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xit West

난민들이 넘쳐나지만 대체적으로는 평온한, 아직 공식적으로 전쟁 중이지는 않은 도시의 강의실에서 젊은 남자는 젊은 여자를 만났으나 아직 말을 걸지 않았다. 여러 날동안. 그의 이름은 사이드, 여자의 이름은 나디아였다. 그는 턱수염을, 아니, 그보다는 턱수염이 되지 않도록 세심히 가꾼 까슬한 정도의 수염을 길렀고, 그녀는 언제나 쇄골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전통 복식을 두르고 다녔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옷차림이며 머리 모양을 어느 정도는 원하는 대로 물론 정해진 선 안에서 하고 다니는 호사를 누리던 때여서, 그런 차림을 선택했다는 데에는 의미가 있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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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굴절률 보정을 위해 카메라는 렌즈의 위치를 앞뒤로 움직여서 초점을 맞추지만, 안구 내에 위치해 이동이 어려운 수정체는 두께를 변화시켜서 이를 보정한다. 수정체와 붙어 있는 조직들이 가까운 곳을 볼 때는 느슨해져 수정체가 두꺼워지고, 먼 곳에서 오는 빛을 받아들일 때는 한껏 수정체를 잡아당겨 얇게 만들어서 빛의 굴절률을 조절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면서도 원래의 모양을 잃지 않으려면 질기면서도 신축성이 좋아야 한다. 손 끝에 닿은 수정체에서 탄성이 느껴진 이유는 이때문이었다.
이렇게 렌즈가 빛을 굴절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명해야한다. 렌즈란 빛을 굴절시키는 것이지, 빛을 왜곡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메라 렌즈에 먼지가 묻거나 손자국이 나기만 해도 사진은 얼룩진다. 수정체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수정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바가 ‘물처럼 맑다‘ 인데 실제로 수정체를 본 사람이라면 다른 이름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수정체가 이토록 투명한 것은 크리스탈린crystalline 이라는 투명한 단백질이 매우 정교하고 균질하게 배열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P130

대부분의 가정가사 교과서에 등장하듯 야맹증을 일으키는 가장큰 원인은 비타민 A의 부족이다. 이는 막대세포가 가지는 광수용색소인 로돕신이 비타민 A와 옵신이라는 단백질의 결합 형태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타민 A가 부족하면 막대세포는 로돕신을 충분히 합성할 수 없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따라서 야맹증이 나타난다. 이 말은반대로 비타민 A만 충분히 보충해주면 야맹증은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실제로 대부분의 야맹증은 비타민 A를 충분히 보충해주면 사라지지만, 부족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각막 건조증이나 감염, 궤양 등의 합병증이 발생해 영구 실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 세계 아이들의 실명 원인 중 1위가 바로 비타민 A의 부족으로인한 것이다. WHO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어린이 중 125만 명이 비타민A결핍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중 50만 명은 결국 영영 빛을 잃게 된다. 실명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비타민 A로 인한 실명이 더욱 가슴 아픈 건, 그 대상이 주로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며 제때 비타민 A만 충분히 공급해주었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치료 가능한 질환‘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애초 1998년 포트리쿠스 박사팀이 일명 ‘황금쌀‘을개발하게 된 계기도,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1,000만 달러를 투자해 황금쌀의 개발과 보급에 힘을 보탠 것도 이러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
황금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비타민 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을듬뿍 함유하도록 만들어진 쌀이다. 노란색을 띠는 베타카로틴이 함유되어 있어 보통의 쌀과 달리 도정 후에도 샛노란색을 띠어 일명 황금쌀로 불려지게 되었다. 왜 하필 쌀일까? 비타민A로 인한 실명 아동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은 동남아시아 지역, 즉 쌀의 소비가 많은 지역이므로 이들이 먹는 주식인 쌀에 비타민A를 포함시키면 적어도 이로 인해 실명허는 아동은 줄어들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 P149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의 눈에 존재하는 모세혈관들은 망막의 뒤쪽이 아니라 망막의 안쪽에 존재한다. 심지어 시신경까지도 안구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그것도 안구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 멀쩡한 망막에 구명 - 인간의 시야에 맹점blind spot‘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 까지 내고서 말이다. 망막이 세상의 빛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망막을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각막과 수정체가 투명한 이유가이 때문 아닌가. 그래서 안구 안쪽에 덕지덕지 붙은 모세혈관들은 당연히 시야에 걸림돌이 된다.
실제로 망막은 깨끗한 스크린이 아니라, 담쟁이덩굴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담벼락에 가깝다. 이렇게 노이즈가 많으면 투명한 각막과 수정체를 만들어놓은 보람이 없다. 이러한 시각적 노이즈를 상쇄하기 위해 우리 몸이 선택한 전략은 눈을 미세하게 진동시키는 것이다. 이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너머를 바라보면 시야가 방해를 받지만, 빠르게 달리는자동차 안에서는 오히려 건너편이 잘 보이는 원리와 동일하다. 우리의뇌는 눈에서 보내는 이미지가 빠르게 변화하면 이들을 통합하여 보려는특성이 있기 때문에 울타리가 주는 가림 효과가 떨어진다. 마찬가지로안구 내부의 혈관들도 가만히 있을 때는 더 확실하게 인식되지만, 안구가 떨리는 경우 이미지를 통합하려는 뇌의 특성으로 인해 시야를 덜 방해받게 된다. - P152

하지만 아무리 기름층으로 덮여 있다 하더라도 눈물층 자체는 워낙 얇기에 눈물은 금방 증발한다. 게다가 눈물의 일차적 기능이 눈을 씻어내는 것이기에 눈물은 계속 순환해야 한다. 따라서 눈물은 눈을 둘러싼 여러 개의 눈물샘에서 만들어져 공급되고, 눈을 고루 적신 뒤 눈물관을통해 코로 빠져나가고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새로 만들어진 눈물들이채운다. 눈물을 흘리며 울면 콧물까지 증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초부터 눈물의 마지막 종착지는 코 속이므로.
이렇게 눈물은 증발과 배수를 통해 조금씩 유실되므로 눈물은 계속해서 공급되어야 한다. 눈에 눈물을 공급하는 것은 아주 쉽다. 그저 눈을 깜빡이기만 하면 되니까.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눈을 둘러싼 수십 개의눈물샘에서는 저마다의 할당량을 내놓고, 눈꺼풀은 이를 눈 표면에 고루퍼뜨린다. 눈을 감았다 뜨는 행위는 마치 자석 스케치보드의 막대를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이전의 그림은 모두 지워지고 다시 철가루로가득 채워진 하얀 판이 나오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는 순간 눈에 다시 눈물이 고르게 공급된다. 차이가 있다면 자석 스케치보드의 철가루들은 아무리 지워도 늘 처음 넣었던 그대로이지만, 눈꺼풀은 감았다 뜰 때마다 새로운 눈물이 다시 눈을 감ㅋ산다는 것이다. - P168

눈의 깜빡임은 특히나 눈꺼풀에 있는 마이봄샘의 지질층 분비를 돕는데, 눈을 빠르고 세게 감을수록 눈물의 분비는 늘어난다. 반대로 눈 깜빡임이 줄어들면 눈물이 말라 눈이 뻑뻑하고 불편한 건성안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3~4초마다 한 번씩 눈을 깜빡여 눈물을공급하도록 ‘눈꺼풀 셔터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중이다. 문제는 이 ‘눈깜빡임‘ 명령어의 우선순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집중해서 볼 때는 ‘눈 깜빡임‘ 명령어는 뒤로 밀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그래서 등장한 증상이 사무실 눈 증후군 office eye syndrome 이다. - P169

왜 비둘기들은 이토록 헤드뱅잉에 집착하는 걸까?
답은 눈 정확히는 눈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에 있다. 비둘기는 사람과 달리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안구를 움직일 수 없다. 안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눈동자를 데굴데굴 돌릴 수 없다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걷거나 움직이면서도 특정대상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걸어가며 가로수를 본다고 가로수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몸의 평형 센서가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에 맞춰 끊임없이 안근을 움직여 시야를 재조정하기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일어나기에 우리는 움직이면서 물체를 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둘기는 다르다. 비둘기는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동하는 과정에서 초점이 맞지 않아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비둘기가 선택한 전략은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처럼 ‘눈 대신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면 비둘기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일차적으로 비둘기는 이를 피하기 위해 목을 뒤쪽으로 쭉 뺀다. 하지만 머리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어깨 위에 얹혀 있으므로 길게 늘이는건 곧 한계에 부딪친다. 그럼 비둘기는 다시 고개를 재빨리 앞으로 잡아당겨 몸과 같은 선에 가져다 놓는데 이 과정에서 시야를 재조정해 다시뚜렷한 시야를 확보한다. 그래서 비둘기는 걸을 때마다 발걸음에 맞춰 리드미컬한 목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 P184

영화 <콘택트>에 등장하는 미국 뉴멕시코 주의 VLA very Large Array의커다란 전파망원경들이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지름 25미터 크기의 대형전파망원경 37대가 대문자 Y형태로 늘어서 우주를 유영하는 전파 신호를 수신하고 있다. 클수록 미세한 신호까지 잡아낼 수 있기에 가능한 크게 만들었고, 여러 대를 배치한 이유도 유효직경을 키워 우주를 바라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전파망원경은 가시광선을 이용하기에 접안렌즈에 눈만 대면 볼 수 있는 광학현미경과는 달리 그 자체로 직접 우주를 볼 수는 없다. 사실 전파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감으로는 인식 불가능한 정보이기 때문에 전파망원경이 수집한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정보의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정보의 형태가 반드시 시각적일 필요는 없다. 즉, 전파 정보를 이미지로 변환할수도 있지만, 소리로 변환하는 것도 가능하고 무방하다. 영화 속 조디 포스터가 늘 헤드폰을 끼고 사는 건, 전파망원경에서 얻은 신호를 변환한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마치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처럼 들리는 별들의 고동을 그녀는 눈보다 귀를 통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 P222

안구는 외부와 단절된 일종의 폐쇄된 공간이므로, 안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유리체는 사후에도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생리화학적 변화에 영향을 덜 받아 죽음의 순간에 나타나는 체내의 생리화학적 물질분포를 그대로 담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유리체의 추출은 주사기만으로도 충분하기에 굳이 안구를 적출할 필요는 없다. 안구를 적출하는경우는 대부분 망자가 어린아이이며, 아동학대로 사망한 것이 의심되는경우라고 한다. 안구를 적출해야만 확실히 보이는 안구 안쪽의 출혈 손상은 아동 학대의 실질적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리고 작은 몸이느꼈을 엄청난 공포와 절망은 죽는 순간까지도 눈에 각인되어 지워지지않는 셈이다. 순간, 핏발선 아이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 P233

눈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눈을 잃는 순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감각과 인식, 경험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눈을 대치할 새로운 눈을 찾고 개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빨리 앞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같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도 많다. 눈이 내게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타인에게도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없다. 선두에 선 과학자들이 더 빨리, 더 정교하게, 더 진짜 같은 눈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함께 나아가는 사회는 더 널리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간다운 눈‘을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것이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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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에 엔도 정무총감은 몽양을 다시 불렀다. 보호관찰소장 나가사키와 백윤화 판사가 동석하였다. 엔도는 지난 문제에 대한 모양의 의견을 듣고, 다음으로 조선의 치안과 학생 사상격화에 대한 대책을 물으며 치안유지에 나서달라고 강청했다. 몽양은 성의 있는 답변으로 그들의 감정을늦춰주며, 공정한 이론으로 그들이 더 강요하지 못하게 누르면서 우선 치안에 대하여 대답했다.
"치안은 여운형이나 누구나 개인적으로 할 수 없다. 조선인이 다 움직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공격은 전문적군대가 하는 일이지마는 방위는 소인(人)인 본토 거주민이 하는 것이니, 각자 자기의 처자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향토를 지키라는 명령 일하에 일치단결하여 위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방위를 위하여서는 본토 거주민이무장을 하는 것이 전쟁상 예가 많다. 독소전쟁에서 스탈린그라드 시민의 활동은 정규군보다 뛰어났었다. 조선에서도조선인 청년부대를 무장시키고, 지휘자로부터 병졸까지 순수한 조선인으로 편성하는 동시에 조선인을 참모로 하고, 육군사관학교 출신과 만주국 내 조선인 장교로 지휘케 하고, 조선인 가운데 사회 유력자를 선발하여 조선방위위원회를 조직하고 전 책임을 지우면 좋을 것이다. 조선인들의 사상을 의심만 하고 실행을 주저하는 것은 정치역량의 약한면만을 드러내게 되는 결과를 빚는다." - P347

몽양은 일본의 패망에 따르는 과도정권 수립을 구상했다.
과도정권 수립은 동서고금을 통해 볼 때 독립운동단체와 독립투쟁 공로자들이 상의해서 세우는 것이 역사상 통례다.
몽양은 이런 원칙적 생각을 가지고 먼저 국내의 독립운동동지들을 규합하여 준비하고 해외의 애국투사들을 맞아들여 혼연일체의 과도정권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런데 당시 국내에는 ‘건국동맹‘ 이외의 다른 단체는 조직이 파괴되어 일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지하운동을 하든가 혹은 투옥 중에 있든가 또는 운동을 중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조직체를 잃은 개인 독립운동가들 가운데에는 몽양 산하에 들어와서 활동한 사람도 몇몇 있었다. 몽양은 ‘건국동맹‘이 발기자가 되어 동맹강령대로 각층 각파를망라한 임시과도정부 수립을 구상했다. - P349

몽양은 연합군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 제시할 4가지 제안을 8월 11일경에 이만규에게 말했다. 4가지 조건은 다음과같다.

(1) 조선의 해방은 연합군의 선전의 결과라고 보아 감사한다. 그런데 조선민족 자체도 합병 전후부터 금일까지 맹렬히 싸워온 것을 해내 · 해외 독립운동의 예를 들어 말하고, 조선인 자체의 피흘린 공이 큰 것을 저들에게 인식시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겠다.
(2) 독립정권 수립에 내정간섭을 하지 말고 엄정중립을지켜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여 달라고 주장하겠다.
(3) 국내 각 공장 시설은 일본인 것이라 하여 적산으로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 노동자의 피땀과 직접 · 간접으로조선인의 부담으로 성립된 것이므로 당연히 조선인의 재산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겠다.
(4) 치안은 조선인에게 맡겨달라고 주장하겠다.

이렇게 몽양은 첫 외교의 강령을 구상해두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자주적 역량과 자존심을 보이고, 사대적이고 아첨하며 비굴한 외교의 민족적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는 몽양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 P350

모양은 엔도를 만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엔도가 비장한 어조로 "일본은 패배했다. 오늘이나 내일 중 공식으로발표될 것이다. 여 선생은 치안을 맡아달라. 이제부터 우리의 생명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몽양은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1) 전 조선의 정치범 · 경제범을 즉시 석방하라.
(2) 집단 생활지인 경성의 3개월분(8~10월) 식량을 확보하라.
(3) 치안유지와 건설사업에 아무런 구속과 간섭을 하지말라.
(4) 조선의 추진력인 학생의 훈련과 청년의 조직화에간섭하지 말라.
(5) 조선 내 각 사업장에 있는 일본 노무자들을 우리의 건설사업에 협력케 하라. - P357

16일 오후 모양의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학생·청년, 기타군중 수천 명이 휘문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몽양을 청하는것이었다. 모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휘문중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우레 같은 열광적 박수 속에 몽양은 군중을 격려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조선민족의 해방의 날은 왔다. 어제 15일에 엔도가 나를불러가지고 ‘과거 두 민족이 합하였던 것이 조선에게 잘못됐던가는 다시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날 나누는 때에 서로좋게 나누는 것이 좋겠다. 오해로 피를 흘리고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도록 민중을 지도하여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나는 다섯 가지 조건을 요구하였다. 우리 민족해방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었으니 우리가 지난날의 아프고 쓰리던 것을이 자리에서 다 잊어버리고 이 땅에다 합리적 · 이상적 낙원을 건설하여야 한다. 이때는 개인적 영웅주의는 단연 없애고 끝까지 집단적으로 일사불란의 단결로 나아가자! 머지않아 연합군 군대가 입성할 터이며, 그들이 오면 우리 민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게 될 터이니 우리들의 태도는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하자. 세계 각국은 우리들을 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백기를 든 일본의 심흉을 잘 살펴자. 물론 우리는 통쾌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우리들의 아랑을 보이자 세계문화 건설에 백두산 밑에서 자라난 우리민족의 힘을 바치자. 이미 전문·대학·중학생의 경비대원이 배치되었다. 이제 곧 여러 곳으로부터 훌륭한 지도자가 들어오게 될 터이니 그들이 올 때까지 우리들의 힘은 적으나마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368

8월 16일 오후 3시, 휘문중학교 강당에서 일반체육 무도계 대표 시내 중학교 이상 체육교사와 학도대표들로 ‘건국치안대‘를 조직하고 풍문학교에 총사령부를 두고, 대장에장권, 사무국장에 정상윤, 총무부장에 송병무 등 각 부서와책임자를 결정하였다.
건국치안대의 임무수행의 개황을 보면,
1. 청년 학생 2천여 명을 동원하여 서울의 치안확보에진력하도록 하고,
2. 지역별 직장별 치안대를 조직하여 각각 치안을 유지4하고, 중요 자재와 기관을 확보케 하며 특히 수원지를 보호하고,
3. 전기회사 · 철도국과 긴밀히 연락하여 생산과 교통원활에 노력하고,
4. 전문 · 대학생을 선발해 각 지방에 파견하여 지방치안대를 조직케 하는 것이었다.
한편 연합군의 진주가 예상 외로 늦어짐에 따라 일본인들은 반동화하여 그들의 지배하에 있던 모든 물자를 소각 · 파괴 · 분산 · 매각하는 등 경제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또한 일본인들은 친일파와 악질배들을 적극 원조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여 치안과 국내 통일을 방해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치안대는 몸에 촌철을 지니지 않고 다만 애국열성만으로 일본인과 악질배들의 음모와 파괴를 분쇄하여 미군이 진주할 때까지 국내 치안을 담당하였다. - P372

다년간 중국에 있었고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소설을 지어 작가로 이름난 미국인 신문기자 에드거 스노(Edga Snow)는 해방 후 조선에 와서 2개월간 머무르면서 정세를 알아보고 귀국한 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에 다음과 같은글을 게재했다.

미국은 아무 준비가 없이 조선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조선에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있었다. 곧 정치적 준비가 있었다. 미국인이 만일 건국준비위원회를 살렸더라면 조선의 건설은 더 신속하고 유리하였을 것이다.

외국인에게 비친 건국준비위원회의 존재였다. - P376

이번에는 몽양이 직접 송진우를 찾아갔다.
"그대 보기에 나의 출발에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국가의 큰일이니 허심탄회하게 나와서 대중의 신망을 두텁게 하고 대사에 차질이 없게 하자"는 모양의 말에도 고하는 "경거망동을 삼가라, 중경 임시정부를 지지하여야 한다"고 고집할뿐이었다.
이때 일부 청년층에서는 "민족적 대사업에 합작을 거절하고 분열을 꾀하는 고하와 왜 타협을 억지로 하려는가?" 하며 고하의 존재를 몽양이 너무 과대시한다고 비난하는 소리도 일어났다. 그러나 몽양은 대동일치를 위하여서는 내 성의를 다하겠다고 하며 노력하였다.
몽양은 처음부터 좌우익의 분열을 방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국제적으로 눈이 어두운 극우지사들과 과격한 좌익운동가들 사이에는 사상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접촉이 없었다. 만나기 전에 불신과 의심만을 가졌기 때문에 이들이 합작하기란 퍽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몽양은 이의 중간사역(中間使役)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공산당원 중에는 몽양이 걷는 노선을 잘 이해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부 극우세력은 임정 운운하며 비타협적으로 나왔다. - P379

‘건준‘이 개편된 지 불과 이틀 후인 9월 6일, 난데없이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이 등장함으로써 ‘건준‘은 그 다음날인 9월 7일 부득불 해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몽양은 외교적관계로 보아서는 ‘건준‘을 존속시켜 그를 중심으로 외교를하는 것이 유리하리라고 보았지만 다수의 의견에 따라 해체하고 말았다.
‘건준‘이 불과 20여일의 단명으로 끝나기는 하였지만, 해방 직후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처하여 치안유지와 민심안정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건준‘이 숨쉰 잠깐은 이보다도 더 근원적인 중요한 의의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한국 민족이 자치할 수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과 그 능력의 표시가 강압적이거나 타율적이 아닌 자발적이요 자율적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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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홍채 속의 멜라닌은 일종의 주머니 같은 구조물인 멜라닌 과립 속에 존재하는데,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은 멜라닌 과립 속에 멜라닌이 거의 들어 있지 않아 멜라닌에 의한 색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빛이 홍채에 유입되는 경우, 멜라닌 과립의 미세한 구조에 의해 파란빛이 더 많이 산란되어 눈이 파랗게보이는 것이다. 백인들 중에는 종종 어릴 때 파란 눈이었다가 커서는 갈색 눈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어릴 때는 멜라닌 세포의 기능이 활발하지 못해 홍채 속의 멜라닌 과립이 비어 있어서 파랗게 보이다가 성장하면서 멜라닌이 채워져 눈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 P123

홍채, 눈의 조리개
홍채의 1차적 역할은 동공의 크기를 적절히 조절하고 눈 안으로 들어가는 광량을 조절해 우리가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홍채가만들어낸 구멍, 즉 동공은 눈 내부로 빛이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이다. 눈의 내부로 들어가는 빛이 너무 약하면 사물을 구별할 수 없고, 반대로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부셔서 역시나 사물 구별이 힘들다. 따라서 빛이 약하면 홍채를 열어 동공을 크게 하고, 빛이 강하면 홍채를 닫아 동공을줄여야 눈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 P124

이처럼 홍채가 중요한 것은 동공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동공의 색은 누구나 검다. 정확히 말하면 동공 그 자체는 원래 투명하지만, 눈 내부는 일종의 암흑상자이기 때문에 내부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검게 보이는 것이다. 고유한 눈 색을 만드는 것이 동공을 제외한 홍채라는 것은컬러 렌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컬러 렌즈라고 해서 모두 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공이 위치한 가운데 부분은 투명하고 가장자리 부위만 색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파란색 컬러 렌즈를 착용하더라도 세상이 파랗게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투명해서 내부가 비치는 동공의 이런 특징은 순식간에 귀여운 아기를 사탄처럼 보이게 만드는 적목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어두운 곳에서 플래쉬를 터트려 사진을 찍을 경우, 이미 열려있던 동공 안쪽에 순간적으로 강한 빛이 들어오면서 투명한 동공을 통해 눈 내부의 혈관이 직접 비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의 붉은 눈은 눈동자 가운데에 동그랗게 만들어진다. 사람의 눈은 홍채 주름이 원형으로 배치되어있어 동공이 동그란 모양을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고양이의 경우에는 세로로 길쭉한 동공을 가지지만, 양이나 염소의경우 가로로 째진 동공을 가지기 때문이다 - P125

동공의 모양은 동물의 습성과 관계가 있다. 미국과 영국의 연구팀은 동물 214종의 동공을 분석한 결과 양이나 소, 말 등 초식동물은 좌우의 시야를 넓혀 사냥꾼을 감시하고 눈부심을 방지하고자 가로로 길게 째진 동공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발표했다. 초식동물의 가로 눈이 정찰용이라면, 고양이의 세로로 길쭉한 동공은 감시용이다. 고양이는 세로로 긴 동공을 가지고 있다. 아주 어두운 곳에서는 이 동공을 크게 확장시켜 눈동자 전체가 동공으로 보일만큼 크게 확장시킬 수도 있고, 빛이 있는 곳에서는 가늘게 좁혀서 초점을 맞추기 용의하다. 게다가 세로형 동공과 가로형 눈꺼풀의 조합은 눈꺼풀을 내리는 위치를 조절하여 아주 세밀하게 빛의 유입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거의 눈을 감고 있는 듯한 경우에도 동공이 완전히 덮이지 않아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매우 유리한 눈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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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동맹 건설

이로부터 며칠 후인 8월 10일, 경성 경운정 삼광한의원의 현우현(玄又玄) 집에 여운형 · 조동호 · 현우현·김진우(金振雨• 이석구李錫玖) 등이 모여 비밀결사인 ‘조선건국동맹‘
을 정식으로 창건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장들은 희생적 결사와 승리의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이날 그들은, 불명(不名,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불거(不居, 거처를 말하지 않는다), 불문(不文,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의 3불맹서(三不盟誓)를 철칙으로 삼고 나아가기로 했다. 일부 희생이 생겨도 연루의 피해가 없게끔 체제를 갖추도록 하고, 친일분자와 민족을 반역한 자만을 제외하고 민족적 양심이 있는 인사를 총망라하여 회사 · 학교 · 대중단체 · 농촌 · 공장 등에 하부조직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출발에서 최초의 모임에는 노장들뿐으로 소장들은 한 사람도 끼여 있지 않았다. 또 몽양과 깊은관계에 있는 이임수도 빠져 있었다. 이유인즉, 만에 하나라도 비밀이 탄로나는 경우 희생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소장들은 앞날을 위해 아끼고 보호하자는 몽양의 원대한 조직적 배려 때문이었다. - P327

강령은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 1) 각인 각파를 대동단결하여 거국일치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구축하고 조선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할 일
(2) 반추축 제국과 협력하여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반동세력을 박멸할 일
(3) 건설부 면에서 일체 시위(施爲)를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거하고 특히 노동대중의 해방에 치중할 일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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