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악대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ASEAN-Republicof KOREA Commemorative Summit) 공식환영식에서 각국 정상들의 입장, 퇴장 음악을 연주했을 때였다. 그냥 적당한 곡을 정해반복해도 그만이었는데 각국 대통령, 총리, 국왕의 상징 음악을애써 구하고 그게 없으면 그 나라의 군가와 행진곡을 찾아서 편곡하고 연습했다. 태국 정상이 퇴장할 때는 태국 음악을, 필리핀정상이 퇴장할 때는 필리핀 음악을 ‘맞춤‘으로 연주해 각국 정상들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보자 우리 군악대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 P86

다음 날 몇몇 극우 유튜버들이 대통령이 백신을 바꿔치기했다는 헛소리를 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닌 화이자를 맞았다며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말들을 소개하는 매체들까지 등장했다. ‘헛소리‘를 ‘보도‘로 확산시키는 매체들의 선정성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들은 심지어 대통령에게주사를 놓았던 간호사의 신상까지 공개했다.
우리는 그 간호사에게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했는데, 다행히 그 간호사는 그런 말들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부담이 있을 것 같아 대통령의 2차 접종때는 다른 사람이 해도 된다고 말하자, 그 간호사는 말했다.
"그런 말들 신경 언 씁니다. 우리 보건소에 다시 오시면, 제가 할 거예요. 이게 제 일입니다." - P108

대통령에게 상황을 말씀드리자 "(그 장소에) 그렇게 계신다면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맞겠지요"라며 차에 오르셨다. 우리는 도착 전에 부모님을 하차 지점으로 모셔 직접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중사 부모님은 대통령 앞에서 조용히 인사를 하고준비한 입장문을 전달했다. 이 중사 어머니는 이 중사 사진을 대통령에게 보여드리며 "지난번에 보셨던 예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조용히 자리를 떠나셨다.
대통령을 앞에 두고 하고 싶은 많은 말을 참으며 딸 사진만을 보여준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또 그 사진을 바라보며잘 알겠다고 답하는 대통령 마음은 어떠했을까. 차마 하소연도못 하는 부모 심정과,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는대통령 마음이 자꾸 같아 보였다.
옆에서 본 대통령의 일이란 권한의 크기보다 책임의 크기가훨씬 더 컸다. 또한 대통령의 일이란 지금 바로, 여기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천천히 확인하여, 여러 가지를종합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
대통령은 결과를 명령할 수 없다. 대통령은 과정만 명령할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명령한 과정을 결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 명령의 결과가 생각과 다를때 깊은 상처를 받는다. 대통령 앞까지 나서야 했던 유가족의 서러운 마음과, 그 마음을알지만 결과를 명령할 수 없는 대통령의 처지, 그 옆에서 우리는 그저 무력했다. - P138

직접 만나본 오희옥 지사는 92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시고 총기가 있었다. 오 지사를 뵙는 순간 이분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행사 전날 리허설 시간에 지사님을 무대로 모셔서 부탁드렸다.
"지사님, 애국가 한번 불러 보실 수 있겠어요?"
"그럼 할 수 있지."
원래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연습 겸 해볼 요량이었는데마침 국방부 관현악단이 잠시 휴식 중이라 연주를 할 수가 없었다.
"지사님, 지금 반주가 없는데 몇 소절만 그냥 해보실래요?"
"어, 그럼 애국가 부르면 되는 거지?"
오 지사는 숨도 고르지 않고 바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희옥 애국지사가 부른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아니라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애국가였다. 우리 애국가에 곡조가 없을 때 스코틀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여 불렀던 애국가, 독립운동가 애국가로 알려진 그 멜로디였다.
"우리가 독립운동할 때는 이렇게 불렀었어."
어린 시절 광복군이었던 부모님과 함께 불렀다는 옛 애국가를, 아무 반주도 없이 92세 노지사의 목소리로 만났을 때, 독립지사들에 대한 경의와 존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들이 겪었을 오랜 고초가 그 노래 마디마디마다 스며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160

한 분, 한 분이 민주화 운동의 역사였고 슬픔이었고 비극이어서 어떤 훈, 포장 수여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회한이 느껴졌다. 이날 국민훈장 모란장 맨 마지막 수여자는 배은심 여사였다. 민주화 운동의 어머니이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무대 위에 서있는 것조차 민망해하신, 그을린 얼굴에 슬프고 또 슬픈 표정을가진 배은심 여사는 민주화 운동 투사가 아닌 그저 아들을 잃은 어머니였다.
일전에 영화 <1987> 시사회에 참석한 대통령이 영화 상영에앞서 관계자들과 환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배은심 여사도 참석하셨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영화를 함께 보자고 제안하셨지만 배 여사님은 "나는 못 보겠어요. 아직은"이라고 말씀했었다. 그 한마디에 대통령 내외분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감독과 배우들, 수행원들 모두 뭐라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 P215

통상 국가 기념행사는 대통령 입장으로 행사가 시작된다. 당연한 의전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이자 수반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보고드렸다.
"이번 광복절 행사에는 대통령께서 먼저 입장하시고 독립유공자분들을 마지막으로 모실까 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매해 행사에 참석하실 수 있는 독립유공자분들의 숫자가줄고 있습니다. 이제 행사에 참석하실 수 있는 분들이 열 분이 안됩니다. 남은 그분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싶습니다."
대통령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우리는 별도의 의전 차량과 의장 병을 애국지사 자택으로 보내 직접 모시고 행사장 안까지 안내했다. 대통령 내외분은 먼저 도착해 자리에 서서 그분들을 맞이했다. 훈, 포장 수여 순서 때 몸이 불편해 무대 위로 올라오지못하는 애국지사 가족을 위해 대통령이 단상에서 내려와 무릎을굽히고 훈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 P244

특사단은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 고려인협회와 함께 유해를 정중히 모시고 공군 특별수송기(KC-330)로 유해를 봉송했다. 특별수송기가 카자흐스탄을 떠날 때는 크즐오르다 상공을 3회 선회한 후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홍범도 장군을 아끼고 사랑했던 고려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으며 장군의 회한을 담은 비행이었다.
공군 특별수송기가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진입한 후에는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때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전투 기종(F-15K, F-4E, F-35A, F-5F, KF-16D, FA-50) 을 모두 투입했는데, 우리 군의위용을 홍범도 장군에게 보여드리겠다는 의도를 가진 엄호 비행이었다. 지상에서는 대통령 내외, 국방부 장관, 안보실장이 홍범도장군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한 김영관 애국지사도 특별히 초청했다. 함께 싸웠던 애국지사가 유족이 없는 홍범도 장군의 귀환을 직접 맞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봉환식은 참석자 전체가 일어선 채로 진행했지만, 연로하신 김 지사가 걱정되어 의자를 하나 놓았다. 하지만 김영관 지사는 한사코 자리에 앉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홍범도 장군에게 거수경례를 하셨고 그 장면은 많은 국민을 뭉클하게 했다.
봉환식을 준비하면서 장군의 유해가 대한민국 땅에 처음 닿을 때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101년만에 해방된 조국 땅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을 환영하는 음악을무엇으로 할지, 그 순간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었다. <고향의 봄>, <독립군가>, <고잉 홈 Going Home〉 여러음악이 떠올랐지만, <올드랭사인> 곡조 애국가를 선택했다. - P277

판문점 회담이 끝나고 얼마 뒤 서태지를 만났다 . 늦었지만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어느날 저녁 그와 마주 앉아 이 모든 과정을 그에게 상세히 소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했다.
"그날 <발해를 꿈꾸며〉가 흘러나올 때 남북 정상들이 그 노래를 들으며 한 방향으로 걸어올 때, 그 노래가 없었으면 정말 어떻게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별말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태지가 말했다.
"그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이 왜 그 노래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불리기를 바랐는지, 그리고 그 노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랐는지, 그날 그 자리에서 다 보여준 것 같았어요. 노래를 만들었을 때의 감정과 그 쓰임이 너무나 잘 맞은 순간이었습니다. 고마웠어요." - P323

미국 명예훈장 (Medal of Honor) 수여식에 양국 정상이 참석했던 장면도 큰 화제가 됐다. 명예훈장은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무공훈장이다. 처음 미국으로부터 이 일정을 제안받았을 때는 감이 오지 않았다. 우리 태극무공훈장 수여식에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훈장을 받는 분이 누구인지 들으니 우리도 양국 대통령이함께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장을 받게 된 랠프 퍼켓 주니어Ralph Puchett Jr. 대령은 한국전의 영웅이었다. 청천강 전투 때 미 특수부대 제8레인저 중대를지휘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날 수여식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후 처음 갖는 1호 훈장 수여식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 있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은 대단히 사려 깊은 제안이었다. 미국은 그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의 연설도 부탁했다. 대통령은 퍼켓 대령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령님은 아까 제게, 당시 한국은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일어섰고,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함께 지켜준 미국 참전용사들의 그 힘으로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랠프 퍼켓 대령님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퍼켓 대령 양옆에서 무릎꿇고 찍은 그날의 사진은 앞으로도 한미동맹을 이야기할 때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가 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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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432번, 작은 인간아. 밤에 취해 정신을 잃지 마라! 너와 함께 감방 안에 있는 것은 너의 불안일 뿐, 다른 것은 없어, 불안과 밤. 그러나 불안은 무시무시한 것. 밤은 우리와 단둘이 남겨지면 유령처럼 무시무시한 것이 된다.
달이 지붕 위를 구르면서 벽면을 비추었다. 멍청이 같으니, 너 말이다! 벽은 여전히 비좁고 감방은 오렌지 껍질처럼 텅 비었다. 신, 훌륭한 존재라고 불리는 신은 여기에 없다.
거기 있으면서 무언가 말했던 것은 네 안에 있는 거였다. 아마도 그건 네게서 나온 신이었겠지. 네가 바로 신이었다고!
왜냐하면 너 또한 신이니까, 모두 다, 거미도 고등어도 다 신이야. 신은 생명이다. 그게 전부라고. 그러나 그것들이 너무많아 신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 밖에는 허무뿐이다.
그러나 이 허무라는 것이 자주 우리를 엄습한다. - P152

우리가 매일 아침 30분씩 작고 지저분한 녹색 잔디 주위를 맴돌았다는 말을 이미 이야기 했던가? 이 기이한 서커스장의 한가운데에는 빛바랜 한 떼의 풀줄기들이 모여 있었다. 창백하고 각각의 줄기 모습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이 참기 힘든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우리 모습과도 같았다. 별 기대 없는 내 눈길이 살아 있는 것, 알록달록한 것을 찾다가 본능적으로 그저 무심히 몇 포기의 풀줄기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풀줄기들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웅크려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는 그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노란 점 하나를 발견했는데, 너른 들판 위에 놓여 있는 작은 게이샤 인형 같아 보였다. 나는 내가 발견한 것에 깜짝 놀라 모두가 그것을 목격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내 눈이 노란 무언가에 가서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내 앞사람의 슬리퍼로 재빨리 눈을 돌려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함께 말하고 있는 사람의 코에 점이 있으면 거기에 계속 시선이 가서 상대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내 두 눈은 그 노란 점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제 그 옆을 가까이 지나갈 때 나는 가능한 한 아무렇지 앓은 듯 행동했다. 나는 한 송이의 꽃을, 한 송이의 노란 꽃을 알아냈다. 그것은 민들레였다. 한 송이의 작고 노란 민들레였다. - P162

가로등, 밤, 별들
ㅡ 함부르크를 위한 시

나는 빛의 탑이 되고 싶다
바람 부는 밤이면 -
대구와 빙어를 위하여,
모든 배를 위하여-
한데 나 자신 스스로
난파선이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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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지난 5년 내내 ‘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정치적 이해에 따른 비난이었다. 그래서 ‘쇼한다‘는 그 말이 나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정치는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일이다. 좋은 정치란 진실과 진심을 담아 보여주는 것이고, 나쁜 정치는 욕망과 욕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수행했던 모든 일은 정치의 범주 안에 있었다. 우리에게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치고 ‘쇼‘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 했던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가." - P5

"여기까지 오는 데 가족도 참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씀은 ‘누군가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직접 받는자리까지 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인데, 그것은 본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가족의 헌신과 희생도 그에 못지않게 컸을 것이다‘라는 취지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임명장 수여식에 대상자뿐 아니라 대상자가족을 함께 초청하기로 했다. 대통령 말씀의 취지도 살리고 한가족의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이 가장 영예로운 순간에 가족과함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더 멋진 수여식을 위해 필요하다고생각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 내내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임명장 수여식에는 꼭 그 가족이 함께 배석하는 원칙을 만들었다. - P45

 그 임명장 수여식에서 꽃다발 때문에 몇 년을 고생한 사람도 있었다. 행안부에서 의전비서관실로 파견을 나온 분이었다. 임명장 수여 주무 부처가 행안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여식 업무가그분의 일이 됐다. 어느 날 그에게 지나가는 말로 "아니 임명장수여식에서 꽃 하나를 선물해도 좀 의미 있는 꽃을 했으면 좋겠어요. 매번 같은 꽃으로 하지 말고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분이 그 말을 듣고 그때부터 정말로 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장에게는 캐머마일 (역경을 이겨내는 힘과 소국(안정)으로 이뤄진 꽃다발을,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게는 아스타(신뢰)와 천인국(협력)으로 구성된 꽃다발을, 민주평통위원장에게는 데이지(평화)와 은방울꽃 (반드시 행복해진다)으로 구성된 꽃다발을 전달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임명장 수여식이 한두 번도 아니고 임명된 사람에게 그때마다 어울리는 꽃을 찾는 일이 얼마나힘이 들까 싶기도 했지만, 꽃다발이 종종 언론에 화제도 되고 하니 잘된 일이었다.
어느 날, 좋은 기분에 함께 술 한잔하게 되어 그 자리에서
"거봐요. 담당자가 신경 쓰니까 바뀌잖아요. 언론도 그렇고 다들좋아하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술에 취한 채 슬 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제가 공무원이지 플로리스트냐고요. 이제 웬만한 꽃집 주인보다 내가 꽃을 더 잘 알아요. 비서관님은 모르세요. 꽃말들을 찾아내느라 제가 얼마나 힘든지.
요즘은 꽃을 보면 꽃말이 먼저 생각나요."
‘플로리스트 ‘정‘, 그땐 미안했습니다. 앞으로 더 잘되실 거예요. - P47

"근데 미국 CIA 입구에는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공간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것이 없나요?"
"아, 우리도 있기는 한데 본관 입구가 아니라 별도 시설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그 추모 공간이 본관 입구에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제대로 의미를 부여해 조성하면 직원들이 매일 오가며 생각할 수도 있고, 이번에 대통령께서 방문하시면 첫 일정을 그분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께서는 순직자들에 대한 예우가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서훈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관계자들은 이러한 생각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이러한 일은 기관이 스스로 하는 모양새보다 대통령이 그 의미를 부여해 주고, 그다음에 조성하는 편이 더자연스럽기도 했다. 국정원은 2017년까지 국정원에서 순직한 18분을 각각 ‘별‘로 형상화하고 그 아래에 이런 글씨를 새겼다.

소리 없이 별로 남은 그대들을 좇아
조국을 지키는 데 헌신하리라.

국정원 본관 입구에 있는 ‘이름 없는 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통령 방문이 계기가 됐지만, 이제 우리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꼬박꼬박 챙기는 나라가 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비록 그들의 이름과 공적을 드러내지는못하더라도, 국가가 반드시 당신의 희생에 보답한다는 약속의 별이기도 했다. - P57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있었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과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있었던 부산국제영화제 외압 사건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며 함께 즐긴다‘는 문화예술에 대한 대통령 철학은아마도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의 부산영화제 깜짝 방문은 대통령이 문화예술계에 가지고 있던 오랜 마음의 빚을 갚는 자리였을지도 모르겠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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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 있는 동물원 전체의 거의 절반이 동물에게 정신과 약물을 투여한다고 시인했으며, 니컬러스의 병원을 찾는 주인의 50에서 60퍼센트가 자기 동물에게 먹일 정신과 약물을 얻으려 한다. 가끔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실제 뻐꾸기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니컬러스를 만나기 전에는 그가 이러한 결과를 특정 방식으로정당화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의사가 주의력 문제를 겪는 자녀들의 부모에게 하는 말, 즉 집중력 장애는 생물학적 원인에서비롯되므로 약물을 이용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리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니컬러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그는 자신의 이 여정이 시작된 지점, 바로 끙끙이를 하던 말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생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말은 지금껏 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말들을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가두는 ‘가축화‘의 문제예요. 말들이 마구간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초기에 그런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끙끙이를 하게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니컬러스가 이 말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표현하나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말들이 "생물학적 목적의 좌절"로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말은 돌아다니고 달리고 풀을 뜯고 싶어 한다. 이런 타고난 본성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말들의 행동과 집중력은 망가지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니컬러스는 "생물학적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압력이 너무 심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이 파괴적인 심리 압박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완화해줄" 행동을 뭐든 찾게된다. - P343

사미는 보통 사람들이 어떤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았다는말을 들으면 폐렴 진단을 받은 것과 비슷할 거라 상상한다고 했다. 이 경우 의사는 숨어 있던 병원균이나 질병을 확인하고, 그 신체적 문제를 해결할 무언가를 처방한다. 그러나 ADHD는 의사가 실시할 수 있는 신체검사가 없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 본인 및 그 아이를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행동이 정신과 의사가 작성한 점검표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그게 다다. 사미는 이렇게 말한다. "ADHD는 진단이 아닙니다. 이따금 동시에 발생하는 특정 행동들의 묘사일 뿐이에요. 그게 전부입니다." 아이가 ADHD를 진단받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아이가 잘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그 말은 ‘왜‘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마치 아이가 기침을 한다는 말을 듣고 실제로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들은 뒤, ‘그렇군요, 아이는 기침을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의사가 아이에게서 집중력문제를 확인한다면, 그것은 진료 과정의 끝이 아니라 첫 단계여야한다. - P350

수십 년간 증거를 모은 끝에 앨런은 "처음에 내가 믿었던 그무엇도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나중에 ADHD를 진단받은 아이들의 "절대다수는 ADHD를 타고나지 않는다. 이들에게ADHD가 나타나는 것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반응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 P354

다른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약물들의 긍정적 효과가 (실재하긴 하지만 놀라울 만큼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뉴욕 대학의 소아청소년 정신의학 교수인 그자비에 카스테야노스는 각성제 효과에 관한 훌륭한 연구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각성제는 반복을 요구하는 작업에서는 어린이의 행동을 개선하지만, 학습 능력은 개선하지 못한다. 솔직히 처음에는그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러다 각성제 처방의 지지자들이 ADHD연구의 황금률로 제시한 연구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14개월간 각성제를 복용한 아이들은 시험에서 1.8퍼센트 나은 결과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행동 지도만 받은 아이들도 1.6퍼센트 개선된 결과를 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증거에 따르면 초기에 나타나는 각성제의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성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내성이 생긴다. 몸이 약물에 익숙해져서 똑같은 효과를내려면 복용량을 늘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어린이에게 허용된 최대 복용량에 다다르게 된다. - P360

 그는 사람들 대다수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일을 하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너무 흥미로워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면서 집중하는 습관을 익힙니다. 흥미로운 것... 내 마음을 빼앗거나 전율을 일으키는 대상이 있을 때는 집중하는 법을 자동으로 배우게되죠." 하지만 오늘날 아이들은 자기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성인의 지시에 따라 산다. 리노어는 이렇게 물었다. "아침 7시부터 잠자리에 드는 밤 9시까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하루가 꽉 찬다면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겠어요? 무엇이 [감정적으로 자신을 흥분시키는지 알아낼 자유 시간이 없다면 과연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의미를 찾을 시간이아예 주어지지 않는 거예요."
동네를 배회하던 어린 리노어는 자신을 신나게 하는 것(독서, 글쓰기, 분장 놀이)을 알아내고 자신이 원할 때 그것을 할 자유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축구나 암벽 타기, 작은 과학 실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그것은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한가지 방식이었다. 오늘날 이 방식은 아이들에게 차단되고 있다. 리노어는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끊임없이 나의 주의력을 관리한다면 어떻게 주의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무엇이 내 마음을사로잡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집중력을 기르는 데 너무나도 중요한 자신의 내재적 동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 P384

오늘날 성인은 어린이와 10대들이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종종 지긋지긋함과 짜증이 깃든 우월감을 느끼며 말을 얹는다. 그 말들은 이런 의미를 내포한다. 이 열등해진 세대를 봐! 우리가 얘네보다 낫지? 쟤네는 왜 우리처럼 못할까?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에게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충족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른인 우리의 일이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대체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자유롭게놀지 못하게 하고, 전자기기 화면으로 소통하는 것 외에는 별로할게 없는 집 안에 아이들을 가두며, 우리의 학교 제도는 대개 아이들을 무감각하고 지루하게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에너지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약물처럼 아이들을 들뜨게 할수 있는 첨가제가 들었으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없다.
우리는 뇌를 망가뜨리는 대기 속 화학물질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아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이 세상의 잘못이다. - P405

그는 집중력의 첫 번째 층이 스포트라이트라고 말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지금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내릴 거야" 같은 "즉각적인행동"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경을 찾고 싶은가? 냉장고 안을 보고 싶은가? 책의 이번 장을 끝까지 읽고 싶은가? 이때 필요한 집중력의 이름이 스포트라이트인 이유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초점을 한곳으로 좁히기 때문이다. 이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거나 방해받으면 우리는 이런 단기적 행동을 수행하지 못한다.
집중력의 두 번째 층은 스타라이트, 즉 별빛이다. 스타라이트는 "장기적인 목표, 그러니까 시간이 드는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집중력이다. 우리는 책을 집필하고 싶다. 사업을 차리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이 집중력의 이름이 스타라이트인 이유는,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별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향하던 방향을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이 스타라이트를 놓치면 "장기적 목표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잊기 시작한다.
집중력의 세 번째 층은 데이라이트, 즉 햇빛이다. 데이라이트는애초에 자신의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주는 집중 형태다. 자신이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아는가? 심사숙고하며 명료하게 생각할 수 없다면 이런 질문의 답을 알아낼 수 없다. 제임스가 이러한 집중력에 데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눈앞의 광경이 햇빛으로 가득할때에만 주변 상황을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산만해져서 이 햇빛의 감각을 잃으면 "여러 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조차 파악하지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데이라이트의 상실이 "가장 심각한 형태의 산만함"이며심지어 우리가 분열되기 시작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데, 자신이 누구인지에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정신적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많은 목표에 집착하거나, 리트윗 같은 바깥세상의 지극히 단순한신호에 의존하게 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방해 요소 속에서 자기자신을 잃는다. 우리가 별빛과 햇빛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찰과 공상, 사색을 지속할 때뿐이다. 제임스는 집중력 위기가 우리에게서 이 세 가지 형태의 집중력을 전부 빼앗아가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빛을 잃고 있다. - P409

이러한 측면에서 코로나19 는 우리가 이미 미끄러져 들어가고있던 미래를 언뜻 보여주었다. 나의 친구이자 20년간 놀라울 만큼 정확히 미래를 예측해온 작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은 내게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플랫폼과 화면이 우리의 모든 관계를매개하는 세상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러다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그 점진적인 과정이 초고속으로 진행됐죠" 테크 기업들의 계획은 10년 안에 우리가 그들의 세계에 그만큼 극단적으로 빠지는 것이었지. 지금 당장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급증은 그들의 계획이 아니었어요." 나오미가말했다. "사실 이런 급속한 증가는 기회예요. 어떤 것을 이만큼 빠른 속도로 하게 되면 우리 시스템에 충격으로 다가오거든요." 우리는 천천히 적응하면서 점점 늘어나는 강화 요인들의 패턴에 중독된 게 아니다. 미래상에 그냥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싫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안 돼요. 우리는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더 실제 사회생활이 아닌 사회생활의 시뮬레이션속에 살고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더 얄팍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내내 감시 자본주의의 알고리즘이 하루에도 여러 시간 우리를 개조하고 추적해서 바꾸고 있었다.
팬데믹 동안 환경이 변화하며 우리의 집중력을 파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다수의 경우 팬데믹은 집중력을 망치는 새로운 요인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팬데믹은 이미 오랫동안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고 있던 요인들을 더욱더 강화했다.  - P417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화재경보기의 전원을 끌 수 있도록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우리의 주의력이 계속해서 파편화된다면, 생태계는 우리가 집중력을 되찾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는 무너지고 불탈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영국의 시인 W. H. 오픈W. H. Auden 은 인간이 발명한 새로운 파괴 기술을 바라보며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경고했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함께 집중하지 않으면 이산불에 홀로 직면하게 되리라 믿는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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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가 패배한 소식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우드의 표현을 빌면 "케네디가에서 선거에서 진 첫 번째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손을 부들부들 떨거나 비통해하는 모습이 없었기때문이다. (최종집계에 따르면 케네디는 6퍼센트 차이로 졌다. 총 27개 예비선거와 본전을 연속으로 승리한 케네디 가문의 기록이 끝난 것이다.) 누군가 오리건의 패배가 보좌관들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케네디가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제가 이겼으면 저 때문에 이겼다고했을 텐데, 그럼 진 것도 저 때문에 진 거죠."
케네디는 자리를 피하는 대신 기자들과 함께 앉아서 패배한 이유를짐작해봤다.
"때론 제가 미국의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제대로 감지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죠. 어쩌면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건지도 몰라요."
케네디는 매카시를 과소평가한 점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저를 너무 싫어해서 저를 막으려는 게 아닌가 싶기도..…."
케네디는 말을 끝내지 않고 끝을 흐렸다. 헤이즈 고리가 케네디에게 캘리포니아 선거전략을 바꾸겠느냐고 물었다.
"아뇨. 제가 믿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걸 계속 밀고 나갈 겁니다. 미국의 분위기를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P368

형 JFK는 철로 주변에 모인 수백 명을 상대로 연설했지만, 바비 케네디의 연설을 들으러 온 사람은 수천 명에 달했다. JFK는 구름이 낀 평일에 들렀지만, 바비 케네디가 방문한 날은 해가 쨍쨍한 현충일 휴일이었다. JFK가 준비한 연설은 다소 차갑고 형식적이었다. 사람들이 JFK에게 선물로 주어서 열차 칸에 쌓인 과일과 채소는 아주 낮은 임금을 받으며 힘겨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 밭에서 따온 것이었지만 JFK는그런 사실을 모르거나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JFK는 청중에게 더 나은 노동조건을 약속하는 대신 냉전 승리를 약속했고, 모데스토에서는미국이 "전 세계 자유에 대한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고 했으며, 머세드에서는 "미국이 콜럼비아와 콩고,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세자르 차베스가 1960년 선거 당시 JFK를 지지한 치카노보다 50배나 많은 사람이 1968년 선거에서 바비 케네디를지지한다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P386

케네디는 생애 마지막 며칠 동안 더욱 목표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케네디가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얼굴에 난 주름은 깊어졌고, 눈은 푹 꺼지고빨갛게 충혈되었다. 말을 더듬고 생각의 끈을 놓쳤다. 손이 낮에는 떨렸고 밤에는 피가 났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기아와 가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몸이 떨렸다.
이 기간에 리처드 하우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편집장에게 "그사람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며 케네디 선거운동 취재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결정에 하우드는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케네디 전담 기자단)가 갈수록 편파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치어리더가 된 건 아니지만 그럴 위험에 처했죠." - P401

대개 선거 당일 저녁에는 호텔의 연회장에 지지자들이 모이고, 스위트룸은 친구와 선거캠프 직원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모여서 후보와 이야기하고 함께 축하하거나 최소한 후보와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케네디는 그날 저녁만큼은 그런 떠들썩한 모임을 생략하기로 했다. 지난 몇 달간 친구들과 모르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저녁은 말리부에서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선거결과를 지켜보고 싶었다. 그래서 TV 방송사에 취재 장비를 프랭컨하이머의 집으로 보내 달라고 했지만 방송사는 취재진과 기술진을 이미 앰배서더 호텔로 보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케네디는 어쩔 수 없이 저녁 식사를 앞당겨서 한 후 프랭컨하이머가 운전하는 차로 호텔로 향했다. 케네디는 처음에는 이미 늦어서 프랭컨하이머에게 속도를 내자고 했지만, 프랭컨하이머가 고속도로 나들목을 놓치자 이렇게 말했다.
"존, 그냥 천천히 가요. 인생은 아주 짧아요." - P407

그러고는 슐버그의 충고대로 "흑인 사회에 있는 제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또한 세자르 차베스와 돌로레스 후에르타를 언급하며 "선거운동 중에 우리가 이야기한 동료 시민에 대해 의무와 책임이"있다면서, 대통령이 되면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에설의 옆에 서서 활짝 웃으면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 (전당대회가 열리는) 시카고에서 승리합시다"라고 말했다. 케네디의 이 말은 공식 석상에서 한 마지막 발언이고, 승리의 순간을 너무나 완벽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이후 여러 날 동안 방송을 탔고 1960년대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 P416

빌 배리는 케네디가 강당을 관통해서 나갈 것으로 생각해서 먼저사람들 사이로 이동하면서 케네디가 통과할 길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케네디가 주방 창고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쫓아갔다.
케네디가 왜 그쪽으로 가기로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흥분한 청중 때문에 놀라고 불안했을 수도 있고, 지난 82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치인 탓에 지쳐서 그랬을 수도, 혹은 콜로니얼실에서 예정된 인쇄 매체기자들과의 회견을 서둘러 가진 후 팩토리 디스코텍에서 열릴 축하파티에 가려고 했을 수도 있다. 훗날 더턴은 케네디가 예정에 없이 주방을 통과해서 이동하기로 한 것을 막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항상 제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케네디는 주방 쪽으로 걸어가다가 전미자동차노조의 지역위원장이자 자신을 일찍부터 지지해온 폴 슈레이드를 발견하고는 "폴, 제스와 함께 저 좀 봐요"라고 말했다. 슈레이드는 케네디가 기자회견이 예정된 콜로니얼실로 같이 가자는 말로 이해하고 뒤따라가며 이렇게 생각했다.
‘여때껏 싸워온 게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야. 드디어 우리가 원하는대통령을 얻게 되었어.‘
케네디가 주방 창고의 작업대 위로 손을 뻗어서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과 악수를 하려던 순간, 성과 이름이 똑같이 시르한 시르한이라는젊은 팔레스타인계 남성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권총을 케네디의 머리를 향해 쏘았다.
(시르한 시르한은 미국에서 12년을 거주한 24세의 팔레스타인 남성으로, 암살을 저지른 후 40년 넘게 캘리포니아의 형무소에서 형을 살고 있다. 케네디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죽였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죽였어야 할 대선 후보가 한둘이 아니었다. 영화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의 시나리오처럼 마피아나, CIA,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에 의해 세뇌되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유명인을 죽여서 자신도 유명해지고 싶었던 정신장애를 가진 청년이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 P417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케네디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헤이즈 고리는또렷한 정신으로, "로버트 케네디가 바닥에 누워서 위를 바라보며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라고 했다. 피트 해밀기자는 바닥에 누워있는 케네디의 얼굴에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표정이 스치는 것을 봤다. 항상 그랬듯 케네디는 눈으로 말했다. 그의 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가 아니라, "이렇게 끝이 나는군"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 P421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기 말기에 아서 슐레진저는 『로버트 케네디 Robert Kennedy』라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그리고 1930년대와 1960년에 그랬던 것처럼, 머지않아 댐이 무너질 것이다. 그 주기가 지켜진다면 1990년쯤에 미국인의 삶에 새롭고 자애로운 시대를 향한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기대할 수 있다. 그때가 오면 로버트 케네디의 이상은 더 이상 낯설게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댐은 아직도 터지지 않았다. 어쩌면 댐을 붙들고 있는 안일함, 이기심, 냉소주의가 너무나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무너지는 날이 오게 된다면 로버트 케네디의 이상과 그의 선거운동은 불현듯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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