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장제스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일반 민중을 경멸한다는 인상까지 풍겼다. 그는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은 "수치도 없고, 도의도 없다", "게으르고, 무감각하고, 부패했고, 타락했고, 오만하고, 사치를 즐기고, 고생을 견디거나 규율을 지키지 못하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부끄러움이 없고, 도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대다수는 반은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산송장‘이다."
민중을 가난에서 구제하는 문제는 장제스의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그가 중국 본토에서 쫓겨날 때가 되어서야 후회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소작농들이 지주에게 내는 소작료를 삭감해주는 안건이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몇몇 성에서만 시범적으로 시행되다가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폐기되고 말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공산당이 파고들어, 자신들의 목표는 인민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그들이 차지한 영토도 넓어졌다. 소련을 등에 업은 그들은 1931년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부유한 중국 동남부 지역에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했다. 전성기를 기준으로 이 독자 정부가 지배한 토지는 총 15만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1,000만 명 이상이었다. 중대한 위험 요소가 장제스의 바로 턱밑에서 자라고 있었다. - P216

니구이전의 장례식이 거행되기 하루 전, 덩옌다가 체포되었다. 그가 지하에서 은밀히 제3당을 조직한 이후였다. 중국에 돌아온 뒤로 칭링과 덩옌다가 만날 기회는 없었다. 당시 장제스의 정적으로는 쑨원의 아들 쑨커도 있었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인물은 덩옌다였다. 그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감이었을 뿐만 아니라, 장제스에게는 없는 신중하게 세운 정강도 있었다.
덩옌다는 유럽과 아시아를 다니면서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유심히 관찰했고, 농민층의 빈곤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상세한 정책을 이미 구상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제스를 골치 아프게 한 것은 국민당군 내에 덩옌다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장제스의 명에 따라서 덩옌다는 1931년 11월 29일 난징에서 비밀리에 처형되었다. 소식은 새어나갔다. 뜬소문일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간직한 채, 칭링은 난징으로 달려가서 장제스에게 덩옌다를 석방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녀가 매부와 직접 만나서 무엇인가를 호소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칭링은 내면의 상냥함을 최대로 끌어모아서 장제스에게 말했다. "당신과 덩옌다의 의견 차이를 중재하러 왔습니다. 그를 불러와서 함께 이야기해보도록 해요." 한동안 침묵하던 장제스는 이렇게 우물거렸다. "너무 늦었습니다....." 칭링은 폭발했다. "살인마!" 그녀가 소리쳤다. 장제스는 황급히 방을 나갔다. 칭링은 비탄에 잠긴 채 상하이로 돌아왔다.
그녀는 펜을 들어 국민당을 비난하는 글을 길게 썼다. 처음으로 국민당의 "파멸"을 공개적으로 촉구했고, 자신은 공산당 편으로 넘어갈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녀의 글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이 기고문에 두 쪽이나 지면을 할애했고, 생각에 잠긴 칭링의 사진 아래에는 "나는 혁명 중국을 위해 말한다"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 P234

덩옌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칭링은 상하이의 코민테른 비밀공작원에게 접근하여 공산당 가입 의사를 전했다. 이미 그녀는 공산당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 코민테른이 계획대로 그녀를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당원까지 될 필요가 없었다. 만약 공산당원이 된다면 공산당 조직의 명령을 받고 그들의 규율에 따라야 했다. 그녀를 향한 위협이 커지리라는 사실역시 명백했다. 장제스는 물론, 그녀가 직접 목격했던 당 내부의 계파 갈등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칭링의 결심은 굳건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장제스를 처단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코민테른 비밀공작원에게 "기꺼이 모든 것을바치겠다"고 말했다. 상하이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하는 데에 뒤따를 위험부담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비밀공작원은 망설였으나 칭링은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가입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얼마 후 코민테른은 이것이 "크나큰 착오였다고 판단했다. "공산당원이 되면 그녀만의 특별한 가치를 잃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민테른은 칭링이 공산당에 가입한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칭링이 공산당원이었다는 사실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철저히 감춰진 비밀 가운데 하나였고, 그녀가 사망한 뒤인 1980년대에 와서야 랴오증카이의 아들 랴오청즈에 의해서 세상에 드러났다.  - P235

그녀가 수행한 한 가지 특별한 임무는 미국인 기자 에드거스노가 공산당 점령지에서 마오쩌둥과 그 동료들을 인터뷰하도록 주선한일이었다. 이때의 인터뷰를 담은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은 마오쩌둥을 누구나 좋아할 만한 사람으로 서방에 소개했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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