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따뜻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몸의 털입니다. 털이 없는 것 또한 땀을 증발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200만 년 전의 호모속 고인류는 더운 지역에서도 태양이 작열하는 낮 시간대에 활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털이 없었는지는 화석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간접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louse 입니다.
이는 짐승의 털에 빌붙어 사는 곤충입니다.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이 역시 털에서 알을 낳고 살다가 죽습니다. 사람에게 빌붙어 사는 이는 세종류인데 머리털, 몸, 사타구니 털 등 사는 곳에 따라 서로 다른 종입니다. 사람의 머리에서 발견되는 이는 머리털에 살면서 두피에 쌓인 먹거리를 먹습니다. 머리털에 사는 이(머릿니)와 몸에 사는 이(몸니)는 같은 종(페디쿨러스 휴마너스Pediculus bumanus)이면서 다른 아종이지만 사타구니에 사는 이 사면발니)는 아예 다른 속(티루스푸비스Pbubirus pubis)입니다.
한 몸에 살고 있는 머릿니와 사면발니가 서로 다른 속에 속할 정도로다르다는 점에서 고인류가 털이 없는 맨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온몸에 털이 있었다면 머리털과 사타구니 털 사이에도 털이 있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머리털에 있는 이와 사타구니 털에 있는 이가 다른종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는 생태계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온몸에 털이 있는 인류의 사촌 침팬지와 고릴라에게는 온몸에 서식하는 이가 한 종입니다. 침팬지에게서 발견되는 이(페디큘러스 스캐피Pediculusclaelfi)는 페디쿨러스속에 속하는 종이고, 고릴라에게서 발견되는 이(티루스 고릴라이Phthirus gorillae)는 티루스속에 속하는 종입니다.
머리털과 사타구니 털 사이에 털이 없다면 이의 입장에서 머리와 사타구니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대륙과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서식지가 되어버린 머리와 사타구니에는 서로 다른 종이 살 수 있습니다. 머릿니는 500~600만 년 전부터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기한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머릿니는 인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동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머릿니와는 달리 사면발니는 330만 년 전부터 인류에게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면발니는 고릴라에게서 보이는 이와 가까운 종입니다. 인류와 고릴라는 800만 년 이전에 갈라졌는데 고릴라의 이와 가까운 사면발니가 330만 년 전부터 인류와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인류와 고릴라가 가까웠음을 시사합니다. 아마도 고릴라를 잡아먹었거나 고릴라가 자고 난 숙소를 사용한 인류에게 옮겨 가서 사면발니라는 새로운 계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 P53

사람의 몸에서 발견되는 몸니는 사실 몸에서 살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이가 잘 살 수 있을 만한 털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몸니는 사람이 입는 털옷의 털에서 살면서 사람의 피부에 쌓인 먹을 것을 가져가서 먹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몸니는 털옷이 생긴 다음에야 생겼을 것입니다. 머릿니와 몸니 계통이 언제 갈라졌는지 알 수 있다면 털옷은 적어도 그 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니와 머릿니의 유전체를 비교해 보니 10만 년 전에 분기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믿기 어려운결과입니다. 인류가 빙하기에 살기 시작한 것은 200만 년 전인데 털옷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겨우 10만 년 전일 리는 없습니다.
190만 년 동안 옷이 없이 맨몸으로 추운 빙하기를 견뎌냈을까요? 몸니와 머릿니가 10만 년 전에 분기했다는 유전학 계산이 틀렸을까요? 유전학의 분기점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전제한다면 지금 사람의 몸니는 그렇게 오래전에 생기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털옷 없이 어떻게 고인류가 맨몸으로 추운 유라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 P56

쾨니히스발트는 기간토피테쿠스의 어금니 크기와 턱뼈 크기만으로 생전 그의 몸집이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어금니의 크기로 전체 몸집을 추정하는 일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시도는 아닙니다. 이빨과 턱뼈의 크기만 가지고 몸집 전체의 크기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어금니의 면적은 그 종이 먹는 양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니는 먹거리를 한입에 넣을 정도로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일을 맡고, 어금니는 한입 크기의 먹거리를 잘게 부수는 일을 맡습니다. 몸집이 크면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어금니가 더 많은 먹거리를 처리해야 합니다. 적어도 영장류만 놓고 보았을 때 어금니가 서로 맞물리는 면의 넓이와 몸집 크기는 비례합니다. 많이 먹는 종은 어금니 면적이 넓고 몸집도 큽니다. 적게 먹는 종은 어금니가 작고 몸집도작습니다. 이러한 비례 관계는 현존하는 많은 동물의 평균치를 통해서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P67

파란트로푸스의 큰 어금니는 큰 몸집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니라 어쩌면 척박했던 환경을 보여주는 자료인 셈입니다. 고릴라 어금니의 2배 크기라고 해서 반드시 고릴라 몸집의 2배라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와 메간트로푸스도 거인이 아닐 수 있을까요? 기간토피테쿠스의 큰 어금니 역시 고릴라보다 큰 몸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고릴라보다 훨씬 더 척박한 먹거리를 많이 먹어야 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간토피테쿠스가 영양이 부실했다는 놀라운 내용은 진즉 발표된 바가 있습니다. 영미권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중국의 고인류학자 장인원은 1987년에 기간토피테쿠스의 앞니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법랑질 형성 부전 enamel hypoplasia 을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영장류는 자랄 때 치아도 만들어집니다. 성장기에 영양이 부족하면 치아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부족한 영양 때문에 치아의 법랑질(에나멜질)이 만들어지다 말다 하면서 법랑질에 가로로 줄이 생기게 됩니다. 이 줄은 한번 만들어진 다음에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장기 동안 겪었을 영양부족을 알려주는 좋은 지표입니다. 어른 인골의 앞니에 법랑질 형성 부전을 나타내는 금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랄 때 극심한 영양부족을 겪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법랑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기간토피테쿠스는 자랄 때 먹거리가 부족했을 것입니다. 고릴라만큼 많이 먹어야 하는 기간토피테쿠스는 그 먹거리를 구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는 고릴라만큼의 몸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영양이 부족하고 열악한 먹거리를 많이 먹어야 했던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 P72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두 발 걷기와 사냥은 인류의 진화사에서 한 무대에 동시에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발걷기는 사람의 다른 어떤 특징보다도 훨씬 더 일찍 등장했으니까요. 330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비롯하여 초기 고인류는 두 발로 걸었지만 두발 걷기 외에는 인류의 특징을 갖추지 않았다는 가설이 주류입니다. 그렇다면 사냥과 육식은 언제 인류사에 등장했을까요? 고인류의 역사에서 동물성 먹거리가 등장한 시점을 알리는 자료는 약 26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화석종과 함께 발견된 동물 뼈에 남아 있는 칼날 자국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고인류는 그다지 크지 않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돌을 깨서 날을 세운 찌개는 살아 있는 짐승을 잡는 사냥도구라기보다는 사체 처리에 쓰였습니다. 상위 포식자가 한 차례 먹고난 다음 하이에나와 같은 사체 처리반과 경쟁하여 두꺼운 뼈를 깨고 그안에 있는 골수 혹은 두뇌를 먹은 것입니다. 돌로 만든 최초의 도구는 살아 있는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짐승의 사체를 처리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 P76

전력으로 도망치는 동물을 잡는 사냥은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됩니다. 고인류는 약 500만 년 전에 기원하여 300여만 년 동안 줄곧 아프리카에서만 살았습니다. 그런 고인류가 약 200만 년 전에 유라시아로 퍼져나갔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기후가 변하면서 몸집이 큰 짐승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옮겨 갔고, 이들을 사냥감으로 삼던 고인류 역시 유라시아로 쫓아 퍼져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때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의 사냥 도구는 아슐리안 주먹도끼였습니다.
살아 있는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저몄는지, 죽어 있는 짐승의 사체에서 뼈를 깨고 골수를 파 먹었는지는 뼈에 남아 있는 돌날의 흔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돌날의 흔적은 V자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지만 짐승의이빨 자국은 U자 모양으로 끝이 둥급니다. 그래서 뼈에 남아 있는 흔적을 자세히 보면 그것이 돌날의 흔적인지 이빨의 흔적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고인류가 돌로 만든 도구로 뼈를 손질한 흔적과 짐승이 이빨로 뼈를 갉아 먹은 흔적이 함께 발견되는 경우에는 순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뼈에 남아 있는 두 흔적 중 어떤 것이 먼저 새겨진것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짐승 이빨의 흔적 위에 돌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맹수가 한번 먹고 난 사체를 고인류가 뒤늦게 접수했다는 뜻입니다. 그럴 경우 고기나 내장을 취했을 가능성보다는 뼈를 깨서1차 포식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골수를 먹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돌날의 흔적 위에 짐승 이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그것은 돌로 만든 도구로 직접 사냥해서 고기와 기타 내장을 먼저 처리한 다음에 하이애나같은 2차 포식자가 왔가는 뜻입니다.호모에렉투스의 아슬리안 주먹도끼는 사냥하고 고기를 저미는 데 이용되었고 호모 에렉투스는 상위 포식자로서 뛰어난 사냥 기술을 보유한 것로 알려졌습니다. - P77

호모 에렉투스가 뛰어난 사냥꾼으로서 점차 발달한 사냥 기술로 고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면, 두뇌가 커지면서 필요로 하는 고열량의 먹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고인류학자 줄리 레스닉Julie Lesnik은 이에 대한 기발한 해답으로 곤충식을 제시합니다. 인류가 곤충식을 통해 고칼로리를 확보했다는 주장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곤충을 먹는다고 하면 역겨움과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제대로 된‘ 먹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기근에 나무껍질을 먹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곤충을 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둘 다 지극히 유럽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도 불과 수 세대 전까지 메뚜기를 잡아먹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곤충식을 하는 문화권이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다른 먹거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곤충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먹거리의 하나로 곤충을 먹습니다.
곤충식을 일상의 식생활로 여기는 문화권은 주로 열대 지역에 분포합니다. 사실 인류 진화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류는 열대 지역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식생활에서 곤충식이 먹거리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열대의 환경이 주는 다양한 생물을 골고루 섭취하는 열대 지역에서 곤충은 다양한 먹거리의 일부일 뿐입니다. 열대에서 멀어지면서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고 먹거리의 종류 역시 감소합니다. 곤충식에 대해 역겨움이나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열대 지역의 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 유럽중심주의의 소산이 아닐까요? - P80

이 최근의 연구 성과들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두 발 걷기, 두뇌 용량, 사냥도구의 제작과 사용이 패키지를 이룬 ‘사냥 가설‘은 그자체로 뛰어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것처럼 보였으며 20세기까지 주류가설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두 발 걷기‘가 떨어져나가고 이제는 두뇌 용량과 사냥, 도구 제작 간의 연결고리조차 끊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고기를 얻을 수 있는 큰 짐승을 사냥할 수밖에 없다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또 다른 시각이 생기고 있습니다.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서 사냥이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은 채집을 통해 식물성 먹거리를 확보했다는 경제 분업 가설이 와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물성 먹거리의 확보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이러한 분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곤충 등 다양한 동물성 먹거리와 씨앗, 구근류, 해산물 등으로 고칼로리 고단백질의 먹거리 섭취가 가능해지면서 두뇌는 점차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호모 에렉투스만이 아니라 약 200만 년 전에 살았던 모든 고인류가 공통적으로 겪은 진화입니다. 어른 침팬지보다 큰 머리를 가지고 있는 고인류가 서로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따라 했을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 P83

불은 포유류가 소화하기 힘든 음식을 소화할 수 있게 합니다. 포유류는 생채소를 이루는 섬유소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초식동물조차도 날것의 식물을 직접 소화할 수 있는 효소를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대신 초식동물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식물을 소화해냅니다. 그중 하나는 미생물입니다. 장내에 미생물을 키워서 그들의 도움으로 식물을 소화합니다. 또한 소나 양은 네 개의 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라면 소화할 수 없는 식물을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서 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서 먹은 음식을 토했다가 다시 삼키기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되새김질입니다. 하지만 불에 익히면, 보잘것없는 위 한 개만 가지고도 채소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불은 그야말로 제2의 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86

식물성 먹거리나 동물성 먹거리 모두 익혀서 먹으면 영양분을 훨씬 더 많이 흡수할 수 있지만, 익힌 음식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농경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곡류 위주의 식생활을 하면서부터입니다. 곡물에 물을 붓고 끓여서 먹으면 맛도 좋고 소화도 잘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곡류에 물을 부어 끓인 음식은 무엇보다도 이유식으로 최고였습니다.
농경이 자리 잡으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에는 곡물로 만든 이유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유식 덕분에 모유 수유 기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모유 수유 기간에 정지되었던 배란주기가 다시 시작되고 임신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한 명의 가임 여성 기준으로 4~5년이었던 출산 터울이 2~3년으로 줄어듭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 P89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 역시 화식에 의존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비싼 장기 가설 expensive-tissue hypothesi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인류학자 레슬리 아이엘로Leslie Aiello 가 두뇌와 소화 장기는 모두 비싼 장기라는 점에 착안하여 내놓은 가설입니다. 비싼 장기라는 것은 제작비와 유지비가 모두 많이 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비싼 장기인 두뇌와 소화 장기를 둘 다 크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한쪽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합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은 두뇌 대신 소화 장기를 선택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은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두뇌 용량이 조금 커지기는 했지만 소화 장기는 훨씬 더 컸고 많은 기능을 했습니다. 비록 소화 장기자체는 화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몸통뼈, 등뼈, 골반뼈의 크기를 통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 비해 호모속은 몸통이 좁고 골반뼈 역시 키에 비해 좁은 편입니다. 사람의 소화기관은 비슷한 몸집의 영장류가 가진 소화기관의 절반 크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호모속은 두뇌용량을 놀라울 정도로 키웠습니다. 소화기관 대신 다른 비싼 장기인 두뇌를 선택한 것입니다. 작은 치아, 작은 소화기관을 가지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같은 먹거리를 먹는다면 큰 두뇌와 큰 몸집을 유지할 만큼의 열량을 도저히 섭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익혀 먹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P91

고인류를 먹잇감으로 삼았던 포식자는 누구였을까요? 브레인의 연구에 등장하는 표범을 꼽을 수 있습니다. 표범은 먹잇감을 잡으면 높은나무 위로 끌고 올라갑니다. 기껏 잡은 먹잇감을 노리는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고 먹잇감이 도망갈 수도 없으니 여러모로 이득입니다. 나무위에서 천천히 먹고 난 나머지 잔반(?)은 나무 위에서 땅으로 떨어지게됩니다. 남아프리카의 동굴 입구 근처에는 동굴에 고인물 때문에 큰 나무가 자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표범이 먹고 남은 뼈들이 떨어진 나무 아래는 동굴로 연결됩니다.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 동물 뼈와 발견된 고인류 화석 뼈는 다트가 생각했듯 킬러 유인원 고인류가 동물을 잡아먹고 남긴 흔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나무 위에서 맹수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동물의 뼈가 나무 위에서 떨어진 다음 쌓여서 생긴 유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맹수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동물 중에 고인류도 있었던 것입니다.
결자해지일까요? 킬러 유인원 가설을 내놓은 레이먼드 다트가 발견한 타웅 아기 역시 평화롭게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타 아기의 머리뼈에는 눈구멍뼈도 남아 있습니다. 눈구멍뼈에는 세모난 구멍이 나 있습니다. 고인류학자 리 버거 Lee Berger는 이를 맹금류의 발톱이 남긴 자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맹금류의 행동학 연구가 쌓이면서, 타웅 아기가 맹금류에 의해 들려져서 먹잇감이 된 다음 남은 뼈가 나무 아래로 떨어져 화석이 되었다는 가설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 P114

일련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인류 조상의 모습은 공격적이고 살상무기를 휘두르는 킬러 유인원이 아니라, 맹수와 맹금에게 잡아먹히는 먹잇감입니다. 인류의 기원은 공격성을 지니고 태어나 무기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포식자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작은 몸집으로 두 발로 서서 걷다가 맹수를 만나면 나무 위로 도망가고, 미처 피하지 못해 먹이가된 나약한 모습이 지금 지구 위를 뒤덮은 사람의 기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인류학계에서는 초기 인류의 모델로서 침팬지만을 주목해 왔습니다. 침팬지의 공격성은 사람의 공격적인 남성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계통상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침팬지만이 아닙니다. 침팬지속에는 두 종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침팬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보노보입니다. 보노보에 대한 연구는 뒤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침팬지보다 앞에 나서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아 사람의 관심을 덜 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노보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침팬지가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면 보노보는 느긋하고 평화적입니다. 침팬지는 수컷이 주로 연대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보노보는 암컷이 연대합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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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줄곧 원해 온 것은 글쓰기였고, 오직 그것만을 하고 싶다고, 그것만을, 그녀는 질투하고 있었다. 아무 대답 없이 흘깃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잊을 수 없는 그 몸짓, 내가 맨 먼저 떠나가게 될 것이다. 어쨌든그녀가 나를 잃기에는, 여기 있는 이 아이를 잃기에는 아직 몇 년이 남아 있다. 아들들의 경우에는 두려워해야 할것이 없다. 그러나 이 딸애는 어느 날엔가는 떠날 것이며,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프랑스어 과목 일등. 담임이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부인의 따님이 프랑스어 과목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한마디도 전혀 만족한 기색이 아니었다. 프랑스어 과목에서 일등을 한 것이 아들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듣기가 싫어서 어머니는 이렇게 물었다. 언제 수학에서도 그럴 때가 올까요? 담임의 대답, 아직 그렇게는 못 되지만 그럴 때가 오겠지요. 어머니가 물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담임의 대답. 따님이 수학 일등을 원할 때겠지요. 부인. - P30

그 남성용 모자에는 가난과의 인연이 담겨 있었다. 머잖아 집안에 돈이 들어와야 할 때가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수입이 있어야 했다. 어머니 주위는 온통 사막과 같았다. 아들들이 바로 그 사막이었다. 그들은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땅값도 역시암담했다. 돈이 바닥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나날이 커가는 딸뿐이었다. 그 애는 언젠가는 이집안의 돈이 어떻게 해서 벌어들여진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딸애는 그 사실을 모르지만, 어머니는 딸이 나이 어린 창녀 같은 옷차림으로 외출하는것을 허락한 것이다. 그래서 딸애는 벌써부터 그런 몸치장을 할 줄 아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 소녀에게 갖게 될 관심을 그녀가 돈을 벌 수 있는 쪽으로 돌리기에충분한 것이었다. 그런 사실이 어머니를 미소 짓게 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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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흐르는 강물처럼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의 종,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합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속한 호모속에는 현재 다른 어떤 종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같이 생긴 동물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사람 비슷하게 생겼으나 딱히 사람은 아닌 종, 호모속에 속한 다른 종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 즉 사람은 외둥이인 셈입니다. - P6

인류의 진화는 마치 정권을 이양하듯, 왕조가 바뀌듯 하나의 계통에서 다른 계통으로 바뀌며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계통에서 두 개의계통으로 갈라지며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20세기 후반에 자리 잡았습니다. 계단이 아닌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모습이 20세기 후반에 자리 잡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나무 모양이 만들어 낸 인류의 진화에는 다양한 고인류 계통이 등장합니다. 공통의 조상 계통에서 두 개의 계통으로 갈라져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아름드리나무가 만들어졌습니다. 인류 화석종의 이름도 늘어났습니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Sabetanthropus ichadensis, 오로린 투게넨시스 Orrorin ugenensis.
아르디피테쿠스 라미스 Ardipitbecus ramid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Australopithectus garht,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Australopitbecussediba,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Paranthropus botset,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Parantbropus robustus,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 호모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호모 안테세소르 Homo antecessor,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Homo neandertbalensis 등 수없이 많은 화석종이 발표되었고 지금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한번 갈라져 나간 나뭇가지가 다시 만나지 않듯이 두 계통으로 분화된 인류는 각자 나름의 진화 역사를 만들며 새로운 종이 되어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화석종 중현재의 인류로 이어져 온 ‘정통‘의 가지가 있고 나머지는 ‘곁‘가지라는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곁가지는 막다른 골목길에 마주친 것처럼 더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인류의 진화 무대에서 사라지고 마는 ‘루저‘의 역할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처럼 성공한 자손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지못했다고 생각했죠. 네안데르탈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 다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서로 유전자 교환을 하지 않았어야 할 종끼리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고유전학의 발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P8

20세기 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계단식 진화, 20세기 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나무식 진화, 이 둘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는 은유였습니다.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뻗어가는 모습도 아닙니다. 차라리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많은 물줄기를 이루었던 인류 계통의 다양성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작은 물줄기에서 큰 물줄기로 모여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기원이 만들어 낸 모습입니다. - P10

종Species-속Genus-과 Family-목Order-강Class-문Phylum-계Kingdom 가 그것입니다. 비슷한 생물체들을 같은 종으로 묶고, 비슷한 종들은 같은 속으로 묶고, 비슷한 속들은 같은 과로 묶었습니다. 종은 가장 기본적인 생물 분류 단위가 되었습니다. 린네의 이명법에 따라종명은 속명 generic name과 종소명 specific name 의 두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속명은 대문자로 시작하고 종소명은 소문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명은 반드시 이탤릭체로 쓰거나 밑줄을 쳐서 종명이라는 것을 나다냅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중 호모 Homo는 속명이고 사피엔스sapiens는 종소명입니다.
두 단어가 아닌 세 단어로 학명을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그 경우 세번째 단어가 소문자로 시작하면 종보다 하위 개념인 아종 혹은 변종을의미합니다. 가령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호모사피엔스의 아종입니다. 한편 세 번째 단어가 대문자로 시작하면 종명을 붙인 사람의 이름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Homo sapiens Linne라고 쓰면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이름을 붙인 사람이 린네라는 뜻이 됩니다.
린네는 일견 혼란스럽고 복잡해 보이는 생물계에 체계적인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에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사실 린네가 생물계의 자연 법칙을 보여준 이유는 이 세상이 신이 계획한 대로질서 정연하고 완벽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바로 사람에게도 종명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 P18

사람과 유인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혈청 단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라 사람과 유인원은 1,000만 년 전이 아니라 불과 수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는 가설이 등장했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유전학의 발달로 사람뿐만 아니라 침팬지와 고릴라의 유전자 자료까지 모이기 시작하면서 사람, 침팬지, 고릴라 세 계통 중 사람과 침팬지가 가장 가깝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사람과 침팬지가 유전적으로 비슷한 정도는 사람과 고릴라가 비슷한 정도, 침팬지와 고릴라가 비슷한 정도보다 분명히 컸습니다.
사람과 침팬지가 서로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사람과 침팬지 계통은 서로 갈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침팬지가 유전자의 98.5퍼센트를 공유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것이 후속 연구로 계속 뒷받침되자 충격은 학계 전반으로 퍼졌습니다. - P21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 Ernst Mayr는 종을 1) 서로 생식이 가능하고 2) 자발적으로 서로 간에 생식 활동을 하며 3) 그렇게 해서 나온 자손이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무리라고 정의했습니다. 서로 생식이 가능했던 하나의 종種, species에서 서로 생식이 불가능한 다른 종으로 갈라지는 과정은 역동적입니다. 어느 순간 칼로 두부를 가르듯 하나였다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 유전자를 섞지 않게 되면서 서로 다른 점을 쌓아가게 됩니다. 처음 갈라졌을 때는 당연히 서로 유전자를 섞을 수 있지만 점차 차이가 커지면서 서로 유전자를 섞을 수 없게됩니다. 종이 완전히 갈라지는 겁니다. - P24

결국 1990년대를 마무리하면서 학계는 아파렌시스가 두 발로 걸었고 나무 타기에 적응하지 않았으며 남녀 간의 몸집 차가 큰 화석이라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유인원과 별반 다름없지만 사람과 같이 (직립보행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던 것으로 학계 전체가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직립보행을 했다는 것이 유일한 사람다운 특징이었습니다. 두뇌는 침팬지 정도로 작고, 몸집은 현생인류의 유치원생 정도였고, 치아는 컸습니다. 만약 그들이 도구를 만들어 썼다면 치아가 작아졌을 것인데 그렇지는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여느 유인원의 이빨처럼 무시무시하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침팬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침팬지의 조상이 아니라 인류의 조상이라고 결론지어진 이유는 인류의 특징인 의무적인 직립보행을 했다는증거 때문이었습니다. - P33

그리고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발견되었습니다. 1993년에 발견되어 2009년에야 상세한 내용이 발표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440만 년 전의 고인류 화석종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100만 년 일찍 등장했습니다. 작은 머리와 작은 몸집은 우리가 알고있는 초기 인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획기적으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명 아르디라고 불리게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엄지발가락은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던 발가락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르디의 엄지발가락은 우리의 엄지손가락처럼 옆으로 나 있어서 다른 발가락과 맞닿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나뭇가지를 움켜잡고 나무를 탈 수 있는 모습의 발을 가진 아르디는 나무를 탔을까요? 유인원과 별다르지 않지만 단지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기 때문에 인류 계통에 속하게 된 아르디가 나무 타기에 적응했다는 가설은충격을 주었습니다. 인류가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사바나 초지에서 그렇게 탈 만한 나무가 많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치아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치아를 이루는 물질의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주로 어떤 잎사귀를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숲에서 나뭇잎을 주로 먹었는지, 초지에서 풀잎을 주로 먹었는지알 수 있죠. 그런데 아르디의 치아를 분석해 보니 나뭇잎을 주로 먹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나뭇잎이 많은 지역에 살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초기 인류가 사바나의 너른 초원에서 사람다운 두 발 걷기와 함께 시작했다는 가설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 P34

초기 인류가 사람과 같이 두 발 걷기만을 할 수 있도록 적응했다는 가설이 조금씩 깨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다른 어떤 특징보다도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인류다워졌다는 정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3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직립보행을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아파렌시스가 살았던 동아프리카에는 엄지손가락같이 생긴 엄지발가락으로 두 발 걷기를 하던 의문의 고인류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파렌시스와 만났을까요?
고인류의 시작이 당당한 두 발 걷기에서 시작했다는 가설이 주류가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20~3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440만 년 전 아르디와 같이 두 발로 (당당하게) 땅 위를 걷고 나무도 탈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춘 고인류가 366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아파렌시스와같은 지역을 걸었다는 놀라운 가설이 제시되었습니다. 이 가설은 앞으로 좀 더 많은 자료의 검증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단지 루시와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다른 고인류와 함께 따뜻한 화산재를 밟으면서 걸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P38

사람의 엄지손가락은 보통의 영장류 엄지손가락처럼 다른 손가락을마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엄지손가락에게는 특별한 능력이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볼 뿐 아니라 엄지손가락의 끝이 다른 손가락의 끝과 맞닿을 수 있습니다. 오케이 사인을 만들수 있고 바늘을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 이외 영장류의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을 마주 볼 수 있지만 짧아서 손가락 끝끼리 맞닿지는 않습니다. 다른 손가락과 맞닿을 수 있도록 생긴 엄지손가락은 도구를 만드는데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가령 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돌을 붙잡고 깰수 있을 만큼의 강한 엄지손가락과 아귀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루이스 리키가 호모 하빌리스의 손뼈 화석을 보고 그런 이름을 붙였던것입니다.
그렇지만 최초의 도구는 최초의 도구 제작자로 알려진 호모 하빌리스의 화석과 함께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도구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석기, 즉 돌로 만든 도구입니다. 최초의 도구는 최초의 석기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단지 석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초의 도구는 돌이 아닌 다른 재료, 예를 들면 나무, 가죽, 뼈 등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사람이 사용한 대부분의 도구는 돌이 아닌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레이먼드 다트 Raymond Dart는 최초의 도구를 뼈-이빨-가죽 문화osteodontokeratic culture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돌로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면 대부분 썩어 사라지고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돌로 만든 도구는 몇백만 년 뒤에도 남아 있을수 있습니다. - P41

 석기와 함께 발견된 고인류에 대한 해석은 까다롭습니다. 석기와 함께 동물 뼈가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고인류가 석기를 사용해서 동물 뼈를 처리했다고 봅니다. 석기와 함께 사람 뼈가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사람이 사용하던 석기라고 봅니다.그러나 석기와 함께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과연 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쪽인지, 아니면 동물처럼 도축된 쪽인지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석기를 만들어 쓴 고인류가 호모일것이라는 가설에서 본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석기를 쓴 주체가 아니라 호모가 석기를 사용해서 도축한 대상이 됩니다. 이 해석은 도구를 처음 만든 고인류가 누구였는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고인류는 호모 하빌리스라는 가설이 오랫동안 정설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함께 발견된 석기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만들어 쓴 석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 P44

그런데 1996년 약 25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 화석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가 동물 뼈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가르히와 함께발견된 동물 뼈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가르히가 석기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석기를 사용해서 남긴 동물 뼈의 흔적은 고인류학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도구를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도구를 사용했다는 뜻이었기때문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석기를 사용했다면 석기를 제작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게 됩니다.
칼자국이 난 동물 뼈는 계속 발견되었습니다. 340만 년 전 에티오피아의 디키카Dikika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 뼈에 남겨진 칼자국은 분명히 호모속이 아닌 고인류가 도구를 써서 동물 뼈를 처리했다는 자료입니다. 340만 년 전에는 호모속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330만 년 전숲이 우거진 케냐의 롬퀴 Lomekwi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최초의 석기인 올도완 석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돌을 깨서 날을 세운찍개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석기를 만든 고인류는 누구였을까요?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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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나의 삶, 나의 기도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나는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강산을 침탈하던 때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젊은 날을 보냈다. 상처받고 신음하는 가난한 조국의 딸로 생명을 받았지만, 그래도 꿈을 보듬으면서 학창과 유학 시절을 싱그럽게 보낼 수 있었다. 유복한 가정과 배움의 기회를 부여받은 건 참으로 행운이었다.
1962년 남편 김대중과 결혼하면서 내 삶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남편은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어둡고 쓸쓸한 감옥과 연금의 긴 나날들, 이국에서의 망명 생활 등은 신산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남편이 차디찬 감방에 있는 기간에 홀로 기도하고 눈물로 지새운 밤도많았다. 독재는 잔혹했고, 정치의 뒤안길은 참으로 무상했다.
하지만 유신 통치와 제5공화국이 지속되는 고통의 심연 속에서 지순한 아름다움을 목격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라는 우리의 ‘공동선‘을 실현하기위해 숱한 젊음이 스스로 고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없이 많은 이의 거룩한 죽음과 투옥이 연이었다. 어떠한 억압과 시련 속에서도 의義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결코 절멸하지 않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토록 수많은 국민의 소망이 헛되지 않아서 민주주의는 점차로 결실을 맺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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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55분. 강아지 세 마리와 그동안 인듀어런스 호의 마스코트였던 고양이 ‘치피 여사‘ 를 크린이 총으로 쐈다. 한 번도 썰매를 끌어본 적이 없는 강아지 시리우스의 처리는 맥클린에게 맡겨졌다. 시리우스는 총구를 빤히 쳐다보며 맥클린의 손을 핥았고, 맥클린은 손을 너무 떠는 바람에 총알을 두 방이나 쏘아야 했다. 총소리가 얼음 위로 울려퍼지며 모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 P81

"배가 가라앉는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온 대원들은 높은 망루 위에 서서 인듀어런스 호의 최후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뱃고물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곧 이어 뱃머리부터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원들을 태우고 처녀 항해에 나섰던, 헐리에 의하면  ‘바다의 신부‘였던 인듀어런스 호가 마침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베이크웰은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목구멍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았는데 삼길 수가 없었다 •••••• 이제 우리는 완벽하게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섀클턴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 5시에 인듀어런스 호는 머리부터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은 뱃고물이 맨 마지막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 •••••• 도저히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 P94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 문제였다. 주변에는 사냥할 만한 물개가 흔치 않았으며, 오션 캠프에서 가져 온 고기와 고래기름도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1월 14일, 와일드, 크런, 맥클로이, 마흔이 맡고 있던 개 27마리가 모두 총을 맞았다.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고, 개들이 먹어치우는 식량의 양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에게 줄 먹이는 이제 히기에 지친 대원들의 식량이 되었다.
"이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는데, 내 생애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와일드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이 어쩔 수없는 사태는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맥니쉬의 표현대로
"고향을 떠나 온 이래 가장 슬픈 사건" 이었다. 그날 밤, 헐리와 맥클린은 오션 캠프에 다녀오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다. 다음날 그들은 400kg이나 되는 물품들을 썰매에 싣고 돌아왔는데, 헐리의 개가 썰매를 끈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오후에 와일드가 내 개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헐리는 자기가 좋아했던 개들의 명복을 오랫동안 빌었다. "개들의 우두머리였던 늙은 셰익스피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두려움을 모르고 충직하며 부지런했던 나의 사랑스런 개들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
3월30일, 마지막 개를 죽이고 어린 강아지를 먹었다. 이제 대원들 사이에는 딱히 슬퍼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묵묵히 인정하며 ‘예상치 못한 고기 맛을즐길 뿐이었다. 대원들은 2주 만에 처음으로 배불리 먹었다.  - P96

4월 20일. 섀클턴이 대원들을 모아 놓고 중대 발표를 했다. 그의 지휘 아래 몇몇 대원들이 제임스 커드 호를 타고 사우스 조지아 섬에 있는 포경기지로 간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엘리펀트 섬에 도착한 처지에서 그건 실로 엄청난 계획이었다.
여기에서 사우스조지아 섬까지는 무려 1,000km. 지금까지 온 거리의 10배가 넘는다. 그토록 멀고 까마득한 곳을, 겨우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겨울에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바다에는 시속 100km의 바람이 불고 20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훨씬 심한 상황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육분의와 크로노미터만을갖고 중간에 육지가 전혀 없는 바다를 지나 그 작은 섬을 향해 가야 한다. 게다가 날씨 또한 항해에 적당하지 않다. 이 계획은 만만찮은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원들 중 선원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듯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 P112

하지만 정부 역시 구조작업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영국은 여전히 전쟁중이었고, 남는 배는 단 한 척도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남극 바다의 얼음을 헤쳐나갈 크고 튼튼한 배를 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콧이 탔던 디스커버리 호가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그 배 역시 10월이나 되어야 항해에 나설 수 있었다.
섀클턴이 배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동안 영국 외무성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정부에 긴급한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6월 10일에 우루과이 정부가 작은 탐사선인
‘인스티투토 드 페스카 1호‘ 와 선원들을 무료로 보내왔다. 하지만 이 배 역시 엘리펀트섬 부근에서 얼음에 의해 심한 손상을 입은 채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세 번째 시도는 푼타아레나스(칠레 남단의 항구도시-역주)에서 영국협회가 지원해 준 ‘엠마‘ 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배마저 기상악화로 인해 엘리펀트 섬을 150km앞둔 지점에서 되돌아오고 말았다. 몇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몇 달째 실패를 거듭하자섀클턴은 필사적으로 다른 배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때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워슬리는 이렇게 적었다. "섀클턴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엔 날마다 주름이 새로 늘어났고, 검고 두껍던 머리카락은 차츰 흰색이 되어갔다. 맨 처음 구조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회색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구조작업을 나서는 그의 머리는 완전한 회색이었다."
섀클턴이 느꼈던 초조함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션 캠프에서 헐리가 찍은 사진을 보면 섀클턴은 무표정하게 얼음 위에 앉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명랑한 느낌을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진에서는 과거의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긴장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그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늙어버렸다. 때는 8월 중순, 제임스커드호가 출발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난 뒤였다. - P144

"습지에 불이 난 것 같은 강한 향기가 퍼졌다." 헐리는 이렇게 적었다. "만일 먹을 것과 담배가 풍족했다면, 우리의 정신상태는 아주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이런저런 궁리와 실험이 없었다면 우리의 사기는 심각하게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어쨌든 베이크웰의 생각은 훌륭한 것이었다.
사라진 즐거움은 담배만이 아니었다. 대원들이 별 생각 없이 자기 몫의 설탕을 오늘리의 다른 물건들과 교환하고 오들리가 그 설탕을 모아 두는 사태가 벌어지자, 와일드는음식물 교환 자체를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 설탕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탄수화물공급원이라는 경고와 함께.
7월에는 술을 만들어 마시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나 술을 만들 재료 역시 떨어져 갔고, 더 중요한 비스킷과 귀중한 닛푸드도 바닥이 났다. 분말 우유도 모두 바닥났다. 이제먹을 것이라고는 오직 펭귄이나 물개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모진 ‘학살자‘ 가 되어야 했다. - P156

8월 30일 새벽은 맑고 추웠다. 눈 치우는 작업을 마친 대원들은 조개를 잡기 위해 설물 시간인 오전 11시쯤 바다로 나갔다. 12시 45분. 대부분의 대원들이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고, 마층과 헐리는 밖에서 조개를 다듬고 있었다.
와일드는 밖에서 마츤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단지 식사시간에 늦어서 뛰어오고 있을 뿐이니까. 잠시 후,
마츤이 벽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오두막에 머리를 들이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배가 왔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
"연기로 신호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오두막 안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대원들은 엎치락뒤치락 서로 엎어지고 국그릇을 뒤엎으며 출입구로 한꺼번에 달려갔다. 출입구를 가린 천이 찢어졌고, 그리로 나가지 못한 대원들을 부수고 밖으로 몰려나갔다."
오들리는 이렇게 적었다.
밖에 있던 헐리가 파라핀, 고래 기름, 말린 풀을 섞어서 황급히 불을 붙였다. 연기가끝나지 않았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배는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까. 그리고정확히 해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맥클린이 깃대에 바바리 재킷을 달아 높이 흔들었다. 오두막 안에 혼자 누워 있던 블레보로를 허드슨과 오들리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대원들은 그 신비의 배에서 칠레 해군의 깃발을 보고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대원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해안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 배가 멎었고, 작은 보트가 내려졌다. 섀클턴이 거기에 타고 있었다. 크린의 모습도 보였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와일드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베이크웰은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라고 적었다.
대원들은 숨을 멈추고 섀클턴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무사합니다!" - P158

모험이 끝나자 지나간 일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엘리펀트섬에서의 일상은 절망적이기보다 그저 조금 불편한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절대 감정적이지 않다 ••••••." 헐리는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안개 속으로 섬의 봉우리가 사라져 가는 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던 저 땅을 영원히 떠난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인 오두막을 이제는 펭귄들이 드나들며 둘러볼 것이다. 이제는 저 멀리 사라진 엘리펀트 섬."
당시 섀클턴의 심정은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여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있다.
"드디어 해냈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나왔소"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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