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어는 이제 정치 정보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정치 정보에 대한 관심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텔레비전을 예로 들었다. 인터넷처럼 텔레비전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증가시켰고, 정보는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인터넷과 달리 텔레비전은 적어도초창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프라이어는 논문 「뉴스 대연aff News vs. Entertainment」에서 "수십년동안 방송사들은 시청자가 뉴스와연예 프로그램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도록 편성표를 짜왔다"라고 썼다. 뉴스는 연예뉴스와의 경쟁을 피해 초저녁 시간대나 심야 쇼 이전에 편성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수많은 케이블 채널과 웹사이트에서 24시간 내내 연예 프로그램과 뉴스를 모두 볼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케이블 채널이나 인터넷에서 무엇을 보고, 읽고,
듣는지를 결정한다.
예전에 정치는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묶여 있었고,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 정치 뉴스를 볼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 뉴스를 보려고 신문을구독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은 제일 첫 면의 정치 뉴스도 본다는 의미였다. 시트콤 <왈가닥루시>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텔레비전을 샀을 수도 있지만, 저녁에도 TV를 켜놓는다면 어쨌든 뉴스를 끝까지 시청하게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디지털 혁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리고 선택의 폭발적 증가는 관심 있는 사람들과 무관심한 사람들 간의 간격을 더 넓혔다. 더 많아진 선택으로 인해 뉴스광들은 더 많이 배우게 되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은 덜 알게 되었다. - P185

 하지만 한 가지 정치적 신념에 집중해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불쾌하게 한다면 시장을 지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신문을 비롯한 뉴스미디어들은 그들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초당파적 윤리를 따르기 시작했다.
디지털 뉴스가 불러온 선택과 경쟁의 폭발은 그러한 셈법을 뒤집었다. 독점적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만족을제공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은 특정 사람들에게가장 매력적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생겨난다. ‘사람들은무엇 때문에 정치 뉴스를 보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일련의결과를 위해 한쪽 편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통찰이아니다. 1922년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자신의 저서 『여론』에서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것이 일반 뉴스를 읽는 독자의 고충이다. 일반 뉴스를 읽으려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상황에 들어가 결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독자가 더 열정적으로 관여할수록, 불안감을 조성하는 뉴스에 더 분개할 것이다. 이것이 많은 신문이 독자들의 당파성을 불러일으킨 후, 보도된 사실들이 그 당파성을 보장한다는 점을 알게 되면, 쉽게 태도를 바꿀 수 없는 이유다. - P188

모든 사람에게 어필할만한 뉴스가 필요하던 시대에 인기를 끌던 기사와 내가 강하게 공감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시대에 인기를 끄는 기사는 다르다.
이러한 미디어의 변화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생각해보는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체성을 정적이고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미디어의 부상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한때 한정된 언론 매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언론 매체는 대부분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 소셜미디어와 청중 분석이 없었다면, 백인 남성들이 운영하는 뉴스룸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벌어진 사건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청소년을 총을 쏴 살해한 사건으로,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옮긴이)과 그 여파에 대해 제대로 보도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나는 당시 뉴스룸을 운영하던 백인으로서, 청중 분석과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일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청중의 관심사에 대한 더진실하고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가능하다.
한편, 또 다른 관점은 정체성을 살아 있고 변덕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체성은 활성화되거나 휴면 상태에 있거나, 강화하거나, 약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콘텐츠는 관심사나 의견을 정체성으로 바꾸고 심화할 것이다. - P199

 지아 톨렌티Sha Tokentino는 「트릭 미러』에서 나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에 대한 묘사를 제공한다. 톨렌티노는 소셜미디어가 온라인 담론의 ‘조직 원리‘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초기 인터넷에는 친근감과 개방성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반대라는 조직원칙이 적용되자 예전의 놀랍고 흥미로우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던 많은 것이 지루하고, 유해하고, 암울해졌다. 이러한 변화에는 사회물리학적 원리가 있다. 공동의 적을 두는 것은 친구를 사귀는 빠른 방법이다. 우리는 이 원리를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을 결속시키기보다 무언가에 반대하는사람들을 조직하기가 훨씬 더 쉽다. 그리고 관심의 경제에서 갈등은 항상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공동체의 힘을 이용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빠르게 승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종종 그들조차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메커니즘과 기술(페이스북이 그들의 핵심 제품이 조장하는 행동과 관련해서 겪어야 했던 고난을 생각해보라 페이스북은 페이스북과자회사 서비스 알고리즘이 사회적 갈등과 분열, 극단주의를 조장하고, 유해 콘텐츠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왔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반독점 관련 조사 및 빅테크 규제등에도 계속 직면해왔다-옮긴이)을 사용하녀 디지털 정체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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