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앙스파크Mark Anspach는「다음엔 내가 갚을 차례A Charge de Revanche』‘라는 저서에서 "상대도 같은 것을 한다는 조건"으로 성립하는 상호성(호수성)에 대해 논한다. 서로 돕기는 ‘그를 돕는다면 내가 어려울 때 상대방도 똑같이 나를 도울 것이다‘라고 서로 기대하는 선순환의 호수성이다. 하지만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복수의 연쇄, 악순환의 상호성도 존재한다. 앙스파크는 선순환하는 상호성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자발적으로 증여 (빌려주기)를 하고 상대방과의 미래 관계를 믿고 여기에 ‘베팅할‘처음에는 리스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더불어 선순환을 유지하려면 서로가상대방에게 "빚을 졌다"라는 감정을 계속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앙스파크의 논의는 이러한 선순환의 호수성이 얼마나 쉽게 악순환의 호수성으로 전락하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문자메시지도 친절도 곧바로 답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빚을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과 상대방이 준 것이등가인지,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轉化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 예를 들면 혐오 발언-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생활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P258

이러한 호수성의 어려움을 전제로 홍콩 탄자니아인들의 조합 활동을 살펴보면 그 독특함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구리타 가즈아키가 말했듯이, 중국으로 오는 아프리카인 대다수는 ‘정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늘 이동하는 사람, ‘상업적인 여행자‘다. 유동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커뮤니티에 계속 관여하고 균질적으로 공헌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투기성이 높은 시장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장사꾼들 사이에는 단지 부자와 가난뱅이만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은 큰 부자가 무일푼이 될 수 있고 빈털터리도 큰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으로도 높은 유동성이 있다. 이들은 길든 얕든 그레이존에 걸친 모호한 장사를 하기에교도소와의 거리도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적잖이 켕기는데가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타고난 성격이나 배경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이 타자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의 처세술로 간주된다. 그러한 이들 사이에서 "왜 그 사람이 도움받아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자기 책임의 범위인가", "나만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사람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재난이나 어려움에 함께 대처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사귀고, 깊이 알아가고, 크게 신뢰하고, 확실한 인연을 만든다는 발상과는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조합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공헌도나 궁지에 몰린 원인을 묻지 않고, 조합원 자격이나 타자를 도울 때에 관한 세세한 규칙을 명확히 만들지않고, 그저 타자가 필요로 하는 지원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을 판단한다. 이 책에서 나는 ‘왜 나만 애쓰고 있는가‘, ‘왜 그 사람은 언제나 도움받는가‘라는 멤버 사이의공헌 불균형, 호수나 신뢰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배경으로 ‘겸사겸사‘의 논리와 ICT를 이용한 교역 시스템의연속성을 제시했다. - P260

타자는 자신에게 어려운 상담은 듣고 깨끗이 흘려버리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 약속을 파기한다. 조합 참여 활동이나 기부금도 사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으며, 일을 하느라 참여할 수 없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공헌하지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유동적으로 돌아다니며 각자의 인생을 찾을 수밖에 없는, 독립독행으로 살아가는 타자에게 자신의 요망을 들어 달라, 정체를 알지도못하는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득 던진 아이디어나 SOS 신호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포착되고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떤 돈벌이나 호구지책이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타자에게공감이나 공공성을 띤 행동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타자의
‘알 수 없는 참모습‘을 ‘미지未知/불가지不可知의 가능성‘
으로 환영하고, 상장 기업의 사장이나 대통령의 비서만이아니라 비합법 underground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겸사겸사‘ 친절을 주고받음으로써 선뜻 연결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 P263

이 책에서 강조한 ‘겸사겸사‘는 그 사람이 가진 정신적/재정적/능력적/시간적 여력이다. 그런데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유휴자원이나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 지향적인 경제 논리로 ‘겸사겸사‘를 조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겸사겸사‘, ‘무리하지않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사람이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낭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단치않음‘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을 찾아 홍콩에 와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개별 인간의 자율성, 서로 간의 대등함을 저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돕는 이유는 시민 사회, 환경 지속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연일지라도 ‘함께 있게 된 정체를 알 수없는 타자에게 ‘나는 당신의 동료다‘, ‘당신은 나의 동료다‘라고 표명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즉, 새로운 경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의 논리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동료 간의 증여와 분배를 위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 P266

소셜 네트워크에서 상호 부조는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간접 호혜주의). 이곳에서는 더 이상 ‘내가 널 도우면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단순한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상호 부조의 구조는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로 바뀌었다."

이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원칙은 내가 홍콩 탄자니아인의 사회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원칙이다. 이는 증여 교환을 가리키는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수렵채집민이 사냥하고 채집한 것들을 같이 나누던 행위, 일방적인 이양, 분배sharing라고 불리며 연구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공유경제시스템은 인류학자들이 수렵채집민 사례를 연구하며 밝혀온 ‘분배‘보다 다소 ‘냉담‘한 것처럼 보인다.
‘분배‘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말하는 ‘증여‘나
‘증여 교환‘과 달리 ‘줄 의무‘, ‘받을 의무‘, ‘답례의 의무‘
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운 좋게 사냥에성공한 사람이 동료에게 당연한 듯 (마치 의무처럼) 고기를 분배하고, 다음에 다른 누군가가 운 좋게 사냥에 성공하면 그 사람도 동료에게 당연한 듯 고기를 분배한다.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이타주의적인 ‘일반적 호수성‘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구성원 모두가 고기를 계속 얻는다.
그런데 인류학자들이 밝혀온 수렵채집민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회에도 ‘소유 의식‘이 있었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다. 집단 구성원들의 능력에도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분배를 받는 자가 오히려 노획물의 빈약함을 질책하고 주는 자는 한없이 미안해하는 식의 배려나 포획자와 노획물의 소유자를 분리하는 등의 행위가 이루어졌다. 받는 자에게 ‘부담‘이 발생하거나 일방통행적인 분배를 계속하는 자에게 ‘위신‘이 생겨나지 않도록 세세한 실천을 행하면서‘ 불균형한 공헌이 문제가 되지 않게 해온 것이다. - P268

이러한 평가 시스템은 오늘날 점점 세련되고 철저해지고 있다. 인간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함정도 있는 것 같다.
보츠먼은 『신뢰 이동: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Who Can You Trust?: How Technology Brought UsTogether and Why It Could Drive Us Apart』에서 이러한 평가경제의 문제를 논한다.

기술은 신뢰의 범위를 넓혀 낯선 사람과의 연결과 협력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고폐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평판과 평가 시스템은 책임감을 강화하고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할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가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평판이 손상되어 디지털 연옥에 영원히 갇히는 사람도 생겨난다."

인터넷을 매개로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누군가를 평가하고 선별해가는 행위가 당연한 듯이 행해진다.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폐쇄된 환경 속에 있기에 자신의 의견과 편견이 증폭되는 ‘반향실효과echo-chamber effect‘, 가짜 뉴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의 만연⋯⋯ 테크놀로지는 그러한 부정적인 현상도 일으키는동시에 새로운 신용 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한다. - P274

물건이나 서비스, 정보가 그때그때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스템, 누군가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돌아가는 분배 시스템이 시장경제 한복판에서 형성되어가기를 나는 기대한다. 제5장에서 다룬, 내가 잠시 경험한 것처럼 서로 나누어줌으로써동료가 되고, 그럼으로써 동료가 마침 우연히 소유한 자원- 무임승차 멤버십과 팔다 남은 상품을 계속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넓은 네트워크로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에 따라 딱히 뛰어나지 않고 때로는 불성실하다 해도 누군가의 변덕 덕에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분배경제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어가는 것을 몽상해본다. 인공지능이든전통적인 종교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 P285

청킹맨션의 보스는 불완전한 인간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자나 사회에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는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게 타자와 사회에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배신당하는 상황을 포함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이들의 시스템은 세련되지 않고 적당하며 허술하기에 오히려 멋지다.
카라마가 "그래서 내가 홍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가르쳐준 거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하지만 나는 카라마의 뛰어난 제자는 아닐지도 몰라요. 카라마가 가르쳐준 것이나 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게다가 내가 심술궂게 카라마를 극악한 보스처럼 묘사하면 어떡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카라마는 여유가 가득한 얼굴을 하며 ‘괜찮아. 사야카가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라고단언했다. 그건 사실이다. 단, 내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카라마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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