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김근태는 3월 3일 다시 기자회견을 통해 "2000년 전당대회(당 최고위원 경선) 때 권노갑 전 최고위원으로부터2천만 원을 받았고, 모두 2억 4천만 원을 선관위 신고에서 누락했다"는 내용의 그야말로 핵폭탄급 양심선언을 했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의 초입에서 폭로된 양심선언은 당내는 물론 정국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김근태는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엄청난 정치자금이 소요되고 있다. 이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는 소신도 아울러 밝혔다.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김근태는 일부 후보 진영의 인력 동원과자금 살포설을 우려하여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충정에서 ‘양심선언‘을 택한 것이다.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이고 김대중 정부의 실세인 권노갑이 2000년 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김근태를 비롯해일부 후보들에게 거액을 지원한 것이 폭로된 것이다. 정치자금 수수는여야를 가리지 않고 오랜 당내 관행이기도 하고, 특히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성행했다.
그러나 김근태의 양심선언은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비화되었다. 수구보수신문은 연일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김근태와 권노갑의 정치자금에 공세의 초점을 맞췄다. 한나라당은 호재를 만난 듯이 날선 공격을 퍼부었다.
김근태는 사면초가의 신세로 몰렸다.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깨끗한정치풍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단행한 양심선언이 정략의 빌미가된 것이다. 진행 중인 민주당 후보 지역 경선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자기만 깨끗한 척 당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조사에서 최하위권의 지지율에 맴돌자 자신의 ‘클린 이미지‘를 이용, 지지도를 끌어올려보려는 돌출 행동이라는 악평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고백이 권고문의 정치자금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개탄하며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자신의 발언은 순수한 양심선언이었지, 그 어떤 정치적 노림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정치자금을 투명화하자는내 양심선언을 정쟁화하지 말라"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며, "정치권 관행에 따라 선배로서 후배에게 격려금을 준 것이며 기본적으로 선의로 해석한다"면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엄호했다. - P335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3월 9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대장정에 올랐다. 경선 직전의 대세는 이인제 후보가 선두주자였다. 당내 최대 계보인 동교동계주류가 그를 밀었다. 15대 대선에서 이인제의 출마로 여권이 분열되고, 이회창이 열세에 놓이면서 김대중이 승리하게 되었다는 동정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제주에서부터 이변이 터졌다. 한화갑이 이인제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노무현이 3위였다. 이어진 3월 10일 울산 경선에서 노무현이 1위로 치고 오르고 이인제는 3위에 머물렀다. 김근태는 세곳의 경선 투표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민심을 헤아렸다.
3월 12일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달라"는 성명서와 함께 후보를 사퇴했다. 사퇴에 앞서 노무현을 만나고,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노무현이 당선되어 민주정권을 이어받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된 데는 김근태 지지 세력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후보를 사퇴했는데도 후폭풍이 거세게 나타났다. 정치자금 수수의법적 책임 문제가 따른 것이다. 김근태는 자신의 ‘고백‘을 정치자금 투명화의 계기로 만들고자 했지만, 현실은 사법처리 쪽으로 흘러갔다. 검•찰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김근태를 기소했다. - P338

그런가 하면 정부는 2003년 3월 21일 국무회의를 열어 6백 명 규모의 국군건설공병지원단과 1백 명 안쪽의 의무지원단을 이라크에 파병하는 내용의 국군부대 이라크 전쟁 파견 동의안을 의결해 국회에 보냈다. 집요한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청을 물리치고, 대안으로 건설공지원단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진보·보수단체 간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관계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사건건 노무현의 발목을 잡아온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지지하고, 집권당의 상당수 의원들과 진보언론이 반대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김근태는 대북특검과 이라크 파병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여러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이런 뜻을 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치적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내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꼬여갔다. 과거 집권당은 대통령이 총재가 되어 재정, 인사권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으나, 노무현은 대선공약에서 당정분리를 내걸고, 집권해서는 이를 실행하면서 당은 백가쟁명, 중구난방의 상태가 되었다.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생긴 암금에다 특검,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당은 말 그대로 한 지붕 두 가족의 양상이었다. - P348

타고르의 시,[혼자서 걸어가라]를 김근태 선생의 영전에 헌사한다.

혼자서 걸어가라

당신이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거든 혼자서 걸어가라.
그들이 면벽한 채 움츠리고 떨고 있다면
오, 고독한 이여,
마음을 열고 혼자 외쳐보라.

황야를 건널 때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떠난다면,
오, 고독한 이여,
가시밭길을 내딛고,
붉은 피를 흩뿌리며, 혼자서 걸어가라.

폭풍이 몰아치는 밤 그들이 빛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오, 고독한 이여,
고통의 번갯불로, 당신 가슴에 불을 붙여라.
그리고 홀로 타게 내버려두라.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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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같은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날이었다. 밀크맨은 국가암살단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가 총을 맞은 일이 나에게는 전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일인 양 법석이었고 그중에서도 ‘나와 안면은 있지만 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닌‘ 사람들이 나를 두고 쑥덕거렸는데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니 아마도 우리 첫째 형부가 만들어낸, 내가 이 밀크맨이라는 사람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쫙 퍼져 있었고 나는 열여덟살이고 그는 마흔한살이었기 때문이다. - P9

그게 실수였다. 욱한 것, 욱한 모습을 보인 것, 창밖으로 길거리에다가 소리를 질러서 나 스스로 헛소문에 발을 담근 것이 실수였다. 보통은 잘 자제한다. 그런데 화가 났다. 너무화가 났다. 언니에게, 언니가 어리고 약한 아내가 되어 남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것에, 형부가 나를 자기와 똑같은 사람 취급하는 것에 화가 났다. 속에서 고집이 솟았고 ‘내 일에 신경 꺼‘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럴때면 나는 좀 괴팍해져서 경험적으로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누워서 침을 뱉는다.  - P15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다. 어쩌면-남자친구가 배신자라는 것. 그때부터 어쩌면-남자친구의 친구들이 편을 들기 시작했다. "국기가 그려진 부품 여기 없잖아요." 그들이 말했다. "과급기에는 국기가 없다고요." 사실그 국기가 ‘물 이쪽‘에 있는 ‘길 이쪽‘에 등장할 가능성이극도로 희박한데도 친구들은 이웃의 말이 말도 안된다고콧방귀를 뀌는 대신 열을 내며 반박했는데, 그때가 피해망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칼날 위에 선 시대, 원시적인 시대,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시대였다. 여기에서는 누군가와 기분 좋게 잡담을 나누고 나서 마음 편하게 즐거운대화 나눴다 생각하면서 돌아가다가도 머릿속에서 대화를 다시 돌려보다보면 ‘이것‘이나 ‘저것‘을 말한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나 ‘저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그런것도 아니다. 평화로운 시기에조차 사람들은 금세 손가락질을 하고 사람을 재단하고 말에 살을 붙이곤 하니 이 혼란의 시기에는 지적질하지 않는 손가락이나더해지지 않은 말이 어떤 건지 아예 알 수가 없고, 이때 재단을 당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등 뒤에서 내 이야기를해서 상처 받는 수준이 아니라 복면이나 핼러윈 가면을 덮어쓰고 총을 든 사람들이 한밤중에 우리집 문 앞에 나타나는 결과를 맞게 된다는 뜻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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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가장 위대한 직선은 곡선처럼 보일 것이며, 가장 위대한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다. 가장 위대한 이미지는 형태가 없다"고 말했다. 동양 철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善 중 하나는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인데, 동양인들은 노자 사상과 같은 생각에 근거해서 정원을 디자인할 때 곡선을 사용했다. 그러한 동양적인 개념의 영향을 받아,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이너들은 정원 내에 동양식 정자를 짓고, 기하학적인 직선을 깨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도입했으며, 정원 내에 더 많은 빈 공간을 만들었다.  - P188

미스는 서양 건축에 철골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만든 기둥식 구조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기존에는 찾아보기 힘든 성격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의 건축은 기둥과 지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며, 벽을 구조로부터 해방시킨 건물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양의 나무 기둥을 철골 기둥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건축이 동양의 전통 건축과확실하게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창문에 유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동양 건축에는 창호지로 만든 창문이 달려 있었다면, 미스는 철골 기둥 구조로 벽이 필요 없어지자 벽이 있던 자리에 유리를 사용하여 내부와 외부를 극적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의 건축은 한마디로 ‘나무 기둥을 철골 기둥으로, 창호지를 유리창으로 바꾼 건축 공간이었다. 기본 구성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동양의 구법을 따르면서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철과 유리라는 재료를 적극 도입하여 새로운 문화적 변종을 만든 사람이 미스 반 데어 로에다.  - P239

르 코르뷔지에 근대 건축인터넷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근대 건축의 5원칙‘이 나온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근대 건축이라면 가질 법한 다섯가지 특징을 코르뷔지에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소개한다면, 1. 필로티, 2. 옥상 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리본 수평창이다. 하나씩 설명해 보자. 우리나라의 요즘 빌라 건물을보면 기둥에 의해서 건물이 위로 들려 있고, 그 아랫부분을 주차장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공간이 필로티다. 근대 건축에는 그러한필로티 공간이 있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두 번째 원칙인 옥상 정원은, 기존의 전통 건축에는 방수를 위해서 경사진 지붕을 만들어야 했는데 근대 건축에서는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사용하면 튼튼한 구조체이면서 동시에 방수가 되어서 경사 지붕 대신 평평한 지붕을 만들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평평한 옥상을 정원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원리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과 같은 방수 재료가 제대로 개발되지못해서 처음으로 옥상 정원을 적용한 ‘빌라 사보아‘의 경우 비가 새는바람에 건축주에게 소송 걸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옥상 정원을 가능하게 해 준다. 세 번째 원칙인 자유로운 평면은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건물을 만들었기때문에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서 벽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평면도의 벽들은 자유롭게 각층마다 다른 곡선으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생겨났다는 얘기다. 네 번째 원칙인 자유로운 입면이란, 마찬가지로 철근콘크리트 기둥 구조로 만들어지면서 벽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보니 건물의 입면 벽체를 마음대로 뚫거나 휘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섯 번째 원칙인 리본 수평창은 창문을 가로로 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을거다. 서양 건축에서는 수천 년간 벽식 구조로 건물을 지어 오면서 창문은 항상 세로로 길게 만들었다. 벽이 지붕을 받치는 구조체이기 때문에 벽에 창문을 가로로 길게 뚫으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건물을 받치게 되면서 벽체가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창문을 가로로 길게 뚫을 수 있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5번
‘리본 수평창‘은 4번 ‘자유로운 입면‘의 하위개념이어서 ‘근대 건축의 4원칙‘이면 충분했으나, 코르뷔지에는 고전 건축 원리들이 주로 ‘5원칙‘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억지로 하나를 더해서 5원칙으로 만든 것이다. - P240

 이처럼 역사상 뛰어난 생각은 모순되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화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미스와 코르뷔지에가 한 일도 이와 같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의 시대로,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다.
동시에 이들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공간 압축이 이루어지고 다른 지역의문화를 일상에서 접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세대이기도 했다. 과거에도 장거리 여행을 통해서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마르코 폴로 같은 상인들이 「동방견문록」을 쓰던 시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이들은 상업을 주업으로 하던 사람들이었고, 직접 그 지역에 가야지만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국제 무역을 하는 상인들만 그런 문화적 체힘이 가능했다. 하지만 식민지와 산업화의 시대를 살았던 미스와 코르뷔지에는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도 쉽게 다른 지역의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산업화가 만든 새로운기술도 접했다. 두 거장이 이룬 업적은 ‘새로운 기술‘과 ‘다른 지역의 문화유전자‘를 섞은 것이다. 그들은 공간의 구축 방식으로 기둥 구조라는 동양의 수천 년 된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거기에 최신 철골이나 철근콘크리트 기술을 합쳐서 새로운 근대 건축의 장을 열었다.
미스와 코르뷔지에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명의 건축가가 유럽건축가였기 때문이다. 유럽은 무역을 통해서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유럽은 산업혁명의 발생지로 산업화기술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 조건상에서 수입된 동양의 문화 유전자와 유럽의 기술 혁명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 미스와 코르뷔지에의 공간이다.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시작부터 19세기까지의 문화 교류가 있었기에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 P272

20세기 전반부가 동서양 공간의 이종 교배 1세대라고 한다면 20세기후반부는 이종 교배 2세대가 나온 시대다. 요즘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빌딩들이 다 비슷하게 지어져 있다. 뉴욕, 두바이, 서울, 방콕, 상하이, 도쿄의 현대식 건물은 모두 네모난 상자 모양에, 유리창이 많고 고층으로 지어진다. 이렇게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양식으로 지어지는것을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한다.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건축물의 대부분은 국제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가 동서양의 건축 공간을 융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공간을 선보였지만 그 이후의 건축은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획일화된 공간으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지역 문화를 배재한 상태에서 철근콘크리트, 엘리베이터, 유리 같은 기술만 적용했기 때문이다. 앞서서 설명한 미스와 코르뷔지에 역시 철골 구조, 철근콘크리트, 유리 같은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그들의 건축에 도입했다. 하지만 그 둘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적 요소까지 융합했기에 새로운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창조는 문화와 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 때 만들어진다.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양성이 소멸된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 P277

루이스 칸은 1965년 12월 멕시코시티를 여행하면서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이 디자인한 별다른 식재를 사용하지 않은 소박한 정원을 방문했다. 이 정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루이스 칸은 자신이 진행중이던 ‘소크 연구소‘ 건설 현장에 바라간을 초대해 중정에 대해 비평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라간은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에 있는 ‘소크 연구소 현장에서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 대신에 돌로 포장된 중정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크 연구소‘의 입면으로 하늘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바라간은 칸에게 비움을 통해서 진정한 자연을얻으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칸이 만들려고 했던 나무가 심긴 정원은 인공의 자연인 반면, 바라간이 이야기한 비워진 중정을 통해 얻는하늘은 진정한 자연이다. 칸은 바라간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 유명한나무 한 그루 없이 비워진 ‘소크 연구소‘ 중정을 만들었다. 마치 료안지의 ‘선의 정원‘에서 나무를 없애고 모래와 돌로만 구성된 명상의공간을 만들 수 있었듯이, 칸 역시 ‘소크 연구소‘에 빈 공간을 만듦으로써 도가식 정원이 주는 침묵을 얻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불변永遠不變의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노자 도덕경」 1장, 남만성 역) - P290

이런 복잡한 진입로는 일본 전통 건축의 공간 구조적 특징이다. 일본 전통 건축은 그 안에서 경험하는 사람에게 기대감을 극대화하고 긴장감을 주기 위해 진입로를 특별하게 디자인해 왔다. 예를 들어서, 다도를 하는 방은 집에서 가장 구석에 위치하며, 그곳에 가기 위해서 보통은 ‘로지 Roll‘라고 불리는 정원을 통해서 가게 되어 있다. 이 정원을통과하면서 방문객은 몇 개의 문을 거쳐야만 했다. 일본이 이런 디자일을 하는 이유는 귄터 니츠케 Gunter Nitschke의 ‘시간이 돈이고, 공간이 돈Tinc is Money - Space is Money‘이라는 글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이미 전작에서 자주 설명했지만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이처럼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한 것은 없기에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인식되게 하려고 분절되고, 회전하고, 돌아가는 식의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을 지연시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이라도 실제보다 더 넓게 인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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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는 국회의원 시절 세비와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성금으로 지구당을 관리하고 의정활동을 했다.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는 ‘GT클럽‘이라는 자발적인 팬클럽이 조직되어 어느 정도 지원을 받게 되었다. 미약하지만 나름대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분들이 돼지저금통을 모아서 전달해주신 취지는 "김근태 너무 상처받지 마라, 우리가 있다. 함께 가자." 이런 뜻이라고 본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꼭 옛날 군사독재 시절 데모하고 피신할 때 "우리 집에 와서 숨어라"고 성원해주던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가슴에서 눈물이 난다. 물론 그것이 현실정치에서 정치자금을 대신할 만한 액수는 못 된다.
나는 정치자금을 정말 투명하게 해야 하고 투명하게 하는 사람에 대해선 보상이 따르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재정 보조를 중앙당으로 하지 말고 국회의원들한테 해줘서 투명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국고보조를 그만큼늘리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P308

김근태가 재야에서 반유신. 반공 투쟁을 통해 재야의 대표 주자로성장하고 있었다면, 노무현은 법조활동과 야당의 정치활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고난의 젊은 날을 보냈으면서도순수한 품성을 지닌 ‘비정치적인 정치인‘이었다.
이들은 잠재적인 라이벌이면서도 서로를 존경하고 좋아했다. 걸어온길이 다르고 정치적 환경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질곡의 삶을 헤쳐오면서도 따뜻하고 진솔한 품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 등 닮은 데가 많았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노무현은 김근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근태 의원 때문에 나는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감격한 적이 있다. 1992년8월, 그날은 그의 석방 환영회였다. 당시까지 나는 김 의원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민주화운동을 함께해온 동지의 심정으로 그자리에 참석했던 터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김 의원은 나를 가리켜 "이시대의 의인이요, 정치적 희망"이라며 당시 모였던 재야의 쟁쟁한 인사들앞에서 소개를 했다. 

김근태는 평소 치밀하고 신중한 태도와 함께 아주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런 그가 노무현에게 "이 시대의 의인이요, 정치적 희망"이라 표현한 것이다. 의례적인 답례이긴 하지만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정제된‘ 언사였다.  - P312

노무현은 이어서 "가장 원칙적이면서도 조직을 위해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분, 음모적이지 않고 책략에만 매달리지 않는 재야의 지도자"라고 김근태를 평했다. 이 말은 주객을 바꾸어 노무현에게도 들어맞는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심정적‘으로 통했다. 다시 노무현의 말이다.

살다 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인데, 내게 특별히 잘해주거나 각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신뢰감이 가는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김근태 의원이 바로 그런 분이다. 정치인은 욕심이 많다.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턱없는 욕심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김근태처럼 신중하고, 치밀하고, 의젓한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한다면 너무 큰 욕심을 낸다고 사람들이비난할까 무섭다. 
만약 우리나라의 미래를 앞두고 그와 내가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일대일카운터파트가 되면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될까.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번해봄 직한 욕심이고 상상이지만 무척 행복할 것 같다. 서로 주어진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고 나아가서는 적극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신뢰가 분명한관계라고 단언한다. 혹은 다자간의 경쟁이 되면 제일 먼저 찾아가 "우리같이 합시다"라는 이야기를 마음 터놓고 할 것 같다.

노무현의 이 같은 바람은 실제로 3년 뒤에 이루어졌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제16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선의의 라이벌로 그리고 노무현정부의 수장과 각료 관계로 이어졌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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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 당내 개혁 세력이 지난 1년 동안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하나 김 부총재는 김 대통령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김근태 -민주화운동 세력이 국민 대중으로부터 평가받으면서도 전폭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군사독재의 폭압이 심했을 때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계승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는 꿈이 필요했다. 꿈은 관념적이다. 관념성을 동반한 꿈은 실제적인 그림을 그리지못하는 측면이 있다.
두 번째는 탄압이 심할 때는 인격의 연속성이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모든 힘을 발휘해 저항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을철저히 부정할 수밖에 없다. 파괴적인 권위주의 세력 아래서 고통 받은사람들 가슴 속에는 상처가 남게 된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정화 노력이 필요하다. 억울하지만 그렇다.
DJ와 내가 차별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더 외곽에서 돌게 될지도 모르겠다(웃음). 우리 정치의 다음 단계 모습은 정책노선에 따른 재결집이될 것이다. 이것이 어떤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누가 또는 어떤 집단이 해낼 것인가가 문제다. 현재 우리 정치는 최고의 리더십을 빼놓고는각종 정보가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판단과 모색의 범위가 상대적으로협소하다. 이를 제도화하는 것은 다음 단계 리더십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 P295

패널 김 부총재는 자신에게 반인권적 고문을 자행했던 이근안 전 경감을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용서하고싶더라도 고문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근태 날씨가 안 좋으면 감기몸살이 쉽게 찾아온다. 그때 고문의 후유증이다. 우선은 원한이 나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나자신 네 번에 걸쳐 도합 7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해봤다. 그 피신 생활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럽다. 사실상 처벌이다. 이근안 씨가 만 10년을 피신하면서 겪은 고초는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세 번째는 이근안 씨도 군사독재의 하수인으로서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였다. 이 세가지를 생각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남아공의 만델라처럼 진실로 화해했으면 한다. 그리고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정치인으로서 과거에 대한 복수로 한계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바람에서였다. - P298

다시 강준만의 지적이다.

나는 김 부총재의 경우 친화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건 그의 겸손과 성실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마냥 좋게만 보진 않는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보통 사용되는 ‘친화력‘의 정체에 대해선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나는 기자들에게 술은커녕 밥 한 끼 사지 않아 욕을 먹는정치인들이 적잖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정치인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기자들로부터 욕먹게 마련이고 또 그런 부정적인 평가는 언론에 그대로 반영돼 대중의 인식에도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모든 걸 원칙대로 하려는 정치인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반면능력과 윤리에 상당한 문제가 있어도 술 잘 마시고 마당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건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문화로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 문화를 거스르면서 리더가 될 수는 없으니 이게 바로 딜레마라는 것이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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