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은 귀엽고, 명랑하고, 구김 없는 조카를 봤다. 다샤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자부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숀은 실라 이모가 무엇을 겪었는지, "모두 열광"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견디고 살아남았는지 다샤가 이해할지 궁금했다. 아이들도 가족 내력을 알고 있었지만 에이바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실라 이모가 고통을 타인의 관심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때, 함께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겪은 고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은 정의처럼 느껴졌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릴과 다샤도 물론 분개했지만, 그 아이들이 느끼는 건 물려받은, 추상적이고 견딜 수있는 종류의 분노였다. 그들의 분노는 마음이 새카맣게 타 버리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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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마지막 순간에 제일 화려하게 피어요. 그리고 이삼일 정도 지나서 바람 불고 비 오면 떨어지죠. 어르신들이 많은 강연에서 제가 끝날 때쯤 가끔 이런 말을 해요. 자기를 벚꽃 다 떨어진 나무라고 생각하고 다니시지 말라고, 지금이 벚꽃 마지막 단계라고 숨넘어가고 죽어갈 때 그때 꽃이 지는 거라고, 60~70 먹었다고 해서 꽃잎진 것처럼 살지 말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지금이 가장 예쁠 때라고 그렇게 말해요. 소비를 많이 안 하니까 자본주의체제에서 이미 죽은 것처럼 취급받는 것뿐이라고요. 당연하죠. 떨어지기 직전의 벚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나요. 바람에도 비에도 애닯게 꽃잎이 흔들리니, 그만큼 이제 타자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기만 해요. 자신의 고통과 쾌락에만 매몰되는 이기적 개인이 더 이상은 아니죠. 이제 성숙한 거예요. 타자의 고통에도 민감할 수 있으니까요. 곧 지려는 찬란한 벚꽃, 미세한 바람에도 떨리는 벚꽃이 노쇠함과 죽음이 아니라 성숙함과 삶을 살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 P72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오감을 통해서 만나는 거예요. 오감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그건 현실이 아니에요.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감각이 촉감이에요.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들어 누우면, 옆에 다가가서 얼굴도 만져보고 손도 잡아보는 거잖아요. 애완견 동영상 찍어놓고 재생해서 쳐다보는 게 행복인가요? 봐요. 코로나 상황에서 카카오나 네이버가 포스트 코로나, 새로운 시대를 얘기하는 것은 자기네 시장에 들어와서 자기네 콘텐츠를 구입하라는 얘기인 거예요. 사람들이 거기에 휘둘리고 따라가고 있는 거죠. 권력에 대해서, 자본주의체제에 대해서 문제를 삼아야 되고, 경고를 해야 할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예요. - P84

서구권이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다고 보는 것은 동아시아의 피상적인 시각이에요. 서구 사회가 개인주의적이기도 하지만, 지역성도 강해요. 그래서 지역을 기반으로 프로축구 리그가 발달한 거예요.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바르셀로나, 굉장히 지역성이 강해요. 상대적으로 개인주의는 자본주의로 인해서 발달하게 된 거예요. 자본주의가 쾌락과 불쾌, 혹은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기계적인 개인을양산했어요. 아직도 공동체와 지역성에 사로잡혀 있던 동아시아 사람들의 눈에는 서구인들의 개인주의가 부각되었던 거예요. 그러나그 개인주의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니, 동아시아 사람들이 본 것은 사실 서구에서 발달한 자본주의라는 생경한 체제였던 거죠. - P87

 그런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들은 그대로 있는데,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에 들어오기 힘든 이런 노동들은 점점 우리 눈에 띄지 않아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자본은 더 노동을 착취하고, 그 결과가 잔혹한 산업재해 사고죠. 스마트폰이라는 단말기가 묘수예요. 생산 현장이나 노동 현장을 증발시키고 소비 현장만을 부각시킬 수 있으니까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스마트폰은 우리 몸에 이식된 체제의 칩chip과도 같아요. 이 칩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와 접속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결국 국가나 자본이 검열한 정보는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죠. 이처럼 스마트폰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우리에게 안겨주기보다는 체제가 보았으면 하는 검열된 세상만을 보여줘요.
무서운 일이죠. - P93

이기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환하는 것이 자본주의적교환이라면, 이타적 개인 혹은 사랑에 빠진 개인이 타인의 행복을위해 교환하는 것이 사랑의 교환이자 공동체적 교환이에요.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공동체가 거래 관계가 되어버리면 교환이 동등하지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혼자 살 때보다 같이 살 때가 힘들고 이득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죠. 아이가 생기면 생활이 더 힘들어지는데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자본주의가 가족공동체와 지역공동체를 와해시킨 거예요. 가족 구성원을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 만들어버리니까 공동체를 유지하지못하는 거죠.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면 나한테 한 사람이 더해지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게 되잖아요. 이것을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 취업도 힘든 요새 젊은이들은 결혼도 피하고, 결혼을 했어도 출산을 피하는 거예요.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길러졌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사회가 고령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자신만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개인이 어떻게 가족이나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겠어요. 우울하고 슬픈 일이죠.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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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책 중에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가 그거예요. 손을 떼는 것이 힘든 이유는 절벽이라고 생각해서예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거예요. 그런데 손을 떼라는 이유는 그것만 잡고 살면 안 되니까,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고, 이것도 저것도 잡을 수가 있어요. 빈손으로 살자는 것을 불교에서 공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어떤 사유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유를 갖지 말라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사유든지 간에, 자기가 자유롭게 잡을 수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철학과 종교의 차이가 나오는데, 종교는 끝까지 믿음을 가져가는 것이고, 철학은 일정 부분그 철학자와 같이 가다가 작별해야 하는 거예요. 잠시 동안 동반자인 거죠. 저도 대중들한테 당하거든요.(웃음) 자기가 성장한 만큼 관심이 바뀌면 다른 철학자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해요. 영원을 맹세하면 안 돼요. - P49

 평론가의 자리는 객관적인 자리예요. 객관이라는 말의 한자가 재밌잖아요. ‘손님의 시선‘,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해요. 내가 주인이고 상대가 객이잖아요. 객관적인 것을 객관적으로 보면 안 돼요. 그러면 나와 무관한 평론이 되잖아요. 오히려 나를 볼 때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상을 볼 때는 주관적인 시선이 필요해요. 나인것처럼. 그러면 다르게 보이죠. - P55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뉴스는 더 이상가치 덕목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새롭잖아요. 지금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론은 ‘뉴스news‘가 아니라 ‘올드스olds‘에 있어요. 얼마만큼 회석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한 노동자가 죽은 사건을 10년 이상 들여다보는 언론이 필요한 거예요. 세월호 참사를 20년, 30년 취재하는 언론이 필요해요. 그런데 조회 수에 의존하는 언론이 그게 가능할까요?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19세기 자본주의적 조건에서는 뉴스가 중요하고 취재가 중요했어요. 지금은 취재를 하나요 SNS나 보도자료 가지고 기사를 쓰잖아요. 그러니까 기사가 제목도 똑같고 내용도 똑같아요. 2000~3000년 전에도 가능했고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얘기해야 돼요. 이제는 뉴스의 시대가 아니라 올드스의 시대니까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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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승호
우리 모두 조금만 더 가난해졌으면

이 책의 머리말을 쓰기 위해 2013년에 발간되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프롤로그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슬럼프였더군요. 12년을 해온 인터뷰 작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과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읽혔습니다. 인터뷰는 2012년 여름에 이루어졌습니다.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또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다섯 번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순간이 참 행복했었습니다. 50시간의 인터뷰, 4500매의 녹취를 푸는 과정까지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죠. 강신주 선생님은 에필로그 제목으로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다웠다"라고 답변해주셨지요. 저는 그때 녹취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4500매를 풀어냈는데, 앞으로 뭘 못 하겠나 하면서요. - P5

개인이 시장과 한 몸이 되고, 자본주의에 물든 이 사회에 강신주라는 치료제 혹은 해독제가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신주선생님은 "자본주의는 매번 새롭게 변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유일한체제"이며, "자본주의의 전대미문성은 거기에 있다"고 진단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그 필수품이 또 필수품을낳고, 그 필수품이 새로운 사치품을 만들고, 이 새로운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자연과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 P9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꿈꾸는 것을 이루려 한다면 억압체제에저항하게 돼요. 왜냐하면 체제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사랑과 자유는 항상 같이 가는 거예요. 인문학의 정신이 사랑과 자유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 두 가지 내용을 가진 것이 인문주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예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 P23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나 불변하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나‘라는 사람은 독자적으로 있는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인연因緣‘ 관계로 생겨난 존재예요. 예를 들어 눈사람을 만들려면 눈과 온도와 습도와 아버지와 아들이 화합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눈사람과 같은 존재인 거예요. 영원불변하지 않아요. 이미 만들어진 눈사람도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곧 사라지죠. 눈사람이 녹는다고 해서 눈사람의 영혼이니 하면서 눈사람의 본질이나 실체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렇게 우리 삶을 왜곡하고, 세상과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논의를 불교에서는 희론이라고 해요. 우리의 사유를 희롱해서 삶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논의라는 뜻이죠. 그래서 희론이 적멸寂滅해야 마음이 평안해지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거예요. - P26

벤담이 숙고하지 못했던 사랑과 연대의 힘이죠. 우리는 사랑과연대를 위해 자신의 불리함과 고통을 선택하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희론은, 벤담의 희론은 사랑과 연대의 가치를 가로막아요. 철학자의 역할은 그 희론을 비판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데 있어요.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별기大乘起信論疏·別記》를 보면, 물이 고요할 때가 있고 요동칠 때가 있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다는 거예요. 돌멩이를 던지거나 바람이 불거나 물속에서 기포가 올라오거나, 안에서든 밖에서든 동요가 되면 표면에 물결이 치잖아요. 그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해요. 희론이라는 것은 우리가 명징하게 바로보지 못하게 하는 물결과 같아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학습된 채 벤담적 자아가 된 거예요. 다시 물결을 고요하게 하면 옆에 서 있는 나무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들이 비치잖아요. 희론이 적멸해야 된다는 것이 모든 철학자들의 입장이에요. 있는 그대로 봤을 때 우리가 연대할 수도 있고, 공동체를 꿈꿀 수도 있어요. 살아간다는 것이 인연의 관계를 맺는 것이구나, 누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구나, 내가 누리는 것들이 수많은 노동으로 복잡하게 인연을 맺은 결과물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예요. - P27

그런데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가 생각하는 것은 부르주아사회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다‘라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부르주아사회가 뭐냐면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사회고, 귀족사회는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예요. 인간의 사회는 모두가지배하지도 지배당하지도 않는 사회고요. 내 철학이 지향하는 것은인간의 사회예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회‘, ‘사회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써요. 사람들은 쉽게 읽고 지나치는데, 굉장히 강한 뜻인 거예요. 인간의 사회는 특정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수가 스스로를 지배하는 사회라는 뜻이고, 사회적 인간이란 지배, 피지배가없는 같은 인간이라는 뜻이니까요.
마르크스의 철학은 ‘인간사회‘에 기초하고 있어요. ‘부르주아사회‘라고 말할 때 동시에 우리가 ‘노동자사회‘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 P32

벽돌을 올리는 사람의 힘 자체가 얼마나 센 것인지를 알아야해요. 이삿짐 나르는 사람을 돈 주고 부릴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없다면 이사를 할 수 있겠어요?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 하는 거죠. 우리는 냉장고 하나도 혼자서 못 들어요.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착취하는 구조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있어야죠. ‘고생하셨어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돼요. 내가 돈을 주고 배달을 시키니까 저 사람들이 월급을 받는 거 아니냐고 하면 답이 없는 거죠. 아무리 돈 가진사람, 땅 가진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해도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부정하면 안 돼요. 나한테 돈을 그만큼 준다고 해도 절대로 해내지 못할 일인데, 그분들이 대신해주잖아요. 우리가 수치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자기가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고 해도 수치스러움을 아는 게 중요한 거죠. 지금 사회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요. 그러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유가 바뀐다는 건 그 사유라는 색안경이 바뀐다는 거잖아요.
그래야 다른 사유를 구축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사유가 통념적으로 부르주아 체제에서 나오는 담론들, 엘리트적 담론으로 무장되면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너무나 당연히 정당화해버려요. 이러면 사회는 변하지 않겠죠.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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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8일 금요일

"아, 여기구나" 에이바가 말했다. "이제 그 멍청이들을 어떻게 찾지?"
숀은 길 건너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영화는 한 시간 반 뒤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극장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수백 명이었다. 해가 진 후라, 보도에 가로등이 줄지어서 있어도 얼굴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에이바는 웨스트우드가 백인 영역이라고 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거의 다 흑인이었고, 고등학생이 많았다. 레이와 친구들을 찾으려면 더 다가가야 했다.
에이바는 숀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숀은 누나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나이 많은 아이들에게 보이기 싫어 손을 뺐다.
"아 놔, 내가 무슨 아기야."
- P13

"숀!" 에이바가 외쳤다. 하지만 기뻐하는 목소리였다.
그날 밤의 사람들과 요란한 함성. 숀은 이런 것들이 해롭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것이 화재라면, 그들은 불꽃이었다. 그들도 일부였고, 그 불길 속에서 다칠 일은 없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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