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따뜻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몸의 털입니다. 털이 없는 것 또한 땀을 증발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200만 년 전의 호모속 고인류는 더운 지역에서도 태양이 작열하는 낮 시간대에 활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털이 없었는지는 화석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간접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louse 입니다. 이는 짐승의 털에 빌붙어 사는 곤충입니다.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이 역시 털에서 알을 낳고 살다가 죽습니다. 사람에게 빌붙어 사는 이는 세종류인데 머리털, 몸, 사타구니 털 등 사는 곳에 따라 서로 다른 종입니다. 사람의 머리에서 발견되는 이는 머리털에 살면서 두피에 쌓인 먹거리를 먹습니다. 머리털에 사는 이(머릿니)와 몸에 사는 이(몸니)는 같은 종(페디쿨러스 휴마너스Pediculus bumanus)이면서 다른 아종이지만 사타구니에 사는 이 사면발니)는 아예 다른 속(티루스푸비스Pbubirus pubis)입니다. 한 몸에 살고 있는 머릿니와 사면발니가 서로 다른 속에 속할 정도로다르다는 점에서 고인류가 털이 없는 맨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온몸에 털이 있었다면 머리털과 사타구니 털 사이에도 털이 있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머리털에 있는 이와 사타구니 털에 있는 이가 다른종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는 생태계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온몸에 털이 있는 인류의 사촌 침팬지와 고릴라에게는 온몸에 서식하는 이가 한 종입니다. 침팬지에게서 발견되는 이(페디큘러스 스캐피Pediculusclaelfi)는 페디쿨러스속에 속하는 종이고, 고릴라에게서 발견되는 이(티루스 고릴라이Phthirus gorillae)는 티루스속에 속하는 종입니다. 머리털과 사타구니 털 사이에 털이 없다면 이의 입장에서 머리와 사타구니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대륙과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서식지가 되어버린 머리와 사타구니에는 서로 다른 종이 살 수 있습니다. 머릿니는 500~600만 년 전부터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기한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머릿니는 인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동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머릿니와는 달리 사면발니는 330만 년 전부터 인류에게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면발니는 고릴라에게서 보이는 이와 가까운 종입니다. 인류와 고릴라는 800만 년 이전에 갈라졌는데 고릴라의 이와 가까운 사면발니가 330만 년 전부터 인류와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인류와 고릴라가 가까웠음을 시사합니다. 아마도 고릴라를 잡아먹었거나 고릴라가 자고 난 숙소를 사용한 인류에게 옮겨 가서 사면발니라는 새로운 계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 P53
사람의 몸에서 발견되는 몸니는 사실 몸에서 살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이가 잘 살 수 있을 만한 털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몸니는 사람이 입는 털옷의 털에서 살면서 사람의 피부에 쌓인 먹을 것을 가져가서 먹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몸니는 털옷이 생긴 다음에야 생겼을 것입니다. 머릿니와 몸니 계통이 언제 갈라졌는지 알 수 있다면 털옷은 적어도 그 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니와 머릿니의 유전체를 비교해 보니 10만 년 전에 분기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믿기 어려운결과입니다. 인류가 빙하기에 살기 시작한 것은 200만 년 전인데 털옷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겨우 10만 년 전일 리는 없습니다. 190만 년 동안 옷이 없이 맨몸으로 추운 빙하기를 견뎌냈을까요? 몸니와 머릿니가 10만 년 전에 분기했다는 유전학 계산이 틀렸을까요? 유전학의 분기점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전제한다면 지금 사람의 몸니는 그렇게 오래전에 생기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털옷 없이 어떻게 고인류가 맨몸으로 추운 유라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 P56
쾨니히스발트는 기간토피테쿠스의 어금니 크기와 턱뼈 크기만으로 생전 그의 몸집이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어금니의 크기로 전체 몸집을 추정하는 일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시도는 아닙니다. 이빨과 턱뼈의 크기만 가지고 몸집 전체의 크기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어금니의 면적은 그 종이 먹는 양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니는 먹거리를 한입에 넣을 정도로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일을 맡고, 어금니는 한입 크기의 먹거리를 잘게 부수는 일을 맡습니다. 몸집이 크면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어금니가 더 많은 먹거리를 처리해야 합니다. 적어도 영장류만 놓고 보았을 때 어금니가 서로 맞물리는 면의 넓이와 몸집 크기는 비례합니다. 많이 먹는 종은 어금니 면적이 넓고 몸집도 큽니다. 적게 먹는 종은 어금니가 작고 몸집도작습니다. 이러한 비례 관계는 현존하는 많은 동물의 평균치를 통해서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P67
파란트로푸스의 큰 어금니는 큰 몸집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니라 어쩌면 척박했던 환경을 보여주는 자료인 셈입니다. 고릴라 어금니의 2배 크기라고 해서 반드시 고릴라 몸집의 2배라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와 메간트로푸스도 거인이 아닐 수 있을까요? 기간토피테쿠스의 큰 어금니 역시 고릴라보다 큰 몸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고릴라보다 훨씬 더 척박한 먹거리를 많이 먹어야 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간토피테쿠스가 영양이 부실했다는 놀라운 내용은 진즉 발표된 바가 있습니다. 영미권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중국의 고인류학자 장인원은 1987년에 기간토피테쿠스의 앞니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법랑질 형성 부전 enamel hypoplasia 을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영장류는 자랄 때 치아도 만들어집니다. 성장기에 영양이 부족하면 치아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부족한 영양 때문에 치아의 법랑질(에나멜질)이 만들어지다 말다 하면서 법랑질에 가로로 줄이 생기게 됩니다. 이 줄은 한번 만들어진 다음에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장기 동안 겪었을 영양부족을 알려주는 좋은 지표입니다. 어른 인골의 앞니에 법랑질 형성 부전을 나타내는 금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랄 때 극심한 영양부족을 겪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법랑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기간토피테쿠스는 자랄 때 먹거리가 부족했을 것입니다. 고릴라만큼 많이 먹어야 하는 기간토피테쿠스는 그 먹거리를 구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기간토피테쿠스는 고릴라만큼의 몸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영양이 부족하고 열악한 먹거리를 많이 먹어야 했던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 P72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두 발 걷기와 사냥은 인류의 진화사에서 한 무대에 동시에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발걷기는 사람의 다른 어떤 특징보다도 훨씬 더 일찍 등장했으니까요. 330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비롯하여 초기 고인류는 두 발로 걸었지만 두발 걷기 외에는 인류의 특징을 갖추지 않았다는 가설이 주류입니다. 그렇다면 사냥과 육식은 언제 인류사에 등장했을까요? 고인류의 역사에서 동물성 먹거리가 등장한 시점을 알리는 자료는 약 26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화석종과 함께 발견된 동물 뼈에 남아 있는 칼날 자국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고인류는 그다지 크지 않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돌을 깨서 날을 세운 찌개는 살아 있는 짐승을 잡는 사냥도구라기보다는 사체 처리에 쓰였습니다. 상위 포식자가 한 차례 먹고난 다음 하이에나와 같은 사체 처리반과 경쟁하여 두꺼운 뼈를 깨고 그안에 있는 골수 혹은 두뇌를 먹은 것입니다. 돌로 만든 최초의 도구는 살아 있는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짐승의 사체를 처리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 P76
전력으로 도망치는 동물을 잡는 사냥은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됩니다. 고인류는 약 500만 년 전에 기원하여 300여만 년 동안 줄곧 아프리카에서만 살았습니다. 그런 고인류가 약 200만 년 전에 유라시아로 퍼져나갔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기후가 변하면서 몸집이 큰 짐승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옮겨 갔고, 이들을 사냥감으로 삼던 고인류 역시 유라시아로 쫓아 퍼져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때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의 사냥 도구는 아슐리안 주먹도끼였습니다. 살아 있는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저몄는지, 죽어 있는 짐승의 사체에서 뼈를 깨고 골수를 파 먹었는지는 뼈에 남아 있는 돌날의 흔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돌날의 흔적은 V자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지만 짐승의이빨 자국은 U자 모양으로 끝이 둥급니다. 그래서 뼈에 남아 있는 흔적을 자세히 보면 그것이 돌날의 흔적인지 이빨의 흔적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고인류가 돌로 만든 도구로 뼈를 손질한 흔적과 짐승이 이빨로 뼈를 갉아 먹은 흔적이 함께 발견되는 경우에는 순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뼈에 남아 있는 두 흔적 중 어떤 것이 먼저 새겨진것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짐승 이빨의 흔적 위에 돌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맹수가 한번 먹고 난 사체를 고인류가 뒤늦게 접수했다는 뜻입니다. 그럴 경우 고기나 내장을 취했을 가능성보다는 뼈를 깨서1차 포식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골수를 먹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돌날의 흔적 위에 짐승 이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그것은 돌로 만든 도구로 직접 사냥해서 고기와 기타 내장을 먼저 처리한 다음에 하이애나같은 2차 포식자가 왔가는 뜻입니다.호모에렉투스의 아슬리안 주먹도끼는 사냥하고 고기를 저미는 데 이용되었고 호모 에렉투스는 상위 포식자로서 뛰어난 사냥 기술을 보유한 것로 알려졌습니다. - P77
호모 에렉투스가 뛰어난 사냥꾼으로서 점차 발달한 사냥 기술로 고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면, 두뇌가 커지면서 필요로 하는 고열량의 먹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고인류학자 줄리 레스닉Julie Lesnik은 이에 대한 기발한 해답으로 곤충식을 제시합니다. 인류가 곤충식을 통해 고칼로리를 확보했다는 주장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곤충을 먹는다고 하면 역겨움과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제대로 된‘ 먹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기근에 나무껍질을 먹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곤충을 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둘 다 지극히 유럽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도 불과 수 세대 전까지 메뚜기를 잡아먹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곤충식을 하는 문화권이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다른 먹거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곤충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먹거리의 하나로 곤충을 먹습니다. 곤충식을 일상의 식생활로 여기는 문화권은 주로 열대 지역에 분포합니다. 사실 인류 진화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류는 열대 지역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식생활에서 곤충식이 먹거리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열대의 환경이 주는 다양한 생물을 골고루 섭취하는 열대 지역에서 곤충은 다양한 먹거리의 일부일 뿐입니다. 열대에서 멀어지면서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고 먹거리의 종류 역시 감소합니다. 곤충식에 대해 역겨움이나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열대 지역의 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 유럽중심주의의 소산이 아닐까요? - P80
이 최근의 연구 성과들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두 발 걷기, 두뇌 용량, 사냥도구의 제작과 사용이 패키지를 이룬 ‘사냥 가설‘은 그자체로 뛰어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것처럼 보였으며 20세기까지 주류가설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두 발 걷기‘가 떨어져나가고 이제는 두뇌 용량과 사냥, 도구 제작 간의 연결고리조차 끊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고기를 얻을 수 있는 큰 짐승을 사냥할 수밖에 없다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또 다른 시각이 생기고 있습니다.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서 사냥이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은 채집을 통해 식물성 먹거리를 확보했다는 경제 분업 가설이 와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물성 먹거리의 확보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이러한 분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곤충 등 다양한 동물성 먹거리와 씨앗, 구근류, 해산물 등으로 고칼로리 고단백질의 먹거리 섭취가 가능해지면서 두뇌는 점차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호모 에렉투스만이 아니라 약 200만 년 전에 살았던 모든 고인류가 공통적으로 겪은 진화입니다. 어른 침팬지보다 큰 머리를 가지고 있는 고인류가 서로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따라 했을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 P83
불은 포유류가 소화하기 힘든 음식을 소화할 수 있게 합니다. 포유류는 생채소를 이루는 섬유소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초식동물조차도 날것의 식물을 직접 소화할 수 있는 효소를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대신 초식동물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식물을 소화해냅니다. 그중 하나는 미생물입니다. 장내에 미생물을 키워서 그들의 도움으로 식물을 소화합니다. 또한 소나 양은 네 개의 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라면 소화할 수 없는 식물을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서 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서 먹은 음식을 토했다가 다시 삼키기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되새김질입니다. 하지만 불에 익히면, 보잘것없는 위 한 개만 가지고도 채소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불은 그야말로 제2의 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86
식물성 먹거리나 동물성 먹거리 모두 익혀서 먹으면 영양분을 훨씬 더 많이 흡수할 수 있지만, 익힌 음식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농경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곡류 위주의 식생활을 하면서부터입니다. 곡물에 물을 붓고 끓여서 먹으면 맛도 좋고 소화도 잘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곡류에 물을 부어 끓인 음식은 무엇보다도 이유식으로 최고였습니다. 농경이 자리 잡으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에는 곡물로 만든 이유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유식 덕분에 모유 수유 기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모유 수유 기간에 정지되었던 배란주기가 다시 시작되고 임신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한 명의 가임 여성 기준으로 4~5년이었던 출산 터울이 2~3년으로 줄어듭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 P89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 역시 화식에 의존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비싼 장기 가설 expensive-tissue hypothesi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인류학자 레슬리 아이엘로Leslie Aiello 가 두뇌와 소화 장기는 모두 비싼 장기라는 점에 착안하여 내놓은 가설입니다. 비싼 장기라는 것은 제작비와 유지비가 모두 많이 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비싼 장기인 두뇌와 소화 장기를 둘 다 크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한쪽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합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은 두뇌 대신 소화 장기를 선택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은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두뇌 용량이 조금 커지기는 했지만 소화 장기는 훨씬 더 컸고 많은 기능을 했습니다. 비록 소화 장기자체는 화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몸통뼈, 등뼈, 골반뼈의 크기를 통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 비해 호모속은 몸통이 좁고 골반뼈 역시 키에 비해 좁은 편입니다. 사람의 소화기관은 비슷한 몸집의 영장류가 가진 소화기관의 절반 크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호모속은 두뇌용량을 놀라울 정도로 키웠습니다. 소화기관 대신 다른 비싼 장기인 두뇌를 선택한 것입니다. 작은 치아, 작은 소화기관을 가지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같은 먹거리를 먹는다면 큰 두뇌와 큰 몸집을 유지할 만큼의 열량을 도저히 섭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익혀 먹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P91
고인류를 먹잇감으로 삼았던 포식자는 누구였을까요? 브레인의 연구에 등장하는 표범을 꼽을 수 있습니다. 표범은 먹잇감을 잡으면 높은나무 위로 끌고 올라갑니다. 기껏 잡은 먹잇감을 노리는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고 먹잇감이 도망갈 수도 없으니 여러모로 이득입니다. 나무위에서 천천히 먹고 난 나머지 잔반(?)은 나무 위에서 땅으로 떨어지게됩니다. 남아프리카의 동굴 입구 근처에는 동굴에 고인물 때문에 큰 나무가 자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표범이 먹고 남은 뼈들이 떨어진 나무 아래는 동굴로 연결됩니다.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 동물 뼈와 발견된 고인류 화석 뼈는 다트가 생각했듯 킬러 유인원 고인류가 동물을 잡아먹고 남긴 흔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나무 위에서 맹수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동물의 뼈가 나무 위에서 떨어진 다음 쌓여서 생긴 유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맹수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동물 중에 고인류도 있었던 것입니다. 결자해지일까요? 킬러 유인원 가설을 내놓은 레이먼드 다트가 발견한 타웅 아기 역시 평화롭게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타 아기의 머리뼈에는 눈구멍뼈도 남아 있습니다. 눈구멍뼈에는 세모난 구멍이 나 있습니다. 고인류학자 리 버거 Lee Berger는 이를 맹금류의 발톱이 남긴 자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맹금류의 행동학 연구가 쌓이면서, 타웅 아기가 맹금류에 의해 들려져서 먹잇감이 된 다음 남은 뼈가 나무 아래로 떨어져 화석이 되었다는 가설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 P114
일련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인류 조상의 모습은 공격적이고 살상무기를 휘두르는 킬러 유인원이 아니라, 맹수와 맹금에게 잡아먹히는 먹잇감입니다. 인류의 기원은 공격성을 지니고 태어나 무기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포식자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작은 몸집으로 두 발로 서서 걷다가 맹수를 만나면 나무 위로 도망가고, 미처 피하지 못해 먹이가된 나약한 모습이 지금 지구 위를 뒤덮은 사람의 기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인류학계에서는 초기 인류의 모델로서 침팬지만을 주목해 왔습니다. 침팬지의 공격성은 사람의 공격적인 남성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계통상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침팬지만이 아닙니다. 침팬지속에는 두 종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침팬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보노보입니다. 보노보에 대한 연구는 뒤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침팬지보다 앞에 나서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아 사람의 관심을 덜 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노보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침팬지가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면 보노보는 느긋하고 평화적입니다. 침팬지는 수컷이 주로 연대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보노보는 암컷이 연대합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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