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작가로서 출발할 때인 24년 전의 요더와 비교해서 지금의 요더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 나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난 뒤 얼마나 많은 날들을 두려움 속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던가?
그리고 출판사 측에서 나의 원고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떻게 원고를 구해 낼 방도를 함께 찾아보자>는 전갈을보내올 때마다 나는 누군가가 그 까다로운 원고를 매끄럽게고쳐 주기만 한다면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아침 7시에 집 문을 나서곤 했었다. 그러나 맨해튼에 도착해 그높은 빌딩들을 쳐다볼 때마다 나의 용기는 이미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나보다 훨씬 똑똑한 여자인 내 편집자 역시 나를 겁나게하는 존재였다. 그래도 그녀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또 우리는 함께 내 원고가 형체를 갖출 수 있도록 무진 애를 쓰기도 했었다. 그러나 진짜 두려움은 딴 곳에 있었다. 원고가 서서히 인쇄 과정에 들어감에 따라 나는, 과연 비평가들이 내 작품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평을 해줄 것인지, 독자들이 과연 내 책을 사서 볼 것인지 정말 가슴 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내 뜻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된 것이 없었다.
책이 세상에 나왔다가는 곧 날개 찢긴 새처럼 퍼덕거리다가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더욱이 네 번씩이나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다니! 정말 불운한 세월이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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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하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몽태뉴만의 독특한 점이자 그의 기억 장애의 정도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할 수 있다.

이미 수년 전에 꼼꼼히 읽고 주까지 이리저리 달아놓은 책들을 마치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최신 저작인양 다시 손에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 기억력의 그러한 배반과 극심한 결함을 어느정도 보완하기 위해서, 얼마 전부터 의례적으로 모든 책한번만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의 말미에 그 책을 다 읽은 때와 그책에 대한 개략적인 판단을 덧붙이곤 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책을읽으면서 품게 된 저자에 대한 전체적인 관념과 그 분위기만이라도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기억의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망각이 개입하는 대상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독서 행위 자체이기 때문이다.
망각이 이제는 단지 그 대상-그래도 최소한 그 윤곽만은 흐릿하게나마 기억에 남을 것이다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그 대상과 관계된것은 무엇이건 모조리 다 먹어치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예 읽는 행위자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독서가 행해졌다는 사실자체를 기억하지 못할 때도 여전히 독서가 독서라는 이름을 간직할 수 있는지 자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P81

내가 쓴 책이 다른 이들이 쓴 책과 같은 운명을 따르고, 나의 기억이 내가 읽은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쓴 것을, 그리고 내가 받아들인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제공하는 것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그리 놀랄일은 아니다. 

자신이 쓴 것을 기억할 수 없는 몽테뉴는 기억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에 직면한다. 즉, 자신도 모르게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고,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자기에게 지나치게 충실히 머무르느라 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고뇌에 찬 경험을 하게 되는것이다. 수상록』은 시사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라 언제라도 접근이 가능한 문제들, 기억이 없는 작가로서는 자신도 모르게 동일한 말들로 또 다시 다룰 수 있는 그런 초시간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책이기에 그런 두려움은 더욱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새로운 학습 거리로 제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상상들이다. 수도 없이 그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다보니, 이미 글로 기록했던 것들은 아닌지 나는 두렵다.
- P85

책들이 단지 지식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기억 상실, 즉 정체성의 상실과도 관계된 것이라는 사실은 독서에 관한 모든 고찰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다. 이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텍스트 접촉의 긍정적이고 축적적인 측면만 헤아리게 될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망각하는 것 어쩌면 이 점이 더 크다-이기도하다. 말하자면 우리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자신에 대한 망각과 대면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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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적 목표를 통해 확고해진 많은 인류학자들의 본능은 생물학에 대한 그들의 반대입장을 좀 더 공고히 하면서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지지를 더욱 강화시켜나갔다.
물론 생물학은 거기에 없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추론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문화상대주의는 인종 집단들 간의 유전적인 행동 차이가 있다는 믿음 - 물론 이런 믿음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이념적으로도 위험한 발상이다.- 을 부정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결국에는 유전에 기초한 통합된인간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대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인간 조건에 대한 커다란 수수께끼가 생겨났다. 문화나 유전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성을 통합해 주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만일 윤리 기준들이 문화를 통해서 형성되는데 문화는 끝없이 다양하고 동등하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신정(神政, theocracy)이나 식민주의, 아동 착취, 고문, 노예 제도를 반대할 수 있겠는가? - P323

후성설(epigenesis)은 개체가 유전과 환경의 공동 영향 아래에서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관한 개념으로서 원래 생물학에서 처음 나왔다.
그렇다면 후성 규칙들은 무엇인가? 내가 앞의 두 장에서 길게 한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감각 체계와 뇌의 선천적 작용들의 집합체인 후성 규칙은 개체가 환경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빠른 해결책을 찾도록 만드는 일종의 어림법 (rules of thumb)이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끔 선천적으로 규정하고 자동적으로 특정한 선택을 하게 한다. 우리는 이 후성 규칙들 때문에 무지개를 파장의 연속체가 아니라 네 가지 기본색으로 본다. 우리는 근친상간을 피하고 문법적으로 정합적인 문장으로 말하고 친구에게미소를 지으며 혼자일 때에는 낯선 이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후성 규칙들은 대개 감정을 통해서 작동되는데 모든 행동 범주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빠르고 정확한 반응을 하도록 하여 결국 생존과 번식에 더 성공적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규칙들은 문화적 변이들과 조합들이 발생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예컨대, 특히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 규칙들이 건강과 복지에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규칙들이 지시하는 행동이 굴절되어 결국 개인과 사회의 이득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 P336

이런 목표를 위해 과학자들은 이론, 특히 수학적 모형이 지녀야할 네 가지 덕목을 추구한다. 첫째는 검약성(parsimony)이다. 즉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단위와 과정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은 이론이라는 기준이다. 물리과학이 보여 준 검약성의 승리 덕분에 우리는 이제 장작이 불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플로지스톤이라고 불리는 상상의 물질을 상정하거나 진공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에테르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덕목은 일반성(generality)이다. 즉 모형으로 포괄되는 현상의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그 모형이 참일 개연성이 더 높다는 기준이다. 화학에서 주기율표는 각 원소와 화합물에 대한 개별 이론을 배제한다. 한 이론이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포괄한다.
그 다음은 통섭(consilience)이다. 다른 분야에서 탄탄하게 검증된 지식에 순응하는 어떤 분야의 단위와 과정은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일관성의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입증되었다. DNA의 화학에서부터 화석의 연대 측정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의 모든 수준에서 얻는 모든 자료들에서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이 창조론을 물리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우리가 이 작은 행성 위에서 꾀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물권을 설명할 때에는 신의 정교한 손을 빌릴 필요가없다. 이제 마지막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것은 예측성(predictiveness)으로서 이미 다른 덕목들로부터 유도된 덕목이다. 많은 현상에 대해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을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하기 쉬우면 그 이론은 좋은 이론이 된다. - P343

유성 생식을 동전 던지기로 그리고 각 세대를 새롭게 동전을 한번 던지는 경우로 비유해보자. 유전적 부동에 따른 진화는 세대를거치며 우연히 유전자의 빈도에 변화가 생기는 과정을 뜻한다. 만일 한 개체군의 개체 수가 100 이하일 때 유전적 부동은 효능을 발휘할수 있다. 유전적 부동에 따른 유전자 빈도의 변화 속도는 동일 크기의 표본이 통계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통해 정확하게 기술될 수 있다. 이런 통계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유전적 부동으로 인해 개체군의 몇몇 유전자 형태가 제거됨으로써 결국 그 개체군 내의 변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무작위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하면 창조성의 측면에서 유전적 부동이 자연선택보다 훨씬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선택이 이 모형에 추가되면 그것은 예측 가능한 속도로 유전자 빈도를 한 방향으로 추동하면서 유전적 부동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 P347

인문학 쪽의 학자들은 환원주의에 드리워진 저주를 걷어 내야 한다. 과학자들은 잉카 제국의 황금을 약탈하러 온 신대륙 정복자들이아니다. 과학도 자유롭고 예술도 자유롭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관해앞서 주장했듯이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은 모두 창조적 정신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유사하기는 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에 있어서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예술과 과학 간 상호 교류의 핵심은 혼성화(hybridization), 즉 ‘과학적 예술‘이나 ‘예술적 과학‘과 같은 떨떠름한 혼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 지식과 미래에 대한 그 지식의 독점적 감각으로 예술에 대한 해석을 되살리는 데 있다. 해석은 과학과 예술 간의 통섭적 설명이 가질 수 있는 논리적 통로이다. - P365

정도는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은 공통적으로 예술적 영감을 가지고 있다. 이 예술적 영감은 인간 본성의 분수에서 솟구쳐 올라온다. 예술적 영감에 따른 창조는 분석적 설명이 없다 해도 보는 사람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창조성은 절대적으로인본주의적(humanistic)이다. 지속적인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은 이와같은 인본주의적 근원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것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그것들을 이끌어 낸 후성 규칙들을 탐구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후성 규칙들은 인류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P369

•보편적이거나 준보편적인 것들이 문화가 진화하는 동안에 출현한다. 기본적인 후성 규칙들 사이에 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특정 생각과 행동은 그것이 야기하는 감정적 반응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이 몽상이나창조적 사고를 방해하는 빈도에 있어서 다른 생각과 행동에 비해 더효과적이다. 그것은 예술의 지배적 테마를 이루는 핵심 내러티브이자 반복되는 개념인 원형을 창안하는 방향으로 문화의 진화를 편향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원형의 사례로는 웨스터마크 효과를 위반했던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신화 및 종교에 등장하는 뱀의 이미지들을 들 수있다.
• 예술은 원래 특정 형식과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다른 점에서는 자유롭게 구축된다. 원형들은 예술뿐만 아니라 평범한 의사소통을 구성하기도 하는 수많은 은유를 생산한다. 뇌가 학습하는 동안 뇌의 여러 영역이 폭넓게 활성화되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는 은유는 창조적 사고를 구축하는 벽돌 역할을 한다. 은유는 서로 다른 영역의 기억들을 연관시키고 함께 강화시킨다. - P376

프로그램화된 뇌는 예술과 과학에서 모두 우아함을 추구한다. 여기서 우아함은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세부 사실들로부터 군더더기없이 어떤 패턴을 끄집어내 기술하는 것을 뜻한다. 수학과 음악을 다잘 아는 비평가 에드워드 로드스타인(Edward Rothstein)은 이 두 영역(수학과 음악)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과정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우리는 외견상 서로 달라 보이는 대상들을 가지고 시작한다. 서로 비교하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유비해 봄으로써 어떤 패턴을찾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멀찍이 떼어 놓고 변형, 사상(寫象), 은유를 이용하여 추상적 개념과 법칙 그리고 체계 등을 창조해 낸다. 이렇게 하여수학은 더욱 추상적이고 강력해진다. 이것은 또한 음악이 작은 부분들을통해 거대한 하나의 구조를 이루면서 힘을 얻어 가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이해 방법은 대부분의 서구적 사고의 바탕에 놓여 있다. 우리는 보편적 지식을 추구하지만 그것의 힘은 개별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공통 원리들을 사용하지만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부 사실들을 드러낸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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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본성을 규정하는 유전자도 아니고 인간 본성의 궁극적 산물인 문화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막 그것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후성 규칙들이다. 즉 문화의 진화를 한쪽으로 편향시켜 유전자와 문화를 연결해 주는 정신 발달의 유전적 규칙성이다. - P291

 뇌는 환경 자극의 범람 속에서 작동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며 자기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다.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뇌의 집합적 선택은 인간의 모든 것-유전자, 후성 규칙, 의사소통적 마음 그리고 문화의 진화적 운명 (Darwinian fate)을 결정한다.
지혜로운 선택을 한 뇌는 더 높은 진화적 적응도(Darwinian fitness)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그 뇌가 잘못 선택한 뇌들보다 통계적으로더 오래 살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됨을 뜻한다.  - P293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가 특정한 형태의 문화를 이끌어 낸다는 견해로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론이다. 나는 그들의 정당한 우려가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유전자들은 토템 신앙, 원로 회의, 종교 의식과 같은 정교한 규약들을 결정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그 어느 진지한 과학자나 인문학자도 그러한 이론을 제안한 적이 없다. 오히려 유전자에 기반을 두고있는 후성 규칙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규약들을 창조하고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후성 규칙들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그것에 따른 특정 행동들이 다양한 사회 속에서도 수렴적으로 진화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후성 규칙들에 따라 편향된 문화에서 진화된 그 규약들은 문화적 보편자로 간주된다. 소수 문화의 경우에도 동일한 시나리오가 적용될 수 있다. 발생유전학의 입장에서는 이런 전체 구도를 유전들의 반응 양태가 문화적 보편자의 경우에는 대단히 협소하다는 식로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문화적 규약들이 생겨나지 않는 인간 환경은 거의 없다. 반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다양한 군소약들을 산출하는 유전자, 다시 말해 문화의 다양성을 늘리는 유전자는 더 넓은 범위의 반응 양태를 보인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 P295

유전적 적응도 가설 문화에 가장 널리 퍼진 형질들은 그것들을 있게끔 해준 유전자들에게 진화적 이득을 안겨 준다. ―은 많은 증거들을 통해서 합당하게 잘 입증되어 왔다. 널리 분포된 형질들은 대개적응적이고 그것들의 존재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기본 원리에잘 부합한다. 게다가 사람들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간에 대체로 이 기본 원리를 따르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도 사실이다.
유전적 적응도 가설의 가치는 그것이 인간 본성에 던져 주는 통찰에있다. 또한 학계에 참신하고 생산적인 연구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것도 중요한 점이다. - P303

근친상간 금기는 우리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간의 경계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인도한다. 그 금기가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생물학적인 웨스터마크 효과와 문화적인 근친상간 금기는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쟁점은 인간의 근친상간 회피 행동에 관한 두 가지 경합 가설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첫 번째 가설은 지금까지 언급된 웨스터마크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간 본성의유전적 후성 규칙 때문에 근친상간을 피하고 그 규칙을 금기라는 형태로 번역해 냈다. 이에 대한 경합 가설은 프로이트의 가설이다. 이대단한 이론가는 웨스트마크 효과가 무엇인지를 들었을 때 그런 효과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오히려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친족 이성 간의 욕정은 근본적이고 강제적인 것으로서 그 어떤 억제 본능보다 강하다. 그러한 근친상간과 그로 인해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사회는 금기라는 것을 고안해 냈다. - P312

인간을 제외한 모든영장류 동물에서 이것은 두 층으로 되어 있다. 첫째, 19종의 사회성종에서 젊은 개체들은 인간의 족외혼(exogamy)을 연상케 하는 짝짓기 패턴을 보인다. 예를 들어 몸이 어른 크기가 되기 전에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에 합류한다. 마다가스카르 섬의 여우원숭이와 대다수의 구대륙, 신대륙 원숭이의 경우에 자신의 집단을 떠나는 쪽은 수컷이다. 반면 아프리카의 붉은콜로부스원숭이, 망토원숭이, 고릴라, 침팬지의 경우에는 암컷이 떠난다. 또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고함원숭이의 경우처럼 두 성이 모두 떠날 때도 있다. 이런 다양한 영장류 종들에서 젊은 개체들이 떠나는이유는 공격적인 어른 개체 때문이 아니다.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 영장류의 이런 특이한 행동은 그것의 궁극적인 진화적 기원이 무엇이건 간에 그리고 그 행동이 그 개체의 번식 성공에 어떤 영향을 주든지 간에 근친교배의 발생 가능성을 줄여 준다. 그러나 근친 교배에 대한 거부는 두 번째 단계의 저항으로 더욱 강화된다. 그것은 번식 집단에 남아 있는 이성 개체들이 성적 행동마저도 피하는행위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의 마모셋과 비단원숭이, 아시아의 마카크원숭이, 비비 그리고 침팬지처럼 성적 발달에 관한 연구가 잘 된 모든 사회성 영장류인간은 제외하고)의 경우, 어른 수컷과암컷은 모두 이른바 웨스터마크 효과(Westermarck effect)‘를 보인다.
즉 어렸을 때 자신들과 가깝게 지냈던 개체들이 성적으로 접근해 오면 거부한다. 가령, 어머니와 아들이 짝짓기를 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형제자매 간의 짝짓기는 비친족 개체와의 짝짓기보다 훨씬 덜 일어난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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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3일, 수요일 아침 10시 30분. 나는 여덟 번째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타자기로 쳤다.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그들이 칭하는바 <그렌즐러 8부작>을 완결하는 소설이라고말하겠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동일한 주제를 놓고 여덟권의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정말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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