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막다른 골목이었다. 자기 인생에서 더 이상 뒷걸음질쳐흘러갈 데라고는 이제 아무리 둘러보아도 없다고 그니는 판단하고있었다.
그니가 유독 종술이한테만 그처럼 몰풍스럽게 대하는 까닭은 무척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했다. 그리고 복잡한 듯하면서도 실상은아주 단순했다. 상대방을 너무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똑같이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똑같이 도회의 살벌한 바다을 전전하면서 똑같이 욕된 이력을 쌓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술에게 동류에 비슷한 감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똥창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대이기 때문에 종이가 무슨 지랄을 떤다 해도 그니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저수지 감독인지 감시원인지 하는 완장을 차고 마냥 거들먹거리는 꼴은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 작부가 보기엔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수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니가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니 자신이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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