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은 나와 형님의 이름을 착각했을 뿐이지만,
아까 하신 말씀이 딱히 틀린 건 아니에요. 할아버님은 이 집에서 일어난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고, 범인이 누군지 알고있습니다."
사토코는 2층을 올려다보려던 시선을 다시 떨구며 다케히코의 얼굴을 보았다. 그 시선은 어중간하게 숙여진 채 문득 멈춰버렸다. 다케히코의 얼굴에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없는 기묘한 미소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아까 할아버님이 빨리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라고 하신 말씀은 류스케 형님이 아니라 나한테 하신 말이었어요."
그리고 그 미소를 그대로 지은 채 이렇게 말했다.
"경찰서에 가서 모두 다 말하기 전에 처형에게 먼저 고백하고 싶었어요. 그날 내가 나오코를 죽였다는 것을." - P166

실제로 내 몸은 모피가 타는 듯한 냄새를 풍겨서 나는 죄라는 건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이구나, 하고 나 스스로도 그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데도 그 거무칙칙한 악취는 어쩐지 그 자리에 생뚱맞게 튀어나온 것인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기보다 피식 웃은것 같습니다. 적어도 나오코의 눈에는 내가 평소처럼 미소를 지은 것으로 보였겠지요…. 바로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나를 보고 그리 놀라지도 않고, 무슨 큼직한 봉제 인형을 만난 것처럼 내게 빙긋이 미소를 건넸습니다.
봉제 인형?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건 봉제 인형이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이제야 겨우 알겠군요. 그때 일은 노출오버 사진처럼 모든 것이 여름 한낮의 하얀 빛에 녹아들어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지금껏 분명하게 생각나지 않았는데, 이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건 봉제 인형이었습니다. - P168

나와 유키코, 그리고 처형 부부의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다 범죄 비슷한 것이었고 그 중요한 증거품을 일부러 내 눈 앞에 들이대는 것 같았습니다. 나오코라는 존재는, 단순한 게임 같은 어처구니없는 어른들의 사랑 드라마를 심각한 범죄로 바꿔버린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역시 류스케 씨의 아이구나... 그런 실감이 들었습니다.
신주쿠 산초메 사거리에 내던지고 왔을 터인 고통이 갑작스레다시 큰 의미를 품고 나를 덮쳤습니다.
내 아이가 아니라 류스케 씨의 아이다. 게다가 나오코는 그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류스케 이모부의 딸이고, 이곳이 진짜 자신의 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키코가 슬쩍 알려주었는지, 아니면 어린아이의 예리한 후각이 본능적으로 진짜 아버지의 냄새를 맡았는지, 아무튼 이 아이는 알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앞에서나 집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이런 너부죽한 자세로 엎드려 있을 리 없다…. 나오코는 스케치북에 얼굴을 파묻듯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느라 내가 다가온 것도 알지못한 것 같았습니다.
"나오코 뭘 그리고 있어?"
내가 말을 건네자 나오코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는 나오코의 머리 바로 옆에 뻣뻣이 서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 다리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겠지요.
 그대로 새우처럼 작은 몸을 뒤로 젖혀 그 아이의 시선은 미끄러지듯이 내 얼굴로 올라왔습니다. 그 나긋나긋한 몸의 움직임을 보며 호텔 침대에서 밀회 중인 유키코를 떠올렸습니다. 나를 타인처럼 올려다보는 무표정한 눈도 평소의유키코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표정 없이 윤곽선만 그려놓은초상화 같은 나오코의 얼굴은 심플한 그만큼 류스케 씨와똑같은 얼굴을, 범죄의 또 하나의 증거를 분명하게 내 눈앞에 들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오코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남자가 누구인지 겨우 알아봤는지, 놀라움과 동시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부르짖었습니다.
"아저씨!"라고.
그것이 어른들의 범죄와도 같은 사랑 게임의 세 번째 크나큰 증거였습니다. - P177

자꾸 꽃 넝쿨로 목을 매려다가 나동그라져 죽지 못하고웃음소리를 올리는 노인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나오코의 죽음까지 그리 슬픈 사건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지난 이 년 동안 노인의 괴상한 말과 행동을 혼자 감당하면서 사토코는 신경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도무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피로감을 느껴왔지만 왠지 이 순간, 사토코는 처음으로 이 노인네는 미친 게 아니라고 느껴졌다. 오히려 이 노인네만 정상이고, 미친 건 우리 쪽이다. 나를 포함해 죽음을 잔혹하고 슬픈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친 것이다….
그렇게 느껴질 만큼 그때 정원 안에는 낙원처럼 아름답고 선하고 온화한 것이 있었다. 여름을 몰아내는 가을바람같은 조용하고 적막한 바람이 불어와 꽃도 노인의 웃는 얼굴도 투명한 바람의 흐름 속에 둥둥 떠돌며 빛났다가 그늘지고 그늘졌다가 다시 빛나면서 자연의 추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부터 한 달여 동안이 집 안에는 추악한 현실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의 머릿속에만은 이런 낙원과도 같은 꿈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노인의 머릿속에는 무시무시한 전쟁터가 있어서 그는 끝없이 반복되는 잔인한 살육의 망상에 고통을 받아왔을 터였다. 바로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다케히코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수하러 간 것처럼 이 노인도 이제야 겨우 망상의 전쟁터에서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끝에 이 깨달음과도 같은 낙원의 세계에서 노닐고 있는 게 아닐까. - P186

"애, 사토코, 이번에 살해된 여자애는 저기 서 있는 저여자와 나 사이에 생긴 아이야. 그런데 실은 저 여자가 딴 남자하고 만든 아이야 나도 그렇고 다들 저 여자의 속임수에 감쪽같이 넘어갔어."
참으로 엉뚱한 말이었다. 사토코는 분명하게 알아보면서 유키코는 자신의 전처로 혼동하고 있었다. 전처의 배신이 이 노인에게는 그토록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리라.
일주일 전의 사건과 전처의 부정이 노인의 뒤엉킨 머릿속에서 군데군데 끊긴 채 하나로 이어지면서 전기 합선처럼 불꽃이 튄 결과가 방금 내뱉은 말로 나타난 게 아닐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웃을 일이아니었다. 시아버지가 나오코를 전처가 딴 남자에게서 낳아온 아이라고 착각했고, 그 바람에 살해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토코는 짐짓 나무랐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 나오코는 유키코와 다케히코의 아이예요."
분명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유키코를 향해 "나를 보면서도 이따금 세상 떠난 시어머니로 착각을 하시니까 네가 너그럽게 용서해"라고 말했다. 딱히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유키코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입술을파르르 떨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노인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상처를 입은 건가..….
"어린애 농담 같은 거라니까. 그렇게 정색을 하고 받아들일 것도 없는.…."
하지만 유키코는 그 말을 가로막으며 비명 같은 소리를올렸다.
"언니...!"
그 목소리도 눈빛도 언니를 비난하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아니라 사토코에게 화가 난 모양이었다.
"왜 그래,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
웃으면서 되물은 순간, 사토코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자신의 실수를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유키코는 여전히 겁에 질린 눈빛으로 언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어붙은 듯 새파래진 관자놀이에서 밀랍 같은 땀이 툭 떨어지는 것을 사토코는 여동생보다 훨씬 더 차가운 눈빛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 P100

조금 전에 다케히코가 털어놓고 간 얘기들이 가슴속에충격의 잔향으로 엉겨 있었다.
충격을 받은 건 다케히코가 한 고백의 내용보다 그의 거짓말이 너무도 교묘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특히 사건 당일의 행동에 관한 한, 다케히코가 한 얘기는 모두 다 거짓말이었다.
다케히코는 그날 나오코를 죽이지도 않았고, 나오코가 살해된 시간에 이 집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토록 교묘한 거짓말로 자신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다케히코는 범인이 되고 싶어 했을 뿐이다. 왜 범인이되려 하는지도, 왜 경찰에 가기 전에 이 집에 왔는지도, 사토코는 잘 알고 있었다.
범인은 따로 있다•••. - P192

그때 나오코의 몸을 안고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
그러자 아버지는 또렷하게 대답했던 것이다.
"응, 그 여자가 나한테 부탁했던 게 생각나서 내가 그 아이를 죽였어. 몸을 배배 꼬는 그 못된 여자... 내 전처를 닮은그 여자... 가끔 우리 집에 왔었지? 오늘 아침에도 왔었어. 전부터 그 여자가 나한테 그 아이를 죽이라고 말했어. 류스케,
누구냐, 그 여자?" - P247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내가 그 아이를 죽인 이유는뻔히 다 알잖아. 네가 바로 그 여자니까!"
한순간 할아버지가 나와 형부의 불륜을 눈치채고 똑같은 실수를 범한 나와 전처를 혼동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건 나의 지레짐작이었다. 게다가 그 바로 뒤에 할아버지는 주먹으로 바로 옆의 탁자를 쾅 내리쳤다.
"그 애가 아직 살아 있다면 내가 죽여야 해. 그 애는 섬에서 죽었으니까 살아 있으면 안 돼!"
목청을 쥐어짜듯이 그런 말을 부르짖었다. 그 손아귀의 힘은 탁자를 부수기 전에 자신의 손을 부술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주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와 형부의 관계에 숨은 잔혹한 일면을목격한 듯한 마음이 들었다. 단지 쾌락만을 탐했을 뿐, 우리둘의 관계 속에 누군가 이런 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릴 만큼큰 죄가 숨어 있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나는정원으로 시선을 옮겨 여름 하루의 마지막 햇빛에 달궈져 부옇게 흐려진 작은 여자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죽여야 해. 내가 저 아이를 죽여야 해"라고 내뱉었을 때, 불쑥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해버렸다.
"네, 그렇게 하시라구요. 그래야 속이 풀리신다면 하셔야죠. 근데 오늘은 안 돼요. 나중에 다른 날에 하세요."
물론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얼굴에 웃음마저띠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달래려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분노가 진정되어 깊은 안도감에 휩싸인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 P257

혹시 히라타가 자신의 입을 나오코에게 대고 있었다면 그건 숨이 멈춰버린 나오코에게 인공호흡을 해주려고 한 것이다. 그 아이를 죽인 건 할아버지다. 히라타는 그 집에 갔다가 덜컥 현장을목격했고, 순간적으로 인공호흡을 해주려고 했을 뿐이다.
분명 일이 그렇게 된 것이다. 머리가 나쁜 나도 간단히 알 수있는데 류스케는 이번에도 자기 멋대로, 자기 편리한 대로사실을 왜곡했다. 그다음 일도 나는 간단히 알 수 있다. 히라타의 착한 구조 노력 덕분에 나오코는 숨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도 류스케는 엉뚱한 오해를 했다. 나오코가 축 늘어진 것만 보고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땅에 묻어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오코가 숨이 돌아온 것은 땅에 묻힌 다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먼저였던 히라타가 애써구해낸 나오코의 목숨을 다시금 매장해버린 건 류스케다.
그 정원은 흙이 바짝 말라서 모래 같은 상태였으니까 땅에 묻었다고 해봤자 푸석푸석한 흙을 덮어둔 정도였을 것이다. 나오코의 손끝이 밖으로 나온 것은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나오코는... 그 아이는..… 되살아난 그 희미한 목숨으로 마지막에 지상으로 손을 내밀어 그날 오후 정원에 가득하던 하얀 빛을 잡으려고 했다•••. - P262

‘아, 그렇구나, 아버님이 나오코를 공격하게 만들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거야.‘
처음에는 나오코를 살짝 다치게 하는 정도로만 하려고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버님을 요양 시설에 보내기가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유키코가 나오코를 데려간 바로 뒤에 나는 아버님에게 말했다.
"그 아이가 그토록 눈에 거슬리면 아버님 손으로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저도 정말 짜증이 나네요."
그저 잠깐 농담으로 한 얘기였다. 웃기까지 했다. 그랬는데 시아버지가 왠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내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시아버지의 눈빛은 여느때처럼 텅 빈 것이 아니었다. 내 웃음의 이면에 숨어 있는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악한 것까지 알고 있는 듯한 느힘이 들었다. 물론 나는 곧바로 이성을 되찾아 농담으로라도 그런 잔인한 말을 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그이성도 돌연 몸속 어딘가에서 태풍처럼 끓어오르는 짜증에 어이없을 만큼 간단히 날아가버렸다.
그다음 주 목요일에 유키코가 나오코를 데려왔을 때도나는 은밀히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 아이 때문에 정말 짜증 나요."
그렇게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같이, 둘만 있을 때를 노려 똑같은 말을 시아버지의 부서져가는 조개껍데기 같은 귀에 속닥거렸다.
"저 아이 때문에 짜증 나요. 다음에 왔을 때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런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실은 "아버님 때문에 짜증 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하게 "저 아이 엄마 때문에 진짜 짜증나요"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P272

사건이 터진 그 목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최고기온이 갱신될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여름 햇빛은 자신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져 집과 정원에 하얀 단내를 쏟아냈다. - P275

 그 아이가 류스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아직알지 못했지만, 그냥 그 아이가 가요보다 예쁘고 얌전하고유키코를 꼭 닮은 화려함을 안에 감추고 있는 것을 용서할수 없었다. 그 아이가 곁에 있으면 모두가 가요 따위는 무시하고 그 아이만 예쁘다고 추켜세웠다. 마치 어렸을 때의 유키코처럼….
그날 아침, 가요가 "나오코는 치과에 데려가지 말자"라고 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가요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오코와 함께 가면 치과 선생님도,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나오코만 예쁘다고 하고 자신은 무시한다는 것을 그건 사토코가 어린 시절에 유키코만 예쁘다고 칭찬하던 어른들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래서 아버님에게 "저 아이를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계속 속닥거렸고, 그날은 아버님이 정말로 어떻게든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가요가 "나오코는 치과에 데려가지 말자"라고 했을 때 "그럴까?"라고 대답했다 •••. 유키코를 미워하듯이 나는 그 아이를 미워했다. 그래서 죽였다. 그 이유만으로 죽였다 •••. - P280

그리고 흙 속에서... 푸슬푸슬한 흙 속에서 얼굴 모양 같은 것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흙으로 사람얼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건 조금씩, 조금씩, 얼굴이 되었다. 입이, 코가, 잠든 것처럼 꼭 감은 눈이 만들어졌다. 흙의 입이 괴로운 듯 움찔거렸다. 흙을 빨아들이면서 그 애는 열심히 숨을 쉬고 있었다... 좀 힘들긴 하지만, 절대로 어느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완벽한 숨을 곳을 그 애는 찾아낸것이다.
얕은 흙에 덮여 그 애는 눈을 감고 있을 텐데도 흙 속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내가 술래인데 그 애가 술래가 되어 나를 찾아냈다고 신이 난 것 같아서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그 흙 위에 올라섰다. 나는 그 위에 서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발밑의 흙은 금세 조용해졌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엄마하고 그 아이를 찾는 척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지쳐버렸을 때, 할아버지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고 다케히코 이모부도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아서 내가 말해줬다.
"엄마, 아까 치과에 갈 때는 저기에 삽이 없었어."
내 말에 대답하듯이 뭔가 어려운 이름의 나뭇가지에서 오렌지색 꽃송이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 애의 몸은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금세 찾아냈다.
하지만... 진짜 숨바꼭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 P282

이 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나는 치매에 걸린척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이 집에 이따금 찾아오는 여자애를 살해하라는 그 계획 때문이었다…. 아내 아키요가 세상을 떠나기 이 년 전, 며느리의 여동생이 아이를 낳는 것과 동시에 이 집안은 폭탄을 떠안은 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든 그 폭탄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 아이가 제 엄마를 따라 진짜 내 집은 여기라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자주 드나들자 아키요는 불단 안에서 "괜찮아, 죽여도 괜찮아"라고 자꾸만 속닥거렸다. 명령과도 같은 그 목소리는 어느새 나 자신의 목소리가 되고, 그 아이를 죽이는ㅊ일은 내 계획이 되었다. - P303

"괜찮아."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키요의 목소리가 아니라 눈앞의 소녀가 그렇게 중얼거린 것이다.
한 여자가 있었다.
내 눈앞에 네 살짜리 한 여자애가 있었고, 스스로 이 범죄의 진짜 범인이 되려 하고 있었다.
"죽여도 괜찮아.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내가 물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응, 엄마가 아까 전화했어. 할아버지가 나를 싫어해서 무서운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도망치라고…. 근데 괜찮아,
죽여도."
"죽인다는 게 뭔지 알아?"
"아니. 근데 괜찮아,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래서 할아버지가 힘들지 않게 된다면.... 할아버지, 힘들지? 얼굴이 힘들어보여."
아니, 나는 환상의 목소리를 듣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그런 말을 할리가 없다. 하얀 빛에 불타서 나는 또 다시 나 자신을 잃었다.
단지 내 손만이 먼 옛날의 죄를 기억하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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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光

1

새벽녘 꿈속에서 아내가 웃고 있었다.
잠깐 한순간 보인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잠이 깬 뒤까지 그 얼굴은 끈질기게 뇌리에 엉겨 붙었다. 보통 때의 꿈이라면 아침 햇살에 의식이 차츰 뚜렷해지면서 허망할 만큼 깨끗이 사라지는데 몇십 년 만인지모를 아내의 얼굴은 거꾸로 빛을 얻어 양화陽畵(음화陰畵를 인화지에 박은 사진으로, 색채나 명암이 실물과 동일하게 나타난다)로 도드라지는 필름처럼 선명해졌다. - P7

일흔 살 넘어 최근 몇 년 동안, 잠은 강물처럼 탁해졌다.
잠의 깊이가 강처럼 변한 것이다. 얕은 잠은 탁한 개울물이나 겨우 헤적거리는 것 같고, 깊은 잠은 어두운 강 밑바닥으로 잠겨 들면서도 완전히 가라앉지 못한 채 깊고 무거운 진흙 같은 물속에 반쯤은 묻히고 반쯤은 떠 있었다.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그건 곧 죽음이고 두 번 다시 이 깊디깊은 잠에서 떠오를 수 없으리라…. 눈을 뜨면 매번 그런 생각이들었다. - P8

사토코 씨의 말을 듣고 주방에 들어섰을 때, 아직도 바닥에는 사과 찌꺼기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설익었다고 할까 아직 단단해 보이는 푸른 사과였습니다. 사토코 씨는 치과에 나오코를 함께 데려가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다고 몹시 후회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얼굴까지 핼쑥해져서 나오코를 찾는 것 말고는 다른 건 돌아볼 겨를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어질러진 사과 찌꺼기가 30개 가까이나 되었을까요.
주린 짐승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과육은 죄다 파먹고 심지만 가늘게 남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아직 어린 뼈가 여기저기 버려진 것만 같아서 나는 그걸 하나하나 손으로 줍는 사이에 구역질이 났습니다. 옆에서 함께 줍던 사토코 씨도 그 사과 심지에서 뭔가 불길한 사건을 예감했는지 한 차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더군요.
사건 •••.
정말로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그 얼마 뒤였습니다. - P42

내가 정원으로 내려서려는 것을 밀치듯이 사토코 씨가 먼저 "얘, 가요, 대문 전등불 좀 켜봐" 라고 부르짖으며 나무 곁으로 뛰어갔습니다. 곧바로 대문 전등이 켜졌고, 그 불빛에 파르르 떨듯이 주위의 어스름한 저녁 빛은 검게 그늘이지고 꽃만 눅진하게 번들거리는 것을 보니 마치 무더위 때문에 진땀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토코 씨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한 눈빛으로 나무뿌리 쪽을 보며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을 뿐이지요. 그리고 그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던 나도 말라버린 잡초가 섞인 흙 속에서 삐죽 튀어나온 허연 것이 어린아이의 움켜쥔 작은 손이라는 것을 금세 알았는데도 의식이 뒤틀린 것처럼 멍하니 선 채로 ‘할아버지가 먹고 내던진 사과 심지 하나가 이런 곳에도 떨어져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P46

우리의 결혼은 이른바 그 집에서 본 ‘가족 풍경‘에서 파생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나오코가 태어나 셋이서 단란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는 매번 이 풍경은 그해 정월 가족풍경의 축소판이라고 느끼곤 했습니다. 단란한 가족이란 그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 실제 나와 유키코 사이에는 남남보다 더 멀고 깊은 틈이 벌어져 있었으니까요. 무심코 바라보면 보이지 않을 그 빗금 같은 것이 우리 결혼의 모체가 되었던 그해 정월의 노부부와 아들 부부,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아기까지 포함한 하나의 가족 풍경에 감춰져 있었다는 마음이 자꾸만 드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과 그 집안을 직접 이어주는 끈은 사토코 씨와 유키코가 자매간이라는 것뿐이었지만, 나는 우리 집이 그집안에서 파생된 새끼 가족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우리 결혼 생활의 불행의 이유가 원래 그 집안에 있었던 세균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긴그것도 철없는 반항기의 어린애가 저 혼자 책임지지 못할 잘못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듯한 얘기겠지만.. - P64

그 여자의 몸은 분명 내가 지금까지 뽑은 것 중에 가장큰 행운의 복권이었다. 하지만 그 행운은 이를테면 누군가 깜빡 잊어버리고 간 허름한 가방을 주웠고 그 안을 봤더니돈다발이 가득 들어 있었다는 식의 행운이었다. 그 돈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양심의 가책이라는 리스크도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 여자의 남편에 대해 그런 양심의 가책이며 위험성을떠안고 있었다. 들키지 않으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혹시라도 들켰다가는 그 즉시 그 여자의 몸은 행운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뽑은 것 중에 가장 큰 불행의 복권이 된다.... 막연하게나마 그런 부담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가 ‘약간 힘든 부탁‘이라고 말했을 때도 분명 남편이나 딸에 관한 일일 것이라고 예감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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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는 집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대체로 완벽한 문장과 정확한 스펠링을 구사하며 농장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썼다. 1944년 어머니날을 며칠 앞두고는 세일럼 Salem 시에 뭔가를 사러 다녀왔다고 연필로 적어 보냈다. "어니스트 아저씨가 어머니날이니까 장미를 사야 한다고 했어요. 빨간 장미는 엄마가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래요. 하얀 장미는 엄마가 죽었다는 뜻이고요." 공놀이를 했다고도 적었다. "제가 올린 점수는... 5/74점이에요." 마지막에는 "도널드 G. T. 루이스"라고 서명까지 했다. 메리는이 편지를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
도널드는 그 뒤로 언제나 그 시절, 동시에 두 가족에 속해 있었던 시절을 행복했던 때로 기억했다. 두 배로 사랑받고 두 배로 보호받았으며, 자기와 비슷한 어린이들이 겪은 끔찍한 일들을 피할 수 있었다. 트리플렛 부부처럼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줄 여력이 없는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대규모 수용시설에갇혀 때때로 학대당하며 지내던 시대였다.
카너는 도널드가 모든 면에서 성장하고 많은 것을 배워 나가는모습을 보며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전반적으로 소년의 성취는 굳이 따지자면 "중간 수준"이었지만, 자폐 어린이의 발달이란 맥락에서 그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넓고 깊은 심연을 건너뛴 것과 다름없었다. 도널드는 적어도 일부 어린이는 자폐증의 가장 파국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볼 가치가있음을 입증하는 생생한 증거였다. - P102

트리플렛 저택은 사회적 허브 역할을 했다. 메리는 종종 도시 행사의 주최자였다. 여성 모임 외에도 장로교회 성가대가 집을 리허설 장소로 사용했다. 방문객들은 트리플렛 집안의 아들 올리버에게익숙했지만 도널드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농장에서 돌아온 도널드가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트리플렛 가족은 큰아들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며 숨기려고 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합창단에게도, 포레스트의 상류층 여성들에게도 우연히 마주치는어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실에서 시 낭송회가 한창일 때 도널드가 침실에서 갑자기 꽥 소리를 지르거나, 집에 찾아온 부인들의 젖가슴을 넋을 잃고 바라보거나, 누군가를 붙잡고 《타임》 지나 달력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아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것이 아이의 본모습이고, 그들의 집에 손님으로 온 이상 그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가족의 원칙이었다. 묵시적으로 비먼과 메리는 분명하고 확고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도널드는 가족의 일원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망설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마침내 우리 아이가 평등하게 대우받기를 기대한다는 사실을 지역 사회에 분명히 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사람들은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 같다. - P107

포레스트는 도널드에게 안전한 장소였다. 속속들이 알기도 했지만 지역사회가 그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열대여섯 살때쯤 그는 마을 밖으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따라 멀리까지 걷곤 했다.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며 허공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사람들은 차를 몰고 지나가다 속도를 늦추고 인사를 건넨 뒤, 묻곤 했다. 태워줄까, 도널드? 돌아오는길에 집에 데려다 줄까? 그저 걷고 싶다고해도 상관없었다. 도널드는 그들이 보호해야 할 존재였다. 누구나 그가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의 일부였으며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 P113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자폐증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노력은 지속되지 못했다. 너무 드물어 과학자들이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탓도 있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정신의학자들이 자폐증의 원인이 분명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최종 판결은 이랬다.

자폐증은 엄마가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이런 생각은 리타 테퍼가 어린이였던 1940년대 후반에 싹터 리타가 엄마가 된 1960년대에는 하나의 신념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스티븐이 자폐증으로 진단받자마자 들은 말도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의료인이 아들의 자폐증을 그녀의 잘못 때문이라고 믿었다. 동시대에 자폐 자녀를 키우며 눈물겨운 노력을 쏟아부은 여성들처럼 리타도 그런 끔찍한 환경을 견뎌야 했다. - P121

냉장고 엄마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물론 비난이었다. 씨앗이 처음 뿌려진 것은 1948년 4월 26일, 《타임》지에서 "의학-얼어붙은 아이들Medicine: Frosted Children" 이란 기사를 내보냈을 때였다. 자폐증에 관한 최초의 보도였다. 드물지만 "기저귀를 떼기 전부터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유아 조현병 환자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부모를 비난하는 데 치우쳐 있었다.
기사는 《타임》지 특유의 과장 섞인 질문으로 끝맺는다. "냉담한 부모가 자녀를 얼어붙게 만들어" 자폐증으로 내모는 것일까? 《타임》지에 따르면 확진된 모든 증례의 엄마 아빠는 한가지 특정한 유형에 해당했다. "자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항상 "냉담"하고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뭔가 문제가 있었다."
기사 끝부분에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그려낸 이미지는 이후 20년간 자폐증에 관한 대중적 논의를 규정했다.
••••••
그리고 그 표현은 도저히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레오 카너다. - P128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카너가 부모들의 냉정함에 새롭게 주목했다는 것은 최초의 통찰에 대한 놀라운 배신이었다. 어쩌면 자폐증에 대한 학설을 당시 주류 정신의학계의 사고방식과 일치시키려고했을지 모른다. 자폐를 ‘선천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신질환이 예외 없이 정서적 외상의 경험에서 생기며, 거의 항상 엄마가 관련된다는 정신의학계의 합의된 의견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심지어 "조현병 유발성 엄마"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였다. 자폐증을 슬그머니 조현병 항목 밑으로 옮겨놓으면서 카너는 자폐증을 타고난다는이론에서 한걸음 물러나 정신의학계 동료들이 친숙한 방식으로 가족역동에 초점을 맞춰 부모의 행동을 낱낱이 분석하려는 내적 압박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간단히 말해 1948년과 1949년에 부모들에대해 말하고 쓴 것만 본다면 카너는 애초의 확신에 등을 돌리고 엄마가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하는 최초의 전문가가 되었다. 이런 입장은 매우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이후 여러 차례 명성을 얻었다가 잃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 P144

 그 경험을 통해 루스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알수 있었다. 나중에는 초기 경험을 토대로 젊은 부모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이해하기 쉽고 명확한 줄거리를통해 "자폐라는 드라마의 열기를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아이들의 "가슴 아픈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대중의 관심을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P171

근거는 턱없이 부족했다. 자폐 어린이에 관해 세계적으로 알려진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만 따져봐도 엄마가 문제라는 개념을 완전히무너뜨릴 수 있었다. 우선 자폐 어린이를 키우는 거의 모든 엄마에게 자폐가 아닌 자녀들이 있었다. 말벌보다도 독성이 강하다는 여성들이 단 한 번만 침을 사용했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또한 릴랜드는 심리치료가 자폐증을 해결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심리적 요인으로 시작된 질병이라면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심리치료의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42명의 어린이가 참여한 연구에서는 29명에게 매우 고강도 심리치료를반복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부적절한 치료를 받았거나 아예 치료를 받지 않은 13명 중 몇몇은 나중에 상태가 좋아져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냉장고 엄마 이론은 어린이가 생애 초기에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고 가정했다. 부모가 곁에 없었거나, 형제가 태어났거나,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논문에 포함된 230명의 어린이를 살펴보면 유발 사건에 공통적인 패턴이 전혀 없었다. 아주 어려서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자폐 상태가 되었다는 증거 또한 전혀 없었다. 기록만으로도 부모가 차갑고, 자녀에게 관심이 없으며, 자기에게 빠져 있는 성격이란 가설이 적어도 23개 가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생기에 넘치며 따뜻했다. 림랜드는 엄마들이 진료실에서 자녀를 자신없는 태도로 대했다거나, 의사의 질문에 단조롭고 활기없는 목소리로 답했다는 것이 "냉정함"의 증거가 아니라 지치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아무리 애정어린 말을 건네고 손길을 주어도 자녀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면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한편 림랜드는 부모들의 행동이 유전적 요인을 시사하는 단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부모의 성향을 물려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부모와 어린이들은 그저 동일한 유전적성향을 나타내는지 모른다. 정확히 유전적이 아니라도 어떤 환경적요인이 정도는 다르지만 부모와 자녀에게 모두 영향을 미친 것은아닐까? 림랜드의 데이터베이스는 자폐란 현상이 인간이란 생물체자체에서 기원했을지 모른다는 온갖 증거를 보여주었다. 엄마가 잘못 키웠기 때문이란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심리에 주목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며, 자폐증은 생물학적 현상이라고확신했다. - P178

림랜드는 처음부터 이들과의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인식했다. 그것은 변혁운동의 시작이었다. 루스 설리번이 뉴욕주 올버니의 작은 공동체에서 엄마들을 조직하여 하나의 세력을 형성했듯, 이제 림랜드는 모든 가족을 연결하는 중심에 있었다. 수개월이 지나고 각지에서 보내온 편지가 계속 편지함에 쌓이면서 그들의 숫자는 금방 수백 가족을 넘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전역의 해군기지를 돌아다니는 터였다. 그는 빠듯한 출장 일정을 조정하여 가족들의 집을 방문했다. 몇몇 가족이 만나는 모임을 주선하여 생각처럼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가족들 역시 너무나 소중한 것을 선물했다. 바로 데이터였다. 그들이 작성한 E-1 서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 P186

물론 그들은 양부모였다. 프랭키는 데려온 자식에 불과했다. 원한다면 언제라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아이를 돌려보낼수 있었다. "아무래도 잘 안 되네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저희로서는 역부족이에요"라고 할 수도 있었다. 사실 그런 생각이 한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반대쪽을 택했다. 프랭키를입양했던 것이다. 아이는 영원히 부부의 아들이 되었다. 사랑을 듬뿍 받았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 어엿하게 바턴이라는 성을 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 중에 조지와 앨리스가 결코 외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세대 전 부모들이 모든 면에서 고립되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1970년에도 부모들은 여전히 차가운 빗속에 서있는 셈이었다. 사회는 그들 자녀의 존재와 필요를 전혀 이해하지못했다. 하지만 산타바바라의 바턴 부부는 가족 내 자폐라는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소수의 부모가 주변에 있으며 그들과 연대할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교류하며 서로 버팀목이 되었다. 자녀를 위해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어쩌면 그들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되어주었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스무 명 정도였다. 하지만 조지와 앨리스는 공동체의 일원이란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버티고 싸워나갈 힘을 얻었다. 많은 부모가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이야말로 자폐증의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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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을 가져야 한다. 가까이 모시고 있는 대통령부터 멀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저 건너편 사람들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던 ‘직‘을 맡는 순간부터는 ‘정치적입장‘은 버리는 것이 좋다. 우리는 국가 행사나 기념식, 추념식등을 준비하며, 종종 이 일이 ‘제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사이가 나쁘고 밉고 싫어도 제사상 앞에서 가족들은 억지로라도 서로를 참고 예를 다하려 한다. 그 자리에서 극적으로 화해하고 서로를 이해하기도 한다. - P423

윤석열 정부 청와대 폐쇄가 공식화되고, 대통령 임기 마지막날 자정에 개방 행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몹시 언짢고 화가 났다. 다음 날 대통령이 취임식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면서, 주무시고 계실 자정에 청와대를 개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했다. 그 의도가 참 흉측했다.
제대로 된 취임식도 못 해드렸는데, 퇴임도 이렇게 쫓겨나듯하게 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대통령은 홀가분해하셨다. "잘 됐다. 밖에서 하루를 보내고, 취임식 참석 후에 양산으로 내려가면 되지"라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계속 씩씩거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아니 왜 이렇게 화를 내, 화내지 마. 탁 비서관은 계속 화가나 있는 것 같아."
"화가 나니까 화를 내죠."
처음으로 혼잣말이 아니라 들으실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툴툴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화를 내 본들 어쩌겠는가. 게다가 대통령은 좋다고 하시는데……… 퇴임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다가올수록 사람들은, "대통령 퇴임하실 때 뭐 특별한 거 있지?
있겠지? 당연히 있겠지 뭐" 이렇게들 믿고 있는 눈치였다. 그제야 ‘아, 대통령이 싫다고 하셔도 뭐라도 해야겠구나‘ 싶었다.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준비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430

마지막 순서로 대통령과 여사님을 무대 위로 모셨다. 그리고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대통령은 무대에 올라 나를 보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오늘 이 행사 누구 허락받고 하는 건가요? 탁 비서관 나한테 허락받았나요?"
나는 대답했다.
"냅두세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대통령은 다시 한번 크게 웃으시며 말씀을 이어갔다.
"오늘 이렇게 우리가 모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밖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오늘 이 자리에서처럼,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해 온일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일한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나도 여러분도 다 보상받은 겁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여사님도 짧게 한 말씀하셨다.
"청와대에서 내가 제일 대통령을 위하고, 힘들고, 어려운지알았는데, 오늘 여러분들 말씀을 듣고 영상을 보니 이렇게 많은사람이 대통령을 위해서 일했구나 싶어 정말 고맙습니다."
두 분 말씀을 끝으로 이제 정말 행사를 끝내야 할 시간이 됐다. 퇴장 음악 <미스터 프레지던트>가 흘러나왔다. 나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준비했던 마지막 멘트를 했다.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퇴장하시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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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그들도 울었다. 극장안의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발코니에서도, 1층객석에서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몰랐다. 무대 구석에서는 그날 밤 쇼의 호스트 존 스튜어트 on Stewart가 손으로 뺨을 감싸고계속 쓸어내렸다. 무대 뒤로 퇴장할 시간이었지만 잠시라도 더 박수를 보내는 청중과 그 순간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싶었다. 무대위에는 지금 막 듀엣으로 압도적인 공연을 펼친 아이와 가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 있다. 감격과 환희의 눈물 속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 P16

실제로 도널드는 자기 세계의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특이한 점 중에서 부모는 이부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품에 뛰어드는 법이 없었다. 엄마를 간절히 찾는 일도 거의 없었다. 친척들 역시 아이와 사귀지 못했다.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혹시나주의를 끌어볼까 해서 누군가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도 도널드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렇듯 주변 사람의 존재를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자기가 하던 일에 방해를 받으면 즉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던 일이라봐야 허공에 단어를 쓴다든지, 바닥에 주저앉아 끊임없이 냄비뚜껑을 돌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분명해졌다. 그것은 ‘동일함‘이었다. 완전하고도 순수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물리적 환경이 아주 조금만 변해도 참지 못했다. 가구를 옮기면 화를 냈고, 밖에 나갈 때는 들어올 때 밟았던 곳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꾸로 밟았으며, 장난감은 놀다 내버려둔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했다. 어떤 것이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난리가 났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이전에 그것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해야했다. 실제로 도널드는 기억력이 비상했다. 아버지가 여러 가지 색깔의 구슬을 실에 꿰고 있으면 제대로 본 것 같지도 않은데 똑같은것을 만들었다. 블록으로 쌓은 탑을 무너뜨리면 이내 똑같은 탑을쌓았다. 수많은 블록이 원래 위치에 놓인 것은 물론, 각 면이 향했던 방향까지 똑같았다. 두 살이 되자 금방 알파벳을 깨치더니 거꾸로도 줄줄 외웠다. 순서가 변하지 않는 한 어느쪽으로 진행하는 아무문제가 되지 않았다.
각각의 행동보다 더 이상한 것은 모든 행동이 다양한 결핍과 재능이 독특하게 결합된 형태로 한 사람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행동의 총합이야말로 도널드라는 사람의 극적인 인격을 포괄적으로 규정했지만, 거기에는 이름이 없었다. 아무도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단어에의존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그녀는 편지 속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담아 어린 아들이 "아무 희망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고백했다. "자폐증"이란 진단명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널드의 엄마인 메리 트리플렛Mary Triplett은 이런 상태를 변화시킨 사람 중 하나다. 그녀와 남편은 도움을 얻으려고 했을 뿐이지만, 그런 노력의 결과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의해 결국 도널드의 자폐증을 발견하고 의학저널을 통해 자폐증이란 상태가 최초로 기술되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꼬리를물고 일어나기 전에 부모는 자신들이 결정해놓고 즉시 후회했던 한가지 실수를 바로잡아야 했다.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와야 했던것이다. - P29

당시 수용시설에 보내라는 조언은 그리 잔인한 것으로 여겨지지않았다. "결함이 있다"는 말이 특별히 차별적인 용어도 아니었다. "신장판막의 결함 "처럼 그저 정상적인 기능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을지닌 임상용어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1902년에 등장한 "백치ethor", "치우unterle" "노둔moron "이란 용어도 "정신연령"이 3세 미만3~7세.7~10세인 사람을 지칭하는 의학용어일 뿐이었다. 20세기 전반에 장애를 지칭한 어휘 속에는 "천치retin", "무식쟁이ignoramus", "쑥맥 simpleton", "미치광이 maniac", "광인lunaue", "바보culard", "지진아durce", "망령난demented", "미친ceranged", "정신분열성 schizoid", "저능아spastic", "정신박약feebleminded", "정신이상 psychonic" 같은 말이 버젓이들어 있었다. 의료인들은 강의나 학술논문에서 명확히 정의된 임상적인 상태를 기술하기 위해 이런 용어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용어가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임상의학이란 맥락을 벗어나 누군가를 조롱하고, 상처를 주고, 낙인을 찍기 위한 말로 변질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런 의미 변화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먼저 결성된 지적장애 전문가 단체는 다섯 번이나 이름을 바꿔야 했다. 1876년에 설립된 백치 및 정신박약자를 위한 미국의료인Association of Medical Officers of American Institutions for Idiotic andFeebleminded Persons는 1906년 미국정신박약연구협회 American Associationfor the Study of the Feebleminded 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33년에는 미국정신박약협회 American Association on Mental Deficiency로 개칭했다. 1987년에는 미국정신지체협회 American Association on Mental Retardation가 되었다가, 마침내 2006년에 이르러 미국지능발달장애협회 American Association on Intellectual and Developmental Disabilities 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체retarded"라는 말도 한때 장애에 관한 용어 중 가장 중립적인 말로 "발달이 늦다delayed"는 의미를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었지만, 오랜세월 동안 문화 전반에 걸쳐 수많은 모욕적인 단어를 파생시켰다.
"몽골인을 닮은mongoloid "이란 단어도 빼놓을 수 없다. 다운 증후군을 지닌 사람을 지칭했던 이 말은 처음부터 인종적 함의 때문에 이중적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워낙 널리 사용되어 육아 분야 최초의 베스트셀러였던 벤저민 스폭Benjamin Spock 박사의 육아서 제1판에도 비슷한 단어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2판부터는 다운증후군 어린이의 부모에 대한 스폭 박사의 조언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처음 조언 역시 당시 통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P42

인류학, 동물학, 유전학, 심리측정학 등 비교적 새로운 과학들의결합에서 탄생한 우생학은 인류의 혈통에서 결점과 불순물을 씻어버릴 수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테디 루스벨트 대통령조차 친구인 뉴욕의 변호사 메디슨 그랜트Madison Grant 가 쓴 우생학선언서 《위대한 혈통의 전승The Passing of the Great Race》을 추켜세웠다. 책에서 그랜트는 집단 선택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허약하고, 결함투성이이며, 정신적 불구인" 유전적 영향을 일소하고,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수백만 시민을 제거하라고 권고했다. 루스벨트는 "국민이 가장 절실히 깨달아야 할 사실을 잘 요약한 책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오스트리아 청년은 그랜트에게 팬레터를 보내 그의 책이 자신의 "바이블"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청년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랜트는 자손을 이어갈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강제불임술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우생학에 어찌나 열광했던지1920년대에 미국 17개 주에서 강제불임술을 법제화할 정도였다.
이런 조치는 정파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1926년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의 창립자이자 사회적 약자를 적극 옹호했던 마거릿 생어 Margaret Sanger는 바사 대학 Vassar College 강연 중 이렇게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 이제 문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기에 이른 지능박약인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미국 국민은 세금을, 그것도아주 무거운 세금을 물고 있습니다." - P53

모든 사람이 케네디 편은 아니었다. 《정신의학저널》 같은 호에는 여섯 쪽에 걸쳐 모든 장애인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살아갈 가치가있음을 인정하고, 정신장애인을 "인간답게 대할 것"을 천명하는 논문이 함께 실렸다. 저자는 비록 당시의 용어(결함이 있다. 정신박약, 치우)를 사용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공감과 그들의 존엄성 및 권리에 대한 존중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정신의학계가 당장 "정신박약이란 용어를 경멸적 의미로 취급하기를 중단해야 하며, 사회가 가장 약한 사람을 옹호하는 일을 축소시킨다면 결국 사회 자체가 왜소화되고 만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말로 논문을 끝맺었다. "정신박약자를 해방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정신장애 어린이를 대변하며 기존의학계에 도전장을 던진 사람은 존스홉킨스 대학 소아정신과 전문의 레오 카너 Leo Kanner 였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카너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논문, 21세기까지도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인용될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그 논문은 6년 전 부모의 손을 잡고 볼티모어에 있는 카너의 진료실을 찾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시시피주에서 온 소년의 이름은 도널드 트리플렛이었다. - P56

하지만 1942년 9월 28일자로 되어 있는 이 편지를 쓸 즈음 도널드의 행동에 대한 카너의 인식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먹지를대고 쓴 이 편지의 복사본은 65년간 어느 누구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존스홉킨스 병원 문서보관실에 놓여 있었다.) 상당 부분 절망에 빠진 메리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쓰인 이 편지는 진단에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때 카너는 이미 새로운 진단명을 떠올리고있었다. 도널드와 비슷한 어린이를 몇 명 더 진찰한 후 그는 메리에게 "사상 최초로 정신의학은 물론 다른 어떤 문헌에도 기술된 바 없는 질병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썼다. 편지에 따르면 그는 "도널드와 매우 비슷한 여덟 건의 중례‘를 발견했다. 그때까지 알리지 않은 것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발달 상황을 추적하기위해서였을 뿐, 머지않아 자신의 관찰을 널리 알리고 병명도 정할생각이라고 했다.
"도널드와 다른 소년들의 상태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정서적접촉에 대한 자폐적 장애‘로 명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카너는 도널드와 비슷한 행동 패턴이란 맥락에서 최초로 사용한 "자폐적"이란 말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 어린이들이 아주 이른 유아기부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 건강상태와 "타고난 지적능력큰 문제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결국 카너가 장차 자폐증이라고불릴 상태를 발견했다고 처음으로 선언한 것은 한 어머니에게 보낸 개인적 서신을 통해서였다. 이제 도널드는 최초의 자폐증 환자가될 터였다. - P73

"저는 잪ㅖ증를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자폐증은 그전부터 있던 병이었습니다."
그전부터 있었다.
이 한 문장으로 카너는 자폐증이란 분야에서 가장 오랜 논쟁거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요약했다. 그가 "자폐적 장애"라고 기술했던 일련의 행동은 20세기 중반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인가 아니면 그전부터 계속 있었지만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이 질문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명확히 대답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이유는 20세기 이전까지 의학적 기록과 기록을 보관하는 방식이 초보적인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1차대전 전까지는 통계학적으로유익한 규모의 인구집단에서 개인의 행동 특성을 체계적으로 관찰한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없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과학적 방법론, 일관성있는 용어, 연구와 관찰을 통해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근거로서 정신의학적 진료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어린이 정신의학은 두말할 것도 없다. 카너의 세대는 선구자가 될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기록이 없으므로 도널드에게서 관찰한 자폐증이란 행동이 그 시점에 생겨났다고 주장해도 통계학적 근거를 들어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자폐증이 그전부터 있었다고주장해도 추측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신의학 영역에서는 너무나 뻔한 것조차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카너는 알았다. 연설 중에 설명했듯이 그는 자폐증을 발견했다기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관점을 발견한 것이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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