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를 비롯한 비변사 대신들이 단체로 움직였다. 인조에게 두 개의 안을 제시하고 양자택일을 요구한 것이다. ① 사신을 파견해 청의 요구를 수용하고 협상한다.
② 전시동원체제를 가동한다.
②는 삼남과 강원도에서 준비 중인 병력 18,300명을 일제히 동원해 12월 10일까지 국경에 배치한다는 방안이었다.
비변사마저 인조에게 결단을 요구하자 인조는 ②를 선택했다. 대신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인조가 입을 열었다.
"이런 대병력이 움직이면 지나가는 고을에서 군량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서두르지 말고 소문내지도 말고, 먼저 고을 창고에 군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움직이도록 하라."
서두르지 말고 군량을 비축한 다음에 움직이라고? 침공은한겨울 결빙기인 12월과 1월 사이일 것이다. 지금 당장 동원령을 내려도 12월 10일에 간신히 맞출 판인데, 먼저 군량을, 그것도 백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소량으로 조금씩 비축하라고? 그렇게 하다가는 봄이 와도 끝나지 않을것이다.
이날 인조가 이 한마디의 토만 달지 않았어도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청군이 압록강을 건넌 날이 바로 12월 9일이었다. - P148

어떤 비변사 대신이 이런 지적을했다. 9일에 전쟁이 터졌다는데 어떻게 3일이 지나도록 의주에서 달랑 장계 한 장만 도착할 수 있느냐고변란이 발생하면 담당 관원은 시시각각으로 상황보고를해야 한다. 즉, 의주 한 곳에서만 해도 장계가 시간마다 계속도착해야 했다. 주변 고을에서도 똑같이 장계를 올려야 하니까 하루에만 수십 개의 장계가 차례로 도착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의주에서는 첫 번째 장계, 그것도 적이 침략했다는 장계 하나만 도착하고 이후의 보고가 뚝 끊겼다. 왜일까? 이유는 뻔한데, 행정의 달인들은 행정적인 결론을 내고 더 행정적인 명령을 하달한다.
"긴급지시. 비변사에서 각급 지휘관에게 역참마다 파발마를 2필씩 증치하여 보고가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주의할 것. 이 명령을 즉시 적절히 조치하지 않을 경우 추후에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시행할 것임." - P172

인조도 뒤따라 즉시 출발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사복시(궁중의 가마와 말을 관장하는 관청) 마구간에 말은 있는데, 말 고삐를 잡아줄 하인인 말구종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조선은 체면이 중요한 양반사회였다. 말구종을 구하지 못한 인조는 정오까지도 출발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대신 하나가 간신히 사간원의 하인 2명을데리고 와서 말고삐를 잡게 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조정이 통째로 피란하려니 준비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궁을 나선 시각은 미시(오후 1시30분~3시 30분)였다.
오후 1시경 청군의 선봉대가 홍제원 도로를 차단한다. 강화행 도로가 청군에 의해 막혀버렸다. 강화행 도로가 막히자 인조 행렬은 적어도 4시간 이상 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우왕좌왕한다」 남대문으로 나가 우회로를 찾자는 의견과 남한산성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홍제원의 청선봉대는 소수일 테니 공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조는 조선군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영의정 김류가 강력하게 남한산성행을 주장해 인조 행렬은 결국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 P175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틀 후인 17일 인조가 대신들을 만난 자리에서 밝혀진다.
"병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가다가 적을 만나 수모를 당할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영의정 김류는 그때 강화로 가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통탄했다. 김류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소수의 대신을 데리고 변장을 하고서라도 산성을 빠져나가셔야 한다고말했다. 하지만 인조는 "지금 신하들을 모두 버리고 나만 빠져나가란 말이냐! 그럴 순 없다."라고 말했다.
멋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 말 뒤에는 ‘신하 없는 왕은 평민이 될 수도 있다.‘라는 이면의 진리가 숨어있다. 게다가 광해군도 아직 멀쩡히 살아있었다. 인조는 아무리 충성스러운신하라도 어느 선 이상은 절대로 믿지 않았다.
산성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물이었다. 인조의 결심은 확고했다. ‘패망하고 나라와 백성이 모두 죽는다고 해도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한다. 내가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험을 할수도 없다.‘ 결국 인조의 회귀 결정으로 남한산성은 역사를품게 된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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