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 자이가르닉은 러시아의 심리학자다. 그녀는 어느 날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주문을 완벽하게 처리한 뒤 접시를 손님의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그 정보를 삭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우리가 미완성 과제와 연관된 정보를 다른 어떤 형태의 정보보다 훨씬 쉽게 떠올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해결문제에 대한 무언가가 기억을 촉진하고 머리를 맑게 한다.
내 생각에 천재는 일반인보다 자이가르닉 효과에 더 민감한 듯하다. 그들은 미해결 문제를 맞닥뜨리면 그걸 해결할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창조적 천재를 설명하는 특징은 출처가 불분명한 ‘깨달음의 순간‘보다는 이 끈기다. 중력법칙을 어떻게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아이작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 P254

에든버러에서 볼 수 있는 무엇보다 큰 기적은 지형과 기후의 난관을 겪으면서 이 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길 잃은 햇빛이 외계의 우주광선처럼 거실을 꿰뚫을 때 도널드에게 이에 대해 묻는다.
그는 사실이라고 대답한다. 에든버러가 창조적 장소였고 지금도 그런 것은 멋진 곳이어서가 아니라 힘든 곳이어서다. 스코틀랜드인으로 태어나 좋은 점은 무언가 맞설 대상이 있다는 점입니다.
무언가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맞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력을 더해야 하죠." 에든버러뿐 아니라 모든 천재의 장소를 적절하게 묘사하는 표현이다. - P261

하지만 이 설명은 성에 차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든 상호작용이 똑같이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아이디어가 똑같이 좋은 것은 아니듯 말이다. 교도소는 지독하게 밀집되어 있으며 상호작용이 무척 많이 일어나지만 창조성은 그다지 많이 생겨나지 않는다. 빈민가도 밀집되어 있고 그곳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관한 창의성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노벨상을 받거나 새로운 문학 장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밀집 외의 무언가가 관여하는 것이 틀림없다.
에든버러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도널드 캠벨의 답변이 떠오른다. 그가 여기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널드는 생각에 잠기더니 한 단어로 대답했다. ‘친밀함‘이었다. 기대한 단어는 아니었지만,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전구가 번쩍였다. 이제 모오오든 것이 이해될 것만 같다. 천재의 장소는 단순히 인구가 밀집한 장소가 아니라 친밀한 장소이기도 하며 친밀함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신뢰가 포함된다. 심포지엄에 모인 그리스의 철학자와 시인은 서로를 신뢰했기에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다졌다. 베로키오는 제자들이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믿었다. 오늘날 창조성이 뛰어난 도시와 회사는 신뢰도와 친밀도가 높은 곳이다. - P263

여기는 글래스고가 아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아니다. 나는 캘리포니아에 돌아왔다.딘 사이먼턴의 비좁은 연구실에서 그가 맹목적 변이wind variation와 선별적 유지selective retention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고전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이는 사이먼턴이 지난 25년간 발전시킨 창의성 이론으로, 에든버러의 천재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사이먼턴은 창조적 천재가 초유동성 super fluidity및 역추적성backtracking 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초유동성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한이 있더라도 감을 밀어붙이려는 의지이고 역추적성은 막다른 골목이나 그렇게 보이는 것에서 돌아와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 천재들이 나머지 사람보다 타율이 높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헛스윙을 더많이 하지만, 이게 중요한데, 자신이 어디서 그리고 왜 헛스윙을 했는지 정확히 복기할 수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특징을 ‘실패 지수failure index‘ 라고 한다.
천재들은 이 마음의 책갈피를 좋아하고 이를 게걸스럽게 체계적으로 수집한다. - P280

지식을 전달하는 데 뛰어났던 것 아닐까? 큰소리로 자문해본다.
어느 정도는 그랬다고, 브로디가 말한다. 하지만 지식은 천재성과 같지 않으며 오히려 천재성을 방해한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천재들이 반드시 자기 분야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인 것은아니다.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의 동시대인 중에는 물리학에 대해 그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많았다. 아인슈타인은 전지全知하지 않았다. 전견全見했다. 예상치 못하지만 중요한 연결고리를 잇는 능력이 창조적 천재의 특징이라면, 확실히 지식의 깊이보다는 너비가 중요하다.

천재의 장소가 어떻게 다양한 문화 흐름의 중심을 차지하는지는 이미 살핀 바 있다. 고대 아테네의 대형 범선이나 르네상스 피렌체의 상인을 떠올려보라. 이러한 혼합에서 생겨난 창조적 문화는 잡종일 수밖에 없었다. 인도의 한 학자는 "문화보다 덜 순수한것은 없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도 그의 말이 옳다. 순수한 천재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천재에게 순수한 면은 아무것도 없다.천재는 빌리고 훔친다. 물론 거기에 자신의 재료를 섞긴 하지만,
순수함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콜카타의 혼합에서 특별한 점은 그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콜카타의 혼합은 어느 역사가의 말마따나 "인도의 천재성과 서구적 감수성의 결혼으로 생겨났다. 이는 중매결혼이다. 콜카타는계획된 천재성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어쩌면 유일한 사례이기때문이다. 벵골 르네상스 끝 무렵에 살았던 시인 수딘 다타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세계의 새로운 문화 중에서 오래된 문화 둘을 의도적으로 섞어 만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
영국령 인도의 수도 콜카타는 일종의 실험실이었다. 유망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이곳을 거쳤다. 범죄 수사에서 쓰는 지문감식법을 처음 사용한 것도 여기다. 기억하다시피 이 기법은 우리의 오랜 친구 프랜시스 골턴이 발명했다. 맨체스터보다 먼저 콜카타에 하수도와 가스등이 갖춰졌다. 이곳에서는 늘 창조성이 혈액처럼 흘렀다. - P297

황금기는 슈퍼마켓과 같다. 선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
타고르가 성년이 되었을 즈음에는 벵골 르네상스의 토대가 이미 마련돼 있었다. 슈퍼마켓은 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슈퍼마켓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창의적인 손님이었다. 타고르는 여느 천재와 마찬가지로 파벌주의를 멀리했다. 그는 불교, 고대 산스크리트어, 영문학, 수피즘, 마을을 방랑하는 음유 가수인 바울 등 무엇에서나 영감을 얻었다. 타고르의 천재성은 종합에서 비롯했다. - P304

창의적인 사람은 혼란과 손잡지만, 손잡는 것이 굴복과 같지는않다. 끊임없는 혼란은 완벽한 질서만큼이나 창의성에 무익하다.
하지만 벨기에의 화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은 이렇게 말했다. "둘 사이의 어딘가에서 전체상과 놀람의 황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창의성이 생겨난다. 그 안에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영원히 이 공간에서, 혼란의 가장자리에서 춤춘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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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협박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연구서 죽음과 죽어감』(1971)에서 불치병이라는 진단에 반응하는 다섯단계라는 유명한 모델을 선보였다. 첫번째 단계는 부정이다.
부정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태도다("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 두 번째 단계는 사실을 더는 부정할 수 없어 터지는 분노다(‘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세 번째 단계는 사실을 어떻게든 미루거나 축소시키려는 타협의 태도다(‘적어도 애들이 학교 마치는 것은 보게해줘‘), 네 번째 단계는 우울증이다(성적 관심의 급감, 공허한감정, ‘어차피 죽을 텐데 그런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체념과 수용이다(‘어차피 내가 바꿀 수있는 게 없구나. 준비라도 잘 해두자‘). - P7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물밀 듯 몰려오는 난민 행렬을 바라보는 서구 여론과 각국 정부의 반응도 이 다섯 단계 감정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정.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인다(갈수록 줄어드는 태도이기는하다). ‘뭐 별일 아니네, 그냥 무시해버려‘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난민은 우리 생활방식을 심각하게 위협해. 그들중에는 이슬람 과격분자도 숨어 있다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해!‘ 타협을 해보려는 안간힘도 나타난다. ‘좋아, 난민을 몇 명이나 받아들일지 할당량을 정해 나누자고.
그들 나라에 난민 수용시설을 세워 지원해주는 것은 어때! 우울증 반응이 나타난다. ‘우린 망했어. 유럽은 우리 눈앞에서 유로파스탄Europastan이 되고 말 거야!‘ 끝내 없는 것은 난민을 수용하려는 자세다. 다시 말해 난민 문제를 범유럽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일관된 계획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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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50년간 학위 논문과 학술 논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사회학자 J. 로저스 홀링스워스가 『네이처』에서 썼듯 "사실 창의적인 연구는 비교적 일정하게 배출되었다". 우리는 전문성의, 심지어 재능의 홍수를 겪고있지만 창조적 도약의 급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앞에서 말했듯 전문화다. 우리는 세상을 점점잘게 쪼갰다. 이 때문에 오늘날 각 분야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이 쌓였다. 천재가 자기 분야에서 축적된 지식을 모두 습득한 뒤에야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다면, 엄두가 나겠는가?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는 평생 남의 연구를 공부해본들 간에 기별도 안 갈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열등생이었다. 그가 엘리트와 지성인의 언어인 라틴어를 그럭저럭 배운 것은 중년이 훌쩍 지나서였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통념을 견디지 못했다. 약 500년 뒤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이 "나쁜 지식에는 무지한 것이 상책이다"라고 말했는데, 레오나르도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피렌체에 대학이 없던 것은 축복이었다. 도시학자 피터 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덕에 피렌체는 ‘학문의 구속복‘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01

다시 르네상스 여명기 피렌체의 상태를 떠올려보라. 교회는 재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취약했다. 수도사들은 덕을 독점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럴 수 없었다. 아테네와 항저우에서 보았듯 모든황금기는 옛 질서가 무너졌으나 새 질서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공백기 무한 경쟁이 벌어진다. 농구의 점프볼처럼 누구나 모든 것을 잡을 수 있는 시기, 창조적 천재가 승승장구하는 시기다. 하지만 이런 이행기는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 P204

물론 끔찍한 시기였지만 이런 게 르네상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주 많은 관계가 있다. 흑사병은 1348년에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로부터 고작 두 세대 만에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만개했다. 두 사건의 발생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역병은 참화를 불러오긴 했지만 기존 질서를 뒤흔들었다. 신분제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문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 죽어버리자 닫힌 문이 갑자기 열렸다. 역병은 황금기의 필수 요소인 불안정을낳았다.
다시 한번 돈이 반짝이는 머리를 쳐든다. 역병은 ‘상속 효과‘도 만들어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졸지에 사라지면서 도시의 자본이 더 소수의 손에 들어왔다. 여윳돈으로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그럴 만도 하지만 상인들은 새 사업에 투자하기를 꺼렸다. 왜였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그들은 문화에 투자했다. 경제사가 로버트 로페즈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품과 희귀본서적이 갑작스럽게 "개인이나 국가를 엘리트 집단에 들여보내는 마법의 암호"가 되었다. 문화는 이제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였다.
미국 재무부 증권 못지않은 안전한 투자처였다.
이런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린 후원자와 미술가는 수 세기 뒤까지도 여전히 우리의 숨을 멎게 하는 미술품을 의뢰하고 창작했다.
한편 역병의 창궐을 막지 못한 교회는 도덕적 정당성을 대부분 잃었으며, 세속적 인문주의자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 이 사건들 중어느 것도 흑사병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P206

"미술사에서 <다비드>상과 같은 것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어요. 표현해야 할 것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었으니까요. 피렌체인들은 이 작품을 보자마자 알았어요. <다비드> 상이야말로 고대작품을 능가한 첫 미술품이라는 사실을요. 그들은 고대의 정점을보았어요. 제2의 <다비드> 상은 결코 탄생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이게 천재적 작품의 가장 정확한 정의인지도 모르겠다.
업그레이드 시도가 헛되고 어리석은 작품. - P212

하지만 5분 이상 지난 아이디어를 철저히 경멸하는 실리콘밸리의 새것 집착 성향은 공유하지 않았다. 계몽된 스코틀랜드인들은 의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역사를 깊이 존중했다. 역사를 적어도 읽을 만한 역사를 발명한 것은 스코틀랜드인이다(투키디데스, 미안). 그들은 이 분야를 ‘추측한 역사‘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데이비드 매컬로 같은 작가의 작품이나 역사소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에게 역사는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역사는유용했다. 스코틀랜드인이 과거를 공부한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당연히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중국인처럼 그들은 예리한 역사 감각이 없는 자는 데이비드 흄 말마따나 "영원히 어린아이의 이해에 머물‘ 운명임을 알았다. 천재에게는 액셀뿐 아니라 백미러도 필요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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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키오 같은 멘토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창의성의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명석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어도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수 있도록 역할 모델은 있어야 한다. 사회학자 해리엇 저커먼은 노벨상 수상자 아흔네 명을 대상으로 방대한 연구를 진행해 이들이 살아가면서 핵심 멘토를 만났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멘토와의 관계에서 정확히 어떤 도움을 얻었는지 묻자 학문적 지식은 맨 꼴찌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멘토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그 답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사고방식일 것이다. 대답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방법. 일종의 응용 창의성, 우리는 대개 창의성을 문제 해결이라는 좁은 범주에서 생각한다. 어려운 수수께끼를 제시받고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이다. 이것도 대견하기는 하지만,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땐 ‘문제 찾기‘에 착수하면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질문에 대답한다. 문제를 찾는 사람은 새로운 질문을 발견한 다음 그질문에 대답한다. 천재를 구별하는 특징은 정답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질문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이런 재담을 남겼다. "컴퓨터는 멍청하다. 정답밖에 못 내놓으니까."
문제를 찾는 사람의 가장 적절한 예는 다윈일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 "찰스, 진화론을 고안해주게"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설명되지 않은 유사성이라는 문제를 발견한 뒤 종합적 이론으로 이를 해결했다. 이 모든 과정은 그가 선택한 분야인 생물학 안에서 이루어졌다. 창의적 사고를 독자적으로구사한 게 아니었다. - P177

르네상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한 팀의 결실이었다. 물론 몇몇 별이 찬란하게 빛나긴 했지만, 그들은 훨씬 큰 별자리의, 또한 너른 하늘의 일부였다. 예술은 집단의 사업이었으며 모두에게 속했다. 피렌체의 미술가 중에서-심지어 내향적인 미켈란젤로조차도 혼자 힘으로만 창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술가들은 도시나 교회를 위해, 또는 후손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참된 천재성은 결코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언제나 공동의 문제다.
언제나 그 자체보다 크다. - P181

"르네상스는 똥도 많이 쌌습니다"라는 그의 훨씬 불경한 단언이 무슨 뜻인지도 알겠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발끈했지만 유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인간 창조성의 정점으로 여기지만, 이 시대는 형편없는 예술과 형편없는 아이디어의 주맥이기도 했다.
오늘날 천재로 추앙받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에디슨이 보유한 1093개의 특허 중 상당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발명품이다. 피카소의 작품 2만점 중 상당수는 걸작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 분야를 보자면 W. H. 오든 말마따나 "일류 시인은 일생 동안형편없는 시를 이류 시인보다 훨씬 많이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표적을 겨냥하여 화살을 많이 날릴수록 명중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빗맞은 화살도 많아진다. 하지만 미술관과 도서관에는 빗맞은 화살이 아니라 명중한 화살만 보존된다.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천재가 처음부터 옳고 실수하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난다. 실은 천재 아닌 사람들보다 실수를 더 많이 저지르는데도 말이다. - P186

위험을 감수하는 전통은 예술계에도 흘러들었다. 부유한 후원자들은 승산이 낮은 말에 돈을 걸었다.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성당이 그 좋은 예다. 약 500년이 지난 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 작업의 적임자로 통한다. 하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대부분 소품이었으며 프레스코화는거의 없었고 규모도 훨씬 작았다. 하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로 낙점했다. 교황은 메디치가의 후원 철학을 따랐다. 명백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골라 그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맡기는 것.
그가 그 임무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그가 그 임무에 어울리지 않다면 더더욱.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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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링은 1948년 영국 국립물리학연구소에 제출한 보고서 「지능을 가진 기계 (Intelligent Machinery)」에 이렇게 썼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파괴한 ‘혁명선언‘이었다.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확실한 이유는 사람의 어떤부위에 대해서든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의 주 관심사는 신경계다. 전자 계산 기계에 쓰는 전기 회로는신경의 본질적 속성을 가진 듯하다. 전기 회로는 정보를 전송하고저장할 수 있다. 신경은 매우 작고 닳지 않으며 에너지 소비량이매우 적다. 전자 회로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매력은 속도인데,
그 이점이 하도 커서 신경의 이점을 덮고도 남을 것이다. 생각하는기계를 만들기 위해 ‘뇌‘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할 것을 제안한다. 기계가 능력을 발휘하기에 알맞은 분야로는 체스와 포커 같은 게임, 언어 학습, 언어 번역, 암호학, 수학 등이 유망하다. - P377

인공지능은 새로운 산업 분야를 창출하고 전통산업을 혁신하며 생산방식과 경제의 구조를 바꾼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혁신하는지 아무도 조망하지 못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달라지고있다. 최근의 기술 발달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그 양상은 다음과 같다."

1차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 영국의 섬유산업에서 시작해 공작기계, 증기기관, 철도, 통신, 선박운송 등의 산업을 혁신하고 제국주의와 환경 파괴를 낳으며 세계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1870년경 찾아든 2차 산업혁명은 라디오, 전화기, 텔레비전, 전기, 가전, 자동차, 도로, 항공기, 플라스틱, 비료, 보건 등의 산업을 창출해 현대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1950년대에 출발한 3차 산업혁명은 정보기술과 디지털 컴퓨팅을 통해 경제 사회 시스템과 일상의 삶을 극적으로 바꿨다. 막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생명공학, 첨단소재, 양자컴퓨터 등의 기술이 융합해 기존의 생산, 유통, 소통, 협력 시스템을 파괴적으로 바꾸는 기술혁명이다. 일상의 삶과 사회적 규범이 조정을 겪게 될 것이다. 세상은 초연결사회, 초지능사회로 진전한다.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을 연결하며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세상을 주도하게 된다. - P382

사람들은 생산활동에 참여할 때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照應)하는 생산관계에 편입된다. 이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고 그 위에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조성되며, 또 거기에 여러 형태의 사회적의식이 만들어진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과정 전반을 제약한다.

자본주의체제가 내부 모순으로 무너지고 공산주의사회가 오리라고 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오류로 드러났다. 그러나 생산력발전이 사회조직과 사상과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라는 견해는 하나의 이론으로 존재할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 그런 현상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사회주의혁명이 아니라 과학혁명이 일으키는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다른체제로 이행할 것이다. - P384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인 호모사피엔스가 신이 되려고 한다면서, 힘은 세지만 책임의식은 없는 신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당장 신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런 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신이 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인류가 유전자를 조작해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핵전쟁이나 기후변화로 그 이전에 절멸할 확률보다 높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절멸의 운명을 피하는 데 성공할 만큼 인류가 현명해진다면 어느 정도 책임의식을 지닌 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아는 ‘역사의 시간‘은 머지않아 끝난다. 논리적으로는!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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