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걸 꿰뚫어보던 사람이 왜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소화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렸지?"
"그야 그렇잖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들을 할머니는 몰랐을거니까."
"이름들?"
"가스라이팅, 그루밍 뭐 그런 것들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지않게 딱 정의된 개념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시작선이 다르잖아." - P182

나도 어른이지.
언제까지고 딸, 손녀, 보호의 대상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어른으로 살 수 있지? 이미 어른이지만 제대로 된 어른으로 하루종일 잠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어려울 것이다. 퇴행의 증상이었다.
몸이 마음을 지키려고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겠지만 깨고 나가야 한다. 이해할 만한 상황이라고들 말하는데, 화수는 이해받는것에도 질려 있었다.
좆같은 일이 회수에게 일어났다. 좆같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될줄 몰랐지만 유해한 남성성을 그보다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같았다.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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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병합은 아주 크게 보도됐어요. 이제 전 독일민족이 힘껏 일어서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방송국 사람들은 아주 멋지게 보도했죠. 그런 건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덮어놓고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말이에요. 당시사람들은 나처럼 모두 어리석었어요.
강제 수용소가 만들어졌을 때, 그러니까 처음으로 <강제수용소>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그랬어요. 정부에 반대하거나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만 그리로 간다고 했어요. 그래서우린 그런 인간들을 바로 감옥에 가두지 않고 강제 수용소에 보내 재교육하는 걸로 믿었어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당시 방송국에 <율레 야에니슈>라고아주 괜찮은 사람이 하나 있었어요. 최초의 아나운서로서아침 점심 저녁으로 뉴스를 진행했는데, 그 사람을 빼고는방송국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죠. 어쨌든 그런 사람이 갑자기 강제 수용소에 갔다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렸어요. 「응? 그 사람이 왜?」 「호모래.」 「맙소사, 호모라니. 당시에 호모는...... 정말 다들 몸서리를 쳤어요. 사람 취급을 안 했죠. 그런데 율레 야에니슈가 호모라니.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호모라니. 정말 충격이었죠. 친절하면 뭐해? 호모인데.」 그때 이미 우리는 생각이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어요. - P80

정권에 저항한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백장미단 사건도 그랬어요. 최소한의 내용으로 제한되었죠. 당시 그 사건이 일어났던 뮌헨에서는 그게 어떤 식으로 보도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무척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이었거든요. 그것도 아직 대학생이었죠. 그런 젊은이들을 즉시 처형해 버린 건 너무 가혹했어요. 누구도 그걸 원치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 사람들도 어리석었죠. 어떻게 그런 일을 계획할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냥 입을 다물고 살았다면 지금도 살아 있지 않겠어요? 그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그랬어요.
무시무시한 시대였어요. 당시엔 그런 문제로 이야기할수 있는 믿을 만한 친구가 몇 되지 않았어요. 더구나 그런이야기를 하더라도 무척 조심해야 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에는 늘 이렇게 끝났죠. 우리가 뭘해야하지? 할 수 있는일이 뭐가 있지? 게다가 이런 생각을 깊이 할 만한 시간도없었어요. 그 사건으로 인해 이제 어떤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기도 전에 당사자들이 벌써 처형당했으니까요. 한낱 종이 쪼가리 때문에요. 삐라 말이에요. 당시 그 판결은 너무잔혹했어요. 지금은 난 그 사람들이 대단했다고 생각해요. 좀 더 나은 쪽이 결국 승리를 거둘 거라고 단순히 믿은 사람들이죠. 그러기 위해선 뭔가를 했어야 했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예요.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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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어는 이제 정치 정보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정치 정보에 대한 관심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텔레비전을 예로 들었다. 인터넷처럼 텔레비전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증가시켰고, 정보는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인터넷과 달리 텔레비전은 적어도초창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프라이어는 논문 「뉴스 대연aff News vs. Entertainment」에서 "수십년동안 방송사들은 시청자가 뉴스와연예 프로그램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도록 편성표를 짜왔다"라고 썼다. 뉴스는 연예뉴스와의 경쟁을 피해 초저녁 시간대나 심야 쇼 이전에 편성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수많은 케이블 채널과 웹사이트에서 24시간 내내 연예 프로그램과 뉴스를 모두 볼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케이블 채널이나 인터넷에서 무엇을 보고, 읽고,
듣는지를 결정한다.
예전에 정치는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묶여 있었고,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 정치 뉴스를 볼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 뉴스를 보려고 신문을구독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은 제일 첫 면의 정치 뉴스도 본다는 의미였다. 시트콤 <왈가닥루시>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텔레비전을 샀을 수도 있지만, 저녁에도 TV를 켜놓는다면 어쨌든 뉴스를 끝까지 시청하게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디지털 혁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리고 선택의 폭발적 증가는 관심 있는 사람들과 무관심한 사람들 간의 간격을 더 넓혔다. 더 많아진 선택으로 인해 뉴스광들은 더 많이 배우게 되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은 덜 알게 되었다. - P185

 하지만 한 가지 정치적 신념에 집중해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불쾌하게 한다면 시장을 지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신문을 비롯한 뉴스미디어들은 그들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초당파적 윤리를 따르기 시작했다.
디지털 뉴스가 불러온 선택과 경쟁의 폭발은 그러한 셈법을 뒤집었다. 독점적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만족을제공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은 특정 사람들에게가장 매력적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생겨난다. ‘사람들은무엇 때문에 정치 뉴스를 보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일련의결과를 위해 한쪽 편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통찰이아니다. 1922년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자신의 저서 『여론』에서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것이 일반 뉴스를 읽는 독자의 고충이다. 일반 뉴스를 읽으려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상황에 들어가 결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독자가 더 열정적으로 관여할수록, 불안감을 조성하는 뉴스에 더 분개할 것이다. 이것이 많은 신문이 독자들의 당파성을 불러일으킨 후, 보도된 사실들이 그 당파성을 보장한다는 점을 알게 되면, 쉽게 태도를 바꿀 수 없는 이유다. - P188

모든 사람에게 어필할만한 뉴스가 필요하던 시대에 인기를 끌던 기사와 내가 강하게 공감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시대에 인기를 끄는 기사는 다르다.
이러한 미디어의 변화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생각해보는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체성을 정적이고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미디어의 부상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한때 한정된 언론 매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언론 매체는 대부분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 소셜미디어와 청중 분석이 없었다면, 백인 남성들이 운영하는 뉴스룸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벌어진 사건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청소년을 총을 쏴 살해한 사건으로,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옮긴이)과 그 여파에 대해 제대로 보도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나는 당시 뉴스룸을 운영하던 백인으로서, 청중 분석과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일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청중의 관심사에 대한 더진실하고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가능하다.
한편, 또 다른 관점은 정체성을 살아 있고 변덕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체성은 활성화되거나 휴면 상태에 있거나, 강화하거나, 약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콘텐츠는 관심사나 의견을 정체성으로 바꾸고 심화할 것이다. - P199

 지아 톨렌티Sha Tokentino는 「트릭 미러』에서 나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에 대한 묘사를 제공한다. 톨렌티노는 소셜미디어가 온라인 담론의 ‘조직 원리‘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초기 인터넷에는 친근감과 개방성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반대라는 조직원칙이 적용되자 예전의 놀랍고 흥미로우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던 많은 것이 지루하고, 유해하고, 암울해졌다. 이러한 변화에는 사회물리학적 원리가 있다. 공동의 적을 두는 것은 친구를 사귀는 빠른 방법이다. 우리는 이 원리를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을 결속시키기보다 무언가에 반대하는사람들을 조직하기가 훨씬 더 쉽다. 그리고 관심의 경제에서 갈등은 항상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공동체의 힘을 이용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승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종종 그들조차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메커니즘과 기술(페이스북이 그들의 핵심 제품이 조장하는 행동과 관련해서 겪어야 했던 고난을 생각해보라 페이스북은 페이스북과자회사 서비스 알고리즘이 사회적 갈등과 분열, 극단주의를 조장하고, 유해 콘텐츠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왔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반독점 관련 조사 및 빅테크 규제등에도 계속 직면해왔다-옮긴이)을 사용하녀 디지털 정체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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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오랜만에 존댓말로 말하는 큰언니를 보며 경아가 회사에서 쓰는 말투, 하고 반가워했다.
"어려운데."
"하지만 승부욕이 생겨"
"제사에 승부욕이 생겨서 어쩔 거야?"
이색적인 제사 계획에 가벼운 술렁임이 일었다.
"엄마가 젊었던 시절 이 섬을 걸었으니까, 우리도 걸어다니면서 엄마 생각을 합시다. 엄마가 좋아했을 것 같은 가장 멋진 기억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상품이 있어요?"
"아니, 그래도 제사니까 상품은 좀 그렇고 박수를 쳐줄 거야"
"에이."
말은 그렇게 해도 설레고 기대에 찬 걸 숨기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참, 훌라는 내가 배울 거야. 예약도 해놨어. 피해서 다른 거해."
명혜가 선언했다. 언제나 조금 강직한 느낌을 주는 명혜가 훌라를 추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몇몇이 웃었지만 웃음을 들키진 않았다. - P83

어쨌든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평생 공격성이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공격성이 발현되든 말든 살밑에 있는 것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기분좋게 취했던 이가 돌변하기 직전의 순간을알았고, 발을 밟힌 이가 미처 내뱉지 못한 욕설을 들었고, 겸손을가장한 복수심을 감지했다. 누구에게나 공격성은 있지만, 그것이 희미한 사람과 모공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사람들의 차이는 컸다.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선, 어찌 살아남았나 싶을 정도로 공격성이없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웠다. 첫번째 남편도 두번째 남편도 친구들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 P125

나는 못 갈지도 몰라, 어린 우윤은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지만 지수는 알았다.
"내년에 너 다 나으면 가기로 했어. 방학에 가도 되고, 학교 때먹고 가도 된대. 할머니가 그건 알아서 해주겠다."
"할머니가?"
지수는 매주 찾아와, 학교 친구에게서 얻었다는 꼬질꼬질한 펌플릿을 보물지도처럼 펼쳐 보이며 어떤 놀이기구를 먼저 탈지 상의했다. 첫날부터 셋째 날까지 몇시부터 줄을 서고, 무엇으로 점심을 먹은 다음에, 기념품은 뭘 사고,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는 어디서 볼 건지에 대해 하루에 몰아 풀지 않고 주마다 하나씩 풀었다. 그렇게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한 행동은 그 이후 지수의 삶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예외적인 노력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태연히 즐거워 보이던 지수가 사실은 공들여 본인의 성격답지 않은 일을 해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우윤은 지수를 기다리며 고통을 잊었고, 둘이서 써나간 계획 노트는 지수가 없을때도 우윤을 머물게 했다. 놓고 싶을 때도 놓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막상 두 사람이 디즈니월드에 정말로 가게 되었을 때는 플로리다의 어마어마한 더위와 ‘칭크‘라고 욕하며 어린이의 발 옆에 침을 뱉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세 시간은 기본인 길고 긴 줄 때문에 계획이고 뭐고 눈에 띄지 않는 그늘에서 청포도와 멜론을 먹으며 버티는 게 다였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아팠던 우윤은 물론이고 내내 체력장 일급이었던 지수마저도 눈에 초점이 없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소원했던 것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더 나이들며 그것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인 걸 알게 되었고 말이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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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동안 미국의 백인들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지배적인 다수를 대표했다. 한 정치 부족이 그토록 압도적으로 우세할 때,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서 박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좀 더 관대할 수도 있다. 1960년대의 WASP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 엘리트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을 더 많은 유대인, 혹인, 다른 소수 집단에 개방한 것처럼(부분적으로는 그것이 옳은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더 보편적이고, 더 계몽되고, 더 포용적일 수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그 어떤 집단도 충분히 지배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모든집단은 직업과 전리품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권리를 놓고 다른집단과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로섬 집단 경쟁, 즉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전락한다.

이 불안정성을 악화하는 것은 누가 권력을 쟁취하는지에 관한 불균형이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경험칙은 정치 권력이 인구 통계학보다 10년 뒤처져 있다는 것인데, 나이가 더 많을수록, 백인일수록, 기독교인일수록 투표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 존스는 "투표함은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를 인종과 종교 측면에서 10년 전으로 데려갑니다. 우리는 오바마 재임 동안 백인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과반보다 적어지는 정점에 도달했지만, 투표함에서 그런 현상을 보려면2024년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상원의 구조와 하원 선거구 획정, 선거인단 구성을 통해 볼 수 있는 미국의 정치 지형은 백인일수록, 농촌일수록, 기독교인일수록 힘을 실어줘서, 이들 연합체가 인구 통계적으로 볼 때 예상되는 것보다 더 많은 정치적 힘을 갖게 한다.
하지만 소비 브랜드들과 텔레비전 방송은 더 젊고, 더 도시적이며, 더 다양한 소비자들을 좇으면서 문화 권력은 인구 변동을 10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 
••••••
브랜드는 문화가 있던 곳이 아니라 문화가 향하는 곳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며, 광고와 영화 출연자들에 반영되는 변하는 사회적 관행들을 보며 권력의이동을 느낀다. 그 결과 좌파는 정치 권력으로 변환되는 문화적 · 인구학적 힘을 가끔씩만 느끼게 되고, 우파는 정치 권력을 행사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점점 무시되며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P152

정치는 시장으로, 백인 정체성과 같은 강력하고 원시적인 힘은 시장의 기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국에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2016년에 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정치인이 2020년 혹은 2024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압력은 계속 쌓일 터였다.
애슐리 자르디나Ashley Jardina는 인종 정체성을 연구하는 듀크대학교의 정치학자다. 자르디나는 『백인 정체성 정치White Identity Politics』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학자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정체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백인 정체성은 가정하지 않았다고주장한다. 자르디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백인들이 그들이 속한 인종 집단의 지위에 불안감을 느끼는지, 혹은 백인이 정치적 결과를만들어내는 인종적 정체성을 가졌는지 고려할 때, 지난 50년 동안 대답은 일반적으로 ‘아니오‘였다. (……) 학자들 대부분은 백인들 사이의 인종적 연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백인들은 지배적인 지위와 수적 우세라는 특성 덕분에 그들의 인종을 당연시할 수 있었다." 백인들의 정치 정체성은 지금과 같은 위협과 도전의 시기에 드러났다. 인구 통계적 변화와 흑인 대통령 당선, 이 두 가지 현상에 이어진 문화적·정치적 결과는 "상당한 비중의 백인들에게 그들의 인종 집단과 그 집단이 누리는 혜택이 위험에 처했다고 믿게 했다. 그 결과, 이러한 인종적 연대는 많은 백인이 정치계와 사회계에서 그들의 방향성을 설정할 때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자르디나의 연구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인종 정체성은 집단내 편애나 외부 집단에 대한 적대감에 기초할 수 있다. 둘 다 존재할 수있지만(종종 그렇다), 자르디나는 백인 정치 정체성의 강화는 인종차별적 태도의 동반 상승이 없이, 백인의 정치적 특권 방어라는 측면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어떤 이에게는 차이가 없게 느껴지겠지만,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호소와 메시지에 반응하는지와 관련해서 의미가 있다. - P158

이것은 선거로 입증되었다. 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트럼프의 당선은 공화당원의 경제 신뢰도가 80점 상승하고, 민주당원사이에서는 37점 하락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트럼프 취임 이후미국 경제는 오바마의 마지막 해와 거의 같은 추세를 보였다(일자리 증가 추세는 약간 느리게 움직였다). 2016년 당시는 그들이 그렇게나 우울하게 보던 것과 거의 같은 경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공화당의자신감은 계속 치솟았다. 테슬러가 수집한 자료는 인종적으로 가장 분노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는 가장 낙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형태는 국제적으로도 나타난다. 포퓰리즘 우파의 부상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2016년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서방세계의 여러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경제가 좋거나 나쁘거나, 사회 안전망이 두텁거나 부실하거나 세계 어디서든 세력을 결집했다. 《복스》의 잭 보샴프Zack Beauchamp는 자료를 자세히 검토하고 나서, "극우정당의 정강들은 나라마다 다르며, 거기엔 페미니즘과 같은 주요 사회적 이슈와 복지 규모와 같은 경제 이슈가 포함된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한 가지 문제는 이민에 대한 적대감이며, 특히 이민자들이 비백인이고 이슬람교도일 때 그렇다"라고 썼다. - P163

정치학자 에릭 코프먼 Eric Kaufmann은 자신의 책 『화이트시프트: 포퓰리즘, 이민, 그리고 백인 다수의 미래 Whiteshift: Populism, Immigration, andthe Future of White Majorities 에서 "서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라고 썼다. "첫째, 왜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좌파 포퓰리스트들보다 인기를 끌고 있는가? 둘째, 전반적으로 볼 때 경제 위기는 포퓰리즘 우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왜 이민은 포퓰리즘적 우파의 수를 급증시켰는가? 자료에충실하면 답은 명확해진다. 경제적·정치적 발전이 아닌 인구 변동과 문화가 포퓰리즘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경제 불안이 현실이고, 더 폭넓게 공유되는경제 성장이 정치에 이득이라는 사실을 뒤집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불안이 우리의 정치적 · 문화적 분열을 설명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트럼프가 그 증거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의 경제를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로 인해 그의 지지자들이 이민에대해 좀 더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거나, NFL 선수들이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일을 덜 걱정하게 되진 않았다. 더 나은 경제는 언제나 국가에 이득이다. 그러나 그것은 ‘색깔이 짙어지는‘ 미국의ㅍ어려움을 극복해지는 않을 것이다. - P164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는가? 디케이터에 따르면, 변한 것은 불쾌한 행동으로여겨지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지다.

명문 대학 학생의 인종 비율은 50년 동안 급격하게 변했고, 그 결과 예의의 정의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는 것을 무례한 행동으로 본다. 학생들에게 흑인 분장 자제 등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규범을 권고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대학들이 해온 일의 연장이다. 달라진 것은 대학이 예의에 대한 규범을 내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예의에 대한 정의다. 일반적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특히 케니언칼리지에서 50년 전(모든 구성원이남성이고 대부분 백인이었을 때)이라면 예의의 기준을 통과했을지 모르는 것들이 오늘날은 예의 없는 행동이 된다. 

이를 진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전 담론을 지배했던 이들에게는 상실이었고, 관련된 모든 이에게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선들이 그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 선들이 어디에 그어지고 있는지, 누가그리는지 알지 못한다. 용인할 수 있는 행동과 공손한 담론을 규정하는힘은 심오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경합 대상이다.
리치슨은 "나는 이것을 불편함의 민주화라고 부릅니다. (・・・)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항상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민주화하고있습니다. 이제는 여러 인종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더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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