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라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는 아버지의 지방 발령으로 어느 바닷가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야 했다. 밤늦게 서울에서 출발하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고, 아침 햇살이 얼굴을 때려 잠에서 깨었을 때도 여전히 자동차는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닷가 작은 마을에 새로 지어진 단층양옥집이었다.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보았다. 바닥이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파란 한려수도의 바다를 때는 여름 방학 시기인 8월이었기에 주변은 온통 푸르렀다. 집 근처의 논과 들판, 산등성이들은 초록이 한창이었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야트막한 집 몇 채만지나가면 바로 맑은 바다가 나타났다. - P12

500만 년의 폭발 순간 이후, 다시 5억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38개의 동물 문에는 하나의 새로운 문도 추가되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수십 억 년 동안에도 제자리걸음이었던 생명체의 새로운 모습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다양하게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새로운 동물문이 추가되지 않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5억 년 전에 처음 생겨나지금까지 지속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5억 년의 시간 동안 그변화를 능가하는 새로운 변화를 허락하지 않은 굳건한 무언가 말이다.
이처럼 진화상에서 갑작스레 많은 동물 문들이 추가된 것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저마다 증거들을 해석해 캄브리아기의 생물 대폭발을 일으킨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빛 스위치 이론 Light Switch Thoery‘이다. 빛, 정확히 말해 빛을 식별할 수 있는 기관인 ‘눈‘의 존재가 수많은 생명체를 진화시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 P15

하지만 단순히 빛을 느끼는‘ 것과 빛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빛을 느끼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하고 빛과 함께하는 열기를 피부감각으로 느끼는 것에 불과하지만, ‘보는‘ 것은 빛을 이용해 주변 사물의 존재와 위치를 감지하고 상대를 식별할 수 있게한다. 물론 눈이 없어도 소리(청각)나 화학물질(후각과 미각), 혹은 기타다른 감각 장치를 이용해 상대를 식별하고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아니다. 하지만 빛은 그만의 특성이 있다.
지구는 태양에 의해 하루 중 절반은 빛을 받는다. 그리고 빛은 빠르다. 빛은 소리나 화학물질에 비해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도 상대를 식별할 수 있게 한다. 즉, 타자의 발자국 소리나 냄새가 인지되었을 때는 이미 피하기 힘들 만큼 충분히 가까운 경우가 많지만, 빛을 이용해 상대를 감지하는 건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충분히 가능하다. 멀리서도 상대를 파악해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 이것이생물체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P16

삼엽충은 현대의 절지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외부가 단단한 골격으로 덮여 있는 외골격 동물이다. 삼엽충의 외골격 기본 구성물질은 탄산칼슘이었다. 그래서 지구상에 최초로 나타난 눈이 방해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방해석은 투명한 마름모꼴의 결정체로 출토되는 암석으로,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진 돌이다. 흑연을 이루는 것이 탄소인 것처럼 방해석을 이루는 물질이 바로 탄산칼슘인 것이다. 방해석은투명해서 빛이 잘 투과하는데다 삼엽충 입장에서는 어차피 외골격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으니 조달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이렇듯 삼엽충은 광물질인 방해석을 이용해 눈을 만들었다. 이건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에게 행운의 요소가 되었다.
사람을 비롯해 대부분의 포유동물의 눈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단백질은 무르고 변성이 잘 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겨지기가극히 어렵다. 하지만 방해석으로 만들어진 삼엽충의 눈은 그 자체가 단단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겨지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그 결과 인류는 수억 년 전에 살던 삼엽충의 눈을 원형과 크게 어긋나지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된 삼엽충의 눈은 대부분의 절지동물들이 그렇듯 여러 개의 작은 홑눈이모여 만들어진 겹눈 구조를 띠고 있다. - P19

 즉 각막을 지난 빛은 홍채가 만든 틈, 동공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고 수정체를 통해 굴절된 뒤, 유리체 vitreous body를 통과해 망막에 상을 맺는다. 이렇게 형성된 상은 시각신경을 통해 눈 뒤쪽으로 빠져나가 뇌로 전해지고, 뇌는 이 신호를 읽어 이미지를 해석한다. - P23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 또는 자연현상에서 수립된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라는 논문을 통해 생물은 신의 의도에 의해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시계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계처럼 대상 자체가 정밀하고 복잡한 물체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시계보다 100만 배 쯤은 더 복잡하고 정밀한 생명의 탄생에는 창조주의 의도적인 설계가 있었을 것이라 유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특히 페일리의 시계 논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눈‘이다. 각각의 시계에 반드시 시계를 만든 시계공이 존재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복잡하고 정교한 눈에는 훨씬 더 정교하고 위대한 창조주나 조물주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애석하게도 우리의 눈이 어떤 식으로 진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증거는 거의 없다. 앞서 말했듯 사람의 눈은 삼엽충의 그것과는 달라서 대부분 화석적 증거로 남겨지기 전에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구성하는 구조물들이 어떤 순서로 나타났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그렇다면 우리 눈은 특정한 설계도에 따라 처음부터 이 상태 그대로 만들어진 것일까? - P29

비록 시야의 확장 분야에서는 사람의 눈이 말이나 토끼보다 못하더라도사람의 시야 효율이 꼭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의 경우, 눈이 얼굴 전면에 가깝게 존재하는 덕에 시야는 좁지만 대신 두 눈의 시야가 상당 부분 겹쳐지면서 원근감과 입체감의 판별에 있어 매우 유리하다. 눈이 두 개이고 두 눈이 약간이라도 떨어져 있다면 각각의 눈에 들어오는시각 영역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눈앞에 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양쪽눈을 번갈아 윙크하듯 감아보면, 눈을 번갈아 뜰 때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양쪽 눈이 보는 세상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하나의 대상에 대해 두 개의 상을 형성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각각의눈에 들어온 시각 정보를 합쳐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게 된다. 양쪽 눈에서 각각 뻗어 나온 시신경이 뇌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로 합쳐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며 이렇게 양쪽 시야를 합치는 과정에서 시야에 입체감이더해진다. 사람의 눈은 비록 시야가 넓은 편이 아니지만, 원근감과 입체감을 판별하는 데 매우 탁월하다. - P40

동물들도 말이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은 얼굴 측면에 따로따로 눈이 존재하지만,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육식동물의 경우 얼굴 전면 중앙부에 두 개의 눈이 빛나고 있다. 이렇게 눈의 위치가 다른 것은 아마도 쫓는자와 쫓기는 자의 숙명 때문일 것이다. 초식동물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천적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천적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따지기에 앞서 일단 천적 - 혹은 천적으로 의심되는 존재 - 이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쳐야 살아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들은 눈의 위치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림으로써 각각의 눈이 지닌 시야를 최대한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반면 육식동물의 경우, 눈앞의 먹잇감이 하나는 백이든 내 발톱으로 움켜쥐기 전까지는 모조리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단순히 보이는 것보다, 대상과의 거리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그래서 이들은 넓은 시야 대신 좁지만 겹쳐지는 시야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감과 입체감을 획득한다. - P44

대부분의 곤충은 여러개의 작은 낱눈이 모인 겹눈 두 개와 세 개의 홑운을 가진다. 하지만 홑눈은 빛의 명암만을 구별할 수 있어 세상을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시각을 가진 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곤충에게 있어서도 색채,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정보, 입체적 감각등을 담당하는 것은 홑눈이 아니라 겹눈이다. 사실 곤충의 눈이 굳이 겹눈을 이룰 필요는 없다. 곤충의 겹눈을 이루는 낱눈은 비록 크기는 작아도 저마다 키틴질로 이루어진 볼록렌즈 모양의 각막, 유리체, 시세포로이루어진 소망막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조그만 눈이다. 이런 조그만 눈들이 모여서 커다란 눈을 이루게 된다. 하나의 겹눈을 이루는 낱눈의 개수는 종류에 따라 달라서 주로 땅 속에서 살고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는개미의 경우 아홉 개 정도이지만 나비는 1,500개, 꿀벌은 5,000개로 이루어지며, 곤충계의 사냥꾼인 잠자리의 경우 무려 2만8,000개의 낱눈이 모여 하나의 겹눈을 이룬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형성하는 겹눈의 개수는두 개다. - P47

시력 視力, visual activity가능한 시야 각도‘라고 정의되어 있다. 눈의 인식력은 크게 분리력Separability (서로 떨어진 두 점을 구별할 수 있는 해상력), 가시력Visibility (인식가능한 물체 혹은 점의 최소 크기)뿐 아니라 가독력 Legibility (가장 작은 그림과 문자의 판독력), 판별력Discriminability (시야 내 여러 물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인식력) 등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시력이 좋다는 것은 단지 얼마나 작은 것을 볼 수 있느냐 뿐만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느나. 얼마나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느냐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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