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968년 1월 12일 저녁 일곱시 안양교도소의 정문 옆 철문이 열렸다.
몹시 추운 날씨였다.
싸락눈이 땅거미와 더불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허허벌판에 세워진안양교도소 앞 공터에는 대낮처럼 밝은 불빛이 켜져 있었고, 하루살이 날벌레와 같은 눈발들이 칼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몇 분 간격을 두고 교도소 철문이 열리며 머리 깎은 죄수들이 두명씩 짝지어서 교도소 벽으로 비척비척 걸어나왔다. - P9

형기를 끝마치고 출감하는 만기 죄수들을 맞기 위해 미리 교도소쪽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와서 기다리고 있는 죄수들의 가족들이었다.
경축일이나 신정 같은 새해 원단을 기해 일시적으로 시행하는 특사일이 아니고 오로지 몸으로 때운 형기를 끝낸 죄수들만을 골라석방하는 날마다의 일상행위였으므로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한 사람씩, 혹은 두 사람씩 짝지어 석방되는 교도소 앞의 풍경은 은밀하고, 무슨 음흉한 또 하나의 범죄행위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병원에서 죽은 시체들이 뒷문을 이용해서 은밀하게 실려나가듯 야밤을 이용해서 풀려나는 죄수들의 모습은 그토록 오랜 형기를 끝내고 비로소 삶의 자유를 획득했다는 기쁨과 해방의 환희도 엿보이지 않고 차라리 죽은 시체들이 어두운 후문을 통해 달려나오듯 음울한 상여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끌면서 녹슨 빗장소리와 함께 구토하는 오물처럼 토해져나오고 있었다.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완벽한 기술자였다.
그에게는 재미있고 아슬아슬한 게임이며, 장난과 같은 유희에 불과했다. 소매치기들로부터 터부시되고 있는 작업 전에 우연히 거리에서 장님을 만나거나, 어쩌다 이야기 끝에 ‘원숭이‘ 란 단어가 나온다 해도 거리낄 것은 없어 보였다.
기술자 안씨가 작업 전에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불안한 심장을달래기 위해 독한 소주를 마시는 대신 약방에서 싸구려 각성제를사서 대여섯 알 한꺼번에 먹고, 몽롱한 환각상태 속에서 공사를 벌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종세는 언제나 맑은 정신 속에서 당당하게 작업을 해치워버리곤 했다.
그는 이미 불안과 공포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
애초부터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죄의식과 죄책감과는 담쌓은 담력을 종세는 갖고 있었다.
그에게는 즐거운 놀이에 불과했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고 야유회 같은 데에서 끼리끼리 모여앉아 수건돌리기를 하거나 박수치며 노래 부르는즐거운 게임 같은 느낌으로밖에 느껴지질 않았다.
그것이 만약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로, 비양심적인 소매치기행위로 느껴졌다면 종세는 불안과 공포로 손이 떨리고 한 번쯤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날마다의 재미있는 유희에 불과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 P359

종세가 종대를 떠올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는 종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배가 다르긴 했지만 유일하게 피를 나눈 형제로서 종세보다 나이가 일곱 살 위인 형이었다.
배고프면 들고양이라도 잡아먹을 본능으로 그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그는 사람까지 잡아먹을 식인종이 되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아아, 언젠가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스쳐지나듯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잘 있어, 이종대, 종대형, 이 미친새끼야. - P367

"알 살려주세요."
말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디만 그것은 마음일 뿐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누운 시야로 수직으로 솟은 창경원 담 너머로 고개를 내민 벚꽃이 흰 눈처럼 난분분 난분분 바람에 흩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쑤와와.
머릿속을 꿰뚫고 바람소리가 스쳐갔다. 철커덕철커덕 협궤를 달려가는 기차의 수레바퀴 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 P3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화할 수 있는 능력과 기꺼이 변화하려는 의지는 더욱활기차고 흥미로운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심리학 교수 K. 워너 샤이에는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과 정신적 민감도 간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장자들 중에서 더 유연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고 쉽게 적응하는 사람들, 즉 판에 박힌 일상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활동을 추가하는 데 개방적인 사람들의 정신적 민감도가 더 높았다. 따라서 상황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적 능력을잃어버릴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 P127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감정과 홀로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둔 의존은전혀 다르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동반자들이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두 사람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공동의 목표를 갖는다. 이렇게 결합한 두 사람은 역동적인 커플을 이룬다. 이와 대조적으로 상호 종속자들은 서로 지지하는 척하면서 그저 각자의 요구를 키울 뿐이다. - P141

이것을 ‘감정 전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에 대한 감정을 다른 것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감정의 원인에 직접 반응하기가 너무 위험하거나 불편할 때, 그 반응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대상에게로 돌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종로에서뺨 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는 것은 너무나 흔한 반응이다. 직장 상사에게 화가 났다는 이유로 집에 돌아와서 개를 걷어차는 남자의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지만, 이 개념을 기가 막히게 잘 보여준다. 학대받는 배우자나 자녀들은 대부분 감정전이의 피해자다. 그들을 학대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자기가 학대를 받으면서 쌓인 분노에 반응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조장 행위는 전이된 반응의 목록에 포함되는데, 자기 욕구를 다른 사람에게 전이하는 것이다. - P153

스키드모어대학의 사라 스노드그라스 박사는 걷는 방식이 사람의 기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실험 대상의 일부에게는 걸을 때 의도적으로 큰 보폭으로 걸으라고 지시했고, 두 번째 그룹에는 자연스러운 보폭으로 걷도록 했다.
세 번째 그룹에는 땅을 내려다보고 발을 질질 끌며 걸으라고 지시했다. 처음 두 그룹은 기분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발을 끌며 걸은 실험자들은 걷는 동안 피로와 우울함을 느꼈다고 보고했다. 스노드그라스 박사의 연구 결과는 이전 연구 결과와 일치했는데, 어떤 기분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갖추면 그 기분과 관련된 생각과 감정을 일으킴으로써 실제기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슬픈 표정을 지으면 슬픈 감정을 일으킬 수 있고 분개한 듯이 행동하면 분노를 키울 수 있다.
물론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방식은 여러 요인에 의해 달라진다. 단순히 행동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일부 해결될 수는 있다. 행동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행동이 달라지면 인식과 신념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바뀐 인식과 신념은 기분이나 자아상, 감정을 조절하는 강력한 조건이 된다. 상담을 받으면 지침과 통찰을 얻을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을 추적 관찰하려고 노력하면 능동적인 행동을 추구하며 무기력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다. - P157

우리는 완벽할 필요도 없고,
초인적 영웅이 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장해 나아갈 방향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안다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완벽함을 가꿔갈 수 있겠는가?
당신이 인에이블러라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만 손을떼고, 자신만의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 - P1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더이상 뛰지 않았다.
로터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얼굴에 썼던 마스크를 벗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가쁜 숨을 가누기 위해서 종대는 심호흡을 했다. 그는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뭔가 유쾌한 뜀박질을 끝내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근질근질한 웃음이 종대의 온몸을 벌레처럼 기어다녔다. 북받쳐오르는 웃음을 감당해낼 수없었다. 웃음은 풍선을 채우는 입김처럼 흘러나왔다.
킬킬킬킬 종대는 웃으며 천천히 한길을 걸어올라갔다. 이것인가.
헐레벌떡이며 웃으면서 종대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죄란 것일까..
죄의 무게는 이토록 가벼운 것일까. 그는 방금 한 사내의 목을 조르고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빼앗았다. 이것은 그가 이미 저질렀던 탈영과 폭력과는 다른 범죄였다. 이것은 엄연한 죄악이었다. 먼젓번 범죄가 우발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엄연히 동기가 분명한 고의적인 죄악이었다.
나는 마침내 죄를 저질렀다.
종대는 킬킬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그토록 엄중한 규율로 금지되어 있는 죄란 것인가. 아무것에도 고통을 주지 않는 죄의 흔적은 손톱에 박힌 가시보다 아프지않다. 이것은 그저 간단한 유희처럼 보인다. - P195

이때 느낀 짧은 느낌 하나가 종대의 미래의 일생을 언제까지나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빠른 시간안에 체포되리라는 것을 알면서 쏘다니는 이 몇 시간의 자유가 실상은 인생이며, 인생이란 어쩔 수 없이도망쳐나온 저 감옥과 같은 알 수 없는 세계에서부터 감히 신에게도전해서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권총과 열쇠를 빼앗아들고 철문을뚫고 나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며 죽음이란 뒤쫓아오는 간수들에게 체포되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다.
우린 도망쳐나온 죄수들이다. 탈옥을 기도했던 죄수들이 체포되면 보다 많은 형벌을 맞게 되듯 태어난 인간들은 체포되어 죽음으로 돌아가게 되면 보다 많은 지옥의 오욕을 맛보게 될 것이다. - P2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인에이블러들은 거절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제삼자의 협조를 얻어 사정을 살피려 한다. 제삼자는 솔직하게 의사소통을 해도 괜찮은지를 판단한다. 직접 대화하기를 거부하는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의심도 없던 친구나 가족이 종종 끼어들게 된다. 둘이서 대화할 만한 용기가 없는 부모가 아이를 중재자로 여긴다면 특히 불행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중재자가 되기도 하고 중재자를 써보기도 한다.
법률 체계는 중재자를 통해 기능한다. 중재자가 자신의입지를 다지는 동안 인에이블러와 의존자는 매우 친밀한관계를 이룬다. 하지만, 관련된 두 사람이 서로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한 사랑하며 지지하는 관계로 절대 나아갈 수 없다.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배우자나 자녀들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순수하고도 멋진 선물이다. 자신의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 P88

 완벽하지 않고 틀릴 수 있어도, 그것이 예전처럼 나를 무가치하다고 느끼게하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가장 강력한 고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려움을 극복하면 정직해지는 길이 열리고, 정직해지면실제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행동에대한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비판 없이 말할 수 있고, 그 말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랄수 있다.
나는 자기방어적인 거짓에 다시는 빠져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감시한다. 개인의 책임과 정직함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생활 방식에 다시 전념하게 된다. - P90

과거에는 종종 아이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에 내가 아이들의 일을 대신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의 인생을 애들 자신보다 내가 더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은 내가 아이들의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체성이란 감각은 각종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면서 생겨난다. 그리고 자존감은 자신이 가진 자질을 계발하면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나는 아이들의 정체성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자존감을 조금씩 깎아내리고 있었다. - P93

어떤 고난이나 장애를 겪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에 대처할 자기 나름의 개인적 수단을 개발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역경이 닥쳤다고 해서 책임을 떨쳐버려도 되는 것은 아니다.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사람은 휠체어 사용법을 익혀야한다. 장애가 자신의 가능성을 발전시키지 않을 타당한 이유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많은 활동을 배울 수 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중독에 빠지기 쉽지만, 그래도 첫 잔을 마실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계속 절망을 느낄 수 있지만,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을지 말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모든것은 그들의 문제이고,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한 자신의 전략을 개발해야 하는 사람들도 바로 그들 자신이다. - P99

‘완벽한 삶을 살며 뛰어난 엄마와 아내가 되리라는 내어린 시절 믿음에 대한 집착은 바람직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좋은 부모가 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일상적인 가족 관계에서내가 상상하던 그림에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게는 그것이 실패로 보였다.
"우리 가족의 현실이 내가 순진하게 상상하던 모범적인그림과 멀어질수록 나는 점점 자존감을 잃어갔다. 완벽한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그리던 환상을 현실에서 실현하지 못하자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느꼈다.
인에이블러-의존자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낮은 자존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인간의 삶에 관해 현실적인 관점을 길러야 한다. - P1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