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악대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ASEAN-Republicof KOREA Commemorative Summit) 공식환영식에서 각국 정상들의 입장, 퇴장 음악을 연주했을 때였다. 그냥 적당한 곡을 정해반복해도 그만이었는데 각국 대통령, 총리, 국왕의 상징 음악을애써 구하고 그게 없으면 그 나라의 군가와 행진곡을 찾아서 편곡하고 연습했다. 태국 정상이 퇴장할 때는 태국 음악을, 필리핀정상이 퇴장할 때는 필리핀 음악을 ‘맞춤‘으로 연주해 각국 정상들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보자 우리 군악대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 P86
다음 날 몇몇 극우 유튜버들이 대통령이 백신을 바꿔치기했다는 헛소리를 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닌 화이자를 맞았다며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말들을 소개하는 매체들까지 등장했다. ‘헛소리‘를 ‘보도‘로 확산시키는 매체들의 선정성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들은 심지어 대통령에게주사를 놓았던 간호사의 신상까지 공개했다. 우리는 그 간호사에게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했는데, 다행히 그 간호사는 그런 말들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부담이 있을 것 같아 대통령의 2차 접종때는 다른 사람이 해도 된다고 말하자, 그 간호사는 말했다. "그런 말들 신경 언 씁니다. 우리 보건소에 다시 오시면, 제가 할 거예요. 이게 제 일입니다." - P108
대통령에게 상황을 말씀드리자 "(그 장소에) 그렇게 계신다면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맞겠지요"라며 차에 오르셨다. 우리는 도착 전에 부모님을 하차 지점으로 모셔 직접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중사 부모님은 대통령 앞에서 조용히 인사를 하고준비한 입장문을 전달했다. 이 중사 어머니는 이 중사 사진을 대통령에게 보여드리며 "지난번에 보셨던 예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조용히 자리를 떠나셨다. 대통령을 앞에 두고 하고 싶은 많은 말을 참으며 딸 사진만을 보여준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또 그 사진을 바라보며잘 알겠다고 답하는 대통령 마음은 어떠했을까. 차마 하소연도못 하는 부모 심정과,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는대통령 마음이 자꾸 같아 보였다. 옆에서 본 대통령의 일이란 권한의 크기보다 책임의 크기가훨씬 더 컸다. 또한 대통령의 일이란 지금 바로, 여기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천천히 확인하여, 여러 가지를종합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 대통령은 결과를 명령할 수 없다. 대통령은 과정만 명령할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명령한 과정을 결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 명령의 결과가 생각과 다를때 깊은 상처를 받는다. 대통령 앞까지 나서야 했던 유가족의 서러운 마음과, 그 마음을알지만 결과를 명령할 수 없는 대통령의 처지, 그 옆에서 우리는 그저 무력했다. - P138
직접 만나본 오희옥 지사는 92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시고 총기가 있었다. 오 지사를 뵙는 순간 이분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행사 전날 리허설 시간에 지사님을 무대로 모셔서 부탁드렸다. "지사님, 애국가 한번 불러 보실 수 있겠어요?" "그럼 할 수 있지." 원래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연습 겸 해볼 요량이었는데마침 국방부 관현악단이 잠시 휴식 중이라 연주를 할 수가 없었다. "지사님, 지금 반주가 없는데 몇 소절만 그냥 해보실래요?" "어, 그럼 애국가 부르면 되는 거지?" 오 지사는 숨도 고르지 않고 바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희옥 애국지사가 부른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아니라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애국가였다. 우리 애국가에 곡조가 없을 때 스코틀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여 불렀던 애국가, 독립운동가 애국가로 알려진 그 멜로디였다. "우리가 독립운동할 때는 이렇게 불렀었어." 어린 시절 광복군이었던 부모님과 함께 불렀다는 옛 애국가를, 아무 반주도 없이 92세 노지사의 목소리로 만났을 때, 독립지사들에 대한 경의와 존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들이 겪었을 오랜 고초가 그 노래 마디마디마다 스며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160
한 분, 한 분이 민주화 운동의 역사였고 슬픔이었고 비극이어서 어떤 훈, 포장 수여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회한이 느껴졌다. 이날 국민훈장 모란장 맨 마지막 수여자는 배은심 여사였다. 민주화 운동의 어머니이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무대 위에 서있는 것조차 민망해하신, 그을린 얼굴에 슬프고 또 슬픈 표정을가진 배은심 여사는 민주화 운동 투사가 아닌 그저 아들을 잃은 어머니였다. 일전에 영화 <1987> 시사회에 참석한 대통령이 영화 상영에앞서 관계자들과 환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배은심 여사도 참석하셨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영화를 함께 보자고 제안하셨지만 배 여사님은 "나는 못 보겠어요. 아직은"이라고 말씀했었다. 그 한마디에 대통령 내외분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감독과 배우들, 수행원들 모두 뭐라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 P215
통상 국가 기념행사는 대통령 입장으로 행사가 시작된다. 당연한 의전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이자 수반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보고드렸다. "이번 광복절 행사에는 대통령께서 먼저 입장하시고 독립유공자분들을 마지막으로 모실까 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매해 행사에 참석하실 수 있는 독립유공자분들의 숫자가줄고 있습니다. 이제 행사에 참석하실 수 있는 분들이 열 분이 안됩니다. 남은 그분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싶습니다." 대통령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우리는 별도의 의전 차량과 의장 병을 애국지사 자택으로 보내 직접 모시고 행사장 안까지 안내했다. 대통령 내외분은 먼저 도착해 자리에 서서 그분들을 맞이했다. 훈, 포장 수여 순서 때 몸이 불편해 무대 위로 올라오지못하는 애국지사 가족을 위해 대통령이 단상에서 내려와 무릎을굽히고 훈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 P244
특사단은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 고려인협회와 함께 유해를 정중히 모시고 공군 특별수송기(KC-330)로 유해를 봉송했다. 특별수송기가 카자흐스탄을 떠날 때는 크즐오르다 상공을 3회 선회한 후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홍범도 장군을 아끼고 사랑했던 고려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으며 장군의 회한을 담은 비행이었다. 공군 특별수송기가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진입한 후에는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때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전투 기종(F-15K, F-4E, F-35A, F-5F, KF-16D, FA-50) 을 모두 투입했는데, 우리 군의위용을 홍범도 장군에게 보여드리겠다는 의도를 가진 엄호 비행이었다. 지상에서는 대통령 내외, 국방부 장관, 안보실장이 홍범도장군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한 김영관 애국지사도 특별히 초청했다. 함께 싸웠던 애국지사가 유족이 없는 홍범도 장군의 귀환을 직접 맞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봉환식은 참석자 전체가 일어선 채로 진행했지만, 연로하신 김 지사가 걱정되어 의자를 하나 놓았다. 하지만 김영관 지사는 한사코 자리에 앉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홍범도 장군에게 거수경례를 하셨고 그 장면은 많은 국민을 뭉클하게 했다. 봉환식을 준비하면서 장군의 유해가 대한민국 땅에 처음 닿을 때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101년만에 해방된 조국 땅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을 환영하는 음악을무엇으로 할지, 그 순간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었다. <고향의 봄>, <독립군가>, <고잉 홈 Going Home〉 여러음악이 떠올랐지만, <올드랭사인> 곡조 애국가를 선택했다. - P277
판문점 회담이 끝나고 얼마 뒤 서태지를 만났다 . 늦었지만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어느날 저녁 그와 마주 앉아 이 모든 과정을 그에게 상세히 소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했다. "그날 <발해를 꿈꾸며〉가 흘러나올 때 남북 정상들이 그 노래를 들으며 한 방향으로 걸어올 때, 그 노래가 없었으면 정말 어떻게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별말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태지가 말했다. "그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이 왜 그 노래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불리기를 바랐는지, 그리고 그 노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랐는지, 그날 그 자리에서 다 보여준 것 같았어요. 노래를 만들었을 때의 감정과 그 쓰임이 너무나 잘 맞은 순간이었습니다. 고마웠어요." - P323
미국 명예훈장 (Medal of Honor) 수여식에 양국 정상이 참석했던 장면도 큰 화제가 됐다. 명예훈장은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무공훈장이다. 처음 미국으로부터 이 일정을 제안받았을 때는 감이 오지 않았다. 우리 태극무공훈장 수여식에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훈장을 받는 분이 누구인지 들으니 우리도 양국 대통령이함께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장을 받게 된 랠프 퍼켓 주니어Ralph Puchett Jr. 대령은 한국전의 영웅이었다. 청천강 전투 때 미 특수부대 제8레인저 중대를지휘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날 수여식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후 처음 갖는 1호 훈장 수여식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 있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은 대단히 사려 깊은 제안이었다. 미국은 그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의 연설도 부탁했다. 대통령은 퍼켓 대령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령님은 아까 제게, 당시 한국은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일어섰고,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함께 지켜준 미국 참전용사들의 그 힘으로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랠프 퍼켓 대령님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퍼켓 대령 양옆에서 무릎꿇고 찍은 그날의 사진은 앞으로도 한미동맹을 이야기할 때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가 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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