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은 유전적 특징은 유전자라고 알려진 구체적 실체로 전달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이면에는 검증되지 않은 이분법이 묻혀 있다. 적자가 생존하기 위해 애쓸 때 이들은 누구와 경쟁하는 것인가? 같은 종 안의 다른 개체들인가? 아니면 다른 종의 개체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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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심리학자 니콜라스 험프리 Nicholas Humphrey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제기했다. 사람은 실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보다 한 술 더 뜨기 위해 지능을이용한다. 사람 속이기, 속임수 알아채기, 타인의 동기 알아내기, 사람 이용해 먹기 등과 같은 것들이 바로 지성을 이용해서 하는 일들이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내가 얼마나 영리하고 재주가 있는가가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영리하고 많은이다. 지성의 가치는 무한하다. 같은 종 안에서 이루지는 선택은 언제나 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보다 더 중요해진다.
- P67

동물의 세계를 보면 개체는 같은 종이거나 다른 종이거나 모두 다른 개체와 투쟁을 벌인다. 사실, 한 생물이 마주치게 되는 가장 가까운 경쟁자는 바로 같은 종의 일원이다. 자연선택은 아프리카 영양이한 종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전자가 아니라 개개의영양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유전자를 고른다. 그러한 유전자는 유전자의 이점을 보여주기 훨씬 전에 벌써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좋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싸우는 것처럼 다른 종과 투쟁하지 않는다.
윈-에드워스는 동물들이 자기 종을 위한 일을 하거나 적어도 자기가 속하는 집단을 위한 일을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한 예로 그는 바다새들은 수가 많아지면 식량 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번식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가 쓴 책의 결과로 두 분파가 생겼다. 하나는 동물의 행동은 대부분 개체의 이익이 아니라 집단의이익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집단선택론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개체의 이익이 언제나 앞선다고 주장하는 개체선택론자들이다. 집단선택론자들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호소력이 있다. 사람들은 단체 정신이나 자비심이 도덕적이라는 분위기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주장은 동물들에서 관찰되는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다. 꿀벌은 동료 벌들을 구하기 위해 적에게 침을 쏘고 죽는다. 새들은 적이 나타나면 동료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고 동료의 어린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인간 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희생적인 영웅심으로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곧 알게 되겠지만 이것들은 다 잘못 본 것이다. 동물의 이타주의는 꾸며낸 이야기이다. 가장 훌륭한 희생의 경우라도, 동물들은 사실 그들 자신의 유전자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설사 동물들이 몸을 희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하다. - P68

그러나 조지 윌리엄스가 말한 바는 그것이 아니다. 개개의 동물들도 때로는 협동을 하며, 인간 사회가 누구에게나 가차 없는 전쟁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협동이란 거의 항상 어머니와 아이들, 그리고 일벌들처럼 가까운 혈족관계에서 일어나거나, 직접 또는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일어난다는 것도 알았다. 여기에 예외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기주의는 이타주의보다 보상이 커서 이기적인 개체는 자손을 더 많이 낳게 되고 결국 이타적인 개체는 멸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타적인 개체가 친척을 돕는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나는 개체들을 돕는 셈이다. 그들이 공유한 유전자 어딘가에 이타성이 있었을것이다. 이타적인 개체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유전자는 멀리 퍼지게 된다. - P71

이 사고 실험유전자가 생물체를 무성생식하게 만들면은어마어마한 수치적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메이너드 스미스나 기린, 윌리엄스 같은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포유류와 조류, 무척추동물의 대부분 대다수의 식물과 곰팡이류, 상당수의 원생동물들이 유성생식을 한다고 할 때, 성의 이점을 보상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게아닐까?
‘성의 대가‘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우리가 금전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나, 이런 논쟁을 외양만 그럴듯한 것이라고아예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디 벌새에 대해 설명해보시라. 벌새가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라, 도대체 벌새가 왜 존재하는가를 설명해보라. 만약 성의 대가가 없다면 벌새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벌새는 꽃들이 곤충이나 새들을 유혹하여 수분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꿀을 먹고 산다. 식물은 어렵게 얻은 설탕으로 꿀을 만들어 벌새에게 선물로 준다. 이 선물을 주는 것은 벌새가 몸에 꽃가루를 묻혀서 다른 꽃으로 날라주기 때문이다. 다른 꽃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첫 번째 꽃은 꽃가루 전달자에게 꿀이라는 뇌물을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꿀은 바로 식물이 성을 찾고자 할 때 생겨나는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대가이다. 성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면 벌새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 P75

이쯤에서 잠깐 옆길로 벗어나 분자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를 이루는 물질인 DNA는 네 가지 화학물질 ‘염기‘라는 간단한 알파벳으로, 마치 두 개의 점과 두 개의 짧은 선으로 이루어진 모스 부호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가늘고 긴 분자이다. 이 네 개의 염기를 각각 A, C, G, T의 영문 알파벳으로 부르자. DNA의 묘미는 각각의 글자가 다른 특정 글자와 상보적이라는 것인데, 이 말은 곧 각 글자가 특정 글자하고만 짝을 이룬다는 뜻이다. A는 T, T는 A와 짝을 이루며, C는 G와, G는 C와 짝을 이룬다. 이는 곧 DNA를 복제하는 데는 자동적인 방법이 있음을 의미한다. 즉 DNA 분자 가닥을 따라 내려가면서 상보적인 글자를 하나씩 맞춰가는 복제 방법이다.
AAGTTC라는 염기서열은 상보적 DNA 가닥에서는 TTCAAG가 된다. 이 염기서열을 한 번 더 복제하면 원래의 서열을 다시 얻을 수있다. 각 유전자는 DNA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보적 서열은그 유명한 DNA 이중나선에 함께 꼬여 있다. 특수효소가 DNA 가닥을 오르내리며 이동하다가 끊어진 부분을 발견하면, 상보적 가닥을 참조로 하여 회복시킨다. DNA는 햇빛이나 화학물질에 의해 끊임없이 손상된다. 만약 복구효소가 없었다면 DNA는 무의미한 글자덩어리로 빠르게 전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DNA의 두 가닥이 같은 곳에서 함께 손상되는 경우는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일은 아주 흔한데, 예를 들자면 채워진 지퍼위에 접착제 한 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DNA의 두 가닥이 함께 붙어버린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DNA 복구효소들은 DNA의 무엇을 복구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DNA 복구효소가 유전자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주형이 필요하다. 성은 이러한 주형을 제공해준다. 성은 다른 개체로부터 동일한 유전자의 복사본을 가져오거나(이종교배), 같은 개체 내의 다른 염색체로부터 유전자의 복사본을 얻게 된다(재조합). 이제 새로운 주형을 참조하여 DNA의복구가 진행된다. - P82

더구나 복구 이론자들이 재조합에 관해 주장하는 사실은 모두 유전자의 보조 복사본을 보유하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일을하는 데는 염색체들 사이에서 유전자를 무작위적으로 교환하는 것보다 더욱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이를 이배성性이라고 한다." 난자와 정자는 반수이다. 이들은 남녀 유전자의 복사본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박테리아나 이끼와 같은 하등식물도 반수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물과 거의 모든 동물들은 이배체二倍體이다. 즉이들은 모든 유전자를 둘씩 가지고 있는데, 각각 부모에게 하나씩받은 것이다. 몇몇 생물, 특히 자연에서 유래한 식물들이나 크기가 커서 사람들에게 선택된 식물들은 배수체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잡종 밀은 6배체이므로 모든 유전자의 복사본을 여섯 개씩가지고 있다. 고구마의 자성 식물은 8배체나 6배체인데, 음성식물은 4배체이다. 이 불일치는 고구마의 씨 없음을 일으킨다. 무지개송어의 어떤 종이나 닭의 어떤 종은 3배체이다. 몇년전에는 3배체인 앵무새 한 마리가 알려지기도 했다. 생태학자들은 식물에서 나타나는 배수성 일종의 성의 대체물이 아닌가 생각하이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나 위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많은식물들이 성을 택하는 대신 무성생식의 배수성을 택한 듯하다.
생태학자들까지 언급하다니 너무 앞서갔다. 쟁점은 유전자 복구이다. 만약 이배체 생물이 성장하면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사이에 재조합을 조금씩 일으킨다면 유전자 복구의 기회는 풍부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유전자들 사이의 재조합은 마지막의 독특한 단계, 즉 난자와 정자를 형성하는 감수분열에서만 일어난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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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난 당신이 좋아요. 계속 지켜봤는데······"
"고마워."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고개를 다시 눕히며 그를 외면했다.
그녀는 누워 있고 그는 서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몇분 동안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내가 계속 있으면 저 여자도 결국 뭔가 말을 해야 할 거야.‘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등과 허벅지와 팔에 힘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녀는그가 가기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열기 속에서 태양이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일하던 옥상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데서 일을 하라고 하다니!‘ 정당한 분노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여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바람 한 줄기가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자 머리카락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어젯밤 꿈에서 그가 어루만지던 머리카락이었다.
그녀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그의 발을 움직여 사다리를 내려가게 했다. 그는 건물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를 증오하며 술에 취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하늘이 회색이었다. 비를 품은 회색 하늘을 보며 그는 못된 생각을 했다. ‘그래, 하늘이 당신 버릇을 고쳐놓았군, 그렇지? 아주 제대로 고쳐놓았어‘
세 남자는 일찍부터 서늘하게 식은 지붕 연판 작업을 했다. 축축한 가랑비가 내리는 옥상에 햇빛을 받으러 올라오는 사람은없었다. 검은 지붕이 빗물로 미끄러웠다. 날이 시원해졌으니 서두르면 오늘 안에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P80

그때 내 시각이 상당히 부정확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혹시 ‘우리의‘라고 말해도 될까?) 시각은 누구나 반드시 찰칵 하고 마음이 맞아떨어질 만큼, 바람직하거나 공감이 가는 특징들을 지닌 A 또는 B 또는 C 또는 D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물을 담은 접시처럼 자신 위에서 상대가 둥둥 떠다닐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옆구리에 불타는 창 같은 것을 하나 꽂은 채 돌아다니며 그것을 뽑아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어떤것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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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인간이 아이를 갖는 유일한 방법이며, 아이를 갖는 것이성의 목적임은 명명백백하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여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문제란 생식에 더나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동물들은 이분법으로 갈라져 번식한다. 버드나무는 잘린 가지에서도 싹이 돋는다. 민들레는 자기와 똑같은 씨를 만들어낸다. 진딧물의 암컷은 수컷 없이도 새끼를 낳는데 이 새끼들은 태어날 때이미 배 속에 새끼를 배고 있다. 바이스만은 1889년에 이 사실을알아낸 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양성의 의의가 번식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번식은 양성의 결합 없이 단순히 몸을 둘이나 셋으로 나누거나, 씨눈을 내서 분열하거나, 심지어는 단세포 배를 만드는 등의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스만은 위대한 전통을 창시한 것이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진화학자들은 성은 존대하디 날아야 할 사치이며, ‘존재 다체가 문제‘라고 주기적으로 주장해오고 있다. - P59

필수적인 학술용어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감수분열로, 남성이정자로 들어갈 유전자를 고르고 여성이 난자로 들어갈 유전자를 고르는 과정이다. 남자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75,000개의 유전자를그대로 고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머니에게 받은 75,000개의 유전자를 그대로 고를 수도 있지만, 어버이 양쪽의 유전자를 섞어서 고를가능성이 가장 높다. 감수분열을 하는 동안에는 특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23쌍의 염색체들은 각각 상대편 염색체들과 나란히 마주 놓이게 된다. 한 염색체의 일부분과 상대편 염색체의 일부분의 교환이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을 재조합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완전한 한세트의 염색체가 다른 쪽 부모로부터 온 한 세트의 염색체와 짝을이루어 자손에게 전해진다. 이 과정을 우리는 이종교배異種交配라고한다.
성은 재조합에 이종교배가 더해진 것이다. 즉 유전자의 혼합이야말로 성의 주요한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해 (이종교배를 통해서)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네 사람의 유전자가 섞여서(재조합을 통해서) 아기가 태어난다. 그들 사이의 재조합과 이종교배는 성의 필수 과정이다. 성에 관한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 이를테면 성별, 짝 선택, 근친상간 기피, 일부다처, 사랑, 질투 등은 모두이종교배와 재조합을 더욱더 효과적이고 신중하게 수행하기 위한방법이다. - P61

유전자 혼합은 유전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들의 새로운 조합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유전자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단지 어렴풋이 유전기질 정도만알았던 바이스만도 이러한 사실은 깨닫고 있었다. 성은 훌륭한 유전적 발명품에 대한 자유무역인 셈이다. 좋은 발명품이 종에 전파될 확률을 증가시키고 그 종을 진화시킨다. 바이스만은 "자연선택의 작동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는 개체의 다양성의 근원"을 성이라고불렀다. 성은 진화를 가속시킨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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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의 속편 격인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명사들이 추천하는 고전 목록에 단골로 끼어드는소설들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사실 솔직히 따지고보면 완전 거짓말들을 적어놓은게 아니던가? 물론 소설이란 다 거짓말이지만 이두 작품은 정말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거짓말들을 늘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들은 모두 캐럴이 친구의 어린 딸 앨리스를앉혀놓고 풀어놓은 화려한 거짓말들을 묶어 책으로 펴낸 것들이다. 다만 즉흥적인 거짓 속에 담겨 있는 번뜩이는 상상력에 우리 모두 탄복하고 있을 뿐이다.
1872년까지 붉은 여왕은 서양장기판 위에만 서 있었다. 그러다가루이스 캐럴에게 손목을 붙들려 거울 나라로 들어가 앨리스의 손목을 잡고 제자리에 서 있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1백 년이 지난 1973년 어느 날 그는 또 한 번 시카고대학의 리밴 베일런 교수에게 손목을 잡혀 생물학의 세계로 끌려 나왔다. 그후 그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손을 잡고 수없이 많은 곳을 뛰어다녔다.
리 밴 베일런 교수는 사실 진화의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절멸해버린 생물들의 운명을 표현하기 위해 ‘붉은 여왕‘의 개념을 고안해냈다. 우리는 흔히 생물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으로 우선 기후 조건이나 서식지 등 이른바 ‘물리적 환경‘을 떠올린다. 그러나 생물은 누구나 다른 생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기 때문에 생물 환경 또한 중요하다. 생물 환경은 물리적 환경과 달라서 그 자체가 진화한다. - P5

외과 의사는 수술에 앞서 환자의 수술 부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이미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위장을수술하려 한다면 의사는 어느 환자의 경우든 같은위치에서 위장을 찾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위장을가지고 있으며, 그 크기나 모양도 거의 같고 또한 몸의 같은 부위에있다. 물론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병약한 위장을, 어떤이는 작은 위장을, 또 어떤 이는 기형의 위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이런 차이는 그 유사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의사나 푸줏간주인쯤 되면, 의사에게 여러 종류의 위장에 대해서 잘 이야기해줄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뉜 암소의 커다란 위장이라든지, 쥐의 조그마한 위장이라든지, 혹은 사람의 위장과 흡사한 돼지의 위장에 대해서 말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인 사람의 위장은 다른 동물의 위장과는 전혀 다르다.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에게는 전형적인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이 책에 설정된 가정이다. 이 책의 목표는 바로 인간의 본성을 찾는것이다.  - P24

이 책은 그러한 인간 본성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질문인 셈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알지 못하고서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性이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진화해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진화의 중심 주제는 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성이란 말인가? 인간의 본성에는 너무 많이 알려지고 성가신 출산의 유희 말고 다른 특징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해도자식을 낳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목표이다. 그밖의 다른 것은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살아남고, 먹고 마시며, 말하는 것 등의 성향을 이어받는다. 그러나 인간이 자식을 낳는 성향을 이어받았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식을 낳은 조상들은 그 자손에게 자신들의 특성을 물려줄수 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조상들은 자신들의 특성을 물려줄 수없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성공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기회를 증가시키는 요소는 다른 모든 대가를 치르고도 전해진다. 인간의 본성은 모두 궁극적으로 번식의 성공에 기여하도록 주도면밀하게 선택되었다. - P25

나는 배아의 유효 물질 중 일부분인 생식질이 난자가 개체로 발생되는 과정에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며, 이 생식질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체의 생식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유전의 근거가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생식질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전해 내려가는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난소로부터 온 것이다. 사는 동안 어머니의 몸이나 정신이 겪은 어떤 일도자식의 본성에는 직접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물론 태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한 예로서, 임신부가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되면 태아는 유전적 원인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선천적 기형이 될수 있다). 태아는 아무 죄 없이 태어난다.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이 때문에 생전에 비웃음을 샀으며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전자의 발견과 유전자를 이루는 DNA의 발견, 그리고 DNA의 정보가 쓰인 암호의 발견으로 바이스만의 주장은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생식질은 신체와는 분리되어 유지된다.
이 이론의 완전한 의미는 1970년대에 가서야 명확히 파악되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이 개념을잘 정리하였다. 즉 신체는 스스로 복제하지 못하지만 성장할 수 있으며, 반면에 유전자는 스스로 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체는 단지 유전자의 진화적 전달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유전자는 신체의 진화적 전달 수단이 아님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온다. 만약 유전자가그 신체에게 유전자를 영속시킬 수 있는 일만 하게 한다면(먹고, 생존하고, 성교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등), 유전자는 영속할 것이다. 따라서 다른 종류의 신체는 사라지게 된다. 오직 유전자의 생존과 영속에 들어맞는 신체만이 살아남게 된다. - P32

인류가 가장 두드러진 점 가운데 하나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 가진 아버지도 없으며, 어머니와 똑같은 딸도 없다. 형과 똑같은 아무도 없으며, 언니와 같은 동생도 없다. 물론 드물지만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천하의 바보라도 천재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수 있으며, 그어떤 천재라도 바보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개인의 얼굴이나 지문은 실제로 유일하다. 사실 인간의 이러한 유일성은 다른 어떤 동물에 비교해보아도 매우 발달된 것이다. 사슴이나 참새들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동하면서도, 다른 모든 사슴이나 참새들과 같은 행동을 한다. 인간 남녀에게서는 결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이어져왔다. 모든 개인은 그가 땜장이이든, 가정주부이든, 극작가이든, 혹은 창녀든 어떤 점에서는 전문가이다. 외모에서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모든 인간 개개인은 유일하고 독특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이 유일한 존재라면 어떻게 보편적이면서도 인간에게만 특이한 인간의 본성이 있을 수 있단말인가? 이 역설의 해결점은 성이라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성이야말로 두 남녀의 유전자를 함께 섞을 수 있으며, 섞인 유전자의 반을 버림으로써 어떤 자식도 어머니나 아버지 중 한쪽만을 꼭 닮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성을 통한 유전자의 혼합에 의해 모든 유전자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유전자 군群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성에 의해 인간 개인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는 하지만 그러한 차이점도 인류 전체의 공통적 특성에서 결코 벗어나지않는다. - P37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어미 나나니벌은 ‘영리한‘것이 아니다. 어미 나나니벌은 무엇을 ‘선택‘ 한 것도 아니고 무슨행동을 하는지 ‘아는 것도 아니다. 어미 벌은 몇 개의 뇌세포를 지닌 작은 나나니벌일 뿐이며 어떤 의식 있는 생각을 지녔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어미 나나니벌은 ‘가루이에 다른 나나니벌이 들어가있으면 정자를 제거하라‘는 신경 프로그램의 간단한 지시 사항을 수행하는 자동기계일 뿐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수백만 년 동안의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가루이에 다른 나나니벌이 들어가 있으면 정자를 제거하는 성향을 물려받은 나나니벌은 그렇지않은 나나니벌보다 훨씬 많은 자손을 낳게 된다. 사물을 보기 위한 ‘목적‘을 위하여 자연선택에 의해 눈이 설계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나나니벌의 행동은 자연선택에 의해 목적에 맞게 설계된 것이다 - P42

물리학에서는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즉 ‘지구는 어떻게 태양 주위를 도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답은 ‘중력에 의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지구는 왜 태양 주위를 도는가?‘에 대한 답변 역시 ‘중력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의 경우는다르다. 이는 진화 때문인데, 진화는 우연한 역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인류학자인 라이오넬 타이거 Lionel Tiger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부추김을 당하며 몰리고 있거나, 적어도 수천 세대를 거쳐오면서 이루어진 선택적 결정이 축적한 충격에 영향받고 있다"고말했다!" 어떠한 역사적 관점에서 보든 중력은 중력일 뿐이다. 공작새의 경우, 과거의 한때 암공작새의 조상이 실리적인 기준보다는 예쁜 자태를 지닌 수공작새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그 자손들은 보기좋고 현란한 공작새가 되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그들의 과거의 소산물이다. 신다윈론자 한 사람이 왜냐고 묻는다면 이는 사실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다. 즉 그는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다. - P45

모든 진보가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생물학에서는 ‘붉은 여왕 RedQueen‘이라고 부른다. 이는 『거울나라의앨리스』에서 앨리스가 거울 속에서 만난 체스판의 말로서, 주변 경치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별로 멀리 가지는 못하면서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그 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진화학에서 점차 그 영향력이 커가고 있는 이론으로,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하는 개념이다. 더빨리 뛰면 뛸수록 세상 또한 빨리 움직이므로 점점 더 진보가 둔화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마치 한 게임에 이긴 사람이 다음 게임에서는 졸 하나를 빼고 경기를 해야 하는 체스 게임과 같다. - P47

찰스 다윈의 매우 불명확한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는 동물들이 일관되게 특정한 유형의 상대를 선택하고 그럼으로써 종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마치 종마 사육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성선택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이론은 다윈이 죽은 이후 오랫동안 무시되다가 최근에 들어와서야 다시 유행하게 되었다. 이 이론의 핵심적인 통찰은 동물의 목표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번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생존과 번식이 서로 상충되는 지점에서는 번식이 우선권을 차지하게 된다. 그 예로, 연어는 번식 기간에 굶어 죽는다. 암수가 있는 종에서 번식은 적절한 상대를 찾아내는 것과 그 상대에게 유전자 보따리를 지니고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목표는 삶에있어서 너무나 중심이 되었으므로, 신체뿐 아니라 정신의 설계에도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무엇이든 번식의 성공을 증대시키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포함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퍼져나간다.
성선택은 자연선택처럼 합목적적으로 ‘설계‘ 되었다. 마치 수사슴이 성선택으로 성적 라이벌과의 싸움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공작은 유혹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남자의 심리 역시 생존을 희생해서라도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질 좋은 짝을 찾거나 유지하는 확률을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남성다움의 근본 물질인 테스토스테론 자체는 전염병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남자들이 좀 더 경쟁본성을 띠는 것은 성선택의 결과이다. 남자들은 위험하게 살도록 진화되었는데, 그것은 경쟁이나 전투에서의 성공이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성적 정복과 더 많은 자손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위험하게 사는 여자들은 단지 그들이 이미 얻은 자손들을 위기에 처하게 할 따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아름다움과 번식능력의 밀접한 관계 (아름다운 여자는 정의상 대체로 늙은 여자에 비하여젊고 건강하며, 따라서 생산 능력이 더 높고 앞으로도 더 오랜 기간 출산할수 있다)는 남자의 심리와 여자의 몸에 동시에 작용한 성선택의 결과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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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내 소개부터 하자면, 나는 소설가다. 그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내로라하는 두뇌 전문가들이 플라이스토세에 발생한 인간의 서사 능력이 진화의 주요 동인이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재주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의 언어는 「워킹데드(미국의 좀비 드라마) 수준일 것이고,
오늘 우리가 하는 인간 가치관 논의 따위는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여, 이야기꾼을 비웃지 말지어다. 내 분야는 그대들의 분야보다 뿌리 깊다."
문학이 인류를 발전시켰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박수를 보낸다.  - P125

역설적이게도 마거릿 애트우드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디스토피아 소설을 발표했다. "인류는 과거에 여러번 끔찍한 병목을 통과했다. 그리고 매번 살아남았다." 그녀는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지금도 "새로운 소설"을쓰고 있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여전히 글을 쓴다는 80대의 현역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그녀는 자신이 가진 어떤 화려한 이력보다도 메리 웹스터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한다.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마녀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진 메리 웹스터는 밤새도록 밧줄에 매달려 있었지만 죽지않았다. 다음 날 아침 밧줄이 끊어질 때까지 숨을 쉬고 있었던 메리 웹스터는 그 이후로도 14년을 더 살았다. 실제로 메리 웹스터가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얼마나 가까운 선조인지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고 살길을 모색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일관되게 글로 써 온 마거릿 애트우드는 마녀로 몰려 목이 매달렸지만 살아남은 메리 웹스터와 어딘지 모르게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캐나다의 적막한 숲 속에서 곤충을 관찰하며 혼자 책을읽고 글을 쓰던 어린 소녀가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살아 있고지금도 글을 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다음 작품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더 많은 독자들이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을 만나길 바란다. 분명 세상이 좋아질 것이다. 글 쓰는 여자는 결국 승리한다. - P130

 "애틀랜타나 조지아 같은 곳에서는 서점과 도서관 책장에서 제 책을 빼버리기도 했어요. 흑인들이 그랬지요." 토니 모리슨은 현명했다. 화가 난다고 다음 작품을 망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성"이었다.
토니 모리슨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말과 글의 힘을 믿었다. 
"저는 세 살쯤 되었을 때 언니와 함께 조약돌로 보도에 글자를 쓰곤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울타리에 어떤 단어가 검정 페인트로 크게 적혀 있었는데, 우리는 그 글자를 따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에프(f)를 쓴다음 유(u)를 썼지요. 그러자 어머니가 고함을 지르며 계단을 내려오더니 ‘가서 빗자루 가져와 물도 한 통 가져오고. 너희 대체 왜 그러니?"라고 말했습니다. •••••• 아무튼, 그때 저는 말의 힘에 대해서 두 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말은 어머니를 완전히 기겁하게 만들 수 있었지요. 또 조약돌로 보도에 글자를 쓰는 것만으로도 아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비판을 모두 "폭발적인 반응"이라고 해석하며,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했다.
lll았다 1987년 『빌러비드』를1-1-1.⠀⠀⠀...... - P165

어느 날부터인가 나딘 고디머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내가 다니던 수도원 학교는 모두 백인 아이들이었고 토요일 오후에 극장을 가도 모두 백인뿐이었습니다. 나는 지방 도서관에 다녔는데 흑인들은 들어갈 수 없었어요." 만약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학교를 다니며 책을 마음껏 읽고 작가의 꿈을 가질 수 없었을것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이 왜 자신과 같은 보통 사람들의 몫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폭력적이고 모순적인 제도가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자각하자 분노에 휩싸였다. 반드시 작가가되어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겠다고 결심한다. - P170

1919년 4월, 가네코 후미코는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늙은 친척에게 돈을 받고 딸을 팔아넘기려 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결혼을 빙사한 인신매매를 거부했고, 아버지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떠나기로 결심한다. 무엇보다 도쿄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내 생활을 스스로 개척하고 스스로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은 나날이 강해졌다. "운명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은 덕에 나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과거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아버지여, 안녕"을 외쳤다. - P178

"정작 죽음의 공포, 암이라는 병에 대한 불안은 가을, 회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언덕길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어가고 시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은,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 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박경리는 퇴원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것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100장을쓰고 나서 악착스러운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박경리가 《현대문학>에 1969년 6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토지』는 각 부마다 연재 지면이 바뀌는 곡절을 겪으면서도 1994년총 5부 16권으로 완간되었다. 집필 시간만 25년, 원고지로는3만 1,200장 분량이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P190

극심한 가난도 어린 박경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국민학교 때 수업료 때문에 몇 번씩 집에 쫓겨 가야 했던 일은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움이겠습니다만 우연히 장롱 속에서 수업료의 천 배가 넘는 백 원짜리 지폐들을 접어서 넣은 전대를 발견했을 때의 슬픔, 돈을 보았노라 했을 때나를 보던 어머니의 험악한 눈은 타인의 눈이었습니다." 그래도 박경리는 "인생은 물결 같은 것"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다만 그 "물결"은 어김없이 거칠고도 잔인했다.
1946년 결혼한 박경리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을 잃었고, 몇 년 후에는 어린 아들마저 세상을 떠난다.
참척의 고통은 혼자만의 몫이었다.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암흑시대」는 아이를 홍제동 화장터에 갖다 버리고 돌아온날부터 책상에 달라붙어 쓴 것이고, 「불신시대」는 아이를잃은 후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게 인간들을 휘감아 오는 사회악과 형식화되면서 위선의 탈을 쓴 종교인과 인간 정신이 물체화되어 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쓴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박경리는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하나의 어린 생명이 부당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도수장의 망아지처럼 없어졌다는 일은 도처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사소한 사건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으면서도 박경리는 자신의 고통을과장하지 않았고, 더 큰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품위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 P191

"마음속으로 온갖 고통을 꾹꾹 누르고 있다가 마지막해를 넘기는 날 같은 때에는 한 번씩 창자가 끊어지듯 우셨어요. 어머니는 마치 온몸을 부숴 버릴 듯 통곡을 하시고 난 다음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단정하게 앉아, 그야말로 모질게 원고지 앞에 앉아 펜을 드시곤 했습니다." 한평생많이 슬프고 크게 아팠던 박경리는 그 고통 앞에 굴복하지않았다. 글을 써 내려가며 그 무엇에도 "눌리지는 않으리라는 독한 마음"을 지킬 수 있었다. 2008년 4월 박경리는 마지막 시를 남긴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모진 세월은 그냥 물러가지 않았다. 억울하고 혹독했던 시간들과 싸우기 위해서 무엇보다 살기 위해서 박경리는 소설을 썼다. "소설이란 삶과 생명의 문제이며, 삶이 지속되는 한 추구해야 할 무엇이지요." 글 쓰는 여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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