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제발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우린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 로드니 킹 (Rodney King)의 이 간곡한 호소가 유명해진 것은 1992년5월 1일, 흑인인 그가 로스앤젤레스의 경관 네 명에게서 거의 죽을지경으로 구타를 당하고 약 1년 뒤의 일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그의 구타 영상이 전 국민적 화제였기에, 배심원들이 경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미국 전역에서 분노가 끓어올랐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엿새 동안이나 폭동이 그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발생한 사망자만 53명, 불에 탄 건물은 7000채에 이르렀다. 이 걷잡을 수 없는 폭력사태는 이후에도 도통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접근하지 못한 방송국에서는 헬리콥터로 주변을 돌며 하늘에서 찍은 영상을 뉴스로 내보내야 했다. 그러다 급기야 백인 트럭 운전사가 폭도에게 잔학무도하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터졌고, 결국 보다 못한 킹이 평화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 P15
그래서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여러분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새로운 생각의 틀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두 가지 주제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골치 아프며 가장 편이 갈리는 문제인 정치와 종교를 말한다. 사회생활 에티켓 책에서는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할 때는 정치와 종교에 관한 화제는 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을 가지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라는 입장이다. 정치와 종교는 둘 다 우리 기저에 자리 잡은 도덕적 심리의 표현인바. 그러한 심리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종교로 인해 일어나는 그 모든 과열 • 분노 • 편 가르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그 자리를 경외심 • 놀라움 • 호기심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이다. 이렇게 복잡한 도덕적 심리를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인류라는 종족이 숲 속과 초원을 박차고 나와 불과 수천 년 만에 오늘날의 현대사회를 이룬 것은, 그리하여 그속에서 수많은 즐거움과 편안함, 그리고 유례없는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다 이 능력 덕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옴으로 해서 앞으로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섞인 가운데서도 도덕, 정치, 종교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일상적이고, 예의 있고, 재미있게 오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데에 이책이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 - P17
어 있는 셈이었다.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어떻게 해서 알게 되는가? 즉, 도덕성이 처음 형성되는 곳은 어디인가? 이 질문에는 으레 두 가지 대답이 나오곤 한다. 천성 아니면 양육,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천성 쪽에 손을 들었다면, 당신은 선천론자인 셈이다. 선천론자는 도덕적 앎이 우리 마음에 원래부터 들어 있었다고 믿는다. 그것이 미리 자리 잡은 까닭은, 《성경》에서 말하듯 하느님이 우리 가슴에 그 내용을 새겨놓았거나 다윈의 주장처럼 우리의 진화한 도덕적 감정 속에 그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양육을 통해 도덕적 앎이 생겨난다고 믿는 쪽이라면, 당신은 후천론자(empiricist)인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갓 태어난 아이들이 거의 텅빈서판(존 로크의 표현을 빌리자면)에 가까운 상태라고 믿는다. 더구나 도덕성이란 나라나 시대마다 다 다른 법인데, 그것이 어떻게 선천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우리는 어린 시절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과 옳고 그름에 대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인으로서의 윤리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후천론자들은 생각한다("empirical‘이라는 말 자체가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얻은"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후천론도 결국은 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1987년도에 도덕심리학은 도덕성의 기원에 대해 제3의 대답을 내놓기에 주력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온 답이 합리주의로, 여기서는 도덕이 무엇인지를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낸다고 주장했다. - P33
아이들은 스스로 그 이치를 깨치는데, 다만 그러려면 반드시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하고, 더불어 거기에 맞는 적절한 경험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지능력 발달 접근법은 피아제가 아동의 도덕적 사고를연구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는 아이들 틈에 쪼그려 앉아 구슬치기 놀이를 하면서 때로는 일부러 규칙을 어겨보기도 하고 때로는 바보같이 구슬을 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의 실수에 반응을보였는데, 그 과정에서 규칙을 지키고, 규칙을 바꾸고, 차례를 지키고, 싸움을 가라앉히는 아이들의 능력이 점점 발달해가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 성장은 아이들의 인지능력이 성숙할 때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단계에 따라 이루어졌다. 피아제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이 도덕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이 유리컵에 담긴 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비슷했다. 즉, 도덕성에 대한 이해는 선천적이라고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것을 어른에게서 직접 배운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놀며 도덕성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세워나간다고 보는 것이맞았다. 아이들이 놀 때 서로 차례를 바꾸는 것은 물을 이컵 저컵에 옮겨 담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 셈이다. 또 세 살짜리 아이들에게는 물의 총량이 보존되는 원리를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것처럼, 아직 준비가 덜 된 아이들에게는 공평성 개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이제 대여섯 살이 되어친구들과 함께 놀이도 해보고, 말다툼도 벌여보고, 함께 힘도 합쳐본 후에는 차차 공평성이 무언지 알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어른들에게서 듣는 그 어떤 설교보다도 훨씬 더 효과가 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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