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행성〉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지지를 얻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알렉스는 이렇게설명했다. "온라인에서는 (아스퍼거인들이 말하는 방식이나 틀에 박힌 버릇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채팅할 수 있기때문이죠." 사회적 압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과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눈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눈썹을 치켜세운다든지, 억양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등 순간순간의 비언어적 소통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아스퍼거공동체에 속한 사람에게 그런 식의 소통은 항상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2005년경에 이르러 인터넷에서 하나의 표현양식으로 자리잡은 텍스트를 통한 대화는 <잘못된 행성> 사용자들을 완전히 해방시켰다.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신호에 애를 먹었던 사람에게 인터넷은 해방구였다. 채팅창에서는 누가 아스퍼거인인지 전혀할 수 없었다. - P700

<잘못된 행성>의 구독자 수가 치솟기 시작할 무렵 아스퍼거 증후군을 둘러싸고 형성된 정체성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공공정책과 정치 영역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진 것은물론, 할리우드에서는 "아스퍼거적" 인물이 나오는 쇼를 기획하고 온라인 액세서리 샵에서는 "아스피의 자부심Aspie Pricle "이란 주제로커피컵, 머리띠, 커튼, 토트백, 티셔츠 등 온갖 물건을 팔았다. 당시인기를 끈 티셔츠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사회적으로 서투르지만, 지적으로는 뛰어나다네.socially awkward intellectually advanced."
"누구나 때때로 자폐인 비슷할 때가 있지 않나요?" 우타 프리스는 물었다. "저 역시 가끔은 약간 자폐 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요."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이 "정상"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은 너무나 널리 퍼져 정확한 구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개념은 사람들에게 쉽게 먹혀 들었다. 누구나 스펙트럼이라는 냇물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우습다고 생각하는 농담이 전혀 우습지 않다거나, 규칙을 너무 곧이곧대로 지킨다고 놀림을 당한다거나, 그저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사람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누구나 한두 가지씩 지니고 있는 성향을 버젓이 DSM에 승인된 진단명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일말의 안도감과, 심지어 약간의 만족감까지 선사했다. - P704

이런 생각은 일부 "아스피"들이 특정한 우월성을 주장하며 장애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템플 그랜딘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동안 혼자 바위를 깎아내는 데 몰두했던 아스피가 인류 최초로 돌로 된 창을 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약간의 자폐적 성향은 멋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폐인이 그녀 혼자만은 아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자폐인의 뇌는 창조적 사고를 할수 있는 독특한 능력과 세상을 바꿔놓을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필요한 인내심을 갖고 있다. 자기를 아스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이런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 인류의 지식과 문화에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자폐인이었으리라 짐작되는 사람의 이름을 대는 일종의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에밀리 디킨슨, 에이브러햄 링컨, 미켈란젤로, 모짜르트, 반 고흐 등이 흔히 언급되었다. 템플그랜딘이 서문을 쓴 놈 레전Norm Ledgin 의 《제퍼슨 진단하기 Diagnosing Jefferson)는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 아스퍼거 증후군이었음을 입증하는 데 책 한 권을 통째로 바친 후, 그것이 "제퍼슨의특이한 점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 P705

 1960년대부터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자폐인이 지적으로도 장애 상태라는 데 확고한 의견일치를 보았다. 몇몇 연구 데이터를 근거로 한 결론이었다. 자폐인 중 70~80퍼센트가 "평균 미만" 수준의 지능을 나타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폐 스펙트럼이란 개념이 생기기 전, 정의 자체가 달랐던 시대의 연구들이었다. 2010년, 진실의 추는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급격히 기울었다. 그해에 CDC는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의 거의 절반이 높은 수준의 지능을 나타낸다고 보고했다. 자폐 스펙트럼에 훨씬 많은 사람을포함시킴으로써 나타난 "인구학적 변동"으로 인해 유병률이 상승한 동시에 사회적으로 깊은 수준의 변화들이 뒤따랐다. 소위 고기능 자폐인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가 제공해야 할서비스의 종류가 확실히 달라지자 새로운 활동 영역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동과 함께 자폐증의 정치학을 영원히 바꿀 훨씬 급진적인 개념이 탄생했다.
바로 "신경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철학이다. 그 개념은 자폐공동체 내에서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았지만, 동시에 일부 자폐 부모는 새로운 적수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자폐인들 자신이었다. - P712

짐 싱클레어를 비롯한 사람들이 신경다양성이란 철학을 설파하면서 반박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이었다. 중심원리는 자폐증을 갖고 사는 것(신경다양성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표현으로는 "자폐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역시 인간으로 존재하는 또 한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매우 건전하고 아무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논리적 귀결은 훨씬 논쟁적이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 무슨 완치가 필요한가? 그러니 자폐증 역시 완치 따위는필요 없다. 자폐인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 자폐를 없애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은가? - P718

스스로 자폐인이었기 때문에 네이만은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공개적으로 그에게 맞서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네이만이 논쟁에서 조금도 기가 죽지않는 타입이기도 했지만, 자폐인이란 사실을 명예로운 훈장처럼 여기고 자신과 동료들이 심한 편견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대놓고 논쟁을 벌여서 이로울 것은 없었다. 네이만은 딱 맞는 시점에 ASAN을 출범시킨 셈이었다. 자폐증을 단순한 발달장애가 아니라신경학적 차이로 봐야 하며, 따라서 "모든 자폐인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존재"라는 주장은 성적 정체성의 폭넓은 차이를 인정하기 시작한 문화 속에서 훨씬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신경다양성이라는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종종 성소수자 권리옹호 캠페인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네이만과 자신이 자폐인임을 밝힌 지지자들을 "개방적 자폐인"이라고 불렀다. 그 말에는 네이만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속이 좁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 숨어 있었다. 네이만이 종종 논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거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명망있는 단체는 공연히 그와 논쟁을 벌여 무지몽매하다는 인상을 줄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인터넷 채팅방과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를 깎아내린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네이만의 가장 큰 표적인 오티즘 스피크스는 다소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며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응수하지 않았다. - P729

하지만 "치료하지 말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벨은 이 부분이 청중, 특히 주지사처럼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외부인에게 깊은인상을 주지 않기를 바랐다. 이 특이한 대학생이 모든 자폐인을 대변한다고 판단하지 않아야 했다. 사실 네이처럼 재능있고 말 잘하며 설득력을 지닌 활동가들이 자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내세울수록 점점 많은 사람이 심한 장애를 겪는 자폐인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벨은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 밤중에 나가 돌아다니다 강이나 이웃집 수영장에 빠져 익사하지 않도록 24시간 눈길을 뗄 수 없는 사람들, 성인이 된 후에도 하루에 두 번 이상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엄연히 자폐공동체의 일원이지만 인터뷰 따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저녁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결국 대중은 자폐증이 얼마나 심한 장애일 수 있는지, 삶을 누릴 기회를 얼마나 많이 박탈하는지, 신경다양성 운동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는 일부 가족이 "진짜 자폐증"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 P731

네이만은 정중한 태도로 귀를 기울였지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벨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통찰을 남기기도 했다. 활동가로서 그의 투지와 진실성이 난공불락이라 할 정도로 견고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빙빙 돌려 말하거나, 사실을 지어내거나, 술수를 부리지 않았다. 자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자녀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극도로 절망하는 자폐인의 어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도 조금도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움츠러들거나, 동정을 표시하거나, 어조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벨은 네이만이 진정으로 자폐 장애인인지진지하게 의심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전혀 흔들리지 않는 태도는 확신을 나타내주기도 했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의관점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태도가 사이먼 배런코언이 "심맹"이라고 일컬었던 고전적 자폐성향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시 배런-코언이 제안한 "필연적 결과 이론"에 따르면 이런 인지 방식은 남에게 공감을 느끼는 경험을 저해한다. 이런 개념은 논란이 있으며 아스퍼거인에게 모욕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아스퍼거인들은 공감 "결손"을 시사한 연구들이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역의 장애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 때문에 아스퍼거인이 "신경정상자들"의 세계에서 살기가 그토록 어렵다고 마지못해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 P733

오래도록 부모들이 변화를 주도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자폐증에 관한 대화는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레오카너가 창안했던 "유아자폐증"이란 진단명에서 이바 로바스의ABA 치료, 공교육 편입을 위한 투쟁, 백신을 둘러싼 논란에 이르기까지 자폐증에서 주목받은 부분은 항상 어린이의 장애라는 측면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레인 맨>에서 그려낸 레이먼드나 템플 그랜딘은 자폐증을 겪는 성인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차원에서 자폐증을 생각할 때는 누구나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피트 게르하르트는 스펙트럼의 "성인 쪽에는 전문가들 사이의 경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명한 성인 자폐증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그는 동료들이 어린이 쪽을선호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어린이가 성인보다 훨씬 귀엽고 신체의크기나 오래도록 굳어진 습관이라는 면에서도 도움을 주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가 성인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앞날이 밝은 선택"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763

자폐 성인들의 환경을 보다 좋은 쪽으로 바꿔나가려는 노력은 적어도 두 가지 공통점을 갖는 경향이 있다. 첫째는 아직까지 소규모실험에 그친다는 점이며, 둘째는 자녀의 가장 중요한 옹호자이면서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나이든 자녀의 삶을 염려하는 부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자폐적 ‘다름‘에 대한 인식이 계속 확산되면서 이들을 돌보는 것이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할 책임이란 생각이 널리 퍼진다면, 거기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공동체에서 언어능력과 언론에서 다루기 좋아하는 특별한 재능과 기술을 겸비한 자폐인뿐만 아니라 모든 자폐인에게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는 데 발벗고 나설 수 있을 것이다.  - P768

야, 너 왜그래? 이 자식아!
게르하르트에게 이 말은 위협적으로 들렸다. 그는 버스 앞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기 전에 니콜라스를 보호해야 했다.
갑자기 다른 승객이 일어나 앞을 가로막았다. 게르하르트는 그가누군지 몰랐지만, 분명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 몇 주간 니콜라스와함께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게르하르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소년을 괴롭히는 승객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얘가 왜그러냐구? 얘는 자폐인이요 이제 당신들이왜 그러는지 말해봐요. 아니면 입 닥치고 조용히 가든지."
긴장 어린 정적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남성은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니콜라스 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더 이상 니콜라스를 건드리지 않았다. 게르하르트는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솟아올랐다. 그는 그 버스가 즉흥적으로 자신이 평생 그려왔던 공동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노선을 달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던 십여 명의 승객 사이에 일종의 친근감이 생겨났던 것이다. 미시시피주 포레스트처럼 이웃들은 어딘지 다른 그 소년이 사실은 "우리 중 하나",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일은 뉴저지주의 한 버스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디서든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 P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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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백신법정은 정당성을 입증할 기회를 제공했다. 청구인이 백신에 의해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타당성있게 입증하면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백신법정은 일부 유형의 상해에 대해서는 백신이 문제란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으므로 생물학적 기전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했다. 예컨대 매우 드물지만 소아마비 백신은 실제로 소아마비를 일으킬 수 있으며, DTP 백신은 아나필락시스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자폐증은 사전 인정된 부작용에 해당되지 않았다. 변호사가 의뢰인을위해 보상을 받아내려면 자폐증이 백신과 관련이 있다는 이론과,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하고 소송의 주인공인 어린이가백신 접종으로 인해 자폐증이 생겼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결코 만만한 장애물이 아니었다. - P669

최근 몇 년간 캘리포니아주의 자폐증 발생률을 추적해보는 것이었다.자폐증 발생률이 떨어지고 있다면 티메로살 이론이 맞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백신 제조사들은 대부분의 어린이용 백신에 티메로살을 사용하지 않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태어난 어린이들은 백신을 통한 메틸수은 노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자폐증 역시 줄었을것이었다. 커비는 자칭 시민 케인Crizen Cam 이라는 블로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2007년까지 3~5세 어린이 중 자폐증 진단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자폐증-티메로살 가설에 치명타가 되겠지요." 마침내 마감 시점인 2007년이 되었지만 캘리포니아주의 자폐증 유병률은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올라갔다. 다시 일년이 지나자 유병률은 더욱 높아졌다.
이런 식으로 백신이 문제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반박당했다. 결국백신 반대 진영의 가장 큰 성취조차 서서히 해체되었다. 항상 주변부를 맴돌던 백신에 대한 불신은 자폐증이란 호재를 만나 주류 문화 속으로 급부상했다. 변화를 부채질한 것은 주류 언론이었다. 종종 과학자들과 백신에 반대하는 부모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식으로 과학과 근거없는 믿음이 거의 동등한 것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이런 관행은 과학적 데이터가 쌓이면서 백신의 양면성이란 서사가 약화되기 시작한 2007년과 2008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퇴조했다.  - P671

백신 논란의 와중에 오티즘 스피크스는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선한 원칙과 과학의 충돌을 겪었다. 양극단의 지지층 사이에가로놓인 거대한 격차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예방접종의 "입증된 효과"를 지지한다는 강령을 지닌 그들은 어느 누구의 비위도 거스르지 않으려고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했다. 동시에 백신이 혹시라도 유해할지 모를 가능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천명했다. 어느 쪽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태도가 양쪽을 모두 소외시키는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 P683

백신이론을 믿고 오랫동안 지지해온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매우 이례적으로 헤이스팅스는 판결문의 한두 문장을 할애하여 세디요 가족을 비롯한 자폐 가족들이 그런 이론을 확신하도록 부추긴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는 다시 기울임체를 써가며 그들이 "매우 잘못된" 조언을 한 의사들과 다른 전문가들의 말을 믿었다고 썼다. "세디요 가족은 잘못된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고 지적하며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개인적 견해로는 그 의사들이야말로 전반적으로 그릇된 의학적 판단을 내린 데 대해 유죄를 선고받아야 할 것이다." 통렬하고도 가혹한 일침이었다. 백신이론은 또 실패한 것이다.
나머지 가족들도 차례차례 패소했다. 항소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2010년 여름 마지막 항소 건이 기각되었다. 미쉘 세디요 가족이었다. 부모들을 부추겨 소송을 시작했던 변호사들은 한 푼도 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바로 흥미를 잃어버렸다. 과학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 P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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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는 우리가 교재로 쓰던 칼리마코스의 풍자시에 대한 두 페이지짜리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되어 있는 것은 한 페이지뿐이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면서 서둘러 편법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편법이란, 일단 영어로 써놓고 이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방법이었다. 이 편법은, 줄리언이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방법이기도 했다. 줄리언에 따르면 그리스어산문 작법 공부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실용적으로 쓰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어 산문 작법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쉽게 언어를 숙달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어를 이용한 사고법이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그리스어를 다른 언어의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개념으로 억지로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한정해버리면, 사고의 패턴이 전혀 달라져버린다. 결국 상당히 평이하고 일반적인 개념이 엉뚱한 개념으로 바뀌는가 하면, 그 개념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개념이 생생하게 살아나 완전히 새로운 의미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리스어 개념을 영어로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곤란을 겪고는 한다. 불을 뜻하는 라틴어의 인켄디움(incendium)은 프랑스 사람들이 담배에다 붙이는 퍼(feu)와는 다르다. 이 둘은 불은 불이라도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무정하고 흉폭한 퓌르(pur)와도 다르다. 그리스어로 퓌르(pur)라고 할 경우, 이불은 일리온(트로이아-옮긴이) 성 위로 오르는 불길, 바람이 휘몰아치는 한적한 해변에서 파트로클로스의 화장단솟아오르는 불길을 말한다. - P314

어떤 의미에서 내가 고전어과 동아리에 친밀감을 느끼는 까닭도 여기에있다. 고전과 동아리 역시 수세기 동안 사멸의 길을 걸어온 이 그리스어가그려내는 끝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처절한 풍경을 이해한다. 그들 역시 5세기적인 눈으로 그리스어 책을 펼치고는 어쩐지 타향을 대할 때처럼 세계가 서먹서먹하고 낯설게 보이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내가 줄리언을, 특히 헨리를존경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이성, 그들의 눈, 그들의 귀는 그 엄격한 고대의 리듬에 고착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세계는 그들의 고향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 세계라는 것에 의하면 그랬다. 그러나 내가 그세계를 흠모하는 관광객이었던 반면, 그들은 자신들을 정기적인 방문자를넘어 영주권자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 P315

시간이 갈수록 버니에 대한 나의 증오는 자라갔다. 사냥개처럼 그는 재빨리 본능의 코로, 내가 가장 감추고 싶어하던 나의 취약한 부분, 나에게 수많은 불면의 밤을 안기던 약점의 냄새를 맡아나갔다. 그가 나를 상대로 되풀이해서 벌인 이 기묘한 장난은 대단히 가학적이었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나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다. 어느 날 그는 나의 넥타이를 보면서 이런말을 했다.
"멋진 넥타이다. 에르메스 같은데,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의 손이 식탁 위를 건너와 나의 넥타이를 뒤집었다. 물론 싸구려 넥타이에 에르메스 상표가 붙어있을리 만무했다. - P343

그러나 이런 불쾌한 기억이 늘 나를 괴롭히기는 했어도 버니에게 그런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정반대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버니를 사랑했다. 어쩌다 버니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휘파람을 불면서 낡은 보도를 깐닥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애중이 착잡하게 뒤엉킨 감정으로 괴로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수백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었다. 모습, 몸짓, 머릿속에 든 것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버니라는인간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럴 경우에는 버니가 무슨 짓을 하건 화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는전과 다름없이 정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고는 했다. 그러니까 여느 때처럼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의자 등받이에 턱 기대면서부터는 태연하게 악담을 퍼붓고는했다. 그의 악담은 지극히 질이 낮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나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결코, 결코버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나자신에게 맹세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약속을 수없이 깨뜨려야 했다. 나는 여기에서 약속이라는 말을 쓰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최종적 약속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본심이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버니에게 느꼈던 것만큼의 처절한 분노는 경험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버니가 김이 잔뜩 낀 안경을 쓰고 쉰 냄새를 풍기면서 내 방으로 들어와 늙은 개처럼 머리에 앉은 빗방울을 털어내고는, "이봐요, 목마른 늙은이를 위해 마실 것 좀 내놔봐요" 한다고 해도 예전의 그 애정은 되살아날 것 같지 않다.
혹자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vincit omnia)라는 옛말을 상기시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고 서글픈 인생을 통해 내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옛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이기지는 못한다.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이기가 쉽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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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널 믿지 않았어. 따라서 넌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을 테고, 따라서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우리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었어. 그런데도 넌 그러지 않았어. 이유가 뭔가?"
"헨리, 도대체 너희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모르니까 네가 좀 가르쳐주지."
말하기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나는 결국 하고 말았다.
"누군가를 죽였어. 그렇지?"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놀랍게도, 참으로 놀랍게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서 웃었다.
"역시 너답군. 내가 예상했던 대로 넌 역시 날카로워. 언젠가는 네가 다알아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어. 내가 이렇게 자초지종을 네 앞에 털어놓는이유도 거기에 있어."
커튼만큼이나 무겁고 현실적인 어둠이, 조그만 전등이 빚어낸 불빛 밖을일렁거렸다. 메스껍다는 느낌과 함께, 나는 한순간 네 벽이 밀려오는 듯한일종의 폐소공포증의 느낌을 동시에 경험했다. 그렇게 밀려오던 벽은 어느순간부터는 우리를 끝없는 어둠 속에 남겨두고 현기증이 날 만한 속도로물러나는 것 같았다. 나는 침을 삼키고 헨리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누구였어?"
헨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대답했다.
"그저 그런 사람이었어. 우연이라고 할까?"
"목적이 없었다는 거야?"
"하느님께 맹세코 없었어."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글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지난 가을 줄리언 교수의 수업 시간에, 플라톤이 시적 광기라고 불렀던 박카이아, 즉 디오뉘소스적 광란 상태를 놓고 토론하던 것 기억나?"
"기억나는군."
조바심이 났다. 살인의 과정 설명에 플라톤을 등장시킨다는 것은 헨리다운 수법이었다.
"우리도 한번 경험해보기로 했어."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물었다.
"뭘 해보기로 했다고?"
"박카이아를 경험해보기로" - P258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해. 언젠가 자동차로 사슴을 친 적이 있어. 참 아름다운 동물이었는데....… 나는 다리가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몸부림치는 그 사슴 앞에서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이따금씩 그 사슴을 생각하고는 하는데, 막상 사슴을 친 그날보다는 뒷날 생각할 때가 더 괴로워. 우리가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은 분명해. 그러나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이제 문제는 그 일 자체가아니야. 문제는, 불행히도 버니가 알고 있다는 데 있어."
"무슨 뜻이야?"
"오늘 아침에 버니가 노는 꼴 보았지? 우리를 미치게 하고 있지 않았어? 나는 교수대 올가미에 목을 집어넣고 있는 기분이야."
열쇠가 꽂히면서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헨리는 술잔을 들어, 꽤 많이 남아 있는 위스키를 단숨에 비웠다.
"프랜시스일 거야."
그는 그러면서 머리 위에 있던 전등을 켰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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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시작되었을 무렵 정말로 자폐증이 유행했다면 뭔가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새천년이 시작되기 불과 몇 년 전에 나타난 것이라야 했다. 그때부터 자폐증 유병률이 치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에서 대부분의 어린이가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는것이라야 했다. 두 국가가 유행의 진원지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경로를 통해 어린이의 몸속으로 들어가 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야 했다.
최근에 등장한 것. 어디에나 있는 것. 몸을 침범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 특징들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1998년 겨울 런던에서마침내 용의자의 이름이 밝혀졌다. 바로 백신, 예방접종이었다.
소위 자폐증의 백신이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의료행위로 인해 어린이에게 자폐증이 생길 수 있다는 대중적 공포였다. - P611

저자들의 주장은 명백했다. MMR 백신 속 살아있는 홍역 바이러스가 장의 염증을 유발할지도 모르며, 이 염증은 다시 뇌의 염증을유발하여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것이 골자였다. 분명 흥미로운 생각이었지만 전적으로 가설에 불과했다. 논문은 부모들의 기억을 가장중요한 근거로 제시했다. 강력한 과학적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증거였다. 웨이크필드와 동료들 역시 논문의 전체적인어조를 통해 그것이 가설에 불과함을 사실상 인정했다.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만약 그렇다면". 심지어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이 도처에 등장한다. - P613

물론 드문 일이지만, 불운하게도 의무적으로 예방접종을 받고 나서 자녀가 평생 앞을 못 보거나, 귀가 안 들리거나, 사지가 마비된사람에게는 이렇듯 논리적인 설명이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백신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는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족의 절망은 더욱 커진다. 가족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믿을 만한 증거는 시간관계다. 그런 증상이 거의 정확히 백신접종과 며칠, 심지어 몇 시간 차이로 나타났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관찰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관련된다고 인과관계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웨이크필드가 MMR 백신과 어린이의 자폐행동을 연결시킨 것은 "시간상 선후관계", 바로 그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자녀를 연구에 참여시킨 열두 가족에게 웨이크필드의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득력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웨이크필드야말로 자신들의 말에 진정으로 귀기울여준 첫 번째 과학자였다. 어느 누구도 MMR 주사와 자녀의 질병이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타당하다거나 의미있다고 받아들이지않았다. 게다가 웨이크필드는 소화기 전문의였다. 소화기에 놀랄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것은 열두 명의 어린이에게 공통된 두 가지 문제중 하나였다. 또 하나는 자폐증이었다. 가족들이 보기에 두 가지 문제는 연관이 없을 수 없었고, 게다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 P617

문제는 주류 의학계에서 신뢰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확실성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며, 데이터를 모으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웨이크필드 말고는 자폐증과 MMR이 관련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안전성에관해 전문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증거는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부모들이 진정으로 묻고 싶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부모들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MMR이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렇듯 확실한 답이 없는 초기 상황은 웨이크필드에게 더할 나위없는 기회였다. 또한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예방주사가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대중적 악몽을 불러일으키기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웨이크필드조차 연관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가 없음을 인정했지만 그 때문에 영국의 언론, 인간의 본성, 자폐증과 백신 사이의 관련성은 모두 한가지 공통적인 요소와 한데 묶였다. 바로 공포였다. - P623

그녀는 홍역을 언급하지 않았다. MMR 백신을 언급하지 않은 셈이다. 대신 배후에 전혀 다른 용의자가 있다고 지목했다.
그것은 수은이었다. 분명한 것은 백신에 수은이 들어 있으며, 수은은 잘 알려진 독성 물질이라는 점이었다. 1930년대부터 수은은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백신에 첨가되었다. 고무마개로 밀봉된 백신 바이알 속에는 여러 차례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 들어 있었다. 주사할 때마다 바늘을 병 속에 찔러넣어 일회분을 흡인했다. 이론적으로 주삿바늘은 매번 완전히 멸균처리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때때로 살아있는 미생물이 주사액 속으로 들어가 병 속의 백신을 오염시키고 환자를 감염시키는 일이 때때로 벌어졌다.
1930년대에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일라이 릴리 사LilyangCompany 에서 티메로살thmerosal이란 제품을 개발했다. 티메로살은 항균 및 항진균 효과를 나타내는 분말로, 보통 용액 상태의 보존제로 사용되었다. 티메로살의 두 번째 음절인 ‘mer‘은 주성분인 ‘수은mercury‘에서 따온 것이었다. 분자량을 기준으로 수은은 티메로살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티메로살은 아주 조금만 사용해도(0.01퍼센트용액) 멸균 상태를 유지하는 효과가 뛰어나 수십 년간 비강 분무액에서 콘택트렌즈 보존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의 표준성분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의 보존제가 새로운 물질로 바뀐 뒤에도 제약회사들은 백신에 티메로살을 고집했다. 1990년대후반까지도 티메로살은 30종이 넘는 백신에 사용되었다. - P625

희한하게도 성명서는 권고안 중 어떤 것도 실제로 티메로살의 위험이 알려졌기 때문에 채택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수준의노출이 유해하다는 데이터나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여, 이 점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성명서의 나머지 부분을 보면 그런 확실성을 깎아내리는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백신을 맞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연성있는 매우 작은 위험"이란 말을 반복하면서, 앞으로티메로살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은 "모든 잠재적 위험에 대비한다"는 원칙 때문이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게다가 AAP는 당시 회장이던 조엘 알퍼트Joel Alpert 의 성명을 두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이 또한 명확한 의도와는 달리 믿음직하게 들리지 않는 바람에 정반대 효과를 내고 말았다. "현재 사용되는 티메로살의 수준은 어린이에게 해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더 낮춘다면 안전한 백신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두 보건단체의 명확하지 못한 메시지는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공중보건 지침이 되고 말았다. 또한 그것은 가장 예기치못한 결과를 낳았다. - P628

그때쯤에는 힘의 균형추가 너무 많이 기울어 보건의료 관료들이모욕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도 티메로살과 자폐증 사이의 관련성을 믿는 사람들의 분노에 완전히 주눅든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 의회가 대중에게 부여한 권한을 이용하여 부모들은 정부측 과학자들의 내부 이메일, 메모, 회의기록 사본을 손에 넣고 혹시 정부에서 수은의 위험을 덮으려고 한 흔적이 있는지 꼼꼼하게들여다보았다. 2005년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라는 환경 전문 변호사는 회의록 중 하나를 근거로 《롤링스톤Rolling Stone》지에 "치명적 면역 Deadly Immunity"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정부와 백신 제조사들이결탁하여 "티메로살의 위험을 감추었다"고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제도의 오만과 힘과 탐욕에 관한 소름끼치는 증례 연구"라고불렀다. 기사가 나가자 상원에서는 정부의 과학 공무원들이 금전적 이해상충을 비롯해 부적절한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정식 조사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 백신정책을 이끄는 사람들은 거의 피의자 취급을 받았다. - P635

오티즘 스피크스의 두 번째 우선순위는 "권리옹호"였다. 한번 거물조직으로 인식되자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오티즘 스피크스 로비스트들은 즉시 권력 심층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 밥 라이트나 그가 보낸 특사와 만나기를 거부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수년간이런 상황이 지속된 덕에 오티즘 스피크스는 주 의회들을 설득하여보험회사에서 자폐증 치료 비용을 급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 그전까지 자폐 가족은 거의 항상 보험급여를 거절당했다. 자폐증은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오티즘스피크스가 강력하게 밀어붙여 통과시킨 새로운 보험 관련 법안보다 물질적으로 더 큰 혜택을 준자폐증 "개혁"은 없었을 것이다. - P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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