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의 미래를 내다보았는지 유력한 아들들도 내분보다는 단합을 택했다. 누르하치의 후계자는 조선에서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던 8번째 아들 홍타이지였다. 홍타이지는 1621 년부터 조선 침공을 주장한 인물로, 조선에 대한 강경파로 알려져 있었다. 조선은 홍타이지가 조선 침공을 반대했던 이복형제 다이샨과 갈등이 있다는 첩보를 얻고 둘을 이간시켜보자는 논의를 했었다. 그러나 누르하치가 죽자 다이샨은 홍타이지의 즉위를 후원했다. - P72
모문룡이 죽고 가도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전란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평북지방의 복구는 지지부진했다. 주민을 모으고 생산력을 회복하려면 안전보장이 선결 조건이다. 조정의 방어 의지와 안전보장의 상징이 바로 최일선 기지인의주성이었다. 조정에서는 평북 포기 전략이 논의되고 있었지만, 외부에 발설할 수는 없었다. 완전히 결정되기 전에는 의주를 재건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조정은 의주로 군량을 운송해서쌓아놓고 커다란 병기창고를 지었다. 방어 의지를 과시해흩어진 주민들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의주 재건을 약속하면서 정묘호란의 유가족들을 향해 당신들이 나서서 학살당한 일가친척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무능했다면 조정이 그랬고 야비했다면 선동가들이 그랬지, 백성들은 비겁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지만, 이 무능한 정부를 믿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의주사람이 아니더라도 간혹 복수나 설욕을 외치며 자진해서 의주로 들어오는 무사도 있었다. - P93
"침공이 발생하면 내가 직접 장사를 대동하고 북상해 싸우겠다." 흥분한 인조가 이같이 선언했다. 왕이 이벤트 없이 출정할 수는 없으므로 출정식까지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왕의직접 출정은 조선 건국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인조는 비변사에 이런 비장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상사이다. 금의 병사들이 강하긴 하지만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기지는 못할 것이며, 아군이 약하지만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날 무사들이 만약 자신을 잊고 순국한다면 교만한 오랑캐를 무찌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 세상 사람 중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 자는 없다. 그러니 치욕을 참고 구차히 사는 것이 정의를 향해 앞장서서 대장부의 뜻을 이룩하는 것만 하겠는가! 만약 오랑캐가 침략해오면 과인이 오랑캐의 앞길에 진주하여 장사를 격려하고 평안도에 사는 군인과 백성을 위로하겠노라." 인조가 정말로 출정을 했고, 병자호란의 결과가 달라졌다면 이 글은 우리나라 전쟁사에서 가장 멋진 연설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세 유야무야됐다. - P102
결국 조정은 교역 철회를 취소하고, 예물도 적당히 보내주기로 한다. 이렇게 1633년의 위기는 격한 감정으로 시작해서 아전인수로 끝났다. 후금이 조선의 도발을 쿨하게(?)넘어간 이유는 조선을 침공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략적 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금이 보기에 명은 자멸하고 있었다. 후금군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던 원숭환을 자기들 손으로 죽였다. 요동의 군민들이 동요했고 원숭환의 부하들이 후금으로 투항했다. 모문룡의 잔존세력도잘하면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명 전쟁에 있어서 그야말로 대운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런 흥분되는 순간에 조선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조선의 척화파만 자신감이 한껏 올라갔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전쟁은 군사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르후의 패전은광해군의 배신 때문이다. 정묘호란의 패전은 주화론 때문에민심이 분열되어 한마음으로 뭉쳐 죽기로 저항하지 않았기때문이다." - P106
용골대와 마부대는 항복한 몽골 왕자들을 대동하고 조선에 와서 명과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조선은 분노해서용골대를 쫓아내고 전국에 전쟁 준비명령을 내린다. 용골대는 분노한 조선 군중을 피해 도망치듯이 귀국했는데, 그와중에도 조선의 연락병으로부터 전쟁 준비 교서를 탈취해서 귀국한다. 이 직후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홍타이지는 황제가된다. 조선 사신들은 황제에 절하는 것을 거부해 구타당하고 귀국한다. 그리고 홍타이지는 조선 침공을 결정한다. - P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