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댁은 물문 근처로 천천히 다가갔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돌팔매처럼 집어던지는 경멸에 찬 눈초리, 낄낄거리는 웃음을 홈빡뒤집어쓴 채로 완장은 물문을 향해서 흘러오고 있었다. 물문에 가까이 이를수록 점점 빠르고 거세지는 물살에 실려 완장 또한 걸음을 재우치고 있었다.
운암댁은 물문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들 때까지 아들의 완장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뗄 수가 없었다.
일단 소용돌이에 먹혀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싶던 그것은 물고기떼의 탈출을 막으려고 물문 주위에 둘러친 굵고도 촘촘한 철망에걸려서 제자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용돌이를 타고 언제까지나 맴돌이를 계속할 작정인 듯했다. 그것이 눈앞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운암댁 역시 언제까지고 물문 근처를 떠나지 않고 지켜볼 작정이었다. 마치 너무도 한이 맺혀서 아직도 저수지를 떠나지못하고 물문 주위를 맴도는 아들의 얼굴이라도 대하듯이 그니는 끝끝내 완장의 행방을 주시하고 있을 작정이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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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를 비롯한 비변사 대신들이 단체로 움직였다. 인조에게 두 개의 안을 제시하고 양자택일을 요구한 것이다. ① 사신을 파견해 청의 요구를 수용하고 협상한다.
② 전시동원체제를 가동한다.
②는 삼남과 강원도에서 준비 중인 병력 18,300명을 일제히 동원해 12월 10일까지 국경에 배치한다는 방안이었다.
비변사마저 인조에게 결단을 요구하자 인조는 ②를 선택했다. 대신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인조가 입을 열었다.
"이런 대병력이 움직이면 지나가는 고을에서 군량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서두르지 말고 소문내지도 말고, 먼저 고을 창고에 군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움직이도록 하라."
서두르지 말고 군량을 비축한 다음에 움직이라고? 침공은한겨울 결빙기인 12월과 1월 사이일 것이다. 지금 당장 동원령을 내려도 12월 10일에 간신히 맞출 판인데, 먼저 군량을, 그것도 백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소량으로 조금씩 비축하라고? 그렇게 하다가는 봄이 와도 끝나지 않을것이다.
이날 인조가 이 한마디의 토만 달지 않았어도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청군이 압록강을 건넌 날이 바로 12월 9일이었다. - P148

어떤 비변사 대신이 이런 지적을했다. 9일에 전쟁이 터졌다는데 어떻게 3일이 지나도록 의주에서 달랑 장계 한 장만 도착할 수 있느냐고변란이 발생하면 담당 관원은 시시각각으로 상황보고를해야 한다. 즉, 의주 한 곳에서만 해도 장계가 시간마다 계속도착해야 했다. 주변 고을에서도 똑같이 장계를 올려야 하니까 하루에만 수십 개의 장계가 차례로 도착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의주에서는 첫 번째 장계, 그것도 적이 침략했다는 장계 하나만 도착하고 이후의 보고가 뚝 끊겼다. 왜일까? 이유는 뻔한데, 행정의 달인들은 행정적인 결론을 내고 더 행정적인 명령을 하달한다.
"긴급지시. 비변사에서 각급 지휘관에게 역참마다 파발마를 2필씩 증치하여 보고가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주의할 것. 이 명령을 즉시 적절히 조치하지 않을 경우 추후에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시행할 것임." - P172

인조도 뒤따라 즉시 출발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사복시(궁중의 가마와 말을 관장하는 관청) 마구간에 말은 있는데, 말 고삐를 잡아줄 하인인 말구종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조선은 체면이 중요한 양반사회였다. 말구종을 구하지 못한 인조는 정오까지도 출발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대신 하나가 간신히 사간원의 하인 2명을데리고 와서 말고삐를 잡게 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조정이 통째로 피란하려니 준비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궁을 나선 시각은 미시(오후 1시30분~3시 30분)였다.
오후 1시경 청군의 선봉대가 홍제원 도로를 차단한다. 강화행 도로가 청군에 의해 막혀버렸다. 강화행 도로가 막히자 인조 행렬은 적어도 4시간 이상 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우왕좌왕한다」 남대문으로 나가 우회로를 찾자는 의견과 남한산성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홍제원의 청선봉대는 소수일 테니 공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조는 조선군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영의정 김류가 강력하게 남한산성행을 주장해 인조 행렬은 결국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 P175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틀 후인 17일 인조가 대신들을 만난 자리에서 밝혀진다.
"병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가다가 적을 만나 수모를 당할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영의정 김류는 그때 강화로 가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통탄했다. 김류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소수의 대신을 데리고 변장을 하고서라도 산성을 빠져나가셔야 한다고말했다. 하지만 인조는 "지금 신하들을 모두 버리고 나만 빠져나가란 말이냐! 그럴 순 없다."라고 말했다.
멋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 말 뒤에는 ‘신하 없는 왕은 평민이 될 수도 있다.‘라는 이면의 진리가 숨어있다. 게다가 광해군도 아직 멀쩡히 살아있었다. 인조는 아무리 충성스러운신하라도 어느 선 이상은 절대로 믿지 않았다.
산성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물이었다. 인조의 결심은 확고했다. ‘패망하고 나라와 백성이 모두 죽는다고 해도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한다. 내가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험을 할수도 없다.‘ 결국 인조의 회귀 결정으로 남한산성은 역사를품게 된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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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진의 미래를 내다보았는지 유력한 아들들도 내분보다는 단합을 택했다. 누르하치의 후계자는 조선에서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던 8번째 아들 홍타이지였다.
홍타이지는 1621 년부터 조선 침공을 주장한 인물로, 조선에 대한 강경파로 알려져 있었다. 조선은 홍타이지가 조선 침공을 반대했던 이복형제 다이샨과 갈등이 있다는 첩보를 얻고 둘을 이간시켜보자는 논의를 했었다. 그러나 누르하치가 죽자 다이샨은 홍타이지의 즉위를 후원했다. - P72

모문룡이 죽고 가도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전란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평북지방의 복구는 지지부진했다. 주민을 모으고 생산력을 회복하려면 안전보장이 선결 조건이다.
조정의 방어 의지와 안전보장의 상징이 바로 최일선 기지인의주성이었다.
조정에서는 평북 포기 전략이 논의되고 있었지만, 외부에 발설할 수는 없었다. 완전히 결정되기 전에는 의주를 재건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조정은 의주로 군량을 운송해서쌓아놓고 커다란 병기창고를 지었다. 방어 의지를 과시해흩어진 주민들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의주 재건을 약속하면서 정묘호란의 유가족들을 향해 당신들이 나서서 학살당한 일가친척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무능했다면 조정이 그랬고 야비했다면 선동가들이 그랬지, 백성들은 비겁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지만, 이 무능한 정부를 믿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의주사람이 아니더라도 간혹 복수나 설욕을 외치며 자진해서 의주로 들어오는 무사도 있었다. - P93

"침공이 발생하면 내가 직접 장사를 대동하고 북상해 싸우겠다." 흥분한 인조가 이같이 선언했다. 왕이 이벤트 없이 출정할 수는 없으므로 출정식까지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왕의직접 출정은 조선 건국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인조는 비변사에 이런 비장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상사이다. 금의 병사들이 강하긴 하지만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기지는 못할 것이며, 아군이 약하지만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날 무사들이 만약 자신을 잊고 순국한다면 교만한 오랑캐를 무찌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 세상 사람 중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 자는 없다. 그러니 치욕을 참고 구차히 사는 것이 정의를 향해 앞장서서 대장부의 뜻을 이룩하는 것만 하겠는가! 만약 오랑캐가 침략해오면 과인이 오랑캐의 앞길에 진주하여 장사를 격려하고 평안도에 사는 군인과 백성을 위로하겠노라."
인조가 정말로 출정을 했고, 병자호란의 결과가 달라졌다면 이 글은 우리나라 전쟁사에서 가장 멋진 연설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세 유야무야됐다. - P102

결국 조정은 교역 철회를 취소하고, 예물도 적당히 보내주기로 한다. 이렇게 1633년의 위기는 격한 감정으로 시작해서 아전인수로 끝났다. 후금이 조선의 도발을 쿨하게(?)넘어간 이유는 조선을 침공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략적 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금이 보기에 명은 자멸하고 있었다. 후금군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던 원숭환을 자기들 손으로 죽였다. 요동의 군민들이 동요했고 원숭환의 부하들이 후금으로 투항했다. 모문룡의 잔존세력도잘하면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명 전쟁에 있어서 그야말로 대운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런 흥분되는 순간에 조선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조선의 척화파만 자신감이 한껏 올라갔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전쟁은 군사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르후의 패전은광해군의 배신 때문이다. 정묘호란의 패전은 주화론 때문에민심이 분열되어 한마음으로 뭉쳐 죽기로 저항하지 않았기때문이다." - P106

용골대와 마부대는 항복한 몽골 왕자들을 대동하고 조선에 와서 명과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조선은 분노해서용골대를 쫓아내고 전국에 전쟁 준비명령을 내린다. 용골대는 분노한 조선 군중을 피해 도망치듯이 귀국했는데, 그와중에도 조선의 연락병으로부터 전쟁 준비 교서를 탈취해서 귀국한다.
이 직후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홍타이지는 황제가된다. 조선 사신들은 황제에 절하는 것을 거부해 구타당하고 귀국한다. 그리고 홍타이지는 조선 침공을 결정한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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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밤이었다. 물문 틈서리로 스며나온 가느다란 물줄기가 콘크리트 경사면을 타고 아래쪽으로 졸졸 흘러내리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혀로 땅기스락을 연신 핥아대며 자장자장 이곡리를 잠재우는 나지막한 물결 소리도 그는 들을 수가있었다. 무엇에 놀랐는지 물새들이 날개를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월척의 잉어란 놈일 것이었다. 깊은 물속에서 수면 위로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지는 물고기가 있었다. 수면을 강하게 때리는 물소리 쪽을 겨냥하고 그는 손전등을 쏘아보았다. 물고기가 이루어놓은  둥그런 파문만이 빛의 그물 안에 잡혔다.
그는 사방으로 불빛을 비추어 짙은 어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껏 소리로만 전달되던 것들이 색깔과 모양으로 바뀌어 낯익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새 건전지로 갈아끼운지 얼마 안 되는 손전등은 꽤 멀리 떨어진 것들까지 확 끌어다가 낱낱이 그의 눈앞에 무릎을 꿇려놓고 있었다. 이번에는 손전등을 붓처럼 사용해서 저수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하나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그 자신의 관할 구역을 나타내는 지도였다. 그것은 작은 왕국이었다. - P66

문제는 술집 작부쪽이 아니었다. 작부에 얽힌 소문을 빌미로 하여 마을사람들이 한결같이 던져오는 돌팔매였다. 아직은 그저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신호인가를 운암댁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뒷전에 숨어 있는 엄청난 불행을 한 발짝 앞질러 오는 으스스한 조짐이었다.
다름아닌 그놈의 완장이란 물건이 화근이었다. 운암댁의 문을똑똑 두드리는 불행은 바로 그 완장으로 언제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 P105

운암댁은 완장에 관해서 자기 깜냥에 알 만큼은 알고 있다고 굳게 믿는 축이었다. 완장은 원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만석꾼의 권력을 쥔 진짜 주인은 언제나 완장 뒤편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다. 그 엄청난 땅덩이를 혼자서 관리할 수도 없고 미천한소작인들을 상대로 언성 높여가며 손수 도조를 거두러다니기도 귀찮을 뿐만 아니라 체통이 안 서는 일이니까 중간에 마름을 세우거나 머슴을 부리는 형식이었다. 완장은 대개 머슴 푼수이거나 기껏높아봤자 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다니기 버릇했다.
마냥 휘젓고다니는 데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완장은 대개 뒷전에 숨은 만석꾼의 권세가 원래부터 제 것이었던 양, 바로 만석꾼본인인 양 얼토당토 않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소작인을 다루는 마름의 태도가 정작 지주보다도 오히려 더 혹독하고, 똑같은 머슴 처지였으면서 완장만 팔에 둘렀다 하면 다른 머슴들을 사정없이 구박하게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작인이나 다른 머슴들 입장에서 보자면 참는 것도 한도가 있었다. 그리고 완장이 불로초를 먹고 장수영생을 누리는 것도 아니었다. 화무십일홍이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었다. 제까짓게 뭔데 하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벌써 완장의 신상엔 위험이 닥치는 것이었다. 소작인들로부터 지주보다 더 미움받는 마름의 생명이 결코 오래 갈리는 없었다. 참다 참다 못한 소작인들은 몹시 흉년이 든 어느 해 보릿고개에 마침내 낫과 곡괭이를 들고 떼지어 마름의 집을 습격하게 마련이었다. - P105

"완장한티 고마침 당하고도 당신은 그 웬수녀르 완장이 지긋지긋허지도 않소?"
"이놈의 예펜네가 초장부터 재수없게 무신 잠꼬대 같은 소리여? 완장 찬 놈들한티 안 죽을 만침 당혀본 사람이니까 요번참에는 당연히 내 차례가 왔단말여! 인자부터는 으떤 놈도 내 앞에서 함부로 못 까불어!"
거듭되는 운암댁의 잔소리에 남편은 필경 역정을 내고 말았다. 생판 다른 사람인 양 남편이 홰까닥 변해버렸음을 운암댁은 그제야실감하기에 이르렀다. 아침에 집을 나설 당시의 남편이 토끼였다면이제 완장을 차고 돌아온 남편은 살쾡이였다. 남들한테 물리면서만살아온 사람이 바야흐로 남들을 물기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 P107

참으로 놀라운 이해의 순간이었다. 애비라는 말의 끝없는 되풀이가 그의 칠칠치 못한 두뇌로부터 갑작스레 어리석음을 몰아냄과 동시에 그만큼의 지혜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완장이구나, 완장!"
그렇다. 그것은 완장이었다. 준환이놈은 그때 다름아닌 그 완장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닫혀만 있던 문이 열리면서 종의 머리는 마침내 완장이란 물건의 정체에 대한 신통한 깨달음의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가 있었다. 팔에다 차는 것만이 완장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도둑질도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김준환이 필사적으로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것 또한 완장의 하나였던 것이다.
"권력 한 가지가 다는 아니여."
이 세상에는 빛깔 다르고 소리와 냄새도 다른 수많은 완장들이존재하고 있었다.
"땅도 완장이여."
땅도 완장이었다. 없는 땅, 처자식 먹여 살리는 데 턱없이 부족한 땅 때문에 여태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려왔던가.
"돈도 완장이고 지체나 명예도 말짱 다 완장이여."
그런 것들도 틀림없는 완장의 한 종류였다.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것, 남들을 큰소리로 부리고 남들 앞에서 마냥 뻐겨댈 수있는 거라면 뭐든지 다 완장이었다.
"지집까장도 여부없는 완장이여."
계집도 완장이었다. 사내들이 계집을 후리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그것을 보아란 듯이 팔에다 두르고 다니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예쁜 계집, 잘난 계집을 꿰찬 사내일수록 남들 앞에서 기를 펴고그렇지 못한 사내는 으레 기가 꺾이게 마련이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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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막다른 골목이었다. 자기 인생에서 더 이상 뒷걸음질쳐흘러갈 데라고는 이제 아무리 둘러보아도 없다고 그니는 판단하고있었다.
그니가 유독 종술이한테만 그처럼 몰풍스럽게 대하는 까닭은 무척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했다. 그리고 복잡한 듯하면서도 실상은아주 단순했다. 상대방을 너무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똑같이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똑같이 도회의 살벌한 바다을 전전하면서 똑같이 욕된 이력을 쌓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술에게 동류에 비슷한 감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똥창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대이기 때문에 종이가 무슨 지랄을 떤다 해도 그니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저수지 감독인지 감시원인지 하는 완장을 차고 마냥 거들먹거리는 꼴은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 작부가 보기엔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수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니가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니 자신이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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