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하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몽태뉴만의 독특한 점이자 그의 기억 장애의 정도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할 수 있다.
이미 수년 전에 꼼꼼히 읽고 주까지 이리저리 달아놓은 책들을 마치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최신 저작인양 다시 손에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 기억력의 그러한 배반과 극심한 결함을 어느정도 보완하기 위해서, 얼마 전부터 의례적으로 모든 책한번만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의 말미에 그 책을 다 읽은 때와 그책에 대한 개략적인 판단을 덧붙이곤 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책을읽으면서 품게 된 저자에 대한 전체적인 관념과 그 분위기만이라도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기억의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망각이 개입하는 대상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독서 행위 자체이기 때문이다.
망각이 이제는 단지 그 대상-그래도 최소한 그 윤곽만은 흐릿하게나마 기억에 남을 것이다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그 대상과 관계된것은 무엇이건 모조리 다 먹어치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예 읽는 행위자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독서가 행해졌다는 사실자체를 기억하지 못할 때도 여전히 독서가 독서라는 이름을 간직할 수 있는지 자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P81
내가 쓴 책이 다른 이들이 쓴 책과 같은 운명을 따르고, 나의 기억이 내가 읽은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쓴 것을, 그리고 내가 받아들인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제공하는 것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그리 놀랄일은 아니다.
자신이 쓴 것을 기억할 수 없는 몽테뉴는 기억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에 직면한다. 즉, 자신도 모르게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고,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자기에게 지나치게 충실히 머무르느라 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고뇌에 찬 경험을 하게 되는것이다. 수상록』은 시사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라 언제라도 접근이 가능한 문제들, 기억이 없는 작가로서는 자신도 모르게 동일한 말들로 또 다시 다룰 수 있는 그런 초시간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책이기에 그런 두려움은 더욱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새로운 학습 거리로 제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상상들이다. 수도 없이 그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다보니, 이미 글로 기록했던 것들은 아닌지 나는 두렵다.
- P85
책들이 단지 지식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기억 상실, 즉 정체성의 상실과도 관계된 것이라는 사실은 독서에 관한 모든 고찰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다. 이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텍스트 접촉의 긍정적이고 축적적인 측면만 헤아리게 될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망각하는 것 어쩌면 이 점이 더 크다-이기도하다. 말하자면 우리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자신에 대한 망각과 대면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