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스웨터와 두 개의 코트로도 막을 수 없는 추위가 느껴진다. 바깥이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시작된 것 같은 한기다. 몸이떨리고, 내 손과 함께 흔들린 불꽃의 음영에 방안의 모든 것이 술렁인 순간 나는 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인지 물었을 때 인선이 즉시 부인한 이유를.
피에 젖은 옷과 살이 함께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사 년 전 내가 썼던 책에서 누락되었던 대로에 선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쏘았던 화염방사기처럼, 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 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처럼. - P287

여기쯤 멈춰 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기슭 바로 아래까지차오른 물이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갔어. 저렇게 가만히있는 게 물 구경인가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잡았던 기억이 나.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P311

머릿속 수천 개 퓨즈들에 일제히 불꽃 튀는 전류가 흘렀다가 하나씩 끊기는 것 같은 과정을 나는 지켜봤어.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나를 동생이나 언니로 생각하지 않았어. 자신을 구하러 온 어른이라고도 믿지 않았고, 더이상 도와달라고도 하지 않았어. 점점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가끔 말한다 해도 단어들이 섬처럼 흩어졌어. 응, 아니, 라는 대답까지 하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는 원하고청하는 것도 없어졌어. 하지만 내가 까서 준 귤을 받아들면, 평생새겨진 습관대로 반으로 갈라 큰 쪽을 나에게 건네며 가만히 웃었어. 그럴 때면 심장이 벌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나. 아이를 낳아기르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각했던 것도.
그즈음부터 엄마는 잠을 잤어. 언제 그렇게 나에게 잠재우지 않는 고통을 주었느냐는 듯 하루의 삼분의 이, 나중엔 사분의 삼이상을 잤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낸 마지막 한 달은 거의 종일 잠들어 있었어. 밀물 때가 지나치게 긴 이상한 바다처럼. 모래펄이완전히 잠긴 뒤 다시는 바다가 빠져나가지 않는 것처럼.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거라고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 더이상 내 방으로기어오는 엄마가 없는데 잠을 잘 수 없었어. 더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 싶었어. - P314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 P317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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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양쪽 문으로 바람길이 통해, 난로의 바람구멍 안쪽으로 세차게 솟구쳐오르는 불꽃이 보였다. 검붉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인선이 주전자를 올렸다. 주전자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삽시간에증기가 되며 모래알 쏠리는 소리를 냈다.
말을 꺼내지도, 얼굴을 마주보지도 않은 채 우리는 앉아 있었다. 주전자 밑면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에야 인선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아직 주전자의 부리에서 김이 솟지 않았다. 비등점을 넘어서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흰 실타래 같은 증기가 주전자 부리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맞물렸던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반쯤 열렸다 닫히길 반복했다.
미루는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앞문 너머로 보이는 숲의 아래쪽이 거의 검어졌다. 눈에 덮여둥글고 부슬부슬한 윤곽선을 새로 얻은 나무 밑동들이 박명 속에 희미하게 빛났다. - P192

구덩이 가장자리에 있던 유골 한 구가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어.

다른 유골들은 대개 두개골이 아래를 향하고 다리뼈들이 펼쳐진채 엎드려 있었는데, 그 유골만은 구덩이 벽을 향해 모로 누워서 깊게 무릎을 구부리고 있었어. 잠들기 어려울 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쓰일 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구덩이들을 향해 열 명씩 세워졌을 거라는 추정 기사가 사진 아래 실려 있었어. 뒤에서 총을 쏘아 구덩이로 떨어지게 하고, 다음차례의 사람들을 다시 줄 세워 쏘기를 반복했을 거라고.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가, 흙에 덮이는 순간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그때 들었어. 그 유골의 발뼈에만 고무신이 제대로 신겨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고무신도, 전체 골격도 크지 않은 걸 보면 여자거나 십대 중반의 남자인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게 그 신문을 접어서 배낭에 넣었어. 집에 돌아가 짐을 풀면서는 사진만 오려 책상 앞서랍에 넣었어. 밤에 꺼내 보기엔 잔인한 사진이어서, 햇빛이 밝은 오후에만 서랍을 열고 들여다보다 닫았어. 겨울이 되면서는 흉내내듯 책상 아래 모로 누워 무릎을 구부려보기도 했어.
이상한 건, 그러고 있으면 어느 순간 방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야. 겨울 별이 깊게 들거나 온돌 바닥이 데워져서 퍼지는 온기와는 달랐어. 따스한 기체의 덩어리 같은 게 방을채우는 게 느껴졌어. 솜이나 깃털, 아기들 살을 만지고 나면 손에 부드러움이 남잖아. 그 감각을 압착해서 증류하면 번질 것 같은••••••
- P211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다음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그렇게 해가 바뀌었을 때였어. 이름은 물론 성별도 당시 나이도 모르는 사람. 조금 가는 골격에 작은 사이즈의 고무신을 신은, 전쟁발발 직후 제주에서 예비검속돼 총살된 천여 명 중 한 사람.
그가 만약 십대였다면 출생 연도가 엄마와 얼추 비슷할 것 같았어. 두 사람의 그후에 대해 다루면 되겠다는 계획이 섰어. 한 사람은 날마다 수십 차례 비행기들이 이착륙하는 활주로 아래서 흔들리며, 다른 한 사람은 이 외딴집에서 솜요 아래 실톱을 깔고 보낸육십 년에 대해서. - P212

그해에 아버지는 열아홉 살이었어.
열두 살부터 젖먹이까지 여동생 셋, 남동생 하나가 있었는데아버지가 가장 사랑한 건 그해 정초에 태어난 막내 여동생이었어. 은영이라는 이름도 아버지가 지었대. 학영, 숙영, 진영, 희영 다음으로 순영이라고 이름 붙이려는 할아버지를 만류하면서. 안 그래도 순한 아기가 이름 따라 더 무르게 자라면 어쩌려느냐고.
밑단에 시보리가 달린 점퍼를 겨울 교복 위에 입으라고 할머니가 사주었는데, 봄에 동맹휴학을 할 때 아버지는 하숙비를 아끼려고 짐을 싸서 돌아와서는 그 점퍼 속에 아기를 넣고 다녔다. 친구를 만나면 지퍼 위쪽을 열고 솜털 같은 머리카락을 보여주려고. 아기가 조그만 손을 뻗어올려 셔츠 깃을 움켜쥐는 걸 보고 여자애들이 감탄하는 걸 들으려고. 떨어뜨리면 어쩌려느냐고 할머니가 나무라면, 꼭 안고 다니니 걱정 말라고 했다. 넘어질 것 같으면 얼른 뒤로 자빠져버릴 테니 아기는 아무 일 없다고. - P216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 P225

이제 이영 찾아오지 말렌. 고를 말 이미 다 해신디 무사 자꾸 오멘?

그동안 얘기 안 한 거?
•••••• 안 한 것이 뭐이 이시냐.

무슨 연구소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 시작이었다. 직접 본 사람이몇 명 엇다고 죽기 전에 이야기 안 하민 아무도 모르게 된다 허명 부탁하는 거라. 틀린 말 아니다 싶어그네 그때 처음 고랐져, 한번 그래놓으난 다른 데서도 오데. 이야기 시켜놓곡 가불고 나민 메칠 혼자 속 시끄러울 거 알지마는 엔간하면 다 해줘서.
우리 서방이 살아 이서시민 질색해실 일인디 일찍 죽어부러난 나를 못 말렸다. 저승에서 쫓아왕 말릴 수도 엇고 어쩔 거라. 귀신이 이시난 꿈에라도 와그네 말릴 건디 아직 그런 적도 어서. - P227

전쟁 전에 우리 서방이 군경 따라댕기멍 무신 일 해신지는 나한테 안 고랐으니 어떻 알크냐? 서방이 원해서 따라댕긴 건 아니메. 사람들하고 울력 나강 성 쌓고 이신디 경찰이 와그네 몇 명 뽑아간거라. 그때는 요즘 같은 세상이 아니메. 하라민 해야 되는 세상이라.
서청-서북청년단-사람들이 잔인해그네, 내내 같이 댕기던민보단원들도 수틀리민 죽여분다는 소문이 이시난 나는 걱정되었주게. 파출소 마당에다 산사름 각시를 총검으로 찔렁 눕혀놔그네민보단 사람들헌티도 다 한 번씩 죽창으로 찌르렌 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난. 아무헌티도 원수 살 일 하민 안 된다고 내가 거념허민 우리 서방은 항상 그래서. 이녁은 통역 일만 한다곡. 서청이 제주말을 못 알아듣곡 제주 사름들은 서청 말을 못 알아들으나, 소까이-소개 -때 중산간에 불 놓으렁 댕길 때도 우리 서방은 문 두드렁 나옵서, 인제 불나난 흔저 나옵서, 고라주멍 다닌 게 다라고 그래서. 경헌디 이상해신 건 그때부텅 입대할 때까지 우리 아기를 안지 않은거라. 이헌티 닿으면 부정 탄덴, 눈도 마주치민 안된덴 하곡 정말 눈길도 안 줘서. - P228

윗옷을 벗은 이모가 양쪽 소매를 이빨로 찢어서 두 군데 상처를지혈했어. 의식 없는 동생을 두 언니가 교대로 업고 당숙네까지걸어갔어. 팥죽에 담근 것같이 피에 젖은 한덩어리가 되어서 세자매가 집에 들어서니까 놀란 어른들이 입을 열지 못했다.
통금 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의원을 부르지도 못하고 캄캄한 문간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다.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다.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다.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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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제발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우린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
로드니 킹 (Rodney King)의 이 간곡한 호소가 유명해진 것은 1992년5월 1일, 흑인인 그가 로스앤젤레스의 경관 네 명에게서 거의 죽을지경으로 구타를 당하고 약 1년 뒤의 일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그의 구타 영상이 전 국민적 화제였기에, 배심원들이 경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미국 전역에서 분노가 끓어올랐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엿새 동안이나 폭동이 그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발생한 사망자만 53명, 불에 탄 건물은 7000채에 이르렀다. 이 걷잡을 수 없는 폭력사태는 이후에도 도통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접근하지 못한 방송국에서는 헬리콥터로 주변을 돌며 하늘에서 찍은 영상을 뉴스로 내보내야 했다. 그러다 급기야 백인 트럭 운전사가 폭도에게 잔학무도하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터졌고, 결국 보다 못한 킹이 평화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 P15

그래서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여러분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새로운 생각의 틀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두 가지 주제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골치 아프며 가장 편이 갈리는 문제인 정치와 종교를 말한다. 사회생활 에티켓 책에서는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할 때는 정치와 종교에 관한 화제는 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을 가지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라는 입장이다.
정치와 종교는 둘 다 우리 기저에 자리 잡은 도덕적 심리의 표현인바. 그러한 심리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종교로 인해 일어나는 그 모든 과열 • 분노 • 편 가르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그 자리를 경외심 • 놀라움 • 호기심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이다. 이렇게 복잡한 도덕적 심리를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인류라는 종족이 숲 속과 초원을 박차고 나와 불과 수천 년 만에 오늘날의 현대사회를 이룬 것은, 그리하여 그속에서 수많은 즐거움과 편안함, 그리고 유례없는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다 이 능력 덕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옴으로 해서 앞으로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섞인 가운데서도 도덕, 정치, 종교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일상적이고, 예의 있고, 재미있게 오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데에 이책이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 - P17

어 있는 셈이었다.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어떻게 해서 알게 되는가? 즉, 도덕성이 처음 형성되는 곳은 어디인가?
이 질문에는 으레 두 가지 대답이 나오곤 한다. 천성 아니면 양육,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천성 쪽에 손을 들었다면, 당신은 선천론자인 셈이다. 선천론자는 도덕적 앎이 우리 마음에 원래부터 들어 있었다고 믿는다. 그것이 미리 자리 잡은 까닭은, 《성경》에서 말하듯 하느님이 우리 가슴에 그 내용을 새겨놓았거나 다윈의 주장처럼 우리의 진화한 도덕적 감정 속에 그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양육을 통해 도덕적 앎이 생겨난다고 믿는 쪽이라면, 당신은 후천론자(empiricist)인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갓 태어난 아이들이 거의 텅빈서판(존 로크의 표현을 빌리자면)에 가까운 상태라고 믿는다. 더구나 도덕성이란 나라나 시대마다 다 다른 법인데, 그것이 어떻게 선천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우리는 어린 시절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과 옳고 그름에 대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인으로서의 윤리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후천론자들은 생각한다("empirical‘이라는 말 자체가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얻은"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후천론도 결국은 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1987년도에 도덕심리학은 도덕성의 기원에 대해 제3의 대답을 내놓기에 주력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온 답이 합리주의로, 여기서는 도덕이 무엇인지를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낸다고 주장했다. - P33

 아이들은 스스로 그 이치를 깨치는데, 다만 그러려면 반드시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하고, 더불어 거기에 맞는 적절한 경험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지능력 발달 접근법은 피아제가 아동의 도덕적 사고를연구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는 아이들 틈에 쪼그려 앉아 구슬치기 놀이를 하면서 때로는 일부러 규칙을 어겨보기도 하고 때로는 바보같이 구슬을 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의 실수에 반응을보였는데, 그 과정에서 규칙을 지키고, 규칙을 바꾸고, 차례를 지키고, 싸움을 가라앉히는 아이들의 능력이 점점 발달해가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 성장은 아이들의 인지능력이 성숙할 때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단계에 따라 이루어졌다.
피아제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이 도덕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이 유리컵에 담긴 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비슷했다. 즉, 도덕성에 대한 이해는 선천적이라고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것을 어른에게서 직접 배운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놀며 도덕성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세워나간다고 보는 것이맞았다. 아이들이 놀 때 서로 차례를 바꾸는 것은 물을 이컵 저컵에 옮겨 담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 셈이다. 또 세 살짜리 아이들에게는 물의 총량이 보존되는 원리를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것처럼, 아직 준비가 덜 된 아이들에게는 공평성 개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이제 대여섯 살이 되어친구들과 함께 놀이도 해보고, 말다툼도 벌여보고, 함께 힘도 합쳐본 후에는 차차 공평성이 무언지 알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어른들에게서 듣는 그 어떤 설교보다도 훨씬 더 효과가 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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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설명들 곁에 실려 있던 눈 결정들의 사진을 기억한다. 컬러도판을 보호하기 위해 얇은 기름종이가 함께 제본된 책이었는데, 그 반투명한 종이를 넘기자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한 결정들이 한면 가득 펼쳐졌다. 그 정교함에 나는 압도되었다. 몇몇 결정들은정육각형이 아니라 매끈한 직육각기둥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눈과 비의 경계에서 그런 형태를 지닌다는 설명이 작은 글씨로 하단에 적혀 있었다. 그후 한동안 진눈깨비가 내릴 때면 그 은빛의섬세한 육각기둥이 생각났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짙은 색 코트소매를 허공에 내밀고서 보풀에 맺힌 눈송이가 물방울이 될 때까지 들여다봤다. 도판에서 본 것 같은 정육각형의 화려한 결정들이그 안에서 수없이 결속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지러웠다. 눈이지나간 뒤 한동안은 잠에서 깨며 감은 눈으로 생각했다. 밖에 눈이 오고 있을지도 몰라.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지루한 방학숙제를 하다 말고 방안에 눈이 내린다고 생각했다. 방금 거스러미를 뜯어낸 손 위로. 머리카락과 지우개 가루가 흩어져 있는 장판 바닥 위로. - P94

이 할머니와 비슷하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방언 대신 또렷한 서울말로 인선의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 P99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오른쪽 어깨 위, 스웨터 올 사이로 가칠가칠했던 아마의 두 발이 떠오른다. 내 왼손 집게손가락을 횃대 삼아 앉아 있던 아미의 가슴털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 P109

파문처럼 환하게 몸 전체로 번지는 온기 속에서 꿈꾸듯 다시 생각한다. 물뿐 아니라 바람과 해류도 순환하지 않나. 이 섬뿐 아니라 오래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도 저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할 수 있지 않나.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법이 없다. - P135

숲 사이로 거대한 흰 뱀처럼 뻗어올라간 건천에서 파르스름한빛이 배어나오고 있다.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깊게 허리를 구부린채 나는 한 걸음씩 디뎌간다. 맹렬히 전진하는 먹구름 사이로 달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 해쓱한 빛을 받은 모든 나무의 우듬지들이, 마치 다시는 어두워지지 않을 듯 암청색의 빛을 발하며 일렁이고 있다. 그러나 우듬지 아래 숲속은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는 어둠이다. 아득한 동굴처럼 입을 벌린 그 암흑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수천 그루 나무들의 어두운 밑동뿐일까. 소리 내지 않는 새들과 노루떼뿐일까.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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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사람들은 또다시 "긴즈버그 대법관, 소수의견 제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마주해야 했다. 공화당이 임명한 남성 대법관 다섯 명은 기업도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직장 건강보험 보장 항목에 피임 비용을 포함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버웰 대 하비로비 사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피임이 뭐 그리 대수냐며, 여성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투였다. 몇 주 뒤, 케이티 커릭이 물었다. "남성 대법관 다섯 명이 이번 판결에 따른 파장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보십니까?" RBG가 대답했다. "아니라고 말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남성으로서 "맹점"을 드러낸것인가? 커릭이 다시 묻자, RBC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모든 여성이 피임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비로비 사주의 신앙은 분명 존중합니다. 하지만, 사주라고 해서 종교가 다른 수많은 여성 직원에게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강요할 헌법적 권리는 없습니다."
RBG는 하비로비 사건의 소수의견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때까지 내놓은 여러 소수의견에 그대로 가져다 붙여도 잘 어울릴 법한 문장이었다.
"대법원이 지뢰밭에 뛰어든 것 같아 우려스럽다." - P193

RBG는 버락 오바마를 향해 거리낌 없이 애정을 표현한다. 그는 대통령을가리켜 "생파티크sympathique" 라는 단어를 쓴다. 프랑스어로 ‘마음에 꼭 든다‘는 뜻인데, RBG가 사용하는 최고의 찬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RBG는 백악관 만찬 자리에서 중간에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체육관에서 만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슨은 이렇게 회상했다.
"제가 말했습니다. ‘대통령님을 버리고 저한테 오셨다고요? 아이고, 대법관님, 오늘은 팔굽혀펴기를 몇 개 더 하셔야겠습니다.‘" - P204

RBG의 유산, 이 문제는 그가 자주 거론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것이끝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면하는 문제도 아니다. "내 인생에서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성차별이 모두에게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에게도 나쁘고, 아이들에게도 나쁩니다. 그런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려서 한없이 행복•합니다. 헌법 첫 줄에 뭐라고 적혔는지 생각해봅시다. ‘우리 합중국 인민은보다 완벽한 연합을 형성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헌법이 말하는 더 완벽한 연합을 만들기 위해서 분투해야 합니다. 그 완벽함의 형태 가운데 하나는 ‘우리 합중국 인민‘의 개념이 훨씬 더 광범위한 집단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포용이야말로 RBG가 평생을 바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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