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장제스를 대체하고자 하는 그에게 공산당의 등장은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자라면 누구든 그것이 스탈린의 손에 달렸으며, 그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는 중국공산당을 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쉐량은 공산당과 접선하여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식량과 의복을제공했고, 그들과 함께 장제스를 끌어내릴 계획을 모의하기 시작했다. 소련은 장쉐량이 계속 공산당군을 돕게 하기 위해서 둘의 내통을 장려했다. 마오쩌둥은 한발 더 나아가서 장제스를 없애버리라고 그를 부추겼다. 장쉐량은 자신이 장제스를 대체하도록 소련이 후원하리라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착각 속에서 그는 쿠데타 계획을 꾸몄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만 하면 소련이 그에 대한 지지를 선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쉐량은 장제스를 시안으로 꾀어냈다. 휘하의 병사들이 고향 만주로돌아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싶다는 이유로 산시 성의 공산당과 싸우라는 그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으니, 시안으로 와서 직접 그들을 설득해달라는 것이었다. 장제스는 요청에 응하여 1936년 12월 초 시안으로 향했다.
12월 12일 새벽, 일과인 아침 운동을 막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있던 장제스는 총소리를 들었다. 400명 남짓한 장쉐량의 병사들이 그의 막사를 공격하고 있었다. 경호실장을 포함하여 장제스의 경호원 다수가 사망했다.
장제스는 가까스로 뒤편의 야산으로 탈출해 어느 동굴에 몸을 숨겼다. 혹한의 날씨에 신발도 양말도 없이 잠옷 셔츠 차림인 채였다. 요행히 살아남았지만, 그는 곧 수색대에게 붙잡혔다. 장쉐량은 자신이 일을 벌인 이유는장제스에게 일본과 싸우라고 압박하기 위함이었다고 공식 선포했다. 그는 난징에 전신을 보내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요구 사항 1번은 "난징 국민 정부의 개편"이었다. 마오쩌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그는 중국공산당과 소련이 당연히 자신에게 새 정부의 수장직을 제의하리라고 생각했다. - P259

사실 장쉐량에게 장제스를 풀어달라고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장제스를구금하고 이틀 뒤인 12월 14일, 장쉐량은 자신이 재앙적인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고, 장제스를 석방하고 그와 함께 난징으로 갈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바로 그날, 소련은 가장 수위 높은 표현을 동원해서 장쉐량의행위를 비난했고, 그가 일본을 돕고 있다고 규탄하면서 단호히 장제스에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중국 여론이 장제스를 거의 전적으로 지지한다는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장제스의 군대가 지금 이 순간 중국 북부의 쑤이위안 성(현재 내몽골자치구의 일부/옮긴이)을 잠식해오고 있는 일본에 맞서서 완강히 항전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들이 보기에 장제스는 항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강경파였고, 그의 몰락은 일본의 침략만 수월하게만들 터였다. 장쉐량이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제스의 부재로 국무총리 대행이 된 쿵샹시는 중국 전역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접촉해서 그들의 도움을 구했고, 그중 대부분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끝내 협력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칭링이었다. 쿵샹시가 그녀에게 연락해서 지원을 요청하자, 그녀는 장제스가 억류되어서 아주 기쁘며, 장쉐량의 행동은 전적으로 옳다고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이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아니, 나라면 그보다 더했겠지요!" 그러나 소련의 화를 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녀는 이러한 감상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다.
쿵샹시는 스탈린에게 전언을 보내서 중국공산당이 쿠데타와 연관되어있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만약 장제스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면 온 나라의 분노가 중국공산당에서 소비에트 연합을 향해서 번져갈 것"이라고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중국이 소련에 맞서서 일본과 손을 잡는 결과로이어질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스탈린은 장쉐량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고, 중국공산당에게 장제스가 확실히 석방될 수 있도록 도우라고 지시했다. - P262

안전을 보장받은 이상, 장쉐량은 포로를 풀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은 단 하나였다. 공산당이 장제스에게 자신들의 특사와 대화하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그 특사는 훗날 외교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저우언라이로, 얼마 전부터 시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만남이 성사되기 전에는 시안을 떠날 수 없다고 장쉐량이 일러주었음에도, 장제스는 특사와의 대화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장제스의 경호단과 장쉐량 휘하 군대에는 이미 공산당 세력이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장제스가 저우언라이를 만나는 일은 요즘으로 치면 미국의 대통령이 악명 높은 테러집단의 대표를 접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날, 저우언라이는 장제스의 침실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방금 도착한 전갈을 가지고 있었다.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가 귀국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소련은 이것이 장제스와의 타협을 이끌어낼 유일한 수단임을 알았다.
장제스와 저우언라이의 회담은 짧았다. 장제스가 건넨 말은 "난징으로와서 직접 교섭하자"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 말은 공산당의 위상을 바꾸어놓았다. 이때부터,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박멸해야 하는 도적떼가 아니라 합법적이고 중요한 정당으로 대우받았다. 그에 걸맞게 교섭이 뒤따랐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두 정당은 동등한 동지로서 ‘통일전선‘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전쟁 중에 장제스는 공산당에 많은 것들을 양보했다. 덕분에 공산당군은 괄목할 만큼 성장했고, 항일 전쟁이 끝난 후에는 장제스와 맞붙어 승리를 거둘 정도가 되어 있었다. 아들장징궈를 되찾아오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 때문에 장제스는 스탈린과 마오가 합심하여 벌일 수 있는 일을 과소평가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장제스는 아들을 위해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그를 스탈린의 마수에서 구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인질 장징궈는 1937년 3월 석방되어 가족과 함께 소련에서 중국으로 돌아왔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중노동을 비롯하여 12년간 무수한 시련을 견딘 후였다. - P266

그녀는 장쉐량이 자신에게그녀의 몫이아부한 내용, 즉 그가 그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장제스를 풀어주었다는말을 세세히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도 주저하지않았다. "도널드 씨가 주춧돌을 놓고 쯔원 오라버니가 벽을 올렸다면, 지붕을 씌워야 한 것은 나였다."
장제스는 아내의 글을 자신의 진술과 묶어서 소책자로 발간했다. 동료들을 향한 그녀의 비난에 승인 도장을 찍어준 셈이었다. 부부는 이 소책자로 사실상 쑹씨 가족을 제외한 장제스의 모든 동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화를 돋우는 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메이링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어쨌든 그녀는 아내로서 남편의 안전이 최우선이었고, 악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제스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었다. 국민당과 중국의 지도자로서, 장쉐량에게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난징 국민 정부로서는 유일한 길이었음을 그는 알아야 마땅했다. 천리푸와 같은 측근들은이후 수십 년간 이 일을 두고 불평했다. 장제스의 가장 큰 손실은 그의 옛‘동무‘ 다이지타오와 소원해진 것이었다. 장제스는 다이지타오의 사생아 웨이궈를 입양해서 둘째 아들로 삼았고, 다이지타오는 오랫동안 장제스에게 수많은 귀중한 조언들을 솔직하게 건네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그는 강경한 대처를 주장한 주요 인물로서, 메이링의 분노를 샀다. 장제스의 의심을 감지하자. 다이지타오는 다른 이들처럼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본래부터 의지할 친구와 조언가가 몇 없던 장제스에게 남은 이들의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이미 충분하지 않았던 충성심도 더욱 옅어졌다. 일본의 위협이 사라지면, 많은 동료들이 그를 등지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극복한 것이 자신의 덕이라는 메이링의 생각은 옳았다. 분명 그녀가 시안으로 가지 않았다면 장쉐량은 장제스 편에 서도 자신이 안전하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장제스를 풀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징과 시안 간의 전쟁이 뒤따랐을 것이고, 장제스는 난징국민당군의 포탄에 맞든지 아니면 실제로 장제스를 죽일 생각도 했던 장쉐량, 혹은 공산당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저우언라이는 공산당 보안기관전문가들과 함께 시안에 있었다. 장쉐량이 장제스를 죽이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중국은 혼란스러운 내전에 빠졌을 것이고, 이는 침략자 일본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메이링이 남편을 구하면서 조국도 구했다고 할 수 있는 셈이었다. - P269

난징에서 충칭으로 정부를 이전하는 작업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일본군의 끊임없는 폭격 속에 공무원, 의료진, 교사와 학생들을 비롯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소중한 장비, 기기, 서류들을 침착하게 상자에답은 다음 2,000여 킬로미터를 행군했다. 포장이 끝난 물품들은 꼭 필요한경우 (귀한) 화물차에 실렸고 수레가 있으면 수레에 실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인부들이 지고 날랐다. 기계들은 나무 굴림대를 놓고 사람이 끌어서배에 실은 뒤에 양쯔 강 상류로 운반했다. 국립중앙대학교에서는 7톤 무게의 장비를 옮겨야 했는데, 기중기가 없었다. 학생들은 맨손으로 이 장비를 한 발짝 두 발짝 옮겨서 배에 실었다. 짐을 실은 배들은 위태로운 양쯔강의 협곡을 지나야 했다. 양옆에 우뚝 선 절벽 때문에 물길이 좁아지면서거세게 요동쳤고, 하늘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물살은 강에 잠긴 바위에 부닥쳐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굽이치고 솟아올랐다. 몇몇 지점에서는배를 끄는 인부들이 몸을 수그린 채 한쪽 어깨에 줄을 단단히 감아 걸고초인적인 힘으로 배를 여울에서 끌어내야 했다. 힘을 모아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인부들은 거친 목소리로 일제히 끙끙대며 같은 음으로 구호를 외쳤다.
이런 방식으로 국립중앙대학교는 옮길 수 있는 모든 소유물을 운반하는 데에 성공했다. 방대한 양의 도서관 자료도, 해부학 수업을 위한 20여구의 시신들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국립중앙대학교 산하의 농업대학은 보유하고 있던 동물을 종(種)마다 한 마리씩 배에 실어서 운반했고, 학생들은 이 배를 노아의 방주라고 불렀다. 나머지 가축들은 유목민들이 하는 것처럼 교직원들이 육로로 몰아서 이동시켰다. 이동은 1년이나 계속되었다.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들여온 귀중한 소떼가 특유의 느긋한 속도로 움직였고, 때로는 등에 대나무 우리를 지고 닭과 오리를 운반하는 일을 성내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고된 여정의 끝에 짐승들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충칭에 도착했고, 오히려 도중에 태어난 송아지 한 마리가 추가되었다.
1,000명이 넘는 학생과 교사들이 제각기 충칭에 도착하자, 안락한 숙소와 교실이 그들을 맞이했다. 모두 산의 절벽을 파서 만든 곳들이었다. 새로운 교정은 비행기를 타고 먼저 충칭에 도착한 공학 교수들의 감독 아래 1,800명의 인부들에 의해서 28일 만에 완공된 곳이었다.
전쟁 때문에 엄청난 격변과 궁핍에 맞닥뜨렸음에도 사람들은 의연하게 견뎠고, 항전하겠다는 장제스의 결정을 지지했다. 장제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길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그는 ‘적보다 더오래 버티기‘를 자신의 전략으로 삼았다. 중국은 땅이 광활하고 길이 나지않은 산악 지대도 있기 때문에 일본이 중국 전체를 점령하는 일은 불가능한 반면, 장제스가 후퇴하여 버티고 있을 공간은 충분했다. 맹렬한 민족주의 정서가 그를 지탱했다. 그의 첫 번째 아내이자 장징궈의 어머니인 마오푸메이의 사망 역시 그를 격분하게 했다. 그녀는 1939년 12월 일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 P275

이러한 비타협적인 자세 덕에 장제스는 항일 전쟁 시기에 엄청난 위신을얻게 되었다. 거국적 단결의 기치 아래에 단결하여 일본과 싸울 수 있도록모든성들은 자체 병력의 지휘권을 그에게 넘겼다. 장제스가 명실공히 중국을 통일하는 데에 가장 가까웠던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그의 통제 바같에 있는 유일한 세력은 공산당군이었다. 공산당군은 별도의 지휘 체계를 유지했고, 장제스에게서는 명령을 받는 형식만 취했다. 이런 형식이 가능했던 것은 스탈린의 덕이었다. 스탈린은 전면적인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장제스와 조약을 맺었고, 문자 그대로 장제스의 유일한 무기 공급원이 되었다. 장제스가 수용한 또 하나의 양해 사항은 공산당군이 최전선에서 싸우지 않고 일본군 후방에서 게릴라전만 벌이는 것이었다. 이러한특혜로 말미암아 중국공산당의 미래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졌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장제스에게 도전하는 다른 이들의 군대는 모두 일본군에의해서 전멸된 상태였다. 그리하여 마오쩌둥은 총통의 유일한 경쟁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 P277

사람들은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몰라도, 권력의 중심에서 엄청난 부패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국난을 이용해서 재산을 축적한다(發國難財)‘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였다. 쿵샹시 가족은 끊임없이 언론, 대중, 국민당 고위층, 그리고 미국 정부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장제스는 동서 쿵샹시를 계속 자신의 ‘재정 부문 차르‘로 두었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기를 거부했다. 쿵샹시는 중화민국의 재정이 사실상 모든 경제적 기반으로부터 단절된 상태에서도 극심한 전쟁의 압박을 버티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전쟁을 지속하면서 통화 유통을 유지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고 자평했는데, 이는 타당한 말이었다.
쿵샹시가 회고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주된 비결은 "토지세를 지방세가 아닌 국세로 만든 것이었다. 그 결과 "토지세 수입이 중앙 정부 지출의 50퍼센트 이상을 충당했다." 쿵샹시가 전통적으로 지방 정부의 몫이던 수입을 빼앗아서 자신의 가족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중앙 정부의 국고로 돌려놓자, 많은 성의 지도자들이 장제스 정권을 원수처럼 여겼다. 쿵샹시는 그들의 항의를 가볍게 일축했다. "물론 몇몇 성들은 다른 데보다 다루기 어려웠지. 그들의 사리사욕 또는 단순한 무지 때문이었다네." 그러나 실제로는 앙심을 품은 많은 적들이 훗날 비밀리에 공산당을 도왔고, 결국 장제스를 끌어내렸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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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미니밴은 지금 막 도착했다.
"이제 왔군."
그는 손을 비볐다.
최근 그의 분노는 종종 심술궂게 좋은 기분으로 나타나곤 했다. 이 땅에 머물 시간이 점점 줄어들수록 자신이 천하무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사가 자신의 계획대로 잘 따라주기만 한다면야. 리틀 엔젤이 대학에 가서 그 유럽 책들을 전부 읽으며 무어라 했더라?
"타인은 지옥이야."
약은 문제없이 들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그의 능력, 모든 사람과 모든 것, 심지어 죽음까지도 능가하는 그의 능력은 초능력이었다. ‘죽음 네까짓 게 뭐란 말이냐‘
벌레와 병아리나 죽는 거지, 천사는 죽지 않는다고.
골수암? 지난번에 약초와 미네랄을 발견했다고. 그걸 복용하면 산호초처럼 뼈가 다시 자라난다고! 비타민 C, 비타민D, 비타민 A도 있어. 차가버섯 차를 마시면 돼. 장내 종양? 강황을 먹으면 돼! 셀레늄도 있고. 저런, 저런.
"나는 천하무적이야." 그는 혼잣말을 했다. "나는 천하무적이아니야" - P93

그는 보이지 않는 인터뷰어에게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100세 가까이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도 최소한 그때까지는 살겠거니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어린애였다. 웃고 싶고, 좋은 책을 읽고 싶고, 모험을 떠나고 싶고, 페를라가 만든 알본디가스 수프를 한 번 더 먹고 싶었다. 대학에 갔다면 좋았을 텐데. 파리에 가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리브 해협을 일주하는 크루즈를 탈걸 그랬어. 내심 스노클링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일단 건강해지면 하러 가야지. 그는 시애틀에 가볼 생각도 했다. 막냇동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야겠어. 그러다 불현듯, 자기가 샌디에이고의 북쪽인 라호이아에도 안 가봤다는게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부자 미국 놈들이 다 모여서 선탠하고다이아몬드를 사대지. 그 해변을 걸어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성게와 조개껍데기를 줍지 않았지? 갑자기 성게가 꼭 한번가져봤어야 할 좋은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디즈니랜드에 가보는 것도 까먹었군. 그는 충격을 받은 채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너무 바빠서 동물원에 가볼 새도 없었다니. 자기 이마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자나 호랑이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보고 싶은 건 코뿔소였다. 미니에게 코뿔소 모형을 좋은 놈으로 하나 사달라고 해야겠다. 그러자 그걸 또 어디다 둬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침대 옆에 둬야지. 딱 맞는 장소 아닌가. 그는 코뿔소였다. 그러니 죽음이란 놈을 들이받아 확 처박아버릴것이다. 랄로는 문신이 있지. 나도 하나 새겨보면 어떨까. 건강이좋아지면 말이다. - P104

"나의 엔젤, 무척 섹시하네."
페를라는 사람들이 다 모인 곳에서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온몸의 뼈가 죄다 석회처럼 굳어가고 다리가 밤낮으로 아픈데 섹시하기란 참 힘든 법이다. 게다가 기저귀까지 차고있지 않나. 그의 용감한 딸은 종종 이렇게 묻곤 했다.
"아빠, 아직 오줌 안쌌죠?"
예수님 제기랄. ‘죄송합니다. 주님.‘ 하지만 어쩌다가 그는 딸보다 더 작아져버렸을까?

내 자식들보다 더 키가 커지기

빅 엔젤은 언제나 가족의 지도자였다. 돈 안토니오가 가족들을 라파스에 굶어 죽게 내버려두었을 때, 형제자매들은 빅 엔젤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랬던 빅 엔젤이 이제는 자기 딸의 아기 노릇을 하고 있다니. 지금은 딸애가 그의 가랑이에다 베이비파우더를 바르고 있다. 이 상황이 가족들이 전부 모였을 때 그가즐겨 하던 야한 농담같이 느껴졌다.
"아빠, 괜찮아요?"
그녀가 물었다.
"내가 괜찮아질 날이 언제 또 오겠냐."
그는 저 먼 곳을 응시했다. 미니는 아버지 마음속에서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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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그가 자녀들에게 분명히 선언한 메시지가 두 가지 있었다. 시간을 잘 지켜라. 그리고 변명을 하지 마라. 그런데 지금 그는 늦어서 무슨 알리바이를 댈지 수십 가지 변명을 만들어내고 있지않은가. 자기 생일 전날 엄마를 묻으러 가게 되다니. 그의 마지막 생일이 될 터였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는 명령을 선포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가족을 불러들였다. 이 생일은 아무도잊지 못할 완벽한 파티가 되리라.
"너는 좋은 애다."
빅 엔젤은 가만히 있다가 말하고는 미니의 손을 토닥였다.
그리고 자신의 거대한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눈을 가늘게떠야만 했다. 눈까지 맛이 가고 있구나. 참 잘됐군. 시력이 뛰어나다는 걸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그는 시간이 흘러가도록 그냥 놔두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아직 안경을 쓸 때는 아니었다.
이만하면 됐지.
"라디오 꺼라!"
그가 쏘아붙였지만, 아들은 대꾸했다.
"라디오 안 켰는데요, 아부지."
"그럼 라디오 켜라!"
랄로는 라디오를 켰다.
"다시 꺼!" - P45

그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만큼 "난 이제 죽을 때가 됐어"라는 말도 많이 했다.
그는 이미 신부에게 고백했다. 소변에 다시 선혈이 나오기 시작하면 곧 쓰러지게 될 거라고 나겔 의사가 말했을 때, 곧바로 고해성사를 했다. 참으로 묘하게도, 그 순간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는 의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의사 이름은 메르세데스 조이 나겔이지. 그러고 보니 메르세데스 벤츠를 한 대 샀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나도 기쁨을 느꼈을 테니까.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 속 그의 복부 안에 주렁주렁 열린 죽음의 모습과 폐에 생긴 두 개의 어두운 반점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 진료실에 홀로 앉아 더없이 엄숙한 전사의 얼굴을 꼿꼿이 들고 의사를 응시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손을 한 번 쓰다듬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몇 주 정도요."
"나 사탕 먹어도 됩니까?"
그가 묻자 의사는 유리병을 열어주었다. 그는 체리 맛을 좋아했다. - P51

리틀엔젤은 착륙했다.
"막냇동생이 집에 왔다고!" 그가 혼잣말을 했다.
빅 엔젤의 배다른 동생인 그는 자신이 늦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나이 든 지 한참 되었는데도, 모두 그를 아직도 꼬마로 보았다. 하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그는 지구상에서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스물여덟 살짜리 인간이다. 28세로 지낸지 그럭저럭 20년쯤 되었다.
가모장의 장례식에는 빠질 수 없는 법이다. 게다가 늦어서도안 되었다. 그분은 리틀 엔젤의 엄마가 아니었다. 그는 종종 비딱하고 소심하게 그 점을 떠올렸다. 리틀 엔젤은 이 가족의 각주같은 존재였다. 모습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모든 이들이마음먹고 받아들여야 할 세부 사항 같은 존재 말이다. 왕 할아버지 돈 안토니오를 뺏어간 미국 여자, 바로 이 가족의 전설에 낙인을 찍은 미국 여자의 아들. 가족들은 심지어 그의 어머니가 일찍 죽은 것도 은근히 개탄스러워했다. 마마 아메리카가 저세상에서 미국 여자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할아버지를 몸싸움으로 뺏어 와야 하는데, 그 전에 선수를 쳐서 내세로 할아버지를 따라가다니. - P52

렌터카 센터에 도착했을 때 아직 아침 8시도 안 되었다는 걸깨닫고, 그는 갑자기 자신이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안심도 되었다. 장례식에 못 갈 일은 없겠군. 마음속 깊이 상처받은 눈빛으로 자기를 쏘아보는 큰형의 타박을 받을 일도 없을 거다.
그는 빅 엔젤의 일정에 맞추고 있었다. 언제나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그 일정에 술에 취해 있을 때면, 빅 엔젤은 둘의 형제 관계를 두고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했다. 리틀 엔젤은 테킬라가 그에게 정말 잘맞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빅 엔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성스러움을 벗겨버리는 술이니까. 그래, 우리가 처음과 나중이라는 거지? 리틀 엔젤은 그 말의 속뜻을 모르지 않았다. 국경조차 뛰어넘는 형제자매라는 신비한 존재론에 대해서는 박사 학위를 받을수 있을 정도로 잘 알았다. 그는 어쨌든 미소를 지었다.
빅 엔젤은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그들이 무슨 레슬링 태그 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렇게 선언하곤 했으니까.
"선수 입장! 몸무게 250파운드, 출신지 불명의 오메가!"
그러면 리틀 엔젤은 손을 들었고, 당황한 여자들과 아이들은 박수를 치곤 했다.
이 소리를 들을 때면 리틀 엔젤은 증인을 가진 기분이어서 내심 좋았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쳇. 본 적도 없음은 물론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리틀 엔젤과 나머지 가족을 확실하게 갈라놓았으니까.
하지만 빅 엔젤은 리틀 엔젤을 보았다.  - P53

빅 엔젤은 리틀 엔젤을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이세상 속에서 고립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리틀 엔젤은 몇 년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형이 ‘선수 입장‘ 선언을 외쳐댔을 때 그들은 후에 리처드 레인이 KTLA 방송국에 출연했을 때 소리치던 영어 표현도 공유했다. V 모양 안테나를 달아놓은 TV로 지지직대고 화질이 깨지는 방송을 같이 보다 고른 표현이었다.
"후아, 넬리! (대박 놀랍군!)"
더 디스트로이어가 블레시를 코너로 몰아붙여 무릎을 꿇고빌게 만들 때마다 레인은 이렇게 외치곤 했다.
그래서 빅 엔젤이 그를 ‘선수 입장‘이라는 말로 소개할 때, 리틀 엔젤은 가끔 이렇게 외치곤 했다.
"후아 넬리!"
그러면 나머지 가족들은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 P56

빅 엔젤은 자기 모습이 훌륭해 보인다고 여겼다. 그 옛날 토킹헤드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너무 큰 정장을 입은 남자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미니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서 TV 게임 쇼를 보며 살충제를 지지직 뿌려대는 소리가 난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다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든 채였다.
그는 이제는 가느다란 갈대같이 변해버린 목소리로 선언했다.
"엄마한테 내가 이런 꼴을 보일 수야 없지."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바짓단 아래로 슬쩍 보이는 그의발목은 닭 뼈 같았다. 고통을 꾹 참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의자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온갖 노력을 하느라툴툴거리면서, 순전한 분노를 품고 미친놈처럼 씩 웃었다. 알루미늄 보행기를 쓰는 것도 거부했다. 사람들이 자기가 보행기를잡고 걷는 모습을 보고 무어라 생각할지 상상만 해도 너무 아팠다. 다들 그쪽으로 몸을 숙이며 도와주려고 하다가도 혹시나 그몸에 손이 닿을까 조심하고 있었다. 그의 바지와 하얀 셔츠는 부풀어 오른 텐트처럼 텅 빈 채로 앙상한 몸을 감쌌다. 그는 눈물을 훔쳐내고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어머니의 병실로 걸어갔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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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링은 1931년 어머니의 사망 이후로 심각한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를 우울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1932년 그녀를 위해서 특별한 선물을 마련했다. 보통의 선물과는 차원이다른 그것은 산 중턱에 조성한 ‘목걸이‘였다. 목걸이에 매달린 보석에 해당하는 것은 밝은 녹색의 유리 기와 지붕을 얹은 아름다운 별장으로, 쯔진산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목걸이의 줄이 되는 것은 별장에서부터부지 출입구까지 길게 늘어선 플라타너스 길이었다. 이 가로수들의 나뭇잎 색은 주변의 자생 삼림과 달라서, 가을이 되면 특유의 노랗고 붉은빛으로 물들어 그 대비가 더욱 장관을 이룬다. 전용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오르면 선물받은 ‘목걸이‘의 절경, 별장의 녹색 기와가 거대한 에메랄드처럼 번쩍이며 빛을 내는 광경이 메이링의 눈앞에 펼쳐졌다. - P240

신생활 운동은 그녀의 남편이 공산당 점령 지역을 시찰하던 때에 구상한 아이디어였다. 그곳에서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특히 10년 전 모스크바를 방문한 장제스가 그토록 진저리를 쳤던 계급투쟁 관념이 대세였다. 이 관념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에게 부자의 것을 빼앗아도 된다고 가르쳤고, 고용인들에게 고용주를 배반하거나 심지어 죽이라고 부추겼다.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비난하라고 촉구했다. 장제스가 보기에 이러한 행태는중국 전통 윤리의 "모든 기본 원칙을 뿌리째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책임지고 신의와 명예를 숭상하는 중국의 전통 윤리를 다시 세우겠다고 결심했다. 장제스는 1934년 봄 난창에서 신생활 운동을 개시했다.
메이링은 이 사업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 운동의 의의는 조금 달랐다. 남편과 함께 내륙을 방문하면서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진짜 중국을 목격했다. 상하이의 호화로운 금박 칸막이 너머에서 처음 길을 잃은 서양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녀는 눈앞의 광경이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혼돈스러우며 난폭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은 반쯤 헐벗고 다녔다. 남자아이들, 심지어 어른들도 길모퉁이에서 소변을 보았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느낀 것처럼 그녀의 눈에도 중국은 "낡고 더럽고 역겨웠다." 메이링은 "사람이 바글거리는 내륙 도시의 지저분한 거리를 지나노라면 시야가 나쁜 날 비행할 때보다도 심란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조국을 자랑할 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었다. 메이링에게 신생활 운동의 본질은 전 인구가 올바른 행동 양식을 익히게 하는 것이었다. - P243

신생활 운동은 장제스 부부가 각별히 챙기는 사업이자 국민당 정권의 대표적인 대내 정책이 되었다. 이 운동은 모든 해악에 대한 치유법이며 중국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선전되었다. 예의범절과 질서를 지키는 태도가 문명화된 사회의 필수 조건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겠지만, 이렇게까지 과장된 주장은 명백히 허위였다. 54개의 규정과 42건의 위생 요건을 명시한 정부 소책자를 두고, 대표적인 자유주의자 후스는이렇게 적었다. 이러한 규정들은 대부분 "문명인이 익혀야 할 최소한의 상식적인 생활양식이며, 그 안에 나라를 구원할 만병통치약이나 민족을 부흥시킬 기적의 명약 따위는 없다." 그는 또 지적했다. 많은 누습들은 "가난의 산물이다. 보통 사람들은 경제 사정이 너무 열악해서 좋은 생활 습관을익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타고 남은 석탄 부스러기, 더러운 넝마 한 조각을 얻겠다고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데, 그들이 남의 분실물을 찾아내서 자신이 가진다고 해서 정직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신생활 운동의 규정 중의 하나는 "분실물을 발견하면 돌려주어라"였다.) "정부가 책임지고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보통 사람들에게 적정한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른바 신생활을 영위하도록 가르치는 일은 가장 마지막 과제이다." - P245

1932년 12월, 장제스 정권은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공공의 적인 일본 때문에 우호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상하이를 공격하고 만주에는 괴뢰 정부인 만주국을 세워서 남쪽으로 잠식해오고 있었다.
전면 충돌이 불가피해 보였다. 중국은 소련이 필요했다. 오래 전부터 극동에서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온 소련에도 중국이 필요했다. 스탈린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일본이 중국을 장악한 다음 중국의 자원을 이용해서중소 국경을 넘어 침공해오는 것이었다. 7,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중소국경 전체를 방비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는 일본이 소련으로 방향을 틀지 않도록 중국이 그들에 맞서 싸우기를 바랐다. 소련과의 적대관계가 조금씩 개선되자, 장제스는 본격적으로 아들을 되찾아올 계획을 세웠다. 그는 소련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조건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생각은 중국공산당으로 향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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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제스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일반 민중을 경멸한다는 인상까지 풍겼다. 그는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은 "수치도 없고, 도의도 없다", "게으르고, 무감각하고, 부패했고, 타락했고, 오만하고, 사치를 즐기고, 고생을 견디거나 규율을 지키지 못하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부끄러움이 없고, 도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대다수는 반은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산송장‘이다."
민중을 가난에서 구제하는 문제는 장제스의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그가 중국 본토에서 쫓겨날 때가 되어서야 후회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소작농들이 지주에게 내는 소작료를 삭감해주는 안건이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몇몇 성에서만 시범적으로 시행되다가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폐기되고 말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공산당이 파고들어, 자신들의 목표는 인민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그들이 차지한 영토도 넓어졌다. 소련을 등에 업은 그들은 1931년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부유한 중국 동남부 지역에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했다. 전성기를 기준으로 이 독자 정부가 지배한 토지는 총 15만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1,000만 명 이상이었다. 중대한 위험 요소가 장제스의 바로 턱밑에서 자라고 있었다. - P216

니구이전의 장례식이 거행되기 하루 전, 덩옌다가 체포되었다. 그가 지하에서 은밀히 제3당을 조직한 이후였다. 중국에 돌아온 뒤로 칭링과 덩옌다가 만날 기회는 없었다. 당시 장제스의 정적으로는 쑨원의 아들 쑨커도 있었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인물은 덩옌다였다. 그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감이었을 뿐만 아니라, 장제스에게는 없는 신중하게 세운 정강도 있었다.
덩옌다는 유럽과 아시아를 다니면서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유심히 관찰했고, 농민층의 빈곤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상세한 정책을 이미 구상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제스를 골치 아프게 한 것은 국민당군 내에 덩옌다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장제스의 명에 따라서 덩옌다는 1931년 11월 29일 난징에서 비밀리에 처형되었다. 소식은 새어나갔다. 뜬소문일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간직한 채, 칭링은 난징으로 달려가서 장제스에게 덩옌다를 석방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녀가 매부와 직접 만나서 무엇인가를 호소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칭링은 내면의 상냥함을 최대로 끌어모아서 장제스에게 말했다. "당신과 덩옌다의 의견 차이를 중재하러 왔습니다. 그를 불러와서 함께 이야기해보도록 해요." 한동안 침묵하던 장제스는 이렇게 우물거렸다. "너무 늦었습니다....." 칭링은 폭발했다. "살인마!" 그녀가 소리쳤다. 장제스는 황급히 방을 나갔다. 칭링은 비탄에 잠긴 채 상하이로 돌아왔다.
그녀는 펜을 들어 국민당을 비난하는 글을 길게 썼다. 처음으로 국민당의 "파멸"을 공개적으로 촉구했고, 자신은 공산당 편으로 넘어갈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녀의 글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이 기고문에 두 쪽이나 지면을 할애했고, 생각에 잠긴 칭링의 사진 아래에는 "나는 혁명 중국을 위해 말한다"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 P234

덩옌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칭링은 상하이의 코민테른 비밀공작원에게 접근하여 공산당 가입 의사를 전했다. 이미 그녀는 공산당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 코민테른이 계획대로 그녀를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당원까지 될 필요가 없었다. 만약 공산당원이 된다면 공산당 조직의 명령을 받고 그들의 규율에 따라야 했다. 그녀를 향한 위협이 커지리라는 사실역시 명백했다. 장제스는 물론, 그녀가 직접 목격했던 당 내부의 계파 갈등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칭링의 결심은 굳건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장제스를 처단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코민테른 비밀공작원에게 "기꺼이 모든 것을바치겠다"고 말했다. 상하이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하는 데에 뒤따를 위험부담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비밀공작원은 망설였으나 칭링은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가입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얼마 후 코민테른은 이것이 "크나큰 착오였다고 판단했다. "공산당원이 되면 그녀만의 특별한 가치를 잃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민테른은 칭링이 공산당에 가입한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칭링이 공산당원이었다는 사실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철저히 감춰진 비밀 가운데 하나였고, 그녀가 사망한 뒤인 1980년대에 와서야 랴오증카이의 아들 랴오청즈에 의해서 세상에 드러났다.  - P235

그녀가 수행한 한 가지 특별한 임무는 미국인 기자 에드거스노가 공산당 점령지에서 마오쩌둥과 그 동료들을 인터뷰하도록 주선한일이었다. 이때의 인터뷰를 담은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은 마오쩌둥을 누구나 좋아할 만한 사람으로 서방에 소개했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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