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사상가 샹탈 무패 Chantal Mouffe가 민주주의에 대한경고로 남긴 글의 진짜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됐다.
"민주주의는 불확실하고 일어날 법하지 않은 어떤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심화시키는 만큼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성을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 P192
집권 경험이 있고 원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민주당은 엄밀히 말하면 ‘중도보수‘와 ‘중도진보‘가 합작한 ‘연합 정당‘으로 봐야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볼 수는 없다. 독일로 치면 메르켈 총리가 이끌었던 ‘기독민주당 CD‘ 정도의 정치 노선을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위해 기업의 책임을 넓게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 그리고 파업 참가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의 선봉에 서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사회단체의 요구가 끓어오른 후 따라오는 경향을 보여왔다. 한편,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의 경우 과거 민주노동당과 달리, 노동이 아닌 페미니즘과 성적 소수자 보호를 우선순위에 놓는 정당으로 대중에게 비치고 있다. 게다가 근래 정의당 의원 중 일부는 ‘중도화‘로 방향을 잡으면서 ‘제3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서겠다는 것이다. - P209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과학적 진리와 윤리적 당위라는 뒤섞을 수 없는 두 개의 영역을 마구 섞어버리는" 마르크스주의의 편향은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1980년대 한국 사회 민중운동권에 퍼졌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또는 김일성주의적 이론과 실천은 더 이상 현실적합성을 잃었다. 언어학자 출신으로 스웨덴 복지국가의 이론적 기반과 실천적 기반을 닦은 에른스트 비그푸르스Ernst Wigforss의 관점을 빌리면, "사회민주주의의 도래는 ‘입증‘되고 말고 할 과학적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윤리적 당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삶에서 실천으로 ‘구현‘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잠정적 유토피아", 즉 "현재로부터 생겨나고 또 ‘현재‘에 발 딛고있는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이를 일상 정치와 결합시켜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 P217
나는 2017년 사회권의 현황과 과제라는 책을 엮으면서 이렇게 썼다.
"사회권은 왜 필요한 것인가? 시민의 육아·교육 · 주택 · 의료등에서 기본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면 그의 삶은 언제든지 불안하고 피폐해질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 보장이 없으면 시민은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 어렵고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힘들다. 불법하거나 부당한 국가권력의 행사앞에서도 침묵하거나 굴종하기 쉽다.(•••) 진보·개혁 진영도역시 사회권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사회권을 보장하려면 어떠한 운동을 벌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 시민은권위주의 체제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다. 정치적 민주화의 요체가 자유권이라면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요체는 사회권이다. 이제 연대와 공존의 원리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고, 그 법률적 표현이 사회권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모두에서 사회권 보장이 핵심 화두가 되고, 진보와 보수진영이 사회권 보장을 위한 경쟁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 P219
G20 소속 다수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은, 복지야말로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를 안정시킨다는 것, 그리고 복지 정책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빈곤층만이 아니라 중산층 역시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왜 보편적 복지인가 무상급식 정책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정책은 단지 아이들에게 공짜 밥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법학적으로 이 정책은 헌법 제31조가 규정하는 ‘무상의무교육‘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소수 부유층 자녀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데 비용이 들더라도 공짜로 밥 먹는 아이와 제 돈 내고 밥 먹는 아이를 구분함으로써 발생하는 교실 내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면 이 정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사회학적으로는 중산층과 빈민층의 경제적 부담과 시간적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고,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저소득층 학생에게 찍히는 낙인을 제거하고 어린 시절부터 사회 통합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일하는 사람이 노동력을 팔아 고용주에게서 받는 ‘시장 임금‘외에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사회 임금‘을 늘리자는 것이다. - P226
제러니 리프틴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을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는 ‘공감의 문명empathic civilization‘이 중요하며, 21세기 ‘공감의 시대‘에는 우리 안에 있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을 찾고 계발해야 한다고 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최재천 교수는 호모 심비우스에서 21세기가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은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경쟁 일변도에빠진 사람이 아니라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줬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버트런드 러셀의 이 글을 찾는다. - P248
고교 졸업 시 성적 우수자들의 재능과 노력은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하지만, 학문 연구와 지도자 육성이라는 역할을 수행해야할 대학은 성적 우수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학문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계급, 계층, 집단의 경험, 이익, 꿈,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제대로 된 학문이될리 없다. 대학이 성적우수자들만의 ‘동종교배‘ 집단으로 변질될 때 그 대학 출신이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지도자로 성장할 리 없다. 대학은 계층의 상승을 보장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큰 공부‘를 통해 ‘큰 사람‘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큰 사람‘이 되려면 ‘너른 가슴과 따뜻한 가슴‘이 필수적이다. 대학이 고교졸업 시 우수했던 성적을 뽐내는 데 급급한 학생들이 모여 ‘실력‘보다 ‘연고‘를 쌓는 장소로 전락한다면 재앙 중의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지역·기회균형선발‘로 선발된 학생들의 입학 시기 성적은 특목고나 서울 강남 명문고 출신이 많은 ‘수시 · 특기선발‘ 학생의 성적보다 못하다. 그러나 전자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고려할 때 전자의 성적은 이미 충분히 우수하다. 그리고 대학에서 전자가 졸업할 때의 성적이 후자가 졸업할 때의 성적보다 높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역 · 기회균형선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역·기회균형선발‘ 학생의 환경에 처해 있었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겠느냐고, ‘지역 · 기회균형선발‘ 학생이 당신의 환경에서 살았더라면 또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겠느냐고, 또한 ‘지역·기회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이 부럽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환경을 완전히 버릴 의향이 있느냐고. - P265
2002년 소방관 파업이 일어난 영국 사회를 떠올려본다. 당시영국 정부는 강공책을 전개하며 소방관을 대신해 군인을 보내 소방 업무를 보게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은 여론조사에서 파업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투입된 군인들은 화재 현장에 익숙하지 않아 인명사고가 자꾸 늘어만 갔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일어났다면 보수언론들은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소방관 파업 때문에 사람이 타 죽다!"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소방관들을 비난하며 여론몰이에 나섰을 것이다. 검찰은 바로 소방관들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정반대였다. 우선 시민들부터 화재 현장에 나타난 군인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고 언론들도 소방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면서 소방관들에게 적절한 처우를 해주지 않아 파업이 일어났고 인명사고마저 난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이 ‘선진국‘이라고 불리는이유가 단지 국민소득이 높아서일까.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다름 아닌 노동자이며, 따라서 노동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대다수 시민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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