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가장 위대한 직선은 곡선처럼 보일 것이며, 가장 위대한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다. 가장 위대한 이미지는 형태가 없다"고 말했다. 동양 철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善 중 하나는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인데, 동양인들은 노자 사상과 같은 생각에 근거해서 정원을 디자인할 때 곡선을 사용했다. 그러한 동양적인 개념의 영향을 받아,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이너들은 정원 내에 동양식 정자를 짓고, 기하학적인 직선을 깨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도입했으며, 정원 내에 더 많은 빈 공간을 만들었다.  - P188

미스는 서양 건축에 철골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만든 기둥식 구조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기존에는 찾아보기 힘든 성격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의 건축은 기둥과 지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며, 벽을 구조로부터 해방시킨 건물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양의 나무 기둥을 철골 기둥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건축이 동양의 전통 건축과확실하게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창문에 유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동양 건축에는 창호지로 만든 창문이 달려 있었다면, 미스는 철골 기둥 구조로 벽이 필요 없어지자 벽이 있던 자리에 유리를 사용하여 내부와 외부를 극적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의 건축은 한마디로 ‘나무 기둥을 철골 기둥으로, 창호지를 유리창으로 바꾼 건축 공간이었다. 기본 구성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동양의 구법을 따르면서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철과 유리라는 재료를 적극 도입하여 새로운 문화적 변종을 만든 사람이 미스 반 데어 로에다.  - P239

르 코르뷔지에 근대 건축인터넷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근대 건축의 5원칙‘이 나온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근대 건축이라면 가질 법한 다섯가지 특징을 코르뷔지에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소개한다면, 1. 필로티, 2. 옥상 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리본 수평창이다. 하나씩 설명해 보자. 우리나라의 요즘 빌라 건물을보면 기둥에 의해서 건물이 위로 들려 있고, 그 아랫부분을 주차장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공간이 필로티다. 근대 건축에는 그러한필로티 공간이 있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두 번째 원칙인 옥상 정원은, 기존의 전통 건축에는 방수를 위해서 경사진 지붕을 만들어야 했는데 근대 건축에서는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사용하면 튼튼한 구조체이면서 동시에 방수가 되어서 경사 지붕 대신 평평한 지붕을 만들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평평한 옥상을 정원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원리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과 같은 방수 재료가 제대로 개발되지못해서 처음으로 옥상 정원을 적용한 ‘빌라 사보아‘의 경우 비가 새는바람에 건축주에게 소송 걸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옥상 정원을 가능하게 해 준다. 세 번째 원칙인 자유로운 평면은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건물을 만들었기때문에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서 벽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평면도의 벽들은 자유롭게 각층마다 다른 곡선으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생겨났다는 얘기다. 네 번째 원칙인 자유로운 입면이란, 마찬가지로 철근콘크리트 기둥 구조로 만들어지면서 벽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보니 건물의 입면 벽체를 마음대로 뚫거나 휘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섯 번째 원칙인 리본 수평창은 창문을 가로로 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을거다. 서양 건축에서는 수천 년간 벽식 구조로 건물을 지어 오면서 창문은 항상 세로로 길게 만들었다. 벽이 지붕을 받치는 구조체이기 때문에 벽에 창문을 가로로 길게 뚫으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건물을 받치게 되면서 벽체가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창문을 가로로 길게 뚫을 수 있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5번
‘리본 수평창‘은 4번 ‘자유로운 입면‘의 하위개념이어서 ‘근대 건축의 4원칙‘이면 충분했으나, 코르뷔지에는 고전 건축 원리들이 주로 ‘5원칙‘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억지로 하나를 더해서 5원칙으로 만든 것이다. - P240

 이처럼 역사상 뛰어난 생각은 모순되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화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미스와 코르뷔지에가 한 일도 이와 같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의 시대로,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다.
동시에 이들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공간 압축이 이루어지고 다른 지역의문화를 일상에서 접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세대이기도 했다. 과거에도 장거리 여행을 통해서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마르코 폴로 같은 상인들이 「동방견문록」을 쓰던 시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이들은 상업을 주업으로 하던 사람들이었고, 직접 그 지역에 가야지만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국제 무역을 하는 상인들만 그런 문화적 체힘이 가능했다. 하지만 식민지와 산업화의 시대를 살았던 미스와 코르뷔지에는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도 쉽게 다른 지역의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산업화가 만든 새로운기술도 접했다. 두 거장이 이룬 업적은 ‘새로운 기술‘과 ‘다른 지역의 문화유전자‘를 섞은 것이다. 그들은 공간의 구축 방식으로 기둥 구조라는 동양의 수천 년 된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거기에 최신 철골이나 철근콘크리트 기술을 합쳐서 새로운 근대 건축의 장을 열었다.
미스와 코르뷔지에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명의 건축가가 유럽건축가였기 때문이다. 유럽은 무역을 통해서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유럽은 산업혁명의 발생지로 산업화기술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 조건상에서 수입된 동양의 문화 유전자와 유럽의 기술 혁명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 미스와 코르뷔지에의 공간이다.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시작부터 19세기까지의 문화 교류가 있었기에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 P272

20세기 전반부가 동서양 공간의 이종 교배 1세대라고 한다면 20세기후반부는 이종 교배 2세대가 나온 시대다. 요즘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빌딩들이 다 비슷하게 지어져 있다. 뉴욕, 두바이, 서울, 방콕, 상하이, 도쿄의 현대식 건물은 모두 네모난 상자 모양에, 유리창이 많고 고층으로 지어진다. 이렇게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양식으로 지어지는것을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한다.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건축물의 대부분은 국제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가 동서양의 건축 공간을 융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공간을 선보였지만 그 이후의 건축은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획일화된 공간으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지역 문화를 배재한 상태에서 철근콘크리트, 엘리베이터, 유리 같은 기술만 적용했기 때문이다. 앞서서 설명한 미스와 코르뷔지에 역시 철골 구조, 철근콘크리트, 유리 같은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그들의 건축에 도입했다. 하지만 그 둘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적 요소까지 융합했기에 새로운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창조는 문화와 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 때 만들어진다.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양성이 소멸된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 P277

루이스 칸은 1965년 12월 멕시코시티를 여행하면서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이 디자인한 별다른 식재를 사용하지 않은 소박한 정원을 방문했다. 이 정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루이스 칸은 자신이 진행중이던 ‘소크 연구소‘ 건설 현장에 바라간을 초대해 중정에 대해 비평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라간은 캘리포니아 라호이아에 있는 ‘소크 연구소 현장에서 "이 공간에 나무나 잔디 대신에 돌로 포장된 중정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소크 연구소‘의 입면으로 하늘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바라간은 칸에게 비움을 통해서 진정한 자연을얻으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칸이 만들려고 했던 나무가 심긴 정원은 인공의 자연인 반면, 바라간이 이야기한 비워진 중정을 통해 얻는하늘은 진정한 자연이다. 칸은 바라간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 유명한나무 한 그루 없이 비워진 ‘소크 연구소‘ 중정을 만들었다. 마치 료안지의 ‘선의 정원‘에서 나무를 없애고 모래와 돌로만 구성된 명상의공간을 만들 수 있었듯이, 칸 역시 ‘소크 연구소‘에 빈 공간을 만듦으로써 도가식 정원이 주는 침묵을 얻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불변永遠不變의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노자 도덕경」 1장, 남만성 역) - P290

이런 복잡한 진입로는 일본 전통 건축의 공간 구조적 특징이다. 일본 전통 건축은 그 안에서 경험하는 사람에게 기대감을 극대화하고 긴장감을 주기 위해 진입로를 특별하게 디자인해 왔다. 예를 들어서, 다도를 하는 방은 집에서 가장 구석에 위치하며, 그곳에 가기 위해서 보통은 ‘로지 Roll‘라고 불리는 정원을 통해서 가게 되어 있다. 이 정원을통과하면서 방문객은 몇 개의 문을 거쳐야만 했다. 일본이 이런 디자일을 하는 이유는 귄터 니츠케 Gunter Nitschke의 ‘시간이 돈이고, 공간이 돈Tinc is Money - Space is Money‘이라는 글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이미 전작에서 자주 설명했지만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이처럼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한 것은 없기에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인식되게 하려고 분절되고, 회전하고, 돌아가는 식의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을 지연시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이라도 실제보다 더 넓게 인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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