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에 있는 동물원 전체의 거의 절반이 동물에게 정신과 약물을 투여한다고 시인했으며, 니컬러스의 병원을 찾는 주인의 50에서 60퍼센트가 자기 동물에게 먹일 정신과 약물을 얻으려 한다. 가끔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실제 뻐꾸기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니컬러스를 만나기 전에는 그가 이러한 결과를 특정 방식으로정당화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의사가 주의력 문제를 겪는 자녀들의 부모에게 하는 말, 즉 집중력 장애는 생물학적 원인에서비롯되므로 약물을 이용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리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니컬러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그는 자신의 이 여정이 시작된 지점, 바로 끙끙이를 하던 말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생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말은 지금껏 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말들을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가두는 ‘가축화‘의 문제예요. 말들이 마구간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초기에 그런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끙끙이를 하게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니컬러스가 이 말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표현하나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말들이 "생물학적 목적의 좌절"로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말은 돌아다니고 달리고 풀을 뜯고 싶어 한다. 이런 타고난 본성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말들의 행동과 집중력은 망가지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니컬러스는 "생물학적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압력이 너무 심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이 파괴적인 심리 압박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완화해줄" 행동을 뭐든 찾게된다. - P343

사미는 보통 사람들이 어떤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았다는말을 들으면 폐렴 진단을 받은 것과 비슷할 거라 상상한다고 했다. 이 경우 의사는 숨어 있던 병원균이나 질병을 확인하고, 그 신체적 문제를 해결할 무언가를 처방한다. 그러나 ADHD는 의사가 실시할 수 있는 신체검사가 없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 본인 및 그 아이를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행동이 정신과 의사가 작성한 점검표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그게 다다. 사미는 이렇게 말한다. "ADHD는 진단이 아닙니다. 이따금 동시에 발생하는 특정 행동들의 묘사일 뿐이에요. 그게 전부입니다." 아이가 ADHD를 진단받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아이가 잘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그 말은 ‘왜‘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마치 아이가 기침을 한다는 말을 듣고 실제로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들은 뒤, ‘그렇군요, 아이는 기침을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의사가 아이에게서 집중력문제를 확인한다면, 그것은 진료 과정의 끝이 아니라 첫 단계여야한다. - P350

수십 년간 증거를 모은 끝에 앨런은 "처음에 내가 믿었던 그무엇도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나중에 ADHD를 진단받은 아이들의 "절대다수는 ADHD를 타고나지 않는다. 이들에게ADHD가 나타나는 것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반응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 P354

다른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약물들의 긍정적 효과가 (실재하긴 하지만 놀라울 만큼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뉴욕 대학의 소아청소년 정신의학 교수인 그자비에 카스테야노스는 각성제 효과에 관한 훌륭한 연구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각성제는 반복을 요구하는 작업에서는 어린이의 행동을 개선하지만, 학습 능력은 개선하지 못한다. 솔직히 처음에는그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러다 각성제 처방의 지지자들이 ADHD연구의 황금률로 제시한 연구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14개월간 각성제를 복용한 아이들은 시험에서 1.8퍼센트 나은 결과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행동 지도만 받은 아이들도 1.6퍼센트 개선된 결과를 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증거에 따르면 초기에 나타나는 각성제의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성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내성이 생긴다. 몸이 약물에 익숙해져서 똑같은 효과를내려면 복용량을 늘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어린이에게 허용된 최대 복용량에 다다르게 된다. - P360

 그는 사람들 대다수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일을 하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너무 흥미로워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면서 집중하는 습관을 익힙니다. 흥미로운 것... 내 마음을 빼앗거나 전율을 일으키는 대상이 있을 때는 집중하는 법을 자동으로 배우게되죠." 하지만 오늘날 아이들은 자기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성인의 지시에 따라 산다. 리노어는 이렇게 물었다. "아침 7시부터 잠자리에 드는 밤 9시까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하루가 꽉 찬다면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겠어요? 무엇이 [감정적으로 자신을 흥분시키는지 알아낼 자유 시간이 없다면 과연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의미를 찾을 시간이아예 주어지지 않는 거예요."
동네를 배회하던 어린 리노어는 자신을 신나게 하는 것(독서, 글쓰기, 분장 놀이)을 알아내고 자신이 원할 때 그것을 할 자유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축구나 암벽 타기, 작은 과학 실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그것은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한가지 방식이었다. 오늘날 이 방식은 아이들에게 차단되고 있다. 리노어는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끊임없이 나의 주의력을 관리한다면 어떻게 주의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무엇이 내 마음을사로잡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집중력을 기르는 데 너무나도 중요한 자신의 내재적 동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 P384

오늘날 성인은 어린이와 10대들이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종종 지긋지긋함과 짜증이 깃든 우월감을 느끼며 말을 얹는다. 그 말들은 이런 의미를 내포한다. 이 열등해진 세대를 봐! 우리가 얘네보다 낫지? 쟤네는 왜 우리처럼 못할까?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에게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충족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른인 우리의 일이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대체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자유롭게놀지 못하게 하고, 전자기기 화면으로 소통하는 것 외에는 별로할게 없는 집 안에 아이들을 가두며, 우리의 학교 제도는 대개 아이들을 무감각하고 지루하게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에너지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약물처럼 아이들을 들뜨게 할수 있는 첨가제가 들었으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없다.
우리는 뇌를 망가뜨리는 대기 속 화학물질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아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이 세상의 잘못이다. - P405

그는 집중력의 첫 번째 층이 스포트라이트라고 말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지금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내릴 거야" 같은 "즉각적인행동"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경을 찾고 싶은가? 냉장고 안을 보고 싶은가? 책의 이번 장을 끝까지 읽고 싶은가? 이때 필요한 집중력의 이름이 스포트라이트인 이유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초점을 한곳으로 좁히기 때문이다. 이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거나 방해받으면 우리는 이런 단기적 행동을 수행하지 못한다.
집중력의 두 번째 층은 스타라이트, 즉 별빛이다. 스타라이트는 "장기적인 목표, 그러니까 시간이 드는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집중력이다. 우리는 책을 집필하고 싶다. 사업을 차리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이 집중력의 이름이 스타라이트인 이유는,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별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향하던 방향을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이 스타라이트를 놓치면 "장기적 목표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잊기 시작한다.
집중력의 세 번째 층은 데이라이트, 즉 햇빛이다. 데이라이트는애초에 자신의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주는 집중 형태다. 자신이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아는가? 심사숙고하며 명료하게 생각할 수 없다면 이런 질문의 답을 알아낼 수 없다. 제임스가 이러한 집중력에 데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눈앞의 광경이 햇빛으로 가득할때에만 주변 상황을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산만해져서 이 햇빛의 감각을 잃으면 "여러 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조차 파악하지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데이라이트의 상실이 "가장 심각한 형태의 산만함"이며심지어 우리가 분열되기 시작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데, 자신이 누구인지에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정신적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많은 목표에 집착하거나, 리트윗 같은 바깥세상의 지극히 단순한신호에 의존하게 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방해 요소 속에서 자기자신을 잃는다. 우리가 별빛과 햇빛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찰과 공상, 사색을 지속할 때뿐이다. 제임스는 집중력 위기가 우리에게서 이 세 가지 형태의 집중력을 전부 빼앗아가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빛을 잃고 있다. - P409

이러한 측면에서 코로나19 는 우리가 이미 미끄러져 들어가고있던 미래를 언뜻 보여주었다. 나의 친구이자 20년간 놀라울 만큼 정확히 미래를 예측해온 작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은 내게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플랫폼과 화면이 우리의 모든 관계를매개하는 세상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러다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그 점진적인 과정이 초고속으로 진행됐죠" 테크 기업들의 계획은 10년 안에 우리가 그들의 세계에 그만큼 극단적으로 빠지는 것이었지. 지금 당장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급증은 그들의 계획이 아니었어요." 나오미가말했다. "사실 이런 급속한 증가는 기회예요. 어떤 것을 이만큼 빠른 속도로 하게 되면 우리 시스템에 충격으로 다가오거든요." 우리는 천천히 적응하면서 점점 늘어나는 강화 요인들의 패턴에 중독된 게 아니다. 미래상에 그냥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싫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안 돼요. 우리는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더 실제 사회생활이 아닌 사회생활의 시뮬레이션속에 살고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더 얄팍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내내 감시 자본주의의 알고리즘이 하루에도 여러 시간 우리를 개조하고 추적해서 바꾸고 있었다.
팬데믹 동안 환경이 변화하며 우리의 집중력을 파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다수의 경우 팬데믹은 집중력을 망치는 새로운 요인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팬데믹은 이미 오랫동안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고 있던 요인들을 더욱더 강화했다.  - P417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화재경보기의 전원을 끌 수 있도록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우리의 주의력이 계속해서 파편화된다면, 생태계는 우리가 집중력을 되찾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는 무너지고 불탈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영국의 시인 W. H. 오픈W. H. Auden 은 인간이 발명한 새로운 파괴 기술을 바라보며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경고했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함께 집중하지 않으면 이산불에 홀로 직면하게 되리라 믿는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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