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토스테론restosterone 이란 고환을 뜻하는 테스티스testes 와 화학 구조를 의미하는 스테론sterone의 합성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이름에 불만이 많았는데, 충분히 그럴 만했다. 테스토스테론은 고환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닐뿐더러 남성만의 호르몬도 아닌데, 이름만봐서는 오해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즉, 테스토스테론은 부신과(미량이기는 하지만) 난소에서도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스토스테론은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고, 그 결과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에 대한 오해가 두고두고 끊이지 않게 되었다.

브라운대학교의 인류학자 앤 파우스토 스털링은 젠더에 관한 책을 썼고, 보 로랑을 재촉해 간성협회 활동을 시작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녀는 2000년 자신의 저서 《몸의 성감별》에서 테스토스테론 논쟁에 불을 댕겼다. 그녀는 "성 호르몬이라는 개념은 성장growth 호르몬으로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그 이유는 성호르몬이 수행하는 역할때문이었다. 즉,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토르겐은 난소•고환•질•음경뿐만 아니라, 간 근육·뼈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성호르몬은 인체의 모든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언젠가 <뉴욕타임스>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호르몬을 성장호르몬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이 많고 여성은 에스트로겐이 많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관두게 한다."
- P309

출산 도중에만 일어나는 사건들 중 하나는, 자궁경부와 질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리적 팽창은 옥시토신 분비를 촉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페더슨은 풍선 모양의 기묘한 장치를고안해 염소의 질을 팽장시켰다. 그의 목표는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면 임신하지 않은 처녀 염소가 아무 새끼하고나 유대관계를 맺는지확인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처녀 염소는 낯선 새끼 다른 염소가 낳은새끼)를 거부한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두 마리 암컷의 질에 풍선 장치를 삽입했더니, 낯선 새끼에게 (애정의 표시로) 코를 비비는가 하면 젖이 안 나오는젖꼭지를 물어도 내버려두는 게 아닌가! 그러나 장치를 삽입하지 않은 염소들은 낯선 새끼에게 적대적이었다.  - P339

에른스트 페어는 <어틀랜틱>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옥시토신이 사람들 간에 신뢰를 구축한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주장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나 신뢰 게임을 둘러싼 사탕발림 이야기는 수그러들지 않고있다. 옥시토신 비강분무제와 ‘사랑 및 신뢰‘를 결부시킨 후속 연구들은 여전히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오리지널 연구와 정반대로, 옥시토신이 신뢰를 떨어뜨리고 인종차별주의를 심화시킨다고 보고했다. 이는 "옥시토신이 ‘좋은 감정‘만 선별적으로 북돋우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느낀 감정‘을 여과 없이 증폭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 P346

옥시토신이 출산, 성,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자체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방대한 연구들 중에는 보석 같은 증거도 있고 유력한 단서도 있어서, 미래의 연구자들이 옥시토신의 역할과 활용 방법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페더슨은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것 중 일부는 사실이다. 옥시토신은 사랑과 성에 관여하며, 불안과 스트레스를 비롯한 모든 어려움을 해소해준다. 단, 그런 기능들을 유용한 치료법으로 전환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P350

1994년 골먼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은 록펠러대학교의 제프리 프리드먼 박사 연구팀은, 새로운 유전자 탐색 기법을 이용해 ‘포만감 호르몬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그러나 당초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 호르몬은 그리 간단한 호르몬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만감을 알려주는 호르몬이 아니라, 체중을 조절하는 호르몬에 더 가까웠다. ‘언제 공복감을 느낄 것인지‘와 ‘언제 포만감을 느낄 것인지‘에 대한 기준점을 정해놓고, 장기간에 걸쳐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니 말이다. 물론 그 호르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폭풍 흡입을 해도 포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의 호르몬은 렙틴이라고 명명되었는데, 어원을 살펴보면 ‘가늘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렙토스 leptos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렙틴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 지방세포에서 발견되었다. 지방세포가 단지 기름진 방울이 아니라 난소나 고환 등과 같은 내분비기관이라니! 그건 정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 P381

비만은 21세기 내분비학의 최전선에 서 있다. 연구자들은 체중 증가라는 토픽에서 벗어나, ‘세포와 행동의 관련성‘이라는 궁극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 (세포와 행동의 관련성)은 20세기 호르본 과학의 개척자들이 그토록 끈질기게 파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주제였다. 렙턴 유전자를 발견한 프리드먼은 "우리는 뭔가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만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식사량을 줄이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행동의 밑바탕에는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기본적 충동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 충동의 밑바탕에는 호르몬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 충동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런 충동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조절하는 것은 여러 가지 호르몬이며, 그 호르몬들의 작용은 서로 복잡미묘하게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입니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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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린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
- P132

엠마 쪽으로 말하면, 자기가 그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연애란 요란한 번개와 천둥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인간이 사는 땅 위로 떨어져 인생을 뒤집어엎고 인간의 의지를 나뭇잎인 양 뿌리째 뽑아버리며 마음을 송두리째 심연 속으로몰고가는 태풍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집 안의 테라스에서 물받이 홈통이 막히면 빗물이 호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연히 안심하고 있다가 문득 벽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 P148

중류층 마누라들은 그녀의 검소함을, 환자들은 그녀의 예의바름을,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탐욕과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름이 똑바로 잡힌 옷은 산란한 마음을 감추고 있었고 그토록 정숙해 보이는 입술은 마음의 고뇌를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보는 즐거움을 위해 고독을 원했다. 그가 직접 눈앞에 보이면 그 명상의 쾌락이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엠마는 그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가 막상 그가 앞에 오면 감동이 사리지면서 오로시 커다란 놀라움만이 남았다가 어느덧 그것도 슬픔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 P158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불만에서 생기는 온갖 증오심을 오직 남편 한 사람에게로 돌렸다. 증오심을 덜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것을 부채질하는 결과밖에 안 되었다. 이 무용한 수고가 다른 절망의 동기들과 겹쳐져서 그와의 사이를 더욱더 벌어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드러움에 대해서까지도 반발을 느꼈다. 보잘것없는 가정 생활이 그녀를 사치스러운 공상 쪽으로 몰아갔고 모정이 간통의 욕정을 구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좀 더 정당한 이유로 샤를르를 미워하고 복수할 수있도록 그가 자기를 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무서운 가정(假定)에 깜짝 놀라곤 했다. 그래서 항상 미소를 지어야 했고,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런 척을 해야했고 그렇게 믿도록 해야만 했다. - P160

다음날은 엠마에게 있어서 침울한 하루였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사물의 표면에 막연히 감도는 검은 대기에 에워싸여 있는 것만 같았고 슬픔은 마치 버려진 고성(古城)에 겨울 바람이 불어대듯이 부드럽게 으르렁거리면서 그녀의 영혼 속으로 밀어닥쳤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몽상, 무언가 일을 끝내고 나면 매번 찾아드는 권태, 요컨대 익숙했던 동작을 중단시키거나 오래 계속되어 온 어떤 진동이 정지될 때 오는 그런 고통이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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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사들도 정치적 분위기, 대규모공포, 시대의 문화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시신에서 추출된 사람성장호르몬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통되었는데, 그때는 ‘시신 속에 전염병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널리 확산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알려진 바이러스에의 감염 여부는 조사되었지만, 미지의 질병을 예방하는 조치는 미흡했다. 한 생화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조직에서 유래하는 제품이 다른 사람을 해칠 리 없다는 게 통념이었다. 성장호르몬이 치명적 병원체를 전파시킬 수 있다‘는 비극적 현실이드러난 것은 1980년대 중반, AIDS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제야 갑자기 숨어 있는 질병‘이라는 개념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 P263

 폐경 후 여성의 시상하부 뉴런은 블루베리만 한 데 반해, 폐경 전 여성의 것은 케이퍼만 한 것을 알수있다.
랜스가 연구한 것은 ‘호르몬계의 썰물과 밀물‘에 관한 피드백 고리로, 후에 피임약 개발의 단서가 되었다. "폐경기의 뇌는 ‘에스트로겐 수준이 낮아졌다‘는 신호를 접수하고 에스트로겐 수준을 높이는 뉴런(시상하부 뉴런)에 시동을 건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난소가 더 이상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므로 에스트로겐 수준이 올라갈리 만무했다. 그러니 ‘더 많은 에스트로겐이 필요하다‘라는 스팸 메시지가 뇌에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잔뜩 쌓인 스팸 메시지가 시상하부뉴런을 계속 자극해 부풀어오르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그녀는 폐경 전 여성과 폐경 후여성에게서 각각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뇌를 더 수집했다. 이번에도 폐경 후 여성에게서 시상하부 뉴런이 부풀어오른 것을 발견했고, 나아가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풍부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또한 그녀는 한 가지 화합물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 이름은 뉴로키닌 B neurokinin-B로, 폐경 후 뇌의 변화 중 일부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였다.
- P284

긴급한 의학적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적 자궁절제 elective hysterectomy 를 제안할 의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록 선호도가 낮은방법을 선택했지만, 하셀틴의 선택은 "선택에 수반되는 위험과 편익을 잘 알고 있는 한, 오늘날의 여성들은 폐경에 대처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부각시킨다. 하셀턴은 관련 문헌을 참고해 정보에 기반한 건강결정을 내린 대표적 사례다. 당신이 보유한 과학 지식은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셀틴은 말한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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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발에 대비하여 서랍 속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그녀는 무엇인가에 손가락을 찔렸다. 그것은 그녀의 결혼 꽃다발을 묶은 철사였다. 오렌지의 꽃봉오리는 먼지로 누렇게 바랬고, 은테를 두른 비단 리본은 가장자리가 풀어져 있었다. 엠마는 그것을 불 속에 집어던져 버렸다. 그것은 마른 짚보다 더 빨리 탔다. 이윽고 재 위에 빨간 덤불 같은 것이 되어 남더니 드디어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그것이 타는 것을 지켜보고있었다. 마분지로 된 조그만 열매들이 터지고 놋쇠 철사가 뒤틀리고 장식끈이 녹아버렸다. 종이 꽃잎은 오므라들어 난로판을따라 검은 나비처럼 흔들리더니 마침내 굴뚝 속으로 날아가버렸다.
삼월에 토트를 떠날 때 보바리 부인은 임신중이었다.
- P102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레옹은 한쪽발을 보바리 부인이 앉아 있는 의자의 받침살에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색의 작은 비단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그것이 가두리 장식을 한 흰 삼베 칼라를 마치 프레즈 처럼 떠받쳐주고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얼굴의 밑부분이 옷깃 속에 묻히기도 하고 다시 살며시 드러나기도 했다. 샤를르와 약사가 잡담을 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바싹 붙어 앉아서 우연히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언제나 서로간의 공감이라는 불변의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 그런 막연한 대화 속으로 접어들었다. 파리의 연극, 소설의 제목, 새로운 카드릴 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교계, 그녀가 살았던 토트, 현재 그들이 있는 용빌 등, 두 사람은 만찬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검토해 보았고 모든 것에 대해서 골고루 다 이야기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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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식이 있은 지 이틀 뒤 부부는 떠났다. 샤를르는 환자들때문에 더 이상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루오 영감이 자기 마차에 두 사람을 태우고 바송빌까지 따라왔다. 거기서 그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하고 마차에서 내려 되돌아갔다. 한 백 보쯤 걷다가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차가 저만큼 멀어져 가면서 먼지 속에서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기가 결혼하던 때의 일, 흘러간 지난 시절, 아내의 임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역시 아내를 장인댁에서 자기 집으로 처음 데려오던 날은 어지간히도 즐거웠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어서 들판이 흰 눈에 뒤덮여 있었으므로 아내를 말잔등에 태우고서 눈 속을 터벅거리며 왔었다. 그녀는 한쪽 팔로 그를 붙잡고 다른 팔에는 바구니를 걸쳐들고 있었다. 코 지방 특유의 머리 두건에 달린 긴 레이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면서 때로는 그녀의 입술 위에 닿곤 했고 그가 고개를 돌려보면 바로 가까이 어깨 위에 그녀의 발그레한작은 얼굴이 보닛 모자의 금박 장식 아래에서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린 손을 녹이기 위해서 그녀는 이따금씩 그의 가슴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 모두가 얼마나 아득한 옛일인가! 그때 낳은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서른 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길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빈집처럼 쓸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 P50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었다. 그러나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엄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 P55

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步道)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그는 루앙에서 사는 동안 한번도 극장에 가서 파리에서 온 배우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곤했다. 그는 수영도 모르고, 검술도 모르고, 권총도 쓸 줄 몰라서, 어느 날 그녀가 소설을 읽다가 마주친 승마 용어의 뜻을 설명하지 못했다.
반대로 남자란 모름지기 모르는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재주에 능하고 정열의 위력, 세련된 생활, 온갖 신비들로 인도해주는 능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사내는 무엇 하나 가르쳐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아는 것도 없고 무엇 하나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그녀는 너무나 흔들림 없는 이 평온과 이 태연한 둔감, 그녀 자신이 그에게 안겨주고 있는 행복 그 자체에 대하여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 P65

무도실의 공기는 탁해졌다. 램프의 불빛은 희미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당구실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인 하나가 의자에 올라가서 창유리를 두 장 깨뜨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본 보바리 부인은 마당에서 농부들이 창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대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베르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농장과 질퍽한 늪, 작업복 차림으로 사과나무 밑에 선 부친이 눈에 선했다. 착유장에서 우유 항아리속의 크림을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도 옛날 그대로 보였다. 그러나 섬광처럼 번쩍이는 현재로 인하여, 방금까지 그렇게 또렷했던 과거의 생활은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고, 과거에 정말 그렇게 살았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무도회의 주변에는 그 나머지 모든 것을 덮고 있는 어둠뿐이었다. 그때 그녀는 마라스키노 술이 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은으로 도금한 조개모양의 접시를 왼손에 들고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 눈을 반쯤 감았다.
- P80

개인적 욕망을 공상으로 만족시키기 위하여 발자크와 조르주 상드의 소설을 읽었다. 식탁에까지 책을 끼고 들어와서는 샤를르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동안 책장을 넘기곤 했다. 읽는 책 속에서 자작의 추억이 항상 되살아났다.
그녀는 자작과 지어낸 작중 인물을 결부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중심으로 한 원은 그 둘레로 점점 확대되었고 얼굴에서 떨어져나간 그의 후광은 더욱 멀리까지 퍼져나가서 다른 모든 꿈들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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