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승호 우리 모두 조금만 더 가난해졌으면
이 책의 머리말을 쓰기 위해 2013년에 발간되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프롤로그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슬럼프였더군요. 12년을 해온 인터뷰 작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과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읽혔습니다. 인터뷰는 2012년 여름에 이루어졌습니다.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또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다섯 번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순간이 참 행복했었습니다. 50시간의 인터뷰, 4500매의 녹취를 푸는 과정까지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죠. 강신주 선생님은 에필로그 제목으로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다웠다"라고 답변해주셨지요. 저는 그때 녹취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4500매를 풀어냈는데, 앞으로 뭘 못 하겠나 하면서요. - P5
개인이 시장과 한 몸이 되고, 자본주의에 물든 이 사회에 강신주라는 치료제 혹은 해독제가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신주선생님은 "자본주의는 매번 새롭게 변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유일한체제"이며, "자본주의의 전대미문성은 거기에 있다"고 진단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그 필수품이 또 필수품을낳고, 그 필수품이 새로운 사치품을 만들고, 이 새로운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자연과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 P9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꿈꾸는 것을 이루려 한다면 억압체제에저항하게 돼요. 왜냐하면 체제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사랑과 자유는 항상 같이 가는 거예요. 인문학의 정신이 사랑과 자유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 두 가지 내용을 가진 것이 인문주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예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 P23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나 불변하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나‘라는 사람은 독자적으로 있는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인연因緣‘ 관계로 생겨난 존재예요. 예를 들어 눈사람을 만들려면 눈과 온도와 습도와 아버지와 아들이 화합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눈사람과 같은 존재인 거예요. 영원불변하지 않아요. 이미 만들어진 눈사람도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곧 사라지죠. 눈사람이 녹는다고 해서 눈사람의 영혼이니 하면서 눈사람의 본질이나 실체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렇게 우리 삶을 왜곡하고, 세상과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논의를 불교에서는 희론이라고 해요. 우리의 사유를 희롱해서 삶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논의라는 뜻이죠. 그래서 희론이 적멸寂滅해야 마음이 평안해지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거예요. - P26
벤담이 숙고하지 못했던 사랑과 연대의 힘이죠. 우리는 사랑과연대를 위해 자신의 불리함과 고통을 선택하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희론은, 벤담의 희론은 사랑과 연대의 가치를 가로막아요. 철학자의 역할은 그 희론을 비판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데 있어요.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별기大乘起信論疏·別記》를 보면, 물이 고요할 때가 있고 요동칠 때가 있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다는 거예요. 돌멩이를 던지거나 바람이 불거나 물속에서 기포가 올라오거나, 안에서든 밖에서든 동요가 되면 표면에 물결이 치잖아요. 그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해요. 희론이라는 것은 우리가 명징하게 바로보지 못하게 하는 물결과 같아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학습된 채 벤담적 자아가 된 거예요. 다시 물결을 고요하게 하면 옆에 서 있는 나무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들이 비치잖아요. 희론이 적멸해야 된다는 것이 모든 철학자들의 입장이에요. 있는 그대로 봤을 때 우리가 연대할 수도 있고, 공동체를 꿈꿀 수도 있어요. 살아간다는 것이 인연의 관계를 맺는 것이구나, 누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구나, 내가 누리는 것들이 수많은 노동으로 복잡하게 인연을 맺은 결과물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예요. - P27
그런데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가 생각하는 것은 부르주아사회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다‘라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부르주아사회가 뭐냐면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사회고, 귀족사회는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예요. 인간의 사회는 모두가지배하지도 지배당하지도 않는 사회고요. 내 철학이 지향하는 것은인간의 사회예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회‘, ‘사회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써요. 사람들은 쉽게 읽고 지나치는데, 굉장히 강한 뜻인 거예요. 인간의 사회는 특정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수가 스스로를 지배하는 사회라는 뜻이고, 사회적 인간이란 지배, 피지배가없는 같은 인간이라는 뜻이니까요. 마르크스의 철학은 ‘인간사회‘에 기초하고 있어요. ‘부르주아사회‘라고 말할 때 동시에 우리가 ‘노동자사회‘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 P32
벽돌을 올리는 사람의 힘 자체가 얼마나 센 것인지를 알아야해요. 이삿짐 나르는 사람을 돈 주고 부릴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없다면 이사를 할 수 있겠어요?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 하는 거죠. 우리는 냉장고 하나도 혼자서 못 들어요.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착취하는 구조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있어야죠. ‘고생하셨어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돼요. 내가 돈을 주고 배달을 시키니까 저 사람들이 월급을 받는 거 아니냐고 하면 답이 없는 거죠. 아무리 돈 가진사람, 땅 가진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해도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부정하면 안 돼요. 나한테 돈을 그만큼 준다고 해도 절대로 해내지 못할 일인데, 그분들이 대신해주잖아요. 우리가 수치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자기가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고 해도 수치스러움을 아는 게 중요한 거죠. 지금 사회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요. 그러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유가 바뀐다는 건 그 사유라는 색안경이 바뀐다는 거잖아요. 그래야 다른 사유를 구축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사유가 통념적으로 부르주아 체제에서 나오는 담론들, 엘리트적 담론으로 무장되면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너무나 당연히 정당화해버려요. 이러면 사회는 변하지 않겠죠.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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