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상당히 많은 뇌의 영역들이 오로지 시각이라는 감각 하나에 할당되어 있음에도 세상은 워낙 변화무쌍한지라 뇌는 눈에서 오는 모든정보들을 빠짐없이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뇌가 선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 적당한 무시와 엄청난 융통성이다. 우리는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것은 눈에 뻔히 보여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으며, 쥐꼬리만 봐도 벽 뒤에 숨은 쥐의 전체 모습을 그릴 수 있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주는 색의 스펙트럼에서 그 색이 주는 이미지와 의미도 읽어낼 수 있다. 우리의 눈은 때론 부분에서 전체를 볼 수 있을 만큼 뛰어나기도 하지만, 종종 눈 앞에 뻔히 있음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못 볼 만큼 멍청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편식하는 것은 뇌의 보편적인 특성으로,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엄마의 잔소리를 코앞에서 흘려듣는 십대 아이의 귀에 달린 엄청난 필터링 능력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눈앞에서 딴전을 피우는 애들의 귀에, 아니 뇌에 소리를 흘려 넣고 싶다면 일단은 그들의 귀에 달콤한 말로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효과적이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은 ‘눈이 삐거나‘ 얼빠진 사람이 아니라, 하기 싫은 숙제를 슬쩍 미뤄버리는 아이처럼 중요하지 않은 시각적 정보는 은근슬쩍 뭉개버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활동 결과이다. - P71

원뿔세포가 색을 보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는 뒤집어 말하면, 원뿔세포가 아예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제 기능을 못하면 색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를 ‘색각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원뿔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색을 전혀 구분할 수 없어 세상이 온통 흑백 TV처럼 보이는 완전색각이상(전색맹)이 나타난다. 이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극도의 시력 저하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색각이상 이전에 저시력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곤 한다.
이보다 흔히 나타나는 것은 이색형 색각이상으로 삼색 중 하나를인식하는 원뿔세포가 문제가 있어 세상을 두 가지 색의 혼합으로만 인식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는 다시 인식하지 못하는 색에 따라 제1 색각이상(적색원뿔세포 결함, 적색맹), 제2색각이상(녹색원뿔세포 결함, 녹색맹), 제3색각이상(청색원뿔세포 결함, 청색맹)으로 나뉜다. 이 밖에도 세 가지 원뿔세포가 모두 존재하고는 있지만, 한 가지 원뿔세포가 다른 것들에 비해 민감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아예 해당 빛의 색을 볼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심한 색의 구별은 되지 않는 이상 삼색형 색각도 있다. 이들 역시도 민감도가 떨어지는 종류에 따라 제1색약(적색약), 제2색약(녹색약), 제3색약(청색약) 등으로 나뉜다 - P82

극히 드물긴 해도 4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진 사람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들을 ‘사색형 색각tetrachromacy‘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눈은 보통 사람들이 7가지로 인식하는 무지개에서 10가지 색깔을 보며, 1억 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찬란하고 복잡할 듯싶다. 참고로 현재까지알려진 사색형 색각을 가진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는 대부분의 색각이상이 남성에게 나타난다는 것과 함께 성별에 따라 다르게 유전되는 반성 유전의 특성인 것으로 추측된다. - P83

1990년대 초반, 이들 연구자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원숭이들의 신경 반응을 살피던 연구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원숭이의 5 영역에 꽂힌 전극이 반응하고 있었다. 이 신호에 따르면 원숭이는 지금 손을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원숭이는 우리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원숭이 뇌의 F5 영역은 운동 피질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신호가 발생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장치가고장난 것일까, 이상하게 생각한 연구자들은 원숭이를 관찰하다가 원숭이의 시선에서 해답을 찾았다.
원숭이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지만, 두 눈동자는 건너편 우리에서 땅콩 그릇을 향해 허우적대는 다른 원숭이의 손동작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움직이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도 운동 피질의 신경이 활성화된다니, 시각적 정보와 운동 피질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각과 운동 사이의 비밀스러운 연결의 열쇠는 나와 다른 개체의 행동을 ‘보고‘ 이를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거울 신경세포‘가 쥐고 있었다.
이후 원숭이를 이용한 몇 번의 실험 끝에, 연구자들은 원숭이의 뇌속에는 타자의 행동을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런 신경세포에 ‘거울 신경세포 mirror neuron‘ 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면 거울 속의 내 모습 역시도 똑같이 찌푸린 얼굴로 응수하는 것처럼, 타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보는 것을 통해 이를 내가 겪는 일처럼 공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P92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각막은 그 창의 유리와 같은 기관으로 눈의 가장바깥쪽에서 눈을 감싸고 있는 외피의 일종이다. 하지만 대개의 창이 외벽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 않듯 눈의 외피인 각막 역시 안구 앞쪽의 1/6 만을 차지하며, 나머지 5/6은 공막이라고 불린다. 공막은 치밀한 섬유조직으로 흰색을 띄는데, 홍채를 제외한 눈의 대부분이 흰색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공막이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유해보면 눈은 공막이라는 흰 벽에 뚫린 투명한 각막의 창으로 세상과 연결된 셈이다.
각막은 눈이라는 창의 유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유리창의 특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첫 번째, 유리창은 외부를 잘 내다볼수 있도록 맑고 깨끗해야 한다. 적어도 각막은 첫 번째 조건만큼은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막은 우리 몸에서 가장 투명한 조직이다. 각막이 이렇게 투명한 것은 각막을 이루는 성분들의 구조가 균일하고 혈관이 없기 때문이다. 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흰자에서는 붉은 실핏줄을 찾는 것이 어렵지않지만, 눈동자 부분에서는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이어서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각막에 혈관이 존재한다면 혈관 내부의 적혈구나 혈관 자체가 시야를 가릴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기에 우리는 붉은색 필터나 검은 그림자 없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각막이 투명한 시야 확보를 위해 혈관을 포기한 것은 각막의 다양한 특성들의 바탕이 되었다. 각막은 살아 있는 신체의 일부이므로 제기능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영양분과 산소의 공급이 필요하다. 보통의 신체에서는 혈액이 이 기능을 담당해주지만, 혈관이 없는 각막은 이것이불가능하다. 따라서 각막은 공막과 연결된 가장자리 부위에 풍부하게 분포된 혈관과 눈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각막 표면과 맞닿은 대기중에서 직접적으로 산소를 추출해 생존을 이어간다. 이런 각막의 특성은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경우 쉽게 눈이 피로해지고 충혈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렌즈가 각막을 덮어버리면 세상은 좀 더 또렷하게 보이겠지만, 각막이 늘 접하고 있던 대기와 눈물과의 접촉이 차단되어 산소를 충분히 흡수하거나 영양분을 추가로 공급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숨쉬기 힘들고 배고파진 각막은 당연히 쉽게 피로해지고 공막은 책임감을 느끼고 각막에게 영양분을 더 공급하기 위해 모세혈관을 확장시키므로 이는 눈의 충혈로 이어진다.  - P109

각막에 혈관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각막 이식을 받아야 할 때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혈관이 없기 때문에 이식 시 면역학적 거부반응도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것과 네 것을 가리지 않는 각막의 이런 까다롭지 않은 특성으로 인해 각막이식은 신체 이식 중 가장 최초로 성공한 이식이며, 1904년 첫 성공을 거둔 이래 수많은 사람들을 어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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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는 매우 보편적인 밤길의 공포를 보통의 남성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들을 키우면서 여러번 느꼈다.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잔소리할 때마다 "네네 어머님" 하며 농담으로 받던 아들이 어느 날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엄만 밤길이 그렇게 걱정돼? 내가 길이라도 잃어버릴까봐?" 여자인 엄마가 평생에 걸쳐 느껴왔던 공포심을 아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통의 남성이 밤길을 두려워하지 않는것은 (성)폭력의 공포를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은 성별 상상력의 차이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위험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명확히 말할 필요가 있겠다. 언젠가 선배 언니의 20대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카페에서 잠깐 자리를비울 때 비싼 노트북도 그냥 펼쳐두고 나가잖아요. 절도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더이상 아니니까요. 그런데 왜 여성들은 늘 범죄 피해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죠? 내가 노트북만큼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P207

한 나라의 인권의 수준을 가늠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있다.
미국 서부의 한 도시는 강물로 회귀하는 연어의 수를 인권의 지표로 삼는다고 한다. 연어가 회귀할 수 있는 강이 있는 도시라면 사람이 살기도 좋은 인권 도시가 분명할 것이다. 나에게 인권 지표를 개발하라고 한다면, 숙식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시인의 수와 막춤일망정 일주일에 한번 이상 춤을 추는 사람들의 숫자를 여기에 포함시키고 싶다. 이러한 권리를 ‘표현의 자유‘라든지 ‘문화 향유권‘ 같은 거창한 말로 설명하지 않고 ‘걱정 없이 춤추고 시 쓰며 살 권리‘라고 표현한다면 인권이 얼마나 쉽고도 다정하게 들릴까? 인권위법의 인권의 정의 역시 이렇게쉽게 고치고 싶다.
"시를 쓰는 것이 인권이다. 춤출 수 있어야 인권이다." - P226

나는 생각해본다. 그 존엄을 위한 투쟁이 이제 인간이 아닌다른 동물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때가 아닌가. 20년 가까이 인권으로 밥벌이해오면서도 동물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었다.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해준 한 동물로 인해 겨우 알아차리게 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가 삶의 격』에서 말한 것처럼 존엄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관계 맺음에 한정될 수 없고 사람과 다른 동물, 자연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인간을 넘어 좋은 동물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삶을 가장 존엄하게 살아가는방법이 아닐까. - P235

점심 무렵 인권위옆 작은 공원에 비둘기 밥을 주는 여인이나타난다. 비둘기들은 횡단보도 너머에 여자가 서 있을 때부터구구구 소리를 내며 공원 앞으로 모여들었다. 평화의 상징에서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존재가 된 비둘기들, 나는 아무 감정 없이 새들을 지나치곤 했는데, 어느 날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그 붉은 발을 보고 말았다. 발톱이 뜯겨나가 상처투성이가 된 비둘기의 붉은 발은 자동차 타이어도 녹일 듯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차와 인파를 피해 먹이를 찾다가 잠시 쉴 곳을 찾아 날아올랐다. 우리가 그러하듯,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온힘을 내서 살아간다. 비둘기의 붉은 발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우리는 다른 동물과 자매가 되는 존재일 수 없을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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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의 투옥과 입국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몽양은 끝끝내 해외에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국내에 들어와야 하는가? 몽양은 해외에 혁명의 뿌리를 깊이 박았다.
해외에 있는 애국청년들은 다 몽양의 동지였다. 비록 산하가 가로막혀 서로 얼굴은 못 볼지라도 성기(聲氣)가 상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내에 들어와 국내에도 독립운동의 뿌리를 박을 필요가 있지 않은가.
당시 국내에 있는 소위 지사(志士)들은 거의가 무위호신(無爲護身)에만 급급해 있었다. 몽양마저 그런 짓이나 하려면 들어올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몽양은 열화 속에든 홍수 속에든 뛰어들어 투쟁할 기개와 실천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의 폭염에 사막이 된 이 땅에서 샘물을 파내고, 국혼이 고목같이 말라가던 그때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모양 같은 인물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이와 같이 당시 객관적 정세로 보아 몽양의 입국은 꼭 필요했고, 입국하되 투옥이라는 극적 상황으로 입국한 것은 침체해가는 독립투쟁에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조선독립운동 면에서나 또한 독립투사로서의 몽양자신에게나 중요한 계기요, 사건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P198

이토 검사와의 본격적인 문답을 한두 가지 적어본다.
"피고가 생각하고 있는 조선독립운동이라는 것은 조선에서 행해지는 일본의 정치가 나빠서 조선을 일본 정치기반에서 이탈시키려는 것인가?"
"그렇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조선민족에게도 인격이 인정되어야 한다. 즉 사람에게 인격이있는 것처럼 민족에게도 인격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조선의 독립은 꼭 필요불가결한 것이니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해서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정치는 너무나 나쁘다. 조선민족으로부터 빼앗아 가는 정치를 하고 있으니 조선민족은 살기 위해서 부득이 독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 길가에서 피로곤비한 민중을 보라, 빈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절박한…아, 감개무량하다."
"피고는 장래에 어떠한 태도로써 조선에 임할 것인가?"
"역시 민족해방운동에 정진할 것이다. 이것도 안 된다면 할 수 없이 향리로 돌아가 호미를 잡을 수밖에." - P201

문 : 그대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여하한 견해를 갖는가?
답 : 마르크스의 이론에는 찬성하지만 그대로의 실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오. 특히 조선 같은 경우는 폭력으로 실행할 바가 아니라 믿소.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에서는 레닌주의가 되고, 중국에서는 삼민주의가 되어 있지만,
조선에서는 그 사정을 러시아나 중국과는 달리하고 있다.
고 생각하오.
문 : 그대는 레닌 등의 동방정책, 즉 민족해방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갖는가?
답 : 나는 직접 모스크바에서 레닌과 만났소만 만나기전까지는 사실 러시아가 조선에다 공산주의를 그대로 선전하려 들지 않나 적이 걱정하였으나 만나본즉 그는 조선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소. 조선의 교통과 국어를묻기에 교통은 하루에 전통될 정도, 국어는 한 개 국어라하니까 레닌은 ‘매우 좋다. 조선은 전에는 문화가 발달했지만 목하는 민도가 낮으므로 곧 공산주의를 실행하려 드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은 민주주의부터 실행함이 현명할것이다‘고 말했는데 내 소신에 합치되매 나는 매우 만족하였소.
문 : 그러면 그대는 자본주의를 바라는가?
답 : 이상으로는 공산주의를 찬성하오만 실행문제에선 조선에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고 보오. 조선엔 먼저 자본주의를 발달시키고 그 다음에 공산주의를 실행해야 될 것이오. 러시아에서도 신경제정책이니 5개년 계획이니 하고 시대와 장소에 적응시켜 고쳐가면서 실행하는 것이오. - P211

몽양은 독방에서 그물을 뜨되 그저 기계적으로 막연히 뜬것이 아니었다. ‘임연선불여퇴이결망(臨淵羨魚不如退而結網)‘이라는 한시를 생각하며 떴다. 을사조약 직후 몽양이 상을 당해 향리에 내려가서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칠 때도이 한시를 생각하며 그대로 실천했던 것이다. "연못에 가서 고기를 탐내는 것은 물러가서 그물을 뜨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이 한시는 준비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다. - P219

출옥 8개월 만인 1933년 3월 16일, 몽양은 중앙일보 사장직에 취임하게 된다. 몽양은 취임사에서 다음처럼 소감을말했다.

"세계의 풍운이 정히 급박한 이때에 내 감히 이러한 중책을 지게 되니 스스로 난감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본시우리의 언론기관이란 그 경영의 간난함이 천인현애 (千인懸崖)에 달리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심한 바이거늘, 하물며 오늘날 이 ㅔ굽이에 당해서일까 보냐•••." (『중앙일보』,
1933년 3월 17일자에서) - P227

최린은 당시 독립운동을 하지 말고 일본인 밑에서 편안히살자는 시중회(時中會)라는 정치단체를 만들어가지고 전국을 순회강연하며 돌아다녔다. 그 당시 함흥고보 1학년이었던 필자는, 동명극장에서 아일랜드가 독립하지 않는 이유를견강부회하던 최린의 모습과 목소리가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하다.
조선중앙일보가 시중회를 하도 공격하자 하루는 최린이몽양을 찾아왔다.
"사회가 너무 침체하기에 이러한 정치운동을 일으킨 것이고, 내 주의도 조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너무 공격을 말아달라."
몽양은 반문했다.
"최린 씨는 독립선언서를 발표할 때와는 아주 달라졌다.
그대가 하는 일이 참으로 조선을 위하는 것이라면 중앙일보의 공격쯤으로 일이 아니 될 리가 없다. 자신이 있으면 용진할 뿐이다. 내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내 공격을 방해로 볼 까닭도 없으며, 따라서 그런 주문을 할 필요도 없지않은가?" - P235

몽양은 우리나라 역대인물 중에서 문무를 겸한 이순신 장군을 가장 좋아했다. 1935년 봄 그 누구도 감히 선뜻 손을댈 수 없었던 그 무렵, 현직 신문사 사장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충무공 묘역 정화에 나섰다. 황폐한 묘소 토역을 말끔히마치고 나무를 심고 이각경 글씨로 된 장군의 송덕비를 세워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후손들을 위로하였다.
1936년 5월, 휘문고보 5학년의 18세 소년인 김성집은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1회 전 일본 역도대회 겸 베를린올림픽 파견 선발대회에 참가하여 미들급에서 라이트급의 김용성과 함께 당당 우승을 차지하여 당시 신문들을 떠들썩하게했다. 김 선수는 추상이 특기로서 추상과 인상 두 종목만의점수로도 차점자 일본 선수의 세 종목 점수보다 많았다고하니 당시 김성집의 역도 실력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에 돌아오자, 김 선수는 제일 먼저 몽양을 찾아 인사를 드렸다.
"여선생이 그렇게도 좋아하실 수 없어요. 만면에 웃음을띠시고 어쩔 줄을 몰라해요. 그 좋아하시던 여 선생 모습을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몽양, 서상천, 김용성과 넷이서 찍은 기념사진을 6.
25 때 잃어버렸다면서 김성집은 여간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는 모양이 8. 15 해방 후 초대 조선체육회장으로 있을때, 서울운동장 등에서 여러 차례 연설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1947년 4월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서윤복 선수가 우승의 영광을 안고 돌아왔을 때, 군정청(중앙청)앞 광장 환영대회에서 행한 연설은 가장 감명 깊었다고 회고했다.
1947년 8월 3일, 몽양장례식 때 김성집 씨는 손기정 · 석진경 · 이제황 · 김유창·정상윤·이성구 · 이순재 등 체육인과 함께 흰 상복을 입고 고인의 영구를 호위, 운구와 하관을 담당했다며 못내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 P246

손기정 선수가 세계 제패의 역사적인 우승 테이프를 끊은것은 베를린 시간으로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지나서이고우리나라 시간으로는 10일 꼭두새벽이었다. 8월 10일자 아침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마라톤 세계 제패」의 감격적인 호외와 그 뒷면에 실린 심훈(沈薰)의 「오오, 대한남아여!」라는 즉흥시가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조선중앙일보의 운명의 시각은 다가오고야 말았다.
"베를린에서 돌아와서 여선생을 만나니 선생이 뭐라고말씀하셨어요?"
"어디 만날 수 있어야다. 왜놈들이 통 못 만나게 해서리.
몇 달 후에 만났디랬지. 감격이 김빠진 후에, 여 선생도 신문사를 그만둔 후고."
47 년 전을 회상하는 왕년의 패자 손기정 씨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 P256

"이 사건은 일본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영 · 미가 중국에서 장거리 경주를 하는데 제1차대전 전까지는 영국이 패권을 잡았고, 전쟁 중에는 일본이 잡았고, 전쟁 후에는 미국이 패권을 잡아 미국의 차관이 단연 증가하니 일본은 자기가 독점하지 못한 데 분개하여 노구교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독점은 영 · 미가 절대 불허한다. 이때에 양국은 반드시 합작하여 일본에 대항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요소인 원료시장 · 소비시장 · 투자시장, 이 세 가지가 중국에는 구비되어 있다. 이런 좋은 시장인 중국이 경제적 자립을 못하였으니 저기압이 생긴 곳에 공기가 밀려들듯 자본주의 세력은 이 저기압 시장으로 밀려들 것이고 어느 일국의 독점은 불가능한 것이다. 각국이 침입하는 중에 일국의 세를 제지하고 중국은 갱생의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국가인 미국이나 영국이 이런 시장을 어느 한 나라의 독점에 맡겨둘 리가 없는데 더욱이 저들이 만만히 보고 있는 일본국의 독점이야말로 허용할 리가 절대 없다. 영미는 반드시 중국의 운동을 빌려가지고 일본과 싸울 것이다. 미국 혼자서도 일본을 대항하기에 넉넉할 터인데 황차 삼국이리요. 그러므로 일본은 자멸하고 조선은 해방될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기다리고 준비하여야 한다." ( 동양의 구술과 『여운형 투쟁사』에서)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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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역학자 김승섭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인권침해와 차별의 고통이 어떻게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과학적 통계와 연구 자료로 증명해 보인다. ‘말하지 못한 상처‘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몸에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새겨진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겪는 차별의 경험은 사람을 아프게 했다. 차별을 경험한 이들이 그렇지않은 사람에 비해 건강이 좋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중에서도 차별 경험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말하지 못한 집단(주로 여성)이 더 많이 아픈 것으로 확인되었다.  - P84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노인들이 있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안 대부분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정부의 각종 민원기관을 두루 거친 지극히 개인적인 민사 분쟁으로 대통령이 와도 해결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지만, 노인들은 간절한 마음에 매일 눈비 맞으며 청와대 앞에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와대 관계자가 1인시위하는노인들을 은밀히 불러 만찬을 대접하고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흰 봉투를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나의 진정인 중 한분이 그날받은 흰 봉투를 소중히 꺼내 보여주면서 "대통령이 주신 마음"이라고 했다. 하얀 봉투 속에는 빳빳한 1만원권 신권 열장이 들어 있었다. 백일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와대 앞을 찾는 노인들에게 대통령으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배려의 방법이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돈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민원접수메일 주소의 아이디는 호소(hoso@humanrights.go.kr)다. 인권위 민원 메일 주소를 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구나 무엇이든 억울한 일이있으면 호소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메일 아이디를 호소로 정했다. 비록 인권 팔이라는 욕을 먹을지라도 더 낮고 어려운 사람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호소를 듣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 P103

본격적인 피해자 면담 조사에 앞서 간단한 설문지와 진술서 양식을 돌렸다. 참가자들이 쓴 설문지와 진술서를 정리하면서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이 쓴 것 같은 글씨체와 잘못된 맞춤법으로 구성된 이상한 문장들이 종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워크숍 내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던 그들이 작성한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들었고, 막대한 예산이 사용된 워크숍의 결과가 고작 읽기도 어려운 진술서인가 싶어 속이 상했다. 나의 불만을 눈치 챈 인권활동가가 친절하고도 상냥하게 알려주었다.
"조사관님, 그거 아세요? 농인들이 수어를 배우는 것은 청인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그들이 글을 쓰고 읽는 건 영어 외에 제2외국어로 독일어나 불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죠. 그러니까 수어로 대화하는 것은 유학도 안 가고 동시통역사가 된 사람과 같은 거예요. 대단하죠? 제아무리 뛰어난 동시통역사도 외국어를 몇개씩 유창하게 구사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청인의 기준에서 피해자들이 쓴 한글이 서툴고 문법이 틀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제2외국어로 그 정도 해냈다면 정말 훌륭한 것 아닐까요?"
불만은 금세 부끄러움이 되었다. - P114

 사건 종결후에 다시 만나 안부를 주고받은 이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프놈펜 사건은 여러 방면에서 새로운 선례를 남기고 있었다. 카페를 나오는데 그녀가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폭신한 털이 들어 있는 검은색 가죽 장갑이었다. 받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내게 그녀는 말했다. "조사관님, 조사관님의 손이 계속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손 내밀어주셨을 때처럼요. 그 말을 듣는데 도저히 상자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선물은 여전히 포장 그대로 옷장 서랍에 들어 있다.
나는 겨울이 되면 무슨 연례행사처럼 장갑을 꺼내 껴보곤 한다. 그러면서 한번씩 생각한다. 억울한 사람들의 고통과 용기에 대하여, 진실에 불을 밝히는 낯선 이들의 호의와 선의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바람대로 조사관으로서의 나의손이 여전히 따뜻한지를. 내가 가는 길이 좋은 선례가 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 P142

‘아무리 악랄한 범죄자라도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적법한 절차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언제부턴가 이 문장 앞에서 자신이 없어진다. 그날 강간 피의자를 향한 분노와 혐오로 부들부들 떨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인권의 피해자들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무해한 존재이며, 선량한 시민이거나 무고한 희생자, 억울한 피해자였지만, 현실에서 만난 이들이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때때로 악랄하고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에가까웠다. 그때마다 나는 놀라고 당황하며, 인권을 보호한다는것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인권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사람의 한계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인권의 이념과 현실 사이에 까마득한 골짜기가 생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그 골짜기는 더 깊게만 느껴진다. 골짜기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처럼 관조하듯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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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는 아버지의 지방 발령으로 어느 바닷가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야 했다. 밤늦게 서울에서 출발하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고, 아침 햇살이 얼굴을 때려 잠에서 깨었을 때도 여전히 자동차는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닷가 작은 마을에 새로 지어진 단층양옥집이었다.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보았다. 바닥이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파란 한려수도의 바다를 때는 여름 방학 시기인 8월이었기에 주변은 온통 푸르렀다. 집 근처의 논과 들판, 산등성이들은 초록이 한창이었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야트막한 집 몇 채만지나가면 바로 맑은 바다가 나타났다. - P12

500만 년의 폭발 순간 이후, 다시 5억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38개의 동물 문에는 하나의 새로운 문도 추가되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수십 억 년 동안에도 제자리걸음이었던 생명체의 새로운 모습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다양하게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새로운 동물문이 추가되지 않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5억 년 전에 처음 생겨나지금까지 지속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5억 년의 시간 동안 그변화를 능가하는 새로운 변화를 허락하지 않은 굳건한 무언가 말이다.
이처럼 진화상에서 갑작스레 많은 동물 문들이 추가된 것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저마다 증거들을 해석해 캄브리아기의 생물 대폭발을 일으킨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빛 스위치 이론 Light Switch Thoery‘이다. 빛, 정확히 말해 빛을 식별할 수 있는 기관인 ‘눈‘의 존재가 수많은 생명체를 진화시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 P15

하지만 단순히 빛을 느끼는‘ 것과 빛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빛을 느끼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하고 빛과 함께하는 열기를 피부감각으로 느끼는 것에 불과하지만, ‘보는‘ 것은 빛을 이용해 주변 사물의 존재와 위치를 감지하고 상대를 식별할 수 있게한다. 물론 눈이 없어도 소리(청각)나 화학물질(후각과 미각), 혹은 기타다른 감각 장치를 이용해 상대를 식별하고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아니다. 하지만 빛은 그만의 특성이 있다.
지구는 태양에 의해 하루 중 절반은 빛을 받는다. 그리고 빛은 빠르다. 빛은 소리나 화학물질에 비해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도 상대를 식별할 수 있게 한다. 즉, 타자의 발자국 소리나 냄새가 인지되었을 때는 이미 피하기 힘들 만큼 충분히 가까운 경우가 많지만, 빛을 이용해 상대를 감지하는 건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충분히 가능하다. 멀리서도 상대를 파악해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 이것이생물체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P16

삼엽충은 현대의 절지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외부가 단단한 골격으로 덮여 있는 외골격 동물이다. 삼엽충의 외골격 기본 구성물질은 탄산칼슘이었다. 그래서 지구상에 최초로 나타난 눈이 방해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방해석은 투명한 마름모꼴의 결정체로 출토되는 암석으로,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진 돌이다. 흑연을 이루는 것이 탄소인 것처럼 방해석을 이루는 물질이 바로 탄산칼슘인 것이다. 방해석은투명해서 빛이 잘 투과하는데다 삼엽충 입장에서는 어차피 외골격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으니 조달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이렇듯 삼엽충은 광물질인 방해석을 이용해 눈을 만들었다. 이건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에게 행운의 요소가 되었다.
사람을 비롯해 대부분의 포유동물의 눈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단백질은 무르고 변성이 잘 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겨지기가극히 어렵다. 하지만 방해석으로 만들어진 삼엽충의 눈은 그 자체가 단단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겨지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그 결과 인류는 수억 년 전에 살던 삼엽충의 눈을 원형과 크게 어긋나지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된 삼엽충의 눈은 대부분의 절지동물들이 그렇듯 여러 개의 작은 홑눈이모여 만들어진 겹눈 구조를 띠고 있다. - P19

 즉 각막을 지난 빛은 홍채가 만든 틈, 동공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고 수정체를 통해 굴절된 뒤, 유리체 vitreous body를 통과해 망막에 상을 맺는다. 이렇게 형성된 상은 시각신경을 통해 눈 뒤쪽으로 빠져나가 뇌로 전해지고, 뇌는 이 신호를 읽어 이미지를 해석한다. - P23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 또는 자연현상에서 수립된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라는 논문을 통해 생물은 신의 의도에 의해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시계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계처럼 대상 자체가 정밀하고 복잡한 물체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시계보다 100만 배 쯤은 더 복잡하고 정밀한 생명의 탄생에는 창조주의 의도적인 설계가 있었을 것이라 유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특히 페일리의 시계 논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눈‘이다. 각각의 시계에 반드시 시계를 만든 시계공이 존재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복잡하고 정교한 눈에는 훨씬 더 정교하고 위대한 창조주나 조물주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애석하게도 우리의 눈이 어떤 식으로 진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증거는 거의 없다. 앞서 말했듯 사람의 눈은 삼엽충의 그것과는 달라서 대부분 화석적 증거로 남겨지기 전에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구성하는 구조물들이 어떤 순서로 나타났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그렇다면 우리 눈은 특정한 설계도에 따라 처음부터 이 상태 그대로 만들어진 것일까? - P29

비록 시야의 확장 분야에서는 사람의 눈이 말이나 토끼보다 못하더라도사람의 시야 효율이 꼭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의 경우, 눈이 얼굴 전면에 가깝게 존재하는 덕에 시야는 좁지만 대신 두 눈의 시야가 상당 부분 겹쳐지면서 원근감과 입체감의 판별에 있어 매우 유리하다. 눈이 두 개이고 두 눈이 약간이라도 떨어져 있다면 각각의 눈에 들어오는시각 영역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눈앞에 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양쪽눈을 번갈아 윙크하듯 감아보면, 눈을 번갈아 뜰 때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양쪽 눈이 보는 세상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하나의 대상에 대해 두 개의 상을 형성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각각의눈에 들어온 시각 정보를 합쳐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게 된다. 양쪽 눈에서 각각 뻗어 나온 시신경이 뇌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로 합쳐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며 이렇게 양쪽 시야를 합치는 과정에서 시야에 입체감이더해진다. 사람의 눈은 비록 시야가 넓은 편이 아니지만, 원근감과 입체감을 판별하는 데 매우 탁월하다. - P40

동물들도 말이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은 얼굴 측면에 따로따로 눈이 존재하지만,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육식동물의 경우 얼굴 전면 중앙부에 두 개의 눈이 빛나고 있다. 이렇게 눈의 위치가 다른 것은 아마도 쫓는자와 쫓기는 자의 숙명 때문일 것이다. 초식동물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천적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천적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따지기에 앞서 일단 천적 - 혹은 천적으로 의심되는 존재 - 이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쳐야 살아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들은 눈의 위치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림으로써 각각의 눈이 지닌 시야를 최대한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반면 육식동물의 경우, 눈앞의 먹잇감이 하나는 백이든 내 발톱으로 움켜쥐기 전까지는 모조리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단순히 보이는 것보다, 대상과의 거리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그래서 이들은 넓은 시야 대신 좁지만 겹쳐지는 시야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감과 입체감을 획득한다. - P44

대부분의 곤충은 여러개의 작은 낱눈이 모인 겹눈 두 개와 세 개의 홑운을 가진다. 하지만 홑눈은 빛의 명암만을 구별할 수 있어 세상을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시각을 가진 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곤충에게 있어서도 색채,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정보, 입체적 감각등을 담당하는 것은 홑눈이 아니라 겹눈이다. 사실 곤충의 눈이 굳이 겹눈을 이룰 필요는 없다. 곤충의 겹눈을 이루는 낱눈은 비록 크기는 작아도 저마다 키틴질로 이루어진 볼록렌즈 모양의 각막, 유리체, 시세포로이루어진 소망막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조그만 눈이다. 이런 조그만 눈들이 모여서 커다란 눈을 이루게 된다. 하나의 겹눈을 이루는 낱눈의 개수는 종류에 따라 달라서 주로 땅 속에서 살고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는개미의 경우 아홉 개 정도이지만 나비는 1,500개, 꿀벌은 5,000개로 이루어지며, 곤충계의 사냥꾼인 잠자리의 경우 무려 2만8,000개의 낱눈이 모여 하나의 겹눈을 이룬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형성하는 겹눈의 개수는두 개다. - P47

시력 視力, visual activity가능한 시야 각도‘라고 정의되어 있다. 눈의 인식력은 크게 분리력Separability (서로 떨어진 두 점을 구별할 수 있는 해상력), 가시력Visibility (인식가능한 물체 혹은 점의 최소 크기)뿐 아니라 가독력 Legibility (가장 작은 그림과 문자의 판독력), 판별력Discriminability (시야 내 여러 물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인식력) 등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시력이 좋다는 것은 단지 얼마나 작은 것을 볼 수 있느냐 뿐만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느나. 얼마나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느냐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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