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생식기에 이르기까지, 인체 내에는 아홉 가지 핵심 분비샘이 존재한다. 뇌에는 시상하부hypothalamus, 솔방울샘pincil gland, 뇌하수 pituitary gland 가 있고, 목구멍에는 갑상샘thyroid gland 과 그 이웃인 부갑상샘 parathyroid gland 이 있고, 췌장에는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s 이있고, 신장 위에는 부신adrenal gland 이 있고, 생식기에는 난소ovary와 고환testis 이 있다. 1900년대 초 과학자들은 개의 뇌에서 호르몬을 만드는샘을 적출해 그 즙을 아무 신체 부위에나 주입해보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음을 발견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또한 과학자들은 우리의 모든 세포에는 마치 컴퓨터의 라우터서럼 표시기가 달려 있어서, 호르몬 신호를 필요한 곳에 정확히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호르몬이 좀처럼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즉, 한 호르몬의 양이 감소하면 다른 호르몬의 작용이 방해되어, 마치 잇따라 쓰러지는 도미노 패처럼 일련의 신체 기능들이 저하된다. 분비샘에서 나오는 호르몬들은 어떤 면에서는 다르지만 대동소이하다. 마치 형제지간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사촌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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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968년 여름, 나는 뉴욕주 용커스시의 스프레인브룩 컨트리클럽에 있는 할머니 소유의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마서Martha 는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 세 명과 그늘에 앉아 카나스타(두 벌의카드로 두 팀이 하는 카드놀이의 일종)를 하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켄트담배를 피웠다. 나는 간혹 오빠 언니와 함께 수영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언니와 함께 일광욕을 했다. 우리 자매는 온몸에 존슨즈 베이비오일을 듬뿍 바르고, 머리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알루미늄 호일로감싼 앨범 커버를 뒤집어썼다.
언니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란히 팔짱을 끼곤 했다. 언니의 피부는 늘 가무잡잡하게 그을었지만, 빨강머리의 나는 완숙 토마토처럼 화상을 입어 다음날 아침 허물이 벗겨졌다. 그에 반해 할머니의피부는 멋진 구릿빛이었다. 마치 일광욕에 소질이 있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피부가 알아서 햇빛을 적당히 흡수하는 것처럼,
그로부터 5년 후, 우리는 할머니가 일광욕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애디슨병 Addison ‘s disease 이라는 호르몬 관련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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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도비스기 말의 세계가 다를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한 가지 요인은 해수면이다. 빙하의 물은 주로 바다에서 오므로, 얼음이 늘어날수록 해수면은 낮아진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 때에는 약 130미터가 낮아졌는데, 오르도비스기 말에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빙하가 확장될 때 그랬듯이 처음부터 해수면이 낮았다면, 서식 가능한 해저의 상실도 그리 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해수면이 높고 육지의 저지대 중 상당수가 얕은 바닷물에 잠겨 있었을 때 빙하가 대규모로 늘어난다면,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대륙을 덮고 있던 얕은 바다에서 물이 빠지면서 전 세계의 얕은 해저와 거기에 살던 생물들이 대규모로 사라질 것이다. 오르도비스기에 바로 그런일이 일어났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지리다. 기후가 변할 때 이주 경로가 이용 가능하다면, 집단은 더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다. 260 만년 전에 빙하가 확장될 때, 북아메리카 동부의 식물 종들은 멕시코만주위로 옮겨감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반면에 유럽 북부의 식물들은 알프스산맥에 가로막혀서 상당수가 멸종했다. 얕은 바다에서는 이주 경로가 막힌 곳에서 가장 심하게 멸종이 일어났다. - P223

환경 교란의 속도도 규모 못지않게 중요했다. 환경 변화가 느릴때 생물 집단은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지만, 빠를 때에는 적응이 어려울 수 있다. 후자일 때에는 이주하지 못하면 멸종하는 수밖에 없다. 대멸종은 지구 내에서 또는 태양계의 어딘가에서 일어나는메커니즘을 통해 추진되는 일시적이지만 심각한 환경 교란을 반영한다. 대멸종은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반면, 다양성을 복구하는 데에는더 오래 걸린다. 화석은 주요 멸종 사건 뒤에 회복되기까지 수십만년, 심지어 수백만 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 P225

탄소 순환의 물리적 측면을 보면, 이산화탄소는 화산 분출을 통해 대기로 추가되고, 화학적 풍화를 통해서 제거된다. 제거된 탄소는이윽고 석회암으로 쌓인다. 이 과정들이 조합되어서 대기의 이산화탄소 양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산화탄소는 강력한 온실가스이므로,
기후도 조절한다. 7장에서 설명했듯이, 2억 5,200만 년 전 페름기 말에 화산이 대규모로 분출하면서 대기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냈고, 그 결과 지구 온난화, 해양 산성화(바닷물의 pH를 낮춤으로써 생물에게 생리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바닷물의 산소 결핍이 일어났다. 이윽고 육지와 바다 양쪽에서 생물 다양성이 급감했다. 화산 활동의 여파로 지구가 더워지자, 화학적 풍화 속도가 증가했고, 수천 년이 흐르자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격변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갔다. - P253

화산은 탄소 순환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자연의 장치일 수 있는데, 인간은 그에 못지않게 강력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도입했다. 바로화석 연료를 태우고 경작하기 위해 숲을 없애는 것이다. 수억 년에걸쳐서 형성된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지금 엄청난 속도로 탄소를 대기로 돌려보내고 있다. 21세기에 인류는 전 세계의 모든 화산에서 뿜어지는 양을 더한 것보다 100배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뿜어내고 있다. 인간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서 이산화탄소를 대기와 바다로 집어넣는 속도를 대폭 증가시켰지만, 제거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는 (아직까지) 손을 놓고 있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대기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한다.
지구가 더 더워질수록 이윽고 화학적 풍화 속도도 증가하면서,
페름기 말 대멸종 이후에 일어난 것처럼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그랬듯이, 그 일에는 수천 년이 걸릴 것이다. 우리 자신, 우리 아이들, 우리 손주들의 생애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일방적으로 계속 치솟을 뿐이다.
- P254

연구실과 현장에서 이루어진 수십 건의 실험들은 바닷물의 pH가 낮아질 때 산호가 탄산염을 분비하여 뼈대를 만드는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해양 산성화가 가속됨에 따라서, 산호는 산호초를 구축하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석회암 뼈대를 만들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서, 또 다른문제가 정면으로 나선다. 산호는 기본적으로 농부다. 대개 몸속에 사는 조류로부터 영양소를 수확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온이 어떤 한계점을 넘어서면, 산호의 몸속에 있던 조류가 빠져나간다. 이를 백화 현상 bleaching 이라고 한다. 조류가 빠져나가면 산호가 하얗게 변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극단적인 수온 변화가 비교적 드물게 일어났기에, 백화한 산호는 대개 다른 조류를 받아들임으로써 회복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수온 증가로 백화 사건이 더욱 잦아지면서 산호가 죽음을 맞이하곤 한다.
- P263

우리는 40억 년에 걸친 물리적 및 생물학적 유산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삼엽충이 고대 해저를 기어 다녔던 곳, 공룡이 은행나무가 빽빽했던 언덕을 쿵쿵거리며 다녔던 곳, 매머드가 얼어붙은 평원을 돌아다녔던 곳을 걷고 있다. 예전에는 그들의 세계였지만, 지금은 우리의 세계다. 물론 우리와 공룡의 차이는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는 우리의 것임과동시에 우리의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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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 대한 한 연구에서 보면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들은 낙관주의자나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비관적 현실주의자라고 합니다. 비관적 현실주의자란 어떤사람들일까요? 이들은 ‘곧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무작정 믿는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서 죽고 말 거야. 영원히 여기를떠나지 못할 거야‘라고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기서 나가기는 쉽지 않아. 어쩌면 적들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어. 나는 영원히 여기서 썩거나 아무도 모른 채 죽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면도부터 해야겠다. 수용소에서 누가 본다고 면도를 하냐고? 그럼 뭘 하지? 가만히 누워서 죽을 때를 기다리나?‘
이런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먹을 물도 부족한 판에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합니다. 개인위생을 챙기고 하루하루를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헛된 희망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허황된 자존심에 목숨을 걸지도 않습니다.
- P390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의 대부분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유산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과 관련되었다는 겁니다. 글을 쓰고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극에 침여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 여기엔대부분 큰돈이 들지 않습니다. 성장률이 제로로 수렴하는 저성장 시대가 이미 도래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툭하면 0퍼센트의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이민자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그런 일을 겪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저장하는 삶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관적 인식하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 P395

요컨대 사람들은 그 어떤 엄혹한 환경에서도, 그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글을 씁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 자유 최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글은 쓸 수 있습니다. 인간성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파괴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자들이니까요.
- P426

글은 한 글자씩 씁니다. 제 아무리 빠른 사람도 글자 열 개를 한꺼번에 뿌릴 수 없습니다. 한 글자씩 한 글자씩 써야 단어가 만들어지며 이 단어들이 모여 문장이 됩니다. 그렇게 한 문장한 문장이 차례대로 쌓여야 글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은 의외로 중요합니다.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쓰는데요. 이렇게 써나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변화가 생기고 이게 추적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트라우마나 어두운 감정은, 숨어 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막상 커튼을 젖히면 의외로 별 볼일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한 글자 한 글자 언어화하는 동안 우리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것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언어는 논리의 산물이어서 제아무리 복잡한 심경도 언어 고유의 논리에 따라, 즉 말이 되도록 적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좀 더 강해지고마음속의 어둠과 그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습니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가진 자기해방의 힘입니다.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편견, 나약함과 비겁과 맞서는 힘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 P428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선인인지 악인인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웃긴 인물인지 불쌍한 인물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요. 분명히 알 수 없는 윤리적 판단의 회색지대에 있는 인물들이죠. 밀란 쿤데라가 한 멋진 말이 있어요.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 돈키호테에 대해서 어떻게 도덕적판단을 할 수 있겠어요? 웃을 수 있을 뿐이죠. 엠마 보바리에대해서 "죽일 년 이렇게 얘기하면 바보가 되는 거예요. 엠마 보바리에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좀 더 높은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는 거죠.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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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일찍 왔구나. 난 머리를 매만지러 ……」 하고 고마코가 말을 걸었을 때였다. 휙 불어닥친 시커먼 돌풍에 휩쓸려 날아갈 것처럼 그녀도, 시마무라도 몸을 움츠렸다.
화물열차가 바로 곁을 스쳐갔다.
「누나~!」하고 부르는 소리가 요란한 울림 속에서 흘러나왔다. 검은 화물열차 문에서 소년이 모자를 흔들고 있었다.
「사이치로(佐一郎], 사이치로 —!」하고 요코가 불렀다.
눈 신호소에서 역장을 부른 그 목소리다. 들리지도 않는 먼 배에 탄 사람을 부르는 양,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화물열차가 지나가 버리자, 눈가리개를 벗은 듯이 선로 저편의 메밀꽃이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줄기 끝에 가지런히 꽃을 피워 참으로 고요했다.
뜻밖에 요코를 만났기 때문에 두 사람은 기차가 오는 것도 미처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였는데, 그런 기분마저 화물열차가 말끔히 날려버리고 지나갔다.
그런 뒤에는 차량 소리보다 요코의 목소리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순결한 애정의 메아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요코는 기차를 배웅하며,
「동생이 타고 있으니 역으로 나가볼까」 「하지만 기차는 역에서 기다려주지 않을걸」 하고 고마코가 웃었다.
- P103

그러나 요코가 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부르기가 왠지 꺼려졌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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