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1
표적이 된 여자

1
실종

4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오클라호마주 오세이지 영토의 광대한 초원과 검은 산들을 뒤덮었다.‘ 제비꽃, 클레이토니아, 그리고 파란색의 작은 꽃들. 오세이지족 출신 작가인 존 조지프 매슈스는 꽃잎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펼쳐진 광경이 마치 "신들이 색종이 조각을 흩뿌리고 떠나간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불안할 정도로 커다란 달 아래에서 코요테들이 울부짖는 5월이 되면 자주달개비, 노랑데이지처럼 키가 좀 더 큰 식물들이 작은 꽃들 위로 슬금슬금 번지면서 그들에게서 빛과 물을 훔쳐가기 시작한다. 작은 꽃들의 목이 부러지고 꽃잎들은 팔랑팔랑 날아간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땅속에 묻힌다. 그래서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은 5월을 ‘꽃을 죽이는 달flower-killing moon‘의 시기라고 부른다. - P9

몰리와 자매들의 이름도 부모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오세이지 명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즉, 부족의 일원으로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그들이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1870년대 초에 오세이지족은 캔자스주의 고향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 북동부의 바위투성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다들 아무 가치도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십 년 뒤 이땅이 미국 최대의 석유 매장지 몇 군데를 깔고 앉아 있음이 밝혀졌다. 탐사에 나선 사람들은 이 석유를 손에 넣기 위해 오세이지에게 임대료와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족 명부에 이름이 실려 있는 사람들에게 20세기 초부터 1년에 네 번씩 수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우 몇 달러짜리 수표였지만, 세월이 흘러 석유채굴량이 늘어나면서 그들에게 지급되는 돈도 수백 달러, 수천 달러로 늘어났다. 초원을 흐르는 개울들이 하나로 모여 흙탕물이 흐르는 널찍한 시머론강이 되듯이, 거의 매년 늘어난 지급액 덕분에 부족원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수억 달러에 이르렀다(1923년만 해도 부족원들에게 지급된 돈은 3,000만 달러가 넘었다. 오늘날의 가치로 4억달러가 넘는 액수다. 오세이지족은 재산을 인구수로 나눴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뉴욕의 주간지 <아웃룩>은 이렇게 외쳤다. "보라! 인디언들이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은행가들도 부러워서 얼굴이 노랗게 질릴 만한 소득을 꾸준히올리고 있다." - P10

치안판사의 주재로 검시를 위한 배심원단이 협곡에 황급히 소집되었다.‘ 이런 방식의 검시는 평범한 시민들이 범죄수사와 질서유지에 큰 몫을 담당하던 시절의 잔재였다. 미국이 독립한 뒤 오랫동안 국민들은 경찰국 창설에 반대했다. 경찰이 시민을 억압하는 세력이 될까 우려한 탓이었다. 대신 시민들은 범죄가 발생했을 때 직접 나서서 용의자를 추적했다. 나중에 대법관이 된 벤저민 N. 카도조는 시민들이 "힘없이 느린 발걸음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용감했으며, 자신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도구와 재주를 동원했다"고 말했다.
산업도시들이 성장하고 도시 폭동이 빈발하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이른바 위험한 계층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하게 된 19세기 중반에야 미국에 경찰국이 생겨났다.  - P27

몰리의 어머니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와콘타에게 목소리가 들리기를 기원하며 오세이지 기도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역사가이자 저술가이며 오세이지족의 피가 섞여 있는 존 조지프 매슈스(1894~1979)는 이 부족의 전통들을 많이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는 전형적인 기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어린 소년이던나의 영혼이 두려움과 달콤씁쓸함, 이국적인 갈망으로 가득해졌다기도가 끝났을 때 나는 기쁨과 두려움의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누워서 기도가 더 이어지기를 열렬히 바랐으나, 또한 더 이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나중에 조리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뒤에 보니, 이런 기도노래, 찬가, 영혼을 뒤흔드는 탄원은 언제나 좌절의 흐느낌 속에서 마무리되기도 전에 끝나는 것 같았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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