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의 이야기에 이런 빈 구멍들을 만들어 냈다고 비올라를 원망했다. 티끌 한 톨 지나갈 틈 없을 정도로 우리 사이가 가까웠는데, 나를 밀쳐내고 멀리 보내 버렸다고. 나는그녀를 원망했고, 그렇다는 것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는 가장좋은 방법으로 떠나는 것 말고 다른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쪽에 잘못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비올라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나는 비올라가 나의 우정을 누릴 자격이 없는 만큼이나 그녀의 우정을 누릴 자격이 없었다. 비올라는 나의 그림자가 되었다. 나는 비올라에게 욕하고 격노했고, 그 애도 그곳에서, 겨울의 차갑고 짙은 안개가밀려들면 오렌지에 서리가 내리는 그녀의 고원에서 똑같이그러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똑같은 격분한 몸짓, 똑같은쓸데없는 비난. 우리는 둘 다 옳았고, 우리는 누가 누구의 거울인지 더는 알지 못했다. 스스로를 탓할수록 내가 스스로를탓하게끔 만든 비올라를 더더욱 원망했다. 그 애가 사과하지않는 한 다시 보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착실한 그림자로서, 그 애도 그쪽에서 나만큼 그러고 있을 터였고, 우리는 그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의 삶에서 빠져나왔다. 이 끔찍한악순환, 이 희비극적 우로보로스가 그 뒤로 이어진 여러 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P330

프란체스코에게서는 누이에게 있는 무언가가, 가령 상대방에게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독특한방식이라든가 갑자기 멍해지는 눈길 등이 보였다. 프란체스코가 몽상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눈감는다면, 스물세 살 청년답게 몽상에 잠긴 태도라고 믿을 법했다. 하지만 그건 전나무꼭대기에서 생쥐 열 마리의 공포에 질린 달음박질을 동시에쫓아가며, 그들이 그릴 궤적을 예측하고 열 수 앞서 자신의먹잇감을 고르는 독수리의 자세였다. 그는 목소리에 그 시퍼런 날을, 고통 없이 목숨을 앗아 가는 그 예리한 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조를 높이는 법 없이 위기의 뇌관을 뽑아 버렸다. 나는 거친 짐승 같은 작자들이 그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대등하게 대했다. 그리고 오늘날 허풍 없이 말하건대, 나는 실제로 대등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지성과 야망에 있어서 우리를 고갯짓과 어깻짓으로 지배했지만 우리는 절대 그 사람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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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오면 우리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남자들은 노래를 불렀는데, 해야 할 말이 있어서였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지 알수 없어서였다. 그런 밤이면, 바닥이 끈적이고 해적판 카루소의 노래에 취한 그 장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다.
그곳의 팔리아치오들은 진정 미치광이들이었고 돈 조반니들은 말할 것도 없었으니, 노래하는 사람들 전부가 쉼 없이 사랑하고 살인을 저질렀으니까. 그해 여름 세상을 떠날 카루소에맞먹을 인물인데도, 방금 시칠리아에서 태어나면서 첫 발성연습을 한 디 스테파노에 버금갈 인물인데도, 이런 싸구려술집에서 좌초한 운명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한 걸음 잘못 내디뎠다가 시선을 잘못 돌렸다가, 스칼라 극장이 아니라 술주정뱅이들과 상이군인들과 피로와 지겨운 나날로 멍청이가 된사람들 앞에서 노래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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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비올라는 이번에는 내 손을 잡더니 숲으로 이끌었다. 보다단련이 된 나의 눈에, 쓰러진 관목들과 부러진 가지들이 들어왔다. 땅바닥이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가다가 단번에 올라가더니 소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싼 동굴 입구로 이어졌다. 그중몇 그루는 쓰러진 모습이 통나무 장작을 쌓아 올린 것 같았다. 강렬한 사향내가 엄습했다. 동굴 입구에 찢어진 드레스를걸친 곰이 앉아서 몸을 긁적이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금 뒷발로 일어섰다. 비올라는 내 손을 놓고 곰을 향해 뛰어가더니 그 배에 얼굴을 묻었다. 곰이 하늘을 향해 주둥이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내 발이 딛고 선 땅이흔들렸다. - P195

「지붕에 누가 있어요!」다음번 폭죽이 터지면서 어떤 형체가 드러났다. 내가 가장좋아하는 형체, 비올라가 용마루 기와보다 조금 아래쪽에, 사람들이 결코 본 적 없을 가장 괴상한 야회복을 휘감고 서 있었는데, 녹색 계열의 색으로 범벅된 그 야회복의 거대한 꼬리는 하늘에서 계속 폭죽이 터짐에 따라 군데군데 어른거리며반짝거렸다. 그 애의 날개였다.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전날일 텐데, 헛간에 가서 찾아 둔 날개였다. 그것이 거기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더 나은 존재임을 보여 주고, 그들에게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려 줄 수 있는그 애의 유일한 기회, 마지막 기회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손님들이 서로 돌아봤다. 불안과 화약이 - P219

뒤섞인 고약한 냄새가 그 광경을 엄습했다. 후작의 목소리가울려 퍼졌고, 뒷부분의 말은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폭발음에끊겨 버렸다.
「비올라, 당장 내려오너라, 어・・・・・・・비올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무슨 말인가를 외치고는 지붕을 내달렸다. 줄들이 팽팽해졌고, 그 애의 뒤쪽에서 캐노피가기와 위를 미끄러졌다. 그 날개는 그렇게 낮은 높이, 건물 앞대지의 원래 경사도를 감안해도 기껏해야 15미터, 어쩌면20미터 정도의 높이에 맞게 고안된 게 아니었지만, 아침부터조용히 불던 미스트랄이 이 용감한 선각자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듯 갑자기 거세게 불었다. 캐노피의 천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비올라가 함석 홈통에 한 발을 내딛더니 허공으로 몸을내던졌다. - P220

가그 첫 주에 나는 우표를 하나 얻어 낼 수 있었다. 나는 별항에게 (치오가 내 편지를 가로채리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가서 그애의 어머니네로) 편지를 썼고, 같은 편지 속에 비올라에게가는 편지를 집어넣었다. 매일 아침, 불안으로 뱃속이 똘똘뭉친 채 여전히 나의 제일 친한 친구를 품고 있는지 알 길 없는 세상을 향해 눈을 떴다. 나는 점술가가 되어,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 낸 수많은 전조를 하루 속에서 찾았다. 이 굴뚝 위에까마귀 세 마리가 앉아 있으면 비올라의 상태가 악화된다. 내가 숨을 쉬지 않고 이 계단의 층계참까지 단숨에 올라간다면 그 애는 - P241

살아난다. 저녁이 되면 식사를 마친 뒤 개흙 내와 차가운 공기에 취하고 조토의 종탑에 부서지는 달빛에 매료된 채, 진흙으로 덮인 아르노강 주변을 거닐었다. 단 한 번도 강을 건너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지극한 아름다움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느껴서였고, 비올라와 함께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을 봐야 하는데 어쩌다가 그의 작품과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벌어지길 원치 않아서였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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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상하다.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혼자였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럽북쪽의 숲들을 갈아엎고, 그곳에 금속이 박힌 살덩어리들과몇 년 뒤에 무고한 산책객들 코앞에서 폭발하게 될 포탄들을살포했고, 자신이 만들어 낸 그 볼품없는 지진계에 고작 12등급만을 주었던 메르칼리조차 창백하게 질릴 만한 황폐함을만들어 냈다하지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살아오는 내내 바뀌었으며나중에는 오페라 가수들과 축구 선수들까지도 포함하게 될나만의 우상들을 모신 만신전에 기도를 올리면서 저녁마다그 사실을 확인했다. 어쩌면 내가 젊었고, 나의 하루하루가아름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낮의 아름다움이 밤의 예지에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헤아린다. - P42

 그러니까 이게 그거였다. 바로 귀족이라는 것. 그저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주고받기 위해서 펜을 잉크에 적셔 기울인 글씨체로 카드를 작성해 서로에게 보내는 사람들.
나는 카드를 내 가슴에 꼭 댄 채 길게 누워 몽상에 잠겼다.사람들이 바로 내게 이런 카드를 보내온 거다. 사랑하는 미모야, 우리는 새 옷이 네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가 그렇게원하던 뿔 손잡이 칼도, 오늘 저녁 구름처럼 푹신한 깃털과 양털과 말총 침구에서 자는 사람도 나다. 비록 시늉에 그칠지라도, 잠깐이나마 이 세계에 속해 보기.
그저 1분만 제발, 자비를.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1분.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로부터 정말로 너무나 짧은 1분을 훔쳐 낼 수 있기를. - P86

비올라, 비올라, 비올라,
깊이 자고 있다가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저 조금 더 강렬해진, 바로 그 오렌지꽃 향기. 내가 투덜거리는데도 그 존재는 끈질기게 그 자리에 머물렀고 나는 한쪽팔꿈치로 몸을 괴었다. 자다가 놓친 생일 축하 카드가 바닥에나뒹굴었다.
나는 내가 방금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퍼뜩 깨달았다. 침대에서 잠을 자고 말았다. 오르시니 가문의 침대에서.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에 비하면 가벼운 죄랄까.
바로 그 여자였다. 전날 만났던 죽은 젊은 여자가 초록색 비단 드레스를 입고 침대 옆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귀신이 내게들러붙었고 앞으로도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벌렸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죽은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오렌지꽃 향기를 풍기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어제 묘지에서 봤던 게 바로 너로구너.‘ 그녀가 두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 P91

하지만 내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 버렸고 그 애의 이름이머릿속에서 노랫가락처럼 계속 맴돌았으니, 어른들이 술을진탕 마시면 불러 대는 그런 가락, 그들에게 20대의 눈동자를돌려주는 그런 노래와 같았다.
비올라, 비올라, 비올라. - P97

「11월 22일.」비올라는 기뻐 날뛰며 나를 끌어안고는 잠깐 춤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우주적 쌍둥이야!」「어쨌든 믿기지 않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이라니!」「난 그럴 줄 알았어! 곧 보자, 미모.」「또 두 달을 기다리게 하는 건 아니지?」「우주적 쌍둥이를 기다리게 하는 법은 없지.」 비올라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 애는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출발했다. 그 아이의행복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했고 어둠을 밝혔다. 나는 그 애에게 거짓말한 것을 심하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나는 11월7일에 태어났다. 하지만 내가 그 애의 침실에서 잠이 들기 전에 읽고 또 읽었던 생일 축하 카드에서 본 날짜가 갑자기 생각났다. 기쁨을 안겨 주는 작은 거짓말은, 내 생각엔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 안셀모에게 고해를 할 수도 있으리라. 고해성사를 볼 훌륭한 기회.
멀어져 가면서, 나는 아주 신경 써서 세 번 뒤돌아봤다. 한번은 저번에 못 한 것, 또 한 번은 이번 것, 그리고 마지막은 참을 수가 없어서였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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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케팅 수단이 필요했고, 그쪽은 공정무역을 대표할 만한 상품이 필요했죠. ‘여기 확실한 공정 무역 제품이 있습니다. 사세요! 라고말이죠.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설교 시간에 우리 회사 초콜릿을 이야기해 주는 목사님도 많았습니다. 오전 예배가 끝나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우리 회사 초콜릿을 돌렸습니다. 재단 덕분에 돈을 많이번 건 사실입니다. 그들도 우리 덕을 본 건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크레이그는 이별의 원인이 몇 가지 있었다고 했다.
"재단에서 터무니없는 규정을 내세우며 로고 사용료를 너무 많이 요구했습니다. 처음엔 2퍼센트라고 했다가, 좀 있다가 3퍼센트, 또 금방 4퍼센트를 달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어떻게 그리 확 변하는지."
사실 도매상이 지급하는 비용은 공정 무역 재단의 수익에서 가장 큰비중을 차지한다. 도매상이 공정 무역 재단의 브랜드 사용료로 지급하는 돈은 영국 공정 무역 재단 총수입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중 절반이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감독하는 행정비로 지출된다.
그렇다면 수입의 나머지 반은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천만의말씀. 남은 돈은 공정 무역 브랜드의 캠페인과 홍보비로 나간다. 공정무역 재단은 브랜드 홍보 및 광고비로 수입의 절반가량을 쓴다. 이런 지출이 목표 달성에 상당히 성공적이었음을 수치가 말해 준다. - P72

P4공정무역 재단은 개발도상국의 농장을 인증하고 감사하는 세계 공정무역 상표 협회(FLO)와 별개로 운영된다. 영국 공정 무역 재단은 자신의로고를 사용하는 영국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로고를 사용하는 영국 기업을 최대한 늘리는 활동을 벌인다. 당연히 많은 기업과계약할수록 사업은 성공적이다. 따라서 공정 무역 로고에 새로운 고객을끌어들이는 것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제휴를 맺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공정 무역 로고를 알리는 것도 그들의 전략이다.
크레이그는 공정무역 재단의 접근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 즈음에 마야 골드바에서 공정 무역 마크를 떼어 냈는데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선구자적인 제품인데 마크를 떼라고 하니 억울하기도 했지요.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었는데 우리 손으로 딴죽을 건 셈이니까요. 그건 교황이 가톨릭교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크레이그의 가장 큰 고민은 공정 무역 재단이 브랜드 인지도가 확대되면서 제휴 업체로 영세 기업보다는 대기업을 선호하게 되고, 그리하여 영리를 우선으로 하는 농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점점 더 많이 보증하는 지금의 상황이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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