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난 당신이 좋아요. 계속 지켜봤는데······"
"고마워."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고개를 다시 눕히며 그를 외면했다.
그녀는 누워 있고 그는 서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몇분 동안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내가 계속 있으면 저 여자도 결국 뭔가 말을 해야 할 거야.‘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등과 허벅지와 팔에 힘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녀는그가 가기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열기 속에서 태양이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일하던 옥상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데서 일을 하라고 하다니!‘ 정당한 분노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여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바람 한 줄기가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자 머리카락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어젯밤 꿈에서 그가 어루만지던 머리카락이었다.
그녀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그의 발을 움직여 사다리를 내려가게 했다. 그는 건물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를 증오하며 술에 취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하늘이 회색이었다. 비를 품은 회색 하늘을 보며 그는 못된 생각을 했다. ‘그래, 하늘이 당신 버릇을 고쳐놓았군, 그렇지? 아주 제대로 고쳐놓았어‘
세 남자는 일찍부터 서늘하게 식은 지붕 연판 작업을 했다. 축축한 가랑비가 내리는 옥상에 햇빛을 받으러 올라오는 사람은없었다. 검은 지붕이 빗물로 미끄러웠다. 날이 시원해졌으니 서두르면 오늘 안에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P80
그때 내 시각이 상당히 부정확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혹시 ‘우리의‘라고 말해도 될까?) 시각은 누구나 반드시 찰칵 하고 마음이 맞아떨어질 만큼, 바람직하거나 공감이 가는 특징들을 지닌 A 또는 B 또는 C 또는 D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물을 담은 접시처럼 자신 위에서 상대가 둥둥 떠다닐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옆구리에 불타는 창 같은 것을 하나 꽂은 채 돌아다니며 그것을 뽑아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어떤것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