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 자이가르닉은 러시아의 심리학자다. 그녀는 어느 날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주문을 완벽하게 처리한 뒤 접시를 손님의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그 정보를 삭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우리가 미완성 과제와 연관된 정보를 다른 어떤 형태의 정보보다 훨씬 쉽게 떠올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해결문제에 대한 무언가가 기억을 촉진하고 머리를 맑게 한다.
내 생각에 천재는 일반인보다 자이가르닉 효과에 더 민감한 듯하다. 그들은 미해결 문제를 맞닥뜨리면 그걸 해결할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창조적 천재를 설명하는 특징은 출처가 불분명한 ‘깨달음의 순간‘보다는 이 끈기다. 중력법칙을 어떻게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아이작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 P254

에든버러에서 볼 수 있는 무엇보다 큰 기적은 지형과 기후의 난관을 겪으면서 이 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길 잃은 햇빛이 외계의 우주광선처럼 거실을 꿰뚫을 때 도널드에게 이에 대해 묻는다.
그는 사실이라고 대답한다. 에든버러가 창조적 장소였고 지금도 그런 것은 멋진 곳이어서가 아니라 힘든 곳이어서다. 스코틀랜드인으로 태어나 좋은 점은 무언가 맞설 대상이 있다는 점입니다.
무언가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맞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력을 더해야 하죠." 에든버러뿐 아니라 모든 천재의 장소를 적절하게 묘사하는 표현이다. - P261

하지만 이 설명은 성에 차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든 상호작용이 똑같이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아이디어가 똑같이 좋은 것은 아니듯 말이다. 교도소는 지독하게 밀집되어 있으며 상호작용이 무척 많이 일어나지만 창조성은 그다지 많이 생겨나지 않는다. 빈민가도 밀집되어 있고 그곳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관한 창의성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노벨상을 받거나 새로운 문학 장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밀집 외의 무언가가 관여하는 것이 틀림없다.
에든버러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도널드 캠벨의 답변이 떠오른다. 그가 여기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널드는 생각에 잠기더니 한 단어로 대답했다. ‘친밀함‘이었다. 기대한 단어는 아니었지만,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전구가 번쩍였다. 이제 모오오든 것이 이해될 것만 같다. 천재의 장소는 단순히 인구가 밀집한 장소가 아니라 친밀한 장소이기도 하며 친밀함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신뢰가 포함된다. 심포지엄에 모인 그리스의 철학자와 시인은 서로를 신뢰했기에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다졌다. 베로키오는 제자들이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믿었다. 오늘날 창조성이 뛰어난 도시와 회사는 신뢰도와 친밀도가 높은 곳이다. - P263

여기는 글래스고가 아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아니다. 나는 캘리포니아에 돌아왔다.딘 사이먼턴의 비좁은 연구실에서 그가 맹목적 변이wind variation와 선별적 유지selective retention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고전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이는 사이먼턴이 지난 25년간 발전시킨 창의성 이론으로, 에든버러의 천재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사이먼턴은 창조적 천재가 초유동성 super fluidity및 역추적성backtracking 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초유동성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한이 있더라도 감을 밀어붙이려는 의지이고 역추적성은 막다른 골목이나 그렇게 보이는 것에서 돌아와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 천재들이 나머지 사람보다 타율이 높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헛스윙을 더많이 하지만, 이게 중요한데, 자신이 어디서 그리고 왜 헛스윙을 했는지 정확히 복기할 수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특징을 ‘실패 지수failure index‘ 라고 한다.
천재들은 이 마음의 책갈피를 좋아하고 이를 게걸스럽게 체계적으로 수집한다. - P280

지식을 전달하는 데 뛰어났던 것 아닐까? 큰소리로 자문해본다.
어느 정도는 그랬다고, 브로디가 말한다. 하지만 지식은 천재성과 같지 않으며 오히려 천재성을 방해한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천재들이 반드시 자기 분야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인 것은아니다.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의 동시대인 중에는 물리학에 대해 그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많았다. 아인슈타인은 전지全知하지 않았다. 전견全見했다. 예상치 못하지만 중요한 연결고리를 잇는 능력이 창조적 천재의 특징이라면, 확실히 지식의 깊이보다는 너비가 중요하다.

천재의 장소가 어떻게 다양한 문화 흐름의 중심을 차지하는지는 이미 살핀 바 있다. 고대 아테네의 대형 범선이나 르네상스 피렌체의 상인을 떠올려보라. 이러한 혼합에서 생겨난 창조적 문화는 잡종일 수밖에 없었다. 인도의 한 학자는 "문화보다 덜 순수한것은 없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도 그의 말이 옳다. 순수한 천재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천재에게 순수한 면은 아무것도 없다.천재는 빌리고 훔친다. 물론 거기에 자신의 재료를 섞긴 하지만,
순수함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콜카타의 혼합에서 특별한 점은 그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콜카타의 혼합은 어느 역사가의 말마따나 "인도의 천재성과 서구적 감수성의 결혼으로 생겨났다. 이는 중매결혼이다. 콜카타는계획된 천재성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어쩌면 유일한 사례이기때문이다. 벵골 르네상스 끝 무렵에 살았던 시인 수딘 다타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세계의 새로운 문화 중에서 오래된 문화 둘을 의도적으로 섞어 만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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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인도의 수도 콜카타는 일종의 실험실이었다. 유망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이곳을 거쳤다. 범죄 수사에서 쓰는 지문감식법을 처음 사용한 것도 여기다. 기억하다시피 이 기법은 우리의 오랜 친구 프랜시스 골턴이 발명했다. 맨체스터보다 먼저 콜카타에 하수도와 가스등이 갖춰졌다. 이곳에서는 늘 창조성이 혈액처럼 흘렀다. - P297

황금기는 슈퍼마켓과 같다. 선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
타고르가 성년이 되었을 즈음에는 벵골 르네상스의 토대가 이미 마련돼 있었다. 슈퍼마켓은 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슈퍼마켓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창의적인 손님이었다. 타고르는 여느 천재와 마찬가지로 파벌주의를 멀리했다. 그는 불교, 고대 산스크리트어, 영문학, 수피즘, 마을을 방랑하는 음유 가수인 바울 등 무엇에서나 영감을 얻었다. 타고르의 천재성은 종합에서 비롯했다. - P304

창의적인 사람은 혼란과 손잡지만, 손잡는 것이 굴복과 같지는않다. 끊임없는 혼란은 완벽한 질서만큼이나 창의성에 무익하다.
하지만 벨기에의 화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은 이렇게 말했다. "둘 사이의 어딘가에서 전체상과 놀람의 황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창의성이 생겨난다. 그 안에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영원히 이 공간에서, 혼란의 가장자리에서 춤춘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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