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의 속편 격인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명사들이 추천하는 고전 목록에 단골로 끼어드는소설들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사실 솔직히 따지고보면 완전 거짓말들을 적어놓은게 아니던가? 물론 소설이란 다 거짓말이지만 이두 작품은 정말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거짓말들을 늘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들은 모두 캐럴이 친구의 어린 딸 앨리스를앉혀놓고 풀어놓은 화려한 거짓말들을 묶어 책으로 펴낸 것들이다. 다만 즉흥적인 거짓 속에 담겨 있는 번뜩이는 상상력에 우리 모두 탄복하고 있을 뿐이다. 1872년까지 붉은 여왕은 서양장기판 위에만 서 있었다. 그러다가루이스 캐럴에게 손목을 붙들려 거울 나라로 들어가 앨리스의 손목을 잡고 제자리에 서 있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1백 년이 지난 1973년 어느 날 그는 또 한 번 시카고대학의 리밴 베일런 교수에게 손목을 잡혀 생물학의 세계로 끌려 나왔다. 그후 그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손을 잡고 수없이 많은 곳을 뛰어다녔다. 리 밴 베일런 교수는 사실 진화의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절멸해버린 생물들의 운명을 표현하기 위해 ‘붉은 여왕‘의 개념을 고안해냈다. 우리는 흔히 생물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으로 우선 기후 조건이나 서식지 등 이른바 ‘물리적 환경‘을 떠올린다. 그러나 생물은 누구나 다른 생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기 때문에 생물 환경 또한 중요하다. 생물 환경은 물리적 환경과 달라서 그 자체가 진화한다. - P5
외과 의사는 수술에 앞서 환자의 수술 부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이미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위장을수술하려 한다면 의사는 어느 환자의 경우든 같은위치에서 위장을 찾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위장을가지고 있으며, 그 크기나 모양도 거의 같고 또한 몸의 같은 부위에있다. 물론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병약한 위장을, 어떤이는 작은 위장을, 또 어떤 이는 기형의 위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이런 차이는 그 유사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의사나 푸줏간주인쯤 되면, 의사에게 여러 종류의 위장에 대해서 잘 이야기해줄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뉜 암소의 커다란 위장이라든지, 쥐의 조그마한 위장이라든지, 혹은 사람의 위장과 흡사한 돼지의 위장에 대해서 말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인 사람의 위장은 다른 동물의 위장과는 전혀 다르다.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에게는 전형적인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이 책에 설정된 가정이다. 이 책의 목표는 바로 인간의 본성을 찾는것이다. - P24
이 책은 그러한 인간 본성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질문인 셈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알지 못하고서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性이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진화해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진화의 중심 주제는 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성이란 말인가? 인간의 본성에는 너무 많이 알려지고 성가신 출산의 유희 말고 다른 특징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해도자식을 낳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목표이다. 그밖의 다른 것은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살아남고, 먹고 마시며, 말하는 것 등의 성향을 이어받는다. 그러나 인간이 자식을 낳는 성향을 이어받았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식을 낳은 조상들은 그 자손에게 자신들의 특성을 물려줄수 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조상들은 자신들의 특성을 물려줄 수없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성공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기회를 증가시키는 요소는 다른 모든 대가를 치르고도 전해진다. 인간의 본성은 모두 궁극적으로 번식의 성공에 기여하도록 주도면밀하게 선택되었다. - P25
나는 배아의 유효 물질 중 일부분인 생식질이 난자가 개체로 발생되는 과정에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며, 이 생식질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체의 생식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유전의 근거가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생식질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전해 내려가는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난소로부터 온 것이다. 사는 동안 어머니의 몸이나 정신이 겪은 어떤 일도자식의 본성에는 직접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물론 태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한 예로서, 임신부가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되면 태아는 유전적 원인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선천적 기형이 될수 있다). 태아는 아무 죄 없이 태어난다.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이 때문에 생전에 비웃음을 샀으며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전자의 발견과 유전자를 이루는 DNA의 발견, 그리고 DNA의 정보가 쓰인 암호의 발견으로 바이스만의 주장은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생식질은 신체와는 분리되어 유지된다. 이 이론의 완전한 의미는 1970년대에 가서야 명확히 파악되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이 개념을잘 정리하였다. 즉 신체는 스스로 복제하지 못하지만 성장할 수 있으며, 반면에 유전자는 스스로 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체는 단지 유전자의 진화적 전달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유전자는 신체의 진화적 전달 수단이 아님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온다. 만약 유전자가그 신체에게 유전자를 영속시킬 수 있는 일만 하게 한다면(먹고, 생존하고, 성교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등), 유전자는 영속할 것이다. 따라서 다른 종류의 신체는 사라지게 된다. 오직 유전자의 생존과 영속에 들어맞는 신체만이 살아남게 된다. - P32
인류가 가장 두드러진 점 가운데 하나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 가진 아버지도 없으며, 어머니와 똑같은 딸도 없다. 형과 똑같은 아무도 없으며, 언니와 같은 동생도 없다. 물론 드물지만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천하의 바보라도 천재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수 있으며, 그어떤 천재라도 바보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개인의 얼굴이나 지문은 실제로 유일하다. 사실 인간의 이러한 유일성은 다른 어떤 동물에 비교해보아도 매우 발달된 것이다. 사슴이나 참새들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동하면서도, 다른 모든 사슴이나 참새들과 같은 행동을 한다. 인간 남녀에게서는 결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이어져왔다. 모든 개인은 그가 땜장이이든, 가정주부이든, 극작가이든, 혹은 창녀든 어떤 점에서는 전문가이다. 외모에서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모든 인간 개개인은 유일하고 독특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이 유일한 존재라면 어떻게 보편적이면서도 인간에게만 특이한 인간의 본성이 있을 수 있단말인가? 이 역설의 해결점은 성이라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성이야말로 두 남녀의 유전자를 함께 섞을 수 있으며, 섞인 유전자의 반을 버림으로써 어떤 자식도 어머니나 아버지 중 한쪽만을 꼭 닮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성을 통한 유전자의 혼합에 의해 모든 유전자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유전자 군群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성에 의해 인간 개인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는 하지만 그러한 차이점도 인류 전체의 공통적 특성에서 결코 벗어나지않는다. - P37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어미 나나니벌은 ‘영리한‘것이 아니다. 어미 나나니벌은 무엇을 ‘선택‘ 한 것도 아니고 무슨행동을 하는지 ‘아는 것도 아니다. 어미 벌은 몇 개의 뇌세포를 지닌 작은 나나니벌일 뿐이며 어떤 의식 있는 생각을 지녔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어미 나나니벌은 ‘가루이에 다른 나나니벌이 들어가있으면 정자를 제거하라‘는 신경 프로그램의 간단한 지시 사항을 수행하는 자동기계일 뿐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수백만 년 동안의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가루이에 다른 나나니벌이 들어가 있으면 정자를 제거하는 성향을 물려받은 나나니벌은 그렇지않은 나나니벌보다 훨씬 많은 자손을 낳게 된다. 사물을 보기 위한 ‘목적‘을 위하여 자연선택에 의해 눈이 설계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나나니벌의 행동은 자연선택에 의해 목적에 맞게 설계된 것이다 - P42
물리학에서는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즉 ‘지구는 어떻게 태양 주위를 도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답은 ‘중력에 의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지구는 왜 태양 주위를 도는가?‘에 대한 답변 역시 ‘중력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의 경우는다르다. 이는 진화 때문인데, 진화는 우연한 역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인류학자인 라이오넬 타이거 Lionel Tiger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부추김을 당하며 몰리고 있거나, 적어도 수천 세대를 거쳐오면서 이루어진 선택적 결정이 축적한 충격에 영향받고 있다"고말했다!" 어떠한 역사적 관점에서 보든 중력은 중력일 뿐이다. 공작새의 경우, 과거의 한때 암공작새의 조상이 실리적인 기준보다는 예쁜 자태를 지닌 수공작새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그 자손들은 보기좋고 현란한 공작새가 되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그들의 과거의 소산물이다. 신다윈론자 한 사람이 왜냐고 묻는다면 이는 사실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다. 즉 그는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다. - P45
모든 진보가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생물학에서는 ‘붉은 여왕 RedQueen‘이라고 부른다. 이는 『거울나라의앨리스』에서 앨리스가 거울 속에서 만난 체스판의 말로서, 주변 경치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별로 멀리 가지는 못하면서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그 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진화학에서 점차 그 영향력이 커가고 있는 이론으로,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하는 개념이다. 더빨리 뛰면 뛸수록 세상 또한 빨리 움직이므로 점점 더 진보가 둔화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마치 한 게임에 이긴 사람이 다음 게임에서는 졸 하나를 빼고 경기를 해야 하는 체스 게임과 같다. - P47
찰스 다윈의 매우 불명확한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는 동물들이 일관되게 특정한 유형의 상대를 선택하고 그럼으로써 종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마치 종마 사육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성선택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이론은 다윈이 죽은 이후 오랫동안 무시되다가 최근에 들어와서야 다시 유행하게 되었다. 이 이론의 핵심적인 통찰은 동물의 목표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번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생존과 번식이 서로 상충되는 지점에서는 번식이 우선권을 차지하게 된다. 그 예로, 연어는 번식 기간에 굶어 죽는다. 암수가 있는 종에서 번식은 적절한 상대를 찾아내는 것과 그 상대에게 유전자 보따리를 지니고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목표는 삶에있어서 너무나 중심이 되었으므로, 신체뿐 아니라 정신의 설계에도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무엇이든 번식의 성공을 증대시키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포함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퍼져나간다. 성선택은 자연선택처럼 합목적적으로 ‘설계‘ 되었다. 마치 수사슴이 성선택으로 성적 라이벌과의 싸움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공작은 유혹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남자의 심리 역시 생존을 희생해서라도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질 좋은 짝을 찾거나 유지하는 확률을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남성다움의 근본 물질인 테스토스테론 자체는 전염병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남자들이 좀 더 경쟁본성을 띠는 것은 성선택의 결과이다. 남자들은 위험하게 살도록 진화되었는데, 그것은 경쟁이나 전투에서의 성공이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성적 정복과 더 많은 자손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위험하게 사는 여자들은 단지 그들이 이미 얻은 자손들을 위기에 처하게 할 따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아름다움과 번식능력의 밀접한 관계 (아름다운 여자는 정의상 대체로 늙은 여자에 비하여젊고 건강하며, 따라서 생산 능력이 더 높고 앞으로도 더 오랜 기간 출산할수 있다)는 남자의 심리와 여자의 몸에 동시에 작용한 성선택의 결과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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