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책 중에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가 그거예요. 손을 떼는 것이 힘든 이유는 절벽이라고 생각해서예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거예요. 그런데 손을 떼라는 이유는 그것만 잡고 살면 안 되니까,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고, 이것도 저것도 잡을 수가 있어요. 빈손으로 살자는 것을 불교에서 공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어떤 사유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유를 갖지 말라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사유든지 간에, 자기가 자유롭게 잡을 수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철학과 종교의 차이가 나오는데, 종교는 끝까지 믿음을 가져가는 것이고, 철학은 일정 부분그 철학자와 같이 가다가 작별해야 하는 거예요. 잠시 동안 동반자인 거죠. 저도 대중들한테 당하거든요.(웃음) 자기가 성장한 만큼 관심이 바뀌면 다른 철학자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해요. 영원을 맹세하면 안 돼요. - P49

 평론가의 자리는 객관적인 자리예요. 객관이라는 말의 한자가 재밌잖아요. ‘손님의 시선‘,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해요. 내가 주인이고 상대가 객이잖아요. 객관적인 것을 객관적으로 보면 안 돼요. 그러면 나와 무관한 평론이 되잖아요. 오히려 나를 볼 때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상을 볼 때는 주관적인 시선이 필요해요. 나인것처럼. 그러면 다르게 보이죠. - P55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뉴스는 더 이상가치 덕목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새롭잖아요. 지금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론은 ‘뉴스news‘가 아니라 ‘올드스olds‘에 있어요. 얼마만큼 회석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한 노동자가 죽은 사건을 10년 이상 들여다보는 언론이 필요한 거예요. 세월호 참사를 20년, 30년 취재하는 언론이 필요해요. 그런데 조회 수에 의존하는 언론이 그게 가능할까요?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19세기 자본주의적 조건에서는 뉴스가 중요하고 취재가 중요했어요. 지금은 취재를 하나요 SNS나 보도자료 가지고 기사를 쓰잖아요. 그러니까 기사가 제목도 똑같고 내용도 똑같아요. 2000~3000년 전에도 가능했고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얘기해야 돼요. 이제는 뉴스의 시대가 아니라 올드스의 시대니까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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