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그들도 울었다. 극장안의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발코니에서도, 1층객석에서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몰랐다. 무대 구석에서는 그날 밤 쇼의 호스트 존 스튜어트 on Stewart가 손으로 뺨을 감싸고계속 쓸어내렸다. 무대 뒤로 퇴장할 시간이었지만 잠시라도 더 박수를 보내는 청중과 그 순간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싶었다. 무대위에는 지금 막 듀엣으로 압도적인 공연을 펼친 아이와 가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 있다. 감격과 환희의 눈물 속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 P16

실제로 도널드는 자기 세계의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특이한 점 중에서 부모는 이부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품에 뛰어드는 법이 없었다. 엄마를 간절히 찾는 일도 거의 없었다. 친척들 역시 아이와 사귀지 못했다.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혹시나주의를 끌어볼까 해서 누군가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도 도널드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렇듯 주변 사람의 존재를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자기가 하던 일에 방해를 받으면 즉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던 일이라봐야 허공에 단어를 쓴다든지, 바닥에 주저앉아 끊임없이 냄비뚜껑을 돌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분명해졌다. 그것은 ‘동일함‘이었다. 완전하고도 순수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물리적 환경이 아주 조금만 변해도 참지 못했다. 가구를 옮기면 화를 냈고, 밖에 나갈 때는 들어올 때 밟았던 곳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꾸로 밟았으며, 장난감은 놀다 내버려둔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했다. 어떤 것이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난리가 났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이전에 그것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해야했다. 실제로 도널드는 기억력이 비상했다. 아버지가 여러 가지 색깔의 구슬을 실에 꿰고 있으면 제대로 본 것 같지도 않은데 똑같은것을 만들었다. 블록으로 쌓은 탑을 무너뜨리면 이내 똑같은 탑을쌓았다. 수많은 블록이 원래 위치에 놓인 것은 물론, 각 면이 향했던 방향까지 똑같았다. 두 살이 되자 금방 알파벳을 깨치더니 거꾸로도 줄줄 외웠다. 순서가 변하지 않는 한 어느쪽으로 진행하는 아무문제가 되지 않았다.
각각의 행동보다 더 이상한 것은 모든 행동이 다양한 결핍과 재능이 독특하게 결합된 형태로 한 사람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행동의 총합이야말로 도널드라는 사람의 극적인 인격을 포괄적으로 규정했지만, 거기에는 이름이 없었다. 아무도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단어에의존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그녀는 편지 속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담아 어린 아들이 "아무 희망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고백했다. "자폐증"이란 진단명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널드의 엄마인 메리 트리플렛Mary Triplett은 이런 상태를 변화시킨 사람 중 하나다. 그녀와 남편은 도움을 얻으려고 했을 뿐이지만, 그런 노력의 결과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의해 결국 도널드의 자폐증을 발견하고 의학저널을 통해 자폐증이란 상태가 최초로 기술되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꼬리를물고 일어나기 전에 부모는 자신들이 결정해놓고 즉시 후회했던 한가지 실수를 바로잡아야 했다.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와야 했던것이다. - P29

당시 수용시설에 보내라는 조언은 그리 잔인한 것으로 여겨지지않았다. "결함이 있다"는 말이 특별히 차별적인 용어도 아니었다. "신장판막의 결함 "처럼 그저 정상적인 기능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을지닌 임상용어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1902년에 등장한 "백치ethor", "치우unterle" "노둔moron "이란 용어도 "정신연령"이 3세 미만3~7세.7~10세인 사람을 지칭하는 의학용어일 뿐이었다. 20세기 전반에 장애를 지칭한 어휘 속에는 "천치retin", "무식쟁이ignoramus", "쑥맥 simpleton", "미치광이 maniac", "광인lunaue", "바보culard", "지진아durce", "망령난demented", "미친ceranged", "정신분열성 schizoid", "저능아spastic", "정신박약feebleminded", "정신이상 psychonic" 같은 말이 버젓이들어 있었다. 의료인들은 강의나 학술논문에서 명확히 정의된 임상적인 상태를 기술하기 위해 이런 용어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용어가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임상의학이란 맥락을 벗어나 누군가를 조롱하고, 상처를 주고, 낙인을 찍기 위한 말로 변질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런 의미 변화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먼저 결성된 지적장애 전문가 단체는 다섯 번이나 이름을 바꿔야 했다. 1876년에 설립된 백치 및 정신박약자를 위한 미국의료인Association of Medical Officers of American Institutions for Idiotic andFeebleminded Persons는 1906년 미국정신박약연구협회 American Associationfor the Study of the Feebleminded 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33년에는 미국정신박약협회 American Association on Mental Deficiency로 개칭했다. 1987년에는 미국정신지체협회 American Association on Mental Retardation가 되었다가, 마침내 2006년에 이르러 미국지능발달장애협회 American Association on Intellectual and Developmental Disabilities 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체retarded"라는 말도 한때 장애에 관한 용어 중 가장 중립적인 말로 "발달이 늦다delayed"는 의미를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었지만, 오랜세월 동안 문화 전반에 걸쳐 수많은 모욕적인 단어를 파생시켰다.
"몽골인을 닮은mongoloid "이란 단어도 빼놓을 수 없다. 다운 증후군을 지닌 사람을 지칭했던 이 말은 처음부터 인종적 함의 때문에 이중적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워낙 널리 사용되어 육아 분야 최초의 베스트셀러였던 벤저민 스폭Benjamin Spock 박사의 육아서 제1판에도 비슷한 단어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2판부터는 다운증후군 어린이의 부모에 대한 스폭 박사의 조언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처음 조언 역시 당시 통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P42

인류학, 동물학, 유전학, 심리측정학 등 비교적 새로운 과학들의결합에서 탄생한 우생학은 인류의 혈통에서 결점과 불순물을 씻어버릴 수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테디 루스벨트 대통령조차 친구인 뉴욕의 변호사 메디슨 그랜트Madison Grant 가 쓴 우생학선언서 《위대한 혈통의 전승The Passing of the Great Race》을 추켜세웠다. 책에서 그랜트는 집단 선택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허약하고, 결함투성이이며, 정신적 불구인" 유전적 영향을 일소하고,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수백만 시민을 제거하라고 권고했다. 루스벨트는 "국민이 가장 절실히 깨달아야 할 사실을 잘 요약한 책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오스트리아 청년은 그랜트에게 팬레터를 보내 그의 책이 자신의 "바이블"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청년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랜트는 자손을 이어갈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강제불임술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우생학에 어찌나 열광했던지1920년대에 미국 17개 주에서 강제불임술을 법제화할 정도였다.
이런 조치는 정파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1926년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의 창립자이자 사회적 약자를 적극 옹호했던 마거릿 생어 Margaret Sanger는 바사 대학 Vassar College 강연 중 이렇게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 이제 문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기에 이른 지능박약인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미국 국민은 세금을, 그것도아주 무거운 세금을 물고 있습니다." - P53

모든 사람이 케네디 편은 아니었다. 《정신의학저널》 같은 호에는 여섯 쪽에 걸쳐 모든 장애인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살아갈 가치가있음을 인정하고, 정신장애인을 "인간답게 대할 것"을 천명하는 논문이 함께 실렸다. 저자는 비록 당시의 용어(결함이 있다. 정신박약, 치우)를 사용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공감과 그들의 존엄성 및 권리에 대한 존중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정신의학계가 당장 "정신박약이란 용어를 경멸적 의미로 취급하기를 중단해야 하며, 사회가 가장 약한 사람을 옹호하는 일을 축소시킨다면 결국 사회 자체가 왜소화되고 만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말로 논문을 끝맺었다. "정신박약자를 해방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정신장애 어린이를 대변하며 기존의학계에 도전장을 던진 사람은 존스홉킨스 대학 소아정신과 전문의 레오 카너 Leo Kanner 였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카너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논문, 21세기까지도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인용될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그 논문은 6년 전 부모의 손을 잡고 볼티모어에 있는 카너의 진료실을 찾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시시피주에서 온 소년의 이름은 도널드 트리플렛이었다. - P56

하지만 1942년 9월 28일자로 되어 있는 이 편지를 쓸 즈음 도널드의 행동에 대한 카너의 인식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먹지를대고 쓴 이 편지의 복사본은 65년간 어느 누구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존스홉킨스 병원 문서보관실에 놓여 있었다.) 상당 부분 절망에 빠진 메리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쓰인 이 편지는 진단에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때 카너는 이미 새로운 진단명을 떠올리고있었다. 도널드와 비슷한 어린이를 몇 명 더 진찰한 후 그는 메리에게 "사상 최초로 정신의학은 물론 다른 어떤 문헌에도 기술된 바 없는 질병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썼다. 편지에 따르면 그는 "도널드와 매우 비슷한 여덟 건의 중례‘를 발견했다. 그때까지 알리지 않은 것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발달 상황을 추적하기위해서였을 뿐, 머지않아 자신의 관찰을 널리 알리고 병명도 정할생각이라고 했다.
"도널드와 다른 소년들의 상태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정서적접촉에 대한 자폐적 장애‘로 명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카너는 도널드와 비슷한 행동 패턴이란 맥락에서 최초로 사용한 "자폐적"이란 말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 어린이들이 아주 이른 유아기부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 건강상태와 "타고난 지적능력큰 문제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결국 카너가 장차 자폐증이라고불릴 상태를 발견했다고 처음으로 선언한 것은 한 어머니에게 보낸 개인적 서신을 통해서였다. 이제 도널드는 최초의 자폐증 환자가될 터였다. - P73

"저는 잪ㅖ증를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자폐증은 그전부터 있던 병이었습니다."
그전부터 있었다.
이 한 문장으로 카너는 자폐증이란 분야에서 가장 오랜 논쟁거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요약했다. 그가 "자폐적 장애"라고 기술했던 일련의 행동은 20세기 중반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인가 아니면 그전부터 계속 있었지만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이 질문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명확히 대답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이유는 20세기 이전까지 의학적 기록과 기록을 보관하는 방식이 초보적인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1차대전 전까지는 통계학적으로유익한 규모의 인구집단에서 개인의 행동 특성을 체계적으로 관찰한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없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과학적 방법론, 일관성있는 용어, 연구와 관찰을 통해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근거로서 정신의학적 진료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어린이 정신의학은 두말할 것도 없다. 카너의 세대는 선구자가 될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기록이 없으므로 도널드에게서 관찰한 자폐증이란 행동이 그 시점에 생겨났다고 주장해도 통계학적 근거를 들어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자폐증이 그전부터 있었다고주장해도 추측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신의학 영역에서는 너무나 뻔한 것조차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카너는 알았다. 연설 중에 설명했듯이 그는 자폐증을 발견했다기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관점을 발견한 것이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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