이 발생하거나 일방통행적인 분배를 계속하는 자에게 ‘위신‘이 생겨나지 않도록 세세한 실천을 행하면서‘ 불균형한 공헌이 문제가 되지 않게 해온 것이다. - P268

이러한 평가 시스템은 오늘날 점점 세련되고 철저해지고 있다. 인간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함정도 있는 것 같다.
보츠먼은 『신뢰 이동: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Who Can You Trust?: How Technology Brought UsTogether and Why It Could Drive Us Apart』에서 이러한 평가경제의 문제를 논한다.

기술은 신뢰의 범위를 넓혀 낯선 사람과의 연결과 협력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고폐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평판과 평가 시스템은 책임감을 강화하고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할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가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평판이 손상되어 디지털 연옥에 영원히 갇히는 사람도 생겨난다."

인터넷을 매개로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누군가를 평가하고 선별해가는 행위가 당연한 듯이 행해진다.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폐쇄된 환경 속에 있기에 자신의 의견과 편견이 증폭되는 ‘반향실효과echo-chamber effect‘, 가짜 뉴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의 만연⋯⋯ 테크놀로지는 그러한 부정적인 현상도 일으키는동시에 새로운 신용 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한다. - P274

물건이나 서비스, 정보가 그때그때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스템, 누군가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돌아가는 분배 시스템이 시장경제 한복판에서 형성되어가기를 나는 기대한다. 제5장에서 다룬, 내가 잠시 경험한 것처럼 서로 나누어줌으로써동료가 되고, 그럼으로써 동료가 마침 우연히 소유한 자원- 무임승차 멤버십과 팔다 남은 상품을 계속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넓은 네트워크로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에 따라 딱히 뛰어나지 않고 때로는 불성실하다 해도 누군가의 변덕 덕에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분배경제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어가는 것을 몽상해본다. 인공지능이든전통적인 종교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 P285

청킹맨션의 보스는 불완전한 인간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자나 사회에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는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게 타자와 사회에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배신당하는 상황을 포함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이들의 시스템은 세련되지 않고 적당하며 허술하기에 오히려 멋지다.
카라마가 "그래서 내가 홍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가르쳐준 거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하지만 나는 카라마의 뛰어난 제자는 아닐지도 몰라요. 카라마가 가르쳐준 것이나 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게다가 내가 심술궂게 카라마를 극악한 보스처럼 묘사하면 어떡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카라마는 여유가 가득한 얼굴을 하며 ‘괜찮아. 사야카가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라고단언했다. 그건 사실이다. 단, 내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카라마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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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1
표적이 된 여자

1
실종

4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오클라호마주 오세이지 영토의 광대한 초원과 검은 산들을 뒤덮었다.‘ 제비꽃, 클레이토니아, 그리고 파란색의 작은 꽃들. 오세이지족 출신 작가인 존 조지프 매슈스는 꽃잎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펼쳐진 광경이 마치 "신들이 색종이 조각을 흩뿌리고 떠나간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불안할 정도로 커다란 달 아래에서 코요테들이 울부짖는 5월이 되면 자주달개비, 노랑데이지처럼 키가 좀 더 큰 식물들이 작은 꽃들 위로 슬금슬금 번지면서 그들에게서 빛과 물을 훔쳐가기 시작한다. 작은 꽃들의 목이 부러지고 꽃잎들은 팔랑팔랑 날아간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땅속에 묻힌다. 그래서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은 5월을 ‘꽃을 죽이는 달flower-killing moon‘의 시기라고 부른다. - P9

몰리와 자매들의 이름도 부모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오세이지 명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즉, 부족의 일원으로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그들이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1870년대 초에 오세이지족은 캔자스주의 고향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 북동부의 바위투성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다들 아무 가치도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십 년 뒤 이땅이 미국 최대의 석유 매장지 몇 군데를 깔고 앉아 있음이 밝혀졌다. 탐사에 나선 사람들은 이 석유를 손에 넣기 위해 오세이지에게 임대료와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족 명부에 이름이 실려 있는 사람들에게 20세기 초부터 1년에 네 번씩 수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우 몇 달러짜리 수표였지만, 세월이 흘러 석유채굴량이 늘어나면서 그들에게 지급되는 돈도 수백 달러, 수천 달러로 늘어났다. 초원을 흐르는 개울들이 하나로 모여 흙탕물이 흐르는 널찍한 시머론강이 되듯이, 거의 매년 늘어난 지급액 덕분에 부족원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수억 달러에 이르렀다(1923년만 해도 부족원들에게 지급된 돈은 3,000만 달러가 넘었다. 오늘날의 가치로 4억달러가 넘는 액수다. 오세이지족은 재산을 인구수로 나눴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뉴욕의 주간지 <아웃룩>은 이렇게 외쳤다. "보라! 인디언들이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은행가들도 부러워서 얼굴이 노랗게 질릴 만한 소득을 꾸준히올리고 있다." - P10

치안판사의 주재로 검시를 위한 배심원단이 협곡에 황급히 소집되었다.‘ 이런 방식의 검시는 평범한 시민들이 범죄수사와 질서유지에 큰 몫을 담당하던 시절의 잔재였다. 미국이 독립한 뒤 오랫동안 국민들은 경찰국 창설에 반대했다. 경찰이 시민을 억압하는 세력이 될까 우려한 탓이었다. 대신 시민들은 범죄가 발생했을 때 직접 나서서 용의자를 추적했다. 나중에 대법관이 된 벤저민 N. 카도조는 시민들이 "힘없이 느린 발걸음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용감했으며, 자신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도구와 재주를 동원했다"고 말했다.
산업도시들이 성장하고 도시 폭동이 빈발하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이른바 위험한 계층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하게 된 19세기 중반에야 미국에 경찰국이 생겨났다.  - P27

몰리의 어머니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와콘타에게 목소리가 들리기를 기원하며 오세이지 기도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역사가이자 저술가이며 오세이지족의 피가 섞여 있는 존 조지프 매슈스(1894~1979)는 이 부족의 전통들을 많이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는 전형적인 기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어린 소년이던나의 영혼이 두려움과 달콤씁쓸함, 이국적인 갈망으로 가득해졌다기도가 끝났을 때 나는 기쁨과 두려움의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누워서 기도가 더 이어지기를 열렬히 바랐으나, 또한 더 이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나중에 조리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뒤에 보니, 이런 기도노래, 찬가, 영혼을 뒤흔드는 탄원은 언제나 좌절의 흐느낌 속에서 마무리되기도 전에 끝나는 것 같았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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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미쳤구나. 지금 이 순간을 즐겨! 즐기란 말이야! 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면서, 이 음식을 맛없이 먹을 거야?」
「몰리나, 난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아무도 현재의 순간만을 위해 살 수는 없어. 그건 지상의 낙원에서나 가능한 일이야」「넌 지옥과 천국을 믿니?」
「잠깐만 기다려, 몰리나. 우리가 좀더 엄밀하게 그런 것을 토의하고 싶다면 말이야. 우리가 나무를 보지 못하고, 가지만 본다면 그건 고등학교 수업시간의 토론처럼 애들 장난에 불과한 거야」「나는 우리가 가지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래, 좋아. 그럼 먼저 내가 생각을 정리한 다음, 너에게제안을 하나 하지
「그래, 듣고 있을게, 말해 봐
「난 현재의 순간을 위해 살 수는 없어. 정치투쟁의 기능을수행하기 때문이야. 그래,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알아듣겠지? 내가 이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낼수 있는 것도 모두..... 네가 만일 고문과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어「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어」
「아니야, 넌 그걸 상상할 수 없어…… 내가 이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은...... 계획이 있기 때문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혁명이고, 감각적인 기쁨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이야.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아니 아마도 내 일생 동안 계속될 투쟁을 하면서 감각적인 기쁨을 느끼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야 알아 듣지? 그런 기쁨은 사실상 내게는 부차적이기 때문이야. 위대한 기쁨은 다른 것이야. 가령, 내가 가장 고귀한 명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러니까 바로내가 가진 모든 사상이......」
「네 사상이 무엇인데?」
「내 이상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마르크스주의야. 난 그 사상의 기쁨을 어느 곳에서나 느낄 수 있어. 이곳 감방에서도 느낄 수 있고, 심지어는 고문 받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야. 이것이 나의 힘이야」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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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는가, 좋은 사람인데 왜 나쁜 일에 손대는가, 왜 그 사람은 나에게 친절히 대해주는가, 라는 물음과는 별도로 서로 관계를 맺어나가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장사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돈을 버는 건 좋은일이다. 우리는 어떤 기회도 자신의 이익으로 바꿀 수 있다. 라고 누구나가 공언하기 때문에 가볍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요청을 어떻게 해서 ‘윈윈‘
의 이익으로 변환할지,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즐거움으로 바꿀지는 장사꾼으로서 각자의 기지에 달려있다. 나는 여기서 자본주의경제에 대항하는 지점으로 증여경제 또는 분배의 구조를 구상하는 게 아니라, 증여경제나 분배경제가 잠재적으로 내포한 부정적인 측면이 자본주의 경제에 의해 활용될 수 있는 힌트가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 P249

나는 늘 그들이 해준 것과 그들로부터 받은 것, 내가그들에게 해주는 것과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셈하는장부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겸사겸사‘를 조직하는 지혜를 이해하고 있으나 그게 내 일이 되면 내가 더 베푸는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거나, 나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면서도 이에 둔감한 사람들에게 화도 나고, 그러면서 상대방이 신경 쓰지 않도록 "괜찮아. 별거 아니니까"라고 말하며 억지로 참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불만은 스스로 지혜를 짜내 해결하면 되는지도 모른다. 조지프에게 "스마트폰 액정 보호 필름 말인데, 10장 세트로 싸게 사갈 테니 누군가에게 팔아주지않겠어? 나는 판매 대금의 절반만 받아도 돼"라고 제안해보거나, 휴대폰 교역인인 슈와에게 "친구가 액정 보호 필름이 필요하다는데 다음 번에 필름을 사들일 때 한 장 줄수 있겠어요?"라고 조지프의 요구를 떠넘기면 의외로 잘풀릴 수도 있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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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관계성은 금품과 성행위의 교환을 목적으로하는 ‘원조 교제‘로도, 연인이나 부부로도, 비즈니스 파트너로도, 나아가 서로 돕는 가족으로도 볼 수 있는 애매한것이다. 고다 에리小田里는 가나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슈거 마미보다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슈거대디 (나이가있는 스폰서 남성)와 젊은 여성의 교제에 관한 논문을 썼다. 고다의 정리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에서 슈거 대디와 젊은 여성의 교제 (이 행위 자체는 일반적으로 ‘거래상의 섹스transactional sex‘라고 불린다)는 결혼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연애 관계 그리고 성행위와 금품을 교환하는 실리적인 관계의 연속선상 어딘가에 자리매김되는 것이며,
혼전 성행위에 금품 교환이 수반되어야 하는 문화적 이해속에서 서구적 성매매와 구별되고 많은 경우 도덕적으로인정받는다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슈거 마미와 젊은 남성의 교제는 슈거대디와 젊은 여성의 교제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지만, 스폰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역시 실리적인 성행위와 금품 교환 관계 그리고 결혼에 이를 수 있는 연애 관계의 연속체 속에 자리매김되며,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어느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으로 보인다. - P222

이 여성들은 명목상 ‘고향 요리를 그리워하는 모임‘ - 실제로는 볶음밥이나 볶음국수도 나온다- 같은것들을 개최하며 일종의 생존 보장 시스템을 떠맡고 있다. 마바야도 청킹맨션의 식당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면 파투마 같은 성 노동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또 많은 남성이 옷 수선이나 병 간호를 부탁하거나 아이를 맡기며 어머니나 아내처럼 이들을 의지한다. 남자들은 이러한 서비스에 금전을 지불하지 않고 파투마와 여성들이 남자의 손을 필요로 하는 상황 - 수출품의 운반 등에서 활약한다. 이는 느슨한 호수성으로 작동하고 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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