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이 특히 더 무서운 것은 아빠가 못미덥기 때문이었다. 못 미덥다는 것도 아마 완곡한 표현일 것이다. 아빠는기분이 좋을 때에도 월급을 잃어버리거나 아파트 현관문을 연 채로 잠들거나 했는데, 술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분이 나쁠 때면 거의 늘 그랬다-눈이 벌겋고 몸은 축축해 보이고, 양복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것처럼 구깃구깃하고, 압력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지려는 물건처럼 이상하게 고요한 분위기를 풍겼다. - P77

나는 전화를 끊은 후 아주 오랫동안 꼼짝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내가 앉은곳에서 보이는 스토브 시계에 따르면 새벽 2시 45분이었다. 이 시간까지혼자 깨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소에는 바람이 아주 잘 통하고 탁트이고 엄마가 곁에 있어 쾌활하던 거실이 겨울 별장처럼 춥고 맥없고 불편한 곳으로 전락했다. 힘없는 천들, 긁힌 자국이 있는 사이잘 깔개, 차이나타운에서 산 종이 전등갓, 너무 작고 가벼운 의자들, 가구들도 전부 발끝으로 서 있는 듯 가냘프고 불안해 보였다. 두근두근 뛰는 내 심장이 느껴지고잠에 빠진 이 크고 낡은 아파트 건물이 딸깍거리고 똑딱거리고 쉿쉿거리는소리가 들렸다. 모두 잠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경적 소리와 57번가에서 가끔 덜컹덜컹 들려오는 트럭 소리마저도 희미하고, 불확실하고, 다른 행성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외롭게 느껴졌다. - P96

나는 힘들게 일어서서 엄벙덤벙 미끄러지듯 문으로 걸어가서 더듬더듬 자물쇠를 열었다. "엄마?"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맨 위의 빗장을 밀고 문을활짝 열었다. 심장이 60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철렁 내려앉았다. 발판 위에 서 있는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둘이었다. 머리를 짧고삐죽삐죽하게 자른 통통한 한국계 여자와 셔츠에 타이를 맨, <세서미 스트리트>의 루이스를 무척 닮은 라틴아메리카계 남자. 두 사람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은 마음이 놓일 정도로 땅딸막한 중년인 데다가 임시 교사 같은 복장이었고 둘 다 친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을 보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알던 내 인생은 끝났음을깨달았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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