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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헨드라Hendra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 바이러스가 무시무시한 신종 병원체 가운데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아니다. 가장 두려운 존재도 아니다. 다른 병원체와 비교할 때 오히려 사소해 보일 정도다. 숫자로 본다면 이 바이러스의 사망률은 처음에도 낮았고, 지금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리적 분포 또한 좁은 지역에 국한되었고, 나중에발생한 증례들도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처음 등장한 곳은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Brisbane 이었다. 증례는 2건이었고 그중 1건만 치명적이었다. 잠깐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2건의 인간증례와 1건의 인간 사망자가 발생했다. 병을 앓다 죽은 증례가 10건을훌쩍 넘지만 희생된 것은 모두 말이었다. 물론 말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다. 차차 얘기하겠지만 동물의 질병이라는 주제와 인간의 질병이라는 주제는 서로 꼬여 하나의 실로 얽힌 두 가닥의 섬유라고 할수 있기 때문이다. - P17

인수공통감염병이란 사람에게 전염되는 동물의 감염병을 가리키는말이다. 이런 병은 생각보다 많다. 우선 에이즈 AIDS가 있다. 독감은 또하나의 큰 범주다. 이런 질병들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보면 인류도 동물종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다윈주의의 오래된 진실(그가 말한 진실 가운데 가장 어둡고 가장 잘 알려졌지만 끊임없이 망각되는), 즉 인류의 기원과 혈통과 질병과 건강은 다른 동물종과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  - P19

신종 바이러스를 찾는 일은 질병을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는데는 물론, 헨드라에서 벌어진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도 첫 단추를 꿴 것에 불과했다. 두 번째 단추는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세상을 활보하며 말과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바이러스는 어디에 있었을까? 세 번째 단추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것이었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해서 은밀한 서식처로부터 세상에 나왔을까? 왜 하필 헨드라였을까? 왜 지금인가? - P25

포식자란 외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큰 맹수들이다. 반면 병원체(바이러스 등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내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작은 맹수들이다. 감염병이라고하면 처참하고 무서운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상적인 조건에서그것은 사자가 영양이나 임팔라를 잡아먹거나, 올빼미가 쥐를 잡아먹는 것과 한치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상황이 항상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포식자가 익숙한 먹잇감, 즉 특별히 선호하는 표적이 있듯이 병원체도 마찬가지다. 또한 사자가 때로는 정상적인 행동에서 벗어나 영양 대신 소를, 임팔라 대신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있듯이 병원체또한 새로운 표적으로 옮겨가는 일이 있다. 사고는 생기게 마련이다. 일탈은 항상 일어난다. 상황은 늘 변하며 상황이 바뀌면 위기와 기회도 변한다. 병원체가 공격 목표를 동물에서 사람으로 바꾸고, 사람의 몸속에 자리잡는 데 성공하는 경우 때로는 질병이나 죽음이 우리를 찾아온다. 이런 과정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한다. - P26

반면, 천연두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아니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자연적인 조건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감염을 일으킨다. (실험실적 조건은 또 다른 문제다. 백신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는 때때로 영장류나 다른 동물종을 의도적으로 감염시키기도 한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국제보건기구WHO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개한 천연두 퇴치 운동이 1979년에 성공을 거둔 이유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인간의 몸(또는 세심하게관찰 중인 실험동물) 외에는 어디서도 살거나 번식할 수 없으므로 숨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수천 년간 인간을 괴롭히며 특히 20세기 전반에 유럽과 북미에서 무시무시한 유행을 일으켰던 소아마비도 마찬가지다(위생이 개선되어 어린이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시기가 늦어졌다는 사실과 모순된다).  - P28

회의 중 한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생물지리학을 고려하자는 것이었다. 보유숙주(또는 숙주가 어떤 동물(들)이든 반드시 맥케이와 캐논 힐 양쪽에존재해야 했다. 일년 내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8월과 9월을 포함하는 기간 중에는 존재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 동물은 퀸즐랜드 내넓은지역에 분포하거나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 터였다.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한 사람들은 두 번째 가능성 쪽으로 기울었다(지역별로 특정바이러스 균주가 분포하지 않는다는, 즉 바이러스가 이동하면서 서로 섞인다는 유전학적 증거도 한몫했다). 보유숙주는 이동성이 뛰어나 퀸즐랜드 해안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를 돌아다닐 수 있는 동물이라야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용의자는 조류와... 박쥐로 좁혀졌다.
필드와 동료들은 두 가지 이유로 일단 조류 가설을 기각했다. 첫째, 조류에서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인간을 감염시키는 파라믹소바이러스는 알려진 바 없었다. 둘째, 바이러스가 인간과 말을 감염시킨 것으로보아 포유동물이 보유숙주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다. 숙주가 유사한 동물종일수록 병원체가 종간장벽을 뛰어넘기가 쉽기 때문이다. 물론 박쥐는 포유동물이다. 넓은 지역을 돌아다닌다. 더욱이 이미적어도 한 가지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광견병 바이러스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광견병이 없는 지역으로 간주되긴 했지만 말이다(이후 많은 박쥐-바이러스-인간 연결관계가 밝혀졌고, 그중 일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1996년 당시에는 이런 연결고리가 뚜렷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후필드는 새로운 임무를 지니고 돌아갔다. 박쥐를 주목하라! - P39

증식숙주란 몸속에서 바이러스나 기타 병원체가 대량 증식한 후 엄청난 양으로 외부에 방출되는 동물종을 말한다. 이렇게 병원체에게 우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숙주의 생리적 기능, 면역계, 오랜 진화과정속에서 특정 병원체와 상호작용해 온 역사, 기타 많은 인자들이 작용한 결과다. 증식숙주는 보유숙주와 불운한 희생자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최종적으로 다른 동물종을 감염시키려면 훨씬 많은 병원체나 훨씬 밀접한 접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문턱값(역)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식숙주는 감염에 대한 문턱값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몸속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바이러스를 만들어 쏟아낸다 그 양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문턱값이 훨씬 다른 동물종을 감염시틸 수 있는 것이다. - P46

그건 그렇다 치고 왜 하필 말이었을까? 왜 캥거루나, 웜뱃이나 코알라나 포토루potorao * 가 아니었을까? 말이 증식숙주 역할을 했다면 분명한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말은 오스트레일리아 토종 동물이 아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동물이다. 겨우 두 세기 전 유럽인들이정착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외래종이다. 분자진화학자들이 게놈을 분석하여 얻은 진화상의 흔적에 의하면 헨드라는 오래된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다. 먼 옛날 사촌 격인 모빌리바이러스에서 갈라져나와 장구한 세월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그저 조용히 살았을 것이다. 박쥐 또한 오래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았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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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만큼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죽고 싶었다. 물에 빠져 공기를 갈망할 때처럼 맹렬하고 육체적인 갈망이었다. 나는 잠 못 이룬 채 침대에 누워 제일 좋았던 엄마 기억을 떠올리려고, 엄마를 잊지 않도록 마음속에 박제해두려고 애를 썼지만 생일이나 행복했던 때보다는 엄마가 죽기 며칠 전에 밖으로 나가던 나를 불러 세워서 교복 재킷에 묻은 실밥을 떼어주었던 일 같은 것만 계속 생각났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가장 뚜렷하게 남은 엄마의 기억이었다. 찌푸린 눈썹,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손이 정확히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모든 것이 말이다. 또 나는 꿈과 잠 사이를 불안하게 떠다니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서 벌떡 일어나 앉은 적도여러 번 있었다. 사과 하나만 던져 줄래?라든지 이건 단추가 앞에 오는 걸까, 뒤에 오는 걸까?라든지 소파 상태가 정말 엉망이야처럼 언젠가 엄마가 했을 법하지만 실제로 기억에는 없는 그런 말이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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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중대한 잘못 탓입니다 (Mea maxima culpa)."

지난 몇 년 동안 법무부장관 사임, 구속영장 피청구, 기소, 재판 등의 과정을 겪고 있다.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루쉰은 제자이자 연인인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갈림길‘을 만나면, 울지도 되돌아오지도 않고 먼저 갈림길 어귀에 앉아서 좀 쉬거나 한잠 자고 나서 갈 만해 보이는 길을 선택하고 계속 걷습니다. ‘막다른 길‘을 만나도 같은 방법을 취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 가시덤불 속으로 헤치고 들어갑니다."

순간순간 ‘갈림길‘과 ‘막다른 길‘을 만났다. 힘들고 지쳐서 무너질 것 같은 때가 있었다. 퍼붓는 폭우를 같이 맞으며 위로와 격려를해준 시민들, 벗, 친구, 동지들 덕분에 견디고 버틸 수 있었다.
나는 흠결과 한계가 많은 사람이다. 나의 "중대한 잘못을 직시하고 성찰하면서 ‘갈림길‘에서는 쉬고 ‘막다른 길‘에서는 길을 내며 걸어갈 것이다. 누가 나를 위해 ‘꽃길‘을 깔아줄 리 없고 그것을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제 내 앞에 멋지고 우아한 길은 없다. 자갈밭과 진흙탕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시한다. 삼국지연의 속 문구를빌리자면, "봉산개도峯山開道 우수가교遇水架橋" 즉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넌다"가 나의 모토가 될 수밖에 없다. 더 베이고 더 찔리고 더 멍들더라도, 미국 민권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서 킹 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말했다. "날지 못하면 뛰어라. 뛰지 못하면 걸어라. 걷지 못하면 기어라. 무엇을 하든계속 전진해야 한다." 등에 화살이 박히고 발에는 사슬이 채워진 몸이라 날지도 뛰지도 못하지만, 기어서라도 앞으로 가려고 한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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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치사상가 샹탈 무패 Chantal Mouffe가 민주주의에 대한경고로 남긴 글의 진짜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됐다.

"민주주의는 불확실하고 일어날 법하지 않은 어떤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심화시키는 만큼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성을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 P192

집권 경험이 있고 원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민주당은 엄밀히 말하면 ‘중도보수‘와 ‘중도진보‘가 합작한 ‘연합 정당‘으로 봐야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볼 수는 없다. 독일로 치면 메르켈 총리가 이끌었던 ‘기독민주당 CD‘ 정도의 정치 노선을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위해 기업의 책임을 넓게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 그리고 파업 참가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의 선봉에 서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사회단체의 요구가 끓어오른 후 따라오는 경향을 보여왔다. 한편,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의 경우 과거 민주노동당과 달리, 노동이 아닌 페미니즘과 성적 소수자 보호를 우선순위에 놓는 정당으로 대중에게 비치고 있다. 게다가 근래 정의당 의원 중 일부는 ‘중도화‘로 방향을 잡으면서 ‘제3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서겠다는 것이다. - P209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과학적 진리와 윤리적 당위라는 뒤섞을 수 없는 두 개의 영역을 마구 섞어버리는" 마르크스주의의 편향은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1980년대 한국 사회 민중운동권에 퍼졌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또는 김일성주의적 이론과 실천은 더 이상 현실적합성을 잃었다. 언어학자 출신으로 스웨덴 복지국가의 이론적 기반과 실천적 기반을 닦은 에른스트 비그푸르스Ernst Wigforss의 관점을 빌리면, "사회민주주의의 도래는 ‘입증‘되고 말고 할 과학적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윤리적 당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삶에서 실천으로 ‘구현‘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잠정적 유토피아", 즉 "현재로부터 생겨나고 또 ‘현재‘에 발 딛고있는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이를 일상 정치와 결합시켜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 P217

나는 2017년 사회권의 현황과 과제라는 책을 엮으면서 이렇게 썼다.

"사회권은 왜 필요한 것인가? 시민의 육아·교육 · 주택 · 의료등에서 기본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면 그의 삶은 언제든지 불안하고 피폐해질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 보장이 없으면 시민은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 어렵고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힘들다. 불법하거나 부당한 국가권력의 행사앞에서도 침묵하거나 굴종하기 쉽다.(•••) 진보·개혁 진영도역시 사회권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사회권을 보장하려면 어떠한 운동을 벌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 시민은권위주의 체제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다. 정치적 민주화의 요체가 자유권이라면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요체는 사회권이다. 이제 연대와 공존의 원리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고, 그 법률적 표현이 사회권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모두에서 사회권 보장이 핵심 화두가 되고, 진보와 보수진영이 사회권 보장을 위한 경쟁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 P219

G20 소속 다수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은, 복지야말로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를 안정시킨다는 것, 그리고 복지 정책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빈곤층만이 아니라 중산층 역시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왜 보편적 복지인가
무상급식 정책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정책은 단지 아이들에게 공짜 밥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법학적으로 이 정책은 헌법 제31조가 규정하는 ‘무상의무교육‘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소수 부유층 자녀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데 비용이 들더라도 공짜로 밥 먹는 아이와 제 돈 내고 밥 먹는 아이를 구분함으로써 발생하는 교실 내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면 이 정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사회학적으로는 중산층과 빈민층의 경제적 부담과 시간적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고,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저소득층 학생에게 찍히는 낙인을 제거하고 어린 시절부터 사회 통합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일하는 사람이 노동력을 팔아 고용주에게서 받는 ‘시장 임금‘외에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사회 임금‘을 늘리자는 것이다. - P226

제러니 리프틴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을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는 ‘공감의 문명empathic civilization‘이 중요하며,
21세기 ‘공감의 시대‘에는 우리 안에 있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을 찾고 계발해야 한다고 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최재천 교수는 호모 심비우스에서 21세기가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은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경쟁 일변도에빠진 사람이 아니라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줬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버트런드 러셀의 이 글을 찾는다.  - P248

고교 졸업 시 성적 우수자들의 재능과 노력은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하지만, 학문 연구와 지도자 육성이라는 역할을 수행해야할 대학은 성적 우수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학문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계급, 계층, 집단의 경험, 이익, 꿈,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제대로 된 학문이될리 없다. 대학이 성적우수자들만의 ‘동종교배‘ 집단으로 변질될 때 그 대학 출신이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지도자로 성장할 리 없다. 대학은 계층의 상승을 보장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큰 공부‘를 통해 ‘큰 사람‘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큰 사람‘이 되려면 ‘너른 가슴과 따뜻한 가슴‘이 필수적이다. 대학이 고교졸업 시 우수했던 성적을 뽐내는 데 급급한 학생들이 모여 ‘실력‘보다 ‘연고‘를 쌓는 장소로 전락한다면 재앙 중의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지역·기회균형선발‘로 선발된 학생들의 입학 시기 성적은 특목고나 서울 강남 명문고 출신이 많은 ‘수시 · 특기선발‘ 학생의 성적보다 못하다. 그러나 전자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고려할 때 전자의 성적은 이미 충분히 우수하다. 그리고 대학에서 전자가 졸업할 때의 성적이 후자가 졸업할 때의 성적보다 높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역 · 기회균형선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역·기회균형선발‘ 학생의 환경에 처해 있었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겠느냐고, ‘지역 · 기회균형선발‘ 학생이 당신의 환경에서 살았더라면 또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겠느냐고, 또한 ‘지역·기회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이 부럽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환경을 완전히 버릴 의향이 있느냐고. - P265

2002년 소방관 파업이 일어난 영국 사회를 떠올려본다. 당시영국 정부는 강공책을 전개하며 소방관을 대신해 군인을 보내 소방 업무를 보게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은 여론조사에서 파업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투입된 군인들은 화재 현장에 익숙하지 않아 인명사고가 자꾸 늘어만 갔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일어났다면 보수언론들은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소방관 파업 때문에 사람이 타 죽다!"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소방관들을 비난하며 여론몰이에 나섰을 것이다. 검찰은 바로 소방관들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정반대였다. 우선 시민들부터 화재 현장에 나타난 군인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고 언론들도 소방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면서 소방관들에게 적절한 처우를 해주지 않아 파업이 일어났고 인명사고마저 난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이 ‘선진국‘이라고 불리는이유가 단지 국민소득이 높아서일까.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다름 아닌 노동자이며, 따라서 노동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대다수 시민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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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이 특히 더 무서운 것은 아빠가 못미덥기 때문이었다. 못 미덥다는 것도 아마 완곡한 표현일 것이다. 아빠는기분이 좋을 때에도 월급을 잃어버리거나 아파트 현관문을 연 채로 잠들거나 했는데, 술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분이 나쁠 때면 거의 늘 그랬다-눈이 벌겋고 몸은 축축해 보이고, 양복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것처럼 구깃구깃하고, 압력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지려는 물건처럼 이상하게 고요한 분위기를 풍겼다. - P77

나는 전화를 끊은 후 아주 오랫동안 꼼짝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내가 앉은곳에서 보이는 스토브 시계에 따르면 새벽 2시 45분이었다. 이 시간까지혼자 깨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소에는 바람이 아주 잘 통하고 탁트이고 엄마가 곁에 있어 쾌활하던 거실이 겨울 별장처럼 춥고 맥없고 불편한 곳으로 전락했다. 힘없는 천들, 긁힌 자국이 있는 사이잘 깔개, 차이나타운에서 산 종이 전등갓, 너무 작고 가벼운 의자들, 가구들도 전부 발끝으로 서 있는 듯 가냘프고 불안해 보였다. 두근두근 뛰는 내 심장이 느껴지고잠에 빠진 이 크고 낡은 아파트 건물이 딸깍거리고 똑딱거리고 쉿쉿거리는소리가 들렸다. 모두 잠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경적 소리와 57번가에서 가끔 덜컹덜컹 들려오는 트럭 소리마저도 희미하고, 불확실하고, 다른 행성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외롭게 느껴졌다. - P96

나는 힘들게 일어서서 엄벙덤벙 미끄러지듯 문으로 걸어가서 더듬더듬 자물쇠를 열었다. "엄마?"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맨 위의 빗장을 밀고 문을활짝 열었다. 심장이 60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철렁 내려앉았다. 발판 위에 서 있는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둘이었다. 머리를 짧고삐죽삐죽하게 자른 통통한 한국계 여자와 셔츠에 타이를 맨, <세서미 스트리트>의 루이스를 무척 닮은 라틴아메리카계 남자. 두 사람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은 마음이 놓일 정도로 땅딸막한 중년인 데다가 임시 교사 같은 복장이었고 둘 다 친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을 보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알던 내 인생은 끝났음을깨달았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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